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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QT] 벧후1장1-11 "예수 알기를 힘써 영적 성장을 이루라"

Q.T.

by Vano 2022. 12. 19. 07:58

본문

베드로후서

제 1 장

부르심과 택하심

1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2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3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4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5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6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7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8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9   이런 것이 없는 자는 맹인이라 멀리 보지 못하고 그의 옛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잊었느니라
10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11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김도훈 목사님

믿덕 지절인 경형사

§ 우리는 동일한 믿음을 받았다.

1절b: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

*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 = 동일한 종류의 믿음: 그리스도를 아는 믿음

→ 능력과 기적을 행하는 사도와 갓 신앙 생활을 시작한 성도가 동일한 믿음을 주로부터 받았다.

§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꼭 알기 원하시는 것

1) 신령한 능력으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이 있음을 알기 원하신다.

  우리의 성장에 필요한 것(믿음, 생명, 경건에 속한 것)을 이미 모두 다 주셨다. 이제 주신 것을 먹고 성장하기만 하면 된다.

2) 보배롭고 큰 약속이 우리 안에 있음을 우리가 알기 원하신다.

* 하나님의 우리를 향하신 마음 = 부모의 아기를 향한 마음

  갓난아기가 너무나 예쁘고 좋지만 5-10년이 지나도 자라지 않고 계속 갓난아기 상태라면 부모는 근심하게 된다. 부모는 아기의 성장을 원한다. 

4절: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 아기의 성장 = 하나님의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것 = 거룩해지는 것

  아기는 자신이 뭔가를 열심히 해서 성장한다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사실은 아기 성장에 필요한 모든 것을 부모가 제공한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뭔가 열심히 해서 신앙성장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성장에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제공해 주신다.

§ 영적 성장(하나님의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것)을 위한 8 요소: 믿덕 지절인 경형사

① 믿음 Faith

② 덕 Goodness

③ 지식 Knowledge

④ 절제 Self-control

⑤ 인내 Perseverance (사전: 궁극적 구원(임종까지 신의 은혜를 계속 입어 영원한 구원에 이르기))

⑥ 경건 Godliness (사전: 신의 계율[뜻]에 순종함; 신앙심 깊음, 독실함.) - 하나님의 성품을 닮는 것.

⑦ 형제 우애 Brotherly kindness

⑧ 사랑 Love

  믿 덕 지 절 인 경 형 사는 순서대로가 아닐 수도 있으며 둘씩 짝을 지어 해석하는 학자도 있고 단계로 보는 해석도 있다.

* 베드로후서에서는 '안다'를 강조하는데, 이 '아는 것'은 머리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부부가 서로를 경험하여 알듯 하나님과 관계적으로 소통함으로 하나님을 깊이 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주를 앎으로 더욱 주님을 닮아가고 주를 닮아감으로 더욱 주를 알게 되는 아름다운 순환을 이루도록 하자.


믿음 덕 지식 절제 인내 경건 형제우애 사랑.

순서에 상관은 없지만 그래도 이 흐름이 자연스러우니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 아닐까.

믿음이 커지면 덕을 세우게 된다. 믿음은 주님을 믿는 것이다. 즉 주님과 나의 1:1 관계에 해당한다.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 영원히 나를 사랑하시며 지키시며 도우시는 분이심을, 나를 모든 죄로부터 구원하셨음을 믿게 된다면 외부(세상)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며, 나를 구원하신 주님의 사랑에 감사하는 마음이 외부로 향하여 흐르게 된다. 그것이 덕Goodness, 타인(외부)에게 선함을 행하게 되는 것이다. 이 '선함/덕'의 단계에서 사랑이 얼마나 충만한지는 모르겠다. 물론 사랑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이렇게 행할 수는 없겠으나, 사랑이 충만하지는 않아도 외부를 향해 덕/선함을 행할 수는 있겠다. 덕이 쌓이면,  외부를 향해 선함을 행하다 보면 그것이 얼마나 외부와 나의 관계를 풍요롭고도 순적하게 풀어가는 것인지를 '알게' 된다. Knowledge. 하나님을 믿음이 확장되어 이르게 되는 진정한 지식. 그것을 앎으로 더욱 선을 행하고 싶어진다. 그런데 선은 타인을 위한 것이다. 타인을 위하는 것은 자신을 덜 위하는 일이다. 자신을 절제 Self-control하는 일이다. 타인(외부, 세상)을 향한 절제가 확장되면 인내 Perseverance, '끝까지 붙잡고 변함없이 지키는 상태'가 계발된다. 이것은 구원에 이르기까지 주의 길을 지키는 것으로 연결된다. 외부 인간을 향한 절제가 다시 주님의 구원을 향한 인내이자, 타인을 더욱 견딜 수 있게 되는 인내로 성숙하게 되는 것이다. 음... 절제와의 구별을 하자면... 절제는 단편적이고 순간적인 의미가 들어갈 수 있지만, 인내는 지속적으로 시간을 들이는 것을 요한다. 단편적인 절제가 연결되면 인내가 되나 보네. 흠... 개인적으로는 이 '인내'가 정말 힘들다 생각하는데, 왜냐하면 '시간'은 대표적인 하나님의 소유이자 권위이기 때문이다. 시간 만큼은 절대로 하나님의 절대적 통치 하에 있다. 내가 기도한 것은 반드시 들어 주시지만 그것을 들어주시는 '때/시간'은 하나님의 소관이다. 시간은 유한한 우리의 것이 아니라 무한하신 하나님의 것이다. 즉 유한한 우리에게 있어 무한의 시간은 이질적이란 뜻이다. 우리의 것이 아니므로 힘들다. 그러하기에 '시간'을 믿고 이해하고 견디는 것은 무한을 믿고 이해하고 기다리는 것을 의미한다. '무한'은 '하나님'이다. '인내'가 소중함은, 시간의 개념을 포함한 '인내'는 곧 무한이신 하나님께 연결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내를 습득한 사람은 하나님의 무한성을 받게 된다. 그 무한성은 우리를 끝없이 인내하신 하나님이시기도 하다. 그 하나님을 받음으로 인해 비로소 우리는 경건. 그렇지! Godliness. 하나님의 속성을 받았으니 하나님의 성품을 닮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런 단계가 되겠다. 자... 그 다음이 문제인데. 하나님의 성품인 경건에 이르게 되면... 형제 우애 Brotherly Kindness에 이르게 된다. 이 형제 우애가 내게는 관건인데... 벧전 1: 22에 따르면

22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라고 했다. 오! 알겠다. 그러니 단순히 친절함이 아니라 진리(하나님)를 순종함으로 나의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마음으로 뜨겁게 형제를 사랑하는 것. 즉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해 형제 사랑에 이르는 것이다. 오...! 그러니깐, 하나님과 나의 관계인 '믿음'에서 출발하여 '형제(이웃)사랑'으로 연결되는구나! 즉 예수님께서 강조하신 단 두 계명,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이렇게 연결되네.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게 된다. 그것이 율법의 완성이며 그 최종에 닿은 단계가 바로 사랑 Love이다. 흠.

사역반은 고사하고 아직 제자반 훈련도 받을 자격이 안 되는 거지만, 개인적으로 생각해 보기에 제자반과 사역반의 차이는 '제자반: 하나님 앞에 나 개인으로서의 삶을 세우기' 라면 '사역반: 하나님께 받은 사랑을 타인(순원)과도 나누어 <하나님 - 나> 라는 양자 관계를 <하나님 - 순원 - 나>라는 삼자 관계로 확장시키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 관계의 토대이자 동력은 '사랑'이고.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한 관계가 내 안에 충만히 차오르고 성숙됨으로 바깥으로 흘러 나가 이웃 사랑에까지 하나님의 사랑으로 물들이는 것. 이 최종이 '사랑'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니 결국 '하나님'이 되시겠다. 하나님 앞에 나 개인의 신앙을 지키는 것은 물론 아주 중요하다. 하지만 나 혼자 고립된 신앙생활은 반쪽짜리 신앙이다. 하나님께서는 주님과 나의 관계를 다른 사람과의 관계로까지 확장시키기 원하신다. 그것이 주의 자녀로 먼저 택하심을 받은 이유가 되겠다.

이것이 너무나 중요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8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9   이런 것이 없는 자는 맹인이라 멀리 보지 못하고 그의 옛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잊었느니라
10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11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실족하지 않기 위하여. 은혜 펑펑 받고 있는 내가 늘 걱정인 것이 성령님을 근심시키는 일, 즉 내가 실족하는 일인데, 그 일을 피하는 방법은 이 믿덕지절인경형사를 애쓰는 것이다. 이것이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면... 그렇다면... 가장 앞에 있는 '믿음'을 힘쓰면 힘쓸수록 덕이 계발될 것이고, 그럴 수록 지식이 자랄 것이며... 순으로 흐르겠구나. 진심과 전심을 다해 '믿음'에 힘써야겠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말씀으로 말미암는다.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깊게 읽고 묵상하며 기도 속에 주의 세미한 음성을 듣는 것. 즉 말씀과 기도를 정성을 다해 한다면 이 모든 것이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진행되며, 그리하면 실족하지 않게, 즉 성령님을 잃지 않게 되겠구나. 이 방법을 알려 주신 주님 감사합니다.

또... 수다가 길어졌네.ㅠ 제자반 준비하는 작업에 들어가려는 건데. 그래서 설교를 간단하게 요약하는 작업을 시작하는 건데, 큐티가 들어가니 확실히 묵상이 길어진다. 아아아아아.ㅠㅠ 하지만 은혜로운 묵상 주셔서 성령님 감사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감사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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