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N8USwO5JzRM
[창세기 28:16-22]
16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When Jacob awoke from his sleep, he thought, 'Surely the LORD is in this place, and I was not aware of it.'
17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He was afraid and said, 'How awesome is this place! This is none other than the house of God; this is the gate of heaven.'
18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Early the next morning Jacob took the stone he had placed under his head and set it up as a pillar and poured oil on top of it.
19 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옛 이름은 루스더라
He called that place Bethel, though the city used to be called Luz.
20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Then Jacob made a vow, saying, 'If God will be with me and will watch over me on this journey I am taking and will give me food to eat and clothes to wear
21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so that I return safely to my father's house, then the LORD will be my God
22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and this stone that I have set up as a pillar will be God's house, and of all that you give me I will give you a tenth."
김지찬 목사님(前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교수님) · 주후 2025.08.10 주일예배
* 교회가 멸절되는 데는 한 세대 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주의해야 한다.
† 십일조에 대하여
1. 십일조 논쟁
1) 오늘날 교회에서 십일조 설교를 하지 않는다.
→ 성도들이 거부감을 많이 느낀다.
2) 십일조에 대한 논쟁이 유투브를 통해서 프레임 논쟁으로 넘어갔다.
→ 프레임은 단어에 의해서 형성된다. 프레임 전쟁에서 이기려면 상대방이 쓰는 단어를 사용하면 안된다.
→ 십일조 폐지론자들은 십일조 뿐만 아니라 삶 전체를 드려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과연 그들이 십일조를 하는지는 의문이다.
→ 십일조 유지론자들은 십일조를 내는 것에서만 그친다.
☞ 하나님께 삶 전체를 드리는 것에는 미치지 못한다.
2. 야곱을 통한 성경의 십일조
1) 아브라함의 하나님 - 이삭의 하나님 - 야곱의 하나님
① 하나님은 개인개인보다 가문과 세대를 통해 인간을 구원하기 원하신다.
→ 신앙의 세대계승 + 각 세대마다 자신만의 체험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
②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이름으로 불리우기 원하신다.
→ "ㅇㅇㅇ의 하나님"
③ 아브라함의 십일조가 야곱의 십일조로 계승된다.
→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같은 체험이 부모에서 자녀로 공유, 전승되었다.
→ 루터는 결혼에 관한 설교에서 자녀를 경건하게 양육하는 것이 천국에 가는 지름길이라고 말했다.
④ 3대 안에서 계승 또는 단절이 이루어진다.
2) 하나님을 만난 어떤 경험이 아브라함에게서와 마찬가지로 야곱으로 하여금 십일조를 드리게 하였을까?
① 벧엘 돌베개 사닥다리 사건
* 오르락 내리락, 왜 오르락이 먼저냐? 에 대한 설
i) 야곱이 누워 있으므로 올라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먼저다.
ii) 지상에서 사역을 다 한 사자가 올라가고 그 다음 사자가 내려오는 것이다.
→ 중요 X
13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삼상3:10] 여호와께서 임하여 서서 전과 같이 사무엘아 사무엘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이르되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니
[행23:11]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또 다른 번역: '위에'를 '옆에'로 해석 가능 + '그'를 야곱으로 보얐을 경우: 여호와께서 그(야곱) 옆에 서서 이르시되
→ 하나님께서 사닥다리를 내려와서 야곱 옆에 서 계신 모습으로 해석 가능(김지찬 목사님은 이 해석 지지하심).
14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 왜 하나님께서는 속임 당한 에서가 아니라 속인 야곱의 편에 서셨을까?
→ 하나님께서 먼저 야곱을 찾아 오셔서 구원을 베푸심 ☞ 복음
[롬9:13]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택하신 자를 끝까지 사랑하시고, 이 사랑을 근거로 변화될 것을 요구하신다.
☞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면 변하지 않을 수 없다.
② Thin Place 얇은 장소
→ 영국 켈트 지역 기독교에서 부르는 용어
→ 하늘과 땅 사이가 얇아진 곳: 하나님께서 나타나시는 곳.
Thin Place = 하늘과 땅 사이가 얇아진 장소 = 하나님의 은혜가 새어나오는 틈
☞ 신앙의 선배들은 하늘의 문이라 인지하고 그곳에서 하나님을 예배했다.
그러나 물질적 풍요를 경험한 젊은 세대는 신앙이 약해져 이 Thin Place를 알아보지 못한다.
[하나님의 언약]
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야곱의 서원]
20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21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22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 하나님의 약속과 야곱의 고백이 거의 비슷함.
→ 야곱의 십일조 서원은 하나님의 약속에서 비롯된 것.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시지 않았다. 야곱이 받은 은혜로 인해 자발적으로 드린다 한 것이었다.
16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17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 두려워하고 있던 야곱은 하나님과 딜을 하는 입장이 아니었다.
☞ 움켜쥐던 자에서 이제 드리는 자로 변화된 야곱.
☞ 움켜쥐어야만 하는 현대인의 모습과 비슷함.
◇ 야곱의 서원(나를 지켜 주시고 돌아오게 해주시면)
① 신앙고백: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
→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엘 벧엘(벧엘의 하나님)"이라 하심.
→ 출애굽기에 가서 '아브라함의 하나님 - 이삭의 하나님 -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문구 생성.
② 예배: 돌베개에 기름 부어 이곳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
→ 하나님께 예배하겠습니다.
③ 예물: 십일조
→ 예배하려면 예물이 필요함
성경적 십일조: 하나님께서 먼저 다가오셔서 주신 복에 감사하여 받은 복의 십일조를 드리는 것.
십일조는 율법적 최소가 아니라 자발적 최소, 은혜의 최소가 되어야 한다. 은혜 받음의 최소가 되어야 한다. 억지로 하는 것은 안된다. 하지만 훈련을 해야 한다. 자발적으로 하는 것이지 의무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세속적 예배(세상 사람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사고 즐기는 것) vs. 성경적 예배(하나님께 받은 것을 감사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것)
→ 십일조는 고백적 저항이다.
십일조를 생각할 때 야곱이 지녔던 꿈과 비전처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꿈과 비전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 [요]1:50 |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
| [요]1:51 | 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
→ 인자(예수님)가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사닥다리가 되심
☞ 하늘과 땅이 얇아진 정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과 땅이 붙어 하나로 연결 됨 =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실 때 하늘이 열리며 성부-성자-성령 하나님이 동시에 계시되셨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을 때 지성소의 휘장이 찢어짐.
→ 십일조는 율법적 최소가 아니라 은혜의 최소, 자발적 최소가 되어야 한다.
[고후8:1-2]
1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2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 마게도니아 교회 성도는 극심한 가난을 경험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그들의 헌금은 마르지 않았다.
→ 환난의 많은 시련 속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 때문에 연보를 풍성이 넘치도록 했다: 기이한 일. (하나님의 은혜 덕분).
[눅21:1-4]
1 예수께서 눈을 들어 부자들이 헌금함에 헌금 넣는 것을 보시고
2 또 어떤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 넣는 것을 보시고
3 이르시되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4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 교회가 배워야 할 정신이다.
* 신약에는 '헌금'이란 말은 안 나오지만 '은혜', '연보', '풍성함' 등 다양한 언어로 헌금을 표현했다.
* 하나님께서 주신 복에 감사하며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고 예배하며 십일조로 예물 드리는 것을 다음 세대에 계승해야만 한다! : 할아버지의 십일조 ⇒ 아버지의 십일조 ⇒ 손자의 십일조
→ ◇ ☞ † ⇒ ☆ § ※ √ ♥ ♥ ♥ ① ② ③ ④
[삼천포 대잔치]
* "ㅇㅇㅇ의 하나님"
영광이다. 와...! 굉장히 은혜로운 말씀이다. 모든 것의 창조주이시자 유일한 주인 되신 하나님께서 나의 이름으로, 나의 하나님으로 불리우는 것을 즐거워하시다니. 와...!!! 그런 하나님께 부끄럽지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바람이 솟아난다. 방황 때의 나는 하나님의 이름에 먹칠을 하고 다닌 괴수 중의 괴수였다.ㅠㅠ 돌아온 지금이라고 막 엄청 은혜로운 사람이 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하나님께서 은혜 주셔서 나아지고 있다ㅡ고 믿는당.;; 내게 하나님은 세상 그 무엇보다 자랑스러운 분이신 만큼 나 또한 하나님께 자랑스러운 사람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런 나도 기뻐해 주시고 나의 하나님으로 불리우시는 것을 기뻐해 주시다니. 감동.ㅠㅠ 나도, 나도 하나님께서 자랑스러워하시는 백성이 되고 싶당.ㅠㅠㅠ
* 오르락 내리락, 왜 오르락이 먼저냐? 에 대한 설
사실 난 이런 이야기 들으면 신학대학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니까 목양을 위해서는 딱히 갈 마음이 들지 않는데, 이처럼 성경에 대한 여러가지 궁금증들을 더 상세하게 다루기에 많은 해답이나 또는 해답에 가까운 답들을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할 때면 신대원 가고 싶단 생각이 강렬하게 들기는 해.
* 왜 하나님께서는 속임 당한 에서가 아니라 속인 야곱의 편에 서셨을까?
하나님께서 택하셨기 때문이지. 그렇다면 왜 속임 당한 에서가 아니라 속인 야곱을 택하셨을까? 기실 이것은 창조주를 향한 상당히 무례하며 주제 넘은 질문이다. 내가 쓰려고 숟가락을 만들었고 밥그릇을 만들었다. 그런데 숟가락이 내게 그런다. "왜 나를 밥그릇이 아닌 숟가락으로 만들었냐? 부당하다!!" 나라면 그 숟가락을 당장 불 속에 집어 넣었을 거다.
......
그, 그래서 난 하나님이 넘나 감사한 거다.ㅠㅠ 내가 하나님이었다면 나 같은 피조물은 뼈도 못 추렸엉...ㅠㅠㅠ 죽어도 벌써 골백 번은 죽었당.ㅠㅠ
하나님은 내가 아니시기에, 하나님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내가 살아있다. 살아있다 뿐인가. 그 극악한 짓을 하고도 구원 뿐 아니라 이 말도 안 되는 은혜를 몰아 받고 있다. 탕부 하나님.ㅠㅠ 다 써버리시는 헤픈 사랑의 하나님.ㅠㅠ 정말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나는.ㅠㅠ
위의 질문은 지극히 인본주의적인 질문이다. 신본주의적인 질문이 아니란 뜻이다. 그런데 인간은 피조물이고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다. 그러니 인본주의라는 것 자체가 틀린 것이다. 잘못된 것이며 질서를 거스르는 것이야.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며 이 세상은 그 질서의 하나님의 손에 창조되었으므로 질서가 바른 것이다. 그러니 질서를 거스르는 인본주의는 틀린 것이고 잘못된 것이다.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고? 그것은 내가 만든 컵과 숟가락이 나보다 자기네들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말이 되는가?
* [행23:11]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주님은 정말로 사람 곁에 서서 말씀하셨네... 아까 은혜채플에서 기도하는데 핏빛 망또 입으신 예수님께서 내 바로 앞에 서 계셨음.
* Thin Place = 하늘과 땅 사이가 얇아진 장소 = 하나님의 은혜가 새어나오는 틈
☞ 신앙의 선배들은 하늘의 문이라 인지하고 그곳에서 하나님을 예배했다.
은혜 받았다.ㅠ 아마도 오정현 목사님의 용어로는 '광야대학'인 것 같다. 안간적인 모든 능력과 도움이 없어진, 막다른 벼랑 끝. 죽음과 맞닿은 삶의 끝 지점. 지금 내가 있는 곳이다. 그리고 실제로 나는 이 광야야말로 하나님 만으로 가득 찬, 일상이 예배로 가득한 곳이라 여기고 있다. 하나님은 만복의 근원이시니 광야는 곧 만복으로 가득 찬 은혜의 공간이다. 하나님을 가장 가까이서 만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 15년 남았네? 아직 하나님을 위해 하고픈 일들이 좀 더 있어요.
방황 기간, 나는 자살을 꿈꾸며 살았다. 주께로 돌아왔고, 이제는 생명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을 위해 살고 있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임 받기를 간절히 간절히 꿈꾸며 기다리고 있다. 지금도 이 땅에서의 미련은 없다. 자살을 꿈꾸었던 이유로 결혼과 출산을 포기한 덕분에? 지금 나는 가족이 없는 상태가 되었지만, 나의 회개과 눈물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내가 망쳐 버린 이 환경조차 합력하여 선을 이루고 계신다.
나는 지금 당장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시면 갈 수 있다. 가족이 없기에 지상의 삶 자체에 대한 미련은 없다. 다만 김지찬 목사님의 말씀에 너무 공감하는 것이... 아니 잠만요 목사님... 근데 목사님 같으신 분이 그렇게 말씀하심 어떡해요. 하나님 위해 하신 일이 없다뇨. 지금까지 목사님, 교수님으로서 수많은 차기 목사님들을 말씀으로 마음으로 먹여 키우신 목사님께서.;;; 뭔가 진짜 상급 없고 찐 가난뱅이인 나와 같은 돌탕을 모르셔서 그러시는 듯.ㅠㅠ 가지신 분들이 더 하시다고 증말...ㅠㅠ;;
암튼 나는 이 지상에서의 삶 자체에에 대해서는 미련이 없으나, 이대로 천국에 간다면 하나님께 너무 죄스럽고 밍구스러울(면구스러울) 것만 같다. 하나님께서 내게 어떤 복을 베풀어 주셨는데, 어렸을 때부터... 근데 정말 너무너무너무너무 부끄러워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을 것 같다.ㅠㅠ 그래서 내게 시간을 주셨으면 좋겠다. 기회를 주셨으면 좋겠다. 주께서 주신 이 귀한 삶과 건강으로 주님 기뻐하시는 일을 하고 싶다. 하나님 나라와 의를 위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뭐라도 쓰임 받고 싶다. 내가 영원을 살게 될 거 아니야... 영원이라는 감도 안 잡히는 그 무한의 영광을 살게 될 거잖아... 무시간대의 하나님께서는 그 무한 동안 지상에서의 나를 생각하시며 기뻐하기 즐거워하실 텐데, 지금의 나는 속썩여드린 일밖에 없어서.ㅠㅠ 너무너무 부끄럽고 죄송할 것 같단 말이야. 그래서 좀 더 살고 싶다. 좀 더 살아 하나님 위해 뭐라도 하고 싶다. 목사님의 마음 너무나 공감함.ㅠ
우리는 그렇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을 맛 본 자들은 다들 같은 마음을 갖게 되는 것 같어. 하나님은 참 신비로운 분이심.💖
* istj vs enfp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데이터 ㅋㅋㅋㅋㅋㅋㅋ
아놬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떻게 정반대분들께서 결혼하셨어욬ㅋㅋㅋㅋㅋ 보통 1-2개는 겹치던뎈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세상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istj랑 enfp라면 서로가 굉장히... 그러실 텐데... ㅋㅋㅋㅋㅋ 하지만 그만큼 잘 맞추기만 하면 서로를 위한 완벽한 보완이 되죠! 👍✨💖 근데 내가 본 잇티제들은 하나같이 유머감각 없고 재미 없던데, 김지찬 목사님은 왜 일케 유머센스 최고이신 거임? 난 세상에서 잇티제가 가장 매력 없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김지찬 목사님 덕분에 그 편견이 파사삭! 부서졌당. 이렇게 센스짱이실 수가. 캬...!!! 👍✨💖 그래. 유형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인 거임. 나와 같은 인팁 중에서도 나와 달리 센스 최고 유머쟁이가 있... 겠지... 비록 나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지만. 어딘가에 있을 거임. 비록 인팁 카페에서 오래 활동하는 동안 한 번도 본 적은 없다만. 인팁들의 웃음 코드는 좀 독특하거든. 특히 인팁들끼리 모여 있으면 완전... 희한하다. 우리는 이상한 언어유희에 웃고 이상한 공상에 쓰러지는 자발적 아싸들이당.ㅋㅋㅋ 그리고 그런 정체성을 스스로 뿌듯해하는 정말 이상한 사람들이당. 그런 주제에 꽤 따스하며, 따스하지만 결국 감정이 기계와 같다는 평을 받곤 한당. 나는 그 기계성을 깨고자 부단히 감정형을 관찰하고 수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쓴, 뛰어난 페르소나를 장착한 신잉팁이당! → 뭐랭.🤪
* 움켜쥐던 자에서 이제 드리는 자로 변화된 야곱.
감동.
* ② 예배: 돌베개에 기름 부어 이곳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
야곱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없어 그것을 하나님께 구했을 정도로 경황 없거나 먼 길 가는 짐이 단촐하였다. 근데 그러고 보니 이상하네. 이삭은 부유하지 않았나? 가는 곳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 것으로 아는데. 그런데 둘째 아들이 아무리 축복권을 속여 장자의 축복을 받았다 하나 이삭은 자신이 속은 것을 안 후 심히 두려워 떨지 않았나. 그만큼 하나님의 언약을 상기했을 것이며 그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말씀을 뒤집어 에서에게 장자의 축복을 하려 했던 자신을 보며 두려워 떨었을 것이다. 이삭의 신앙 자체는 야곱이 본받고 싶어했을 정도로 탄탄한 것이었으니까. 야생고기에 약해서 그렇지. 😑 더군다나 에서가 이방 여성을 아내로 맞아서 이삭과 리브가의 걱정이 컸는데, 방금 장자의 축복을 받은 야곱이 아내를 데리러 자신의 집안을 향해 길을 떠난다는, 듣던 중 반가운 말을 했다. 그런데 왜 아브라함이 리브가를 찾기 위해 엘리에셀에게 실려 보내었던 그 대단한 결혼 예물(창 24:10 그 주인의 약대 열 마리와 그의 주인의 여러 좋은 것)을 챙겨 보내지 않았나? 에서가 있어서라고 하기에는 너무 아무 것도 안 보냈잖아. 이상한데.

'매우 흥미로운 질문입니다' 하더니 챗지피티가 이렇게 답을 주넹. 흐음. 무튼 이런저런 이유로 야곱은 결혼사절단을 꾸릴 여유가 없었다고 함미당. 덕분에 14년의 세월을 라헬을 얻기 위해 죽어라 고생했음. 당시에도 돈이 없으면 몸으로 때웠던 거. 고대 근동이나 21세기 현대나 돈의 중요성은 어마어마함. 그래서 십일조가 중요하구나.
또 암튼 또 이런저런 이유로 야곱은 거창한 결혼사절단을 꾸리지 못한 채 단촐한 몸 하나로 후다닥 도망쳐 하란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오죽 가진 것이 없었으면 '먹을 것과 입을 옷을 주시면'이 하나님께 구하는 서원의 한 조건으로 들어갔을 정도였다. 그토록 가진 것이 없었는데 돌베개에 부을 기름이 있었다...
해서 챗지피팅했더니
"올리브 기름은 귀하고 오래 보관 가능하며, 몸과 물건을 보호하고 빛을 내며, 부어지는 행위 자체가 권위와 축복을 상징하기 때문에, 고대 근동과 이스라엘 모두에서 거룩하게 구별하는 의식의 핵심 재료가 되었습니다."
라는 답이 돌아왔다. 물론 이 결론에 도달하기까지 엄청난 고대근동자료들을 제시하였다만. 신기한 건 고대근동 자료에서 메소포타미아에선 신상의 입을 여는 의식에서 신상에 기름을 부었다 했고, 이집트에선 신전 개관식과 파라오와 제단에 기름을 발랐다 했는데, 고대 이집트에서도 매일 아침 신관들이 신전에 들어가 신상의 개구식을 했거든? 그리고는 몸을 닦고 그랬다. 참... 돌덩이를 신이랍시고 입을 여네, 몸을 닦아주네... 사람이 돌봐 주지 않으면 입도 열지 못하는 것이 무슨 신이란 말인가????
또 또 암튼,;;; (이상한 데서 흥분함 ㅠㅠ;;) 광야의 뜨거운 햇빛과 건조함으로부터 머리와 신체의 수분을 지키기 위해, 상처로부터 보호/치유를 위해, 아마도 훌륭한 에너지원으로(1g 당 4kcal의 열량을 내는 단백질이나 탄수화물에 비해 지방은 9kcal의 열량을 내니까), 또 어두운 밤 빛을 내는 등불의 연료 등 다양하고 귀중한 목적을 위해 빵은 적게 가져갔을 지언정 올리브유는 가져갔던 것 같다. 고대근동 여행자들의 필수품이었다 함.
그런데... 그렇게 귀한 것을 돌에 붓는다.
이것이다. 중요한 것은 기름이지 돌이 아니다. 그리고 이 돌에 기름을 붓는 것은 교회에 성령께서 임재하시는 것을 상징한다고 보는 학자도 있다고 하는데 상당히 이해가 되는 해석이다. 다시, 중요한 것은 기름이지 돌이 아니다. 그냥 굴러다는 돌이더라도 하나님 앞에서 기름을 부으면 성령께서 임재하시는 교회가 된다. 제 아무리 최악의 돌탕이라도 성령님께서 기름 부으시면 하나님의 거룩한 군대로 쓰임 받을 수 있다. 아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아무 것에나 기름을 아무 때나 내 맘대로 붓는다고 그곳이 성전이 되는 것 또한 아니다. 하나님을 만난 장소. Thin Place. 하나님께서 당신을 계시하신 장소. 피조물로서 창조주를 만난 그 영광에 대한 감사와 경배의 의미로 기름을 붓는 것이다. 그리고 그 흔하고 평범한 돌은 세상에서 하나 밖에 없는 거룩한 성전의 기촛돌이 된다. 중요한 건 돌이나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모든 것의 시작이고 끝이시며 가치이시다. 할렐루야!
* 십일조: 주신 것에서 바치는 것. 주시지 않은 것을 바치는 건 아니다.
"내가 하나님께 무엇을 드릴까요?"라 여쭈었을 때 하나님의 답은 한결같다.
"네 손에 든 것이 무엇이냐."
하나님께선 단 한 번도 내게 없는 것을 바치라 하신 적이 없다. 아무리 없어도 내게 뭔가는 있다. 하나님께선 그렇게 남겨 두셨다.
22년, 주의 품으로 돌아오고는 내가 너무 완악한 죄를 지었음을 알게 되었고 회개했고 하나님의 말로 다 못할 은혜를 받아 누리면서 내가 주께 바칠 것이 없어 한탄하고 있었다. 그 때 주께서 그러셨다. "네게 있는 것이 무엇이냐."
나는 남편과 아이와 시댁과 친정이 없으니 가족에게 들어가는 그 절대 시간과 에너지와 돈이 남았다ㅡ물론 내겐 돈이 없었지만. 워낙 직장을 다닌 건 아니었으므로 회사 동료도 없었고, 일감을 주던 소스 세 사람을 거의 동시에 끊으셨기에 바칠 돈도 없었다. 그러니 내겐 시간과 에너지가 남았다. 오랜 방황동안 예술공간을 제외하곤 집 안에서만 생활했고 사람을 거의 만나지 않았기에 만날 친구도 없었다. 역시 시간과 에너지가 남았다. 그런데 건강했다. 시간과 에너지가 건강이 있었다. 그리고 집이 교회에서 가까웠다. 시간과 에너지와 건강과 교세권 집이 있었다. 그리고 내게는 기도의 은사를 주셨다. 시간과 에너지와 건강과 교회 근처 집과 기도의 은사. 이것으로 나와 정 반대의 조건을 지닌 사람들, 남편과 자녀와 시댁/친정과 회사와 친구들과 일이 있으며 집이 교회에서 가깝지 않기 때문에 할 수 없는, 가장 가치 있는 일이 무엇일까, 를 생각했다. 하나님을 위한 일이었다. 기도였다. 하나님을 위한 기도였다. 그리고 나는 돌볼 가족과 다닐 회사가 없었기에 원하는 언제라도 금식을 할 수 있었다. 사람이 가장 간절한 기도를 올릴 때 목숨을 내놓는 마음으로 올리는 것이 금식기도. 그래서 시작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한 십일조 금식기도. 6개월 후, 하나님께선 사명금식기도로 인도해 주셨다.
그 때 분명히 들었다. 하나님께서는 내게 있는 것을 물으셨다. 그리고 작고 초라하지만 내게 있는 과부의 두 렙돈을 기쁨으로 받아 주셨다. 그리고 지금 나에게 수많은 영가족을 허락하셨다.
* 십일조(돈)
엄밀히 말하자면 하나님께는 우리의 돈이 필요 없다. 워낙에 헌금(십일조)의 시작이 전쟁에서 승리를 주신 하나님과 그런 자신을 축복한 멜기세덱, 하나님의 사람에게 보호해주심을 감사하는 마음에 자발적으로 바친 것이었다. 그것이 성경적 십일조 개념이다. 목사님 설교대로 야곱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그렇게 자발적으로 시작한 십일조를 말라기에서는 본격적으로 하나님께 바쳐야 하는 것으로 말씀하시고 있다.
| [말]3:8 |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 |
| [말]3:9 |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둑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
| [말]3:10 |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
| [말]3:11 |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메뚜기를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먹어 없애지 못하게 하며 너희 밭의 포도나무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
| [말]3:12 |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모든 이방인들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
이것을 기복신앙으로 푸는 건 김지찬 목사님 말씀대로 수준 낮은 해석/적용이고. 하나님께는 사람의 돈이 필요하지 않다. 그런데 왜 십일조를 강조하셨는가? 이는 돈이 하나님께는 아무 가치 없지만 사람에게 너무나 큰 가치를 지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바로 그 사람을 가치롭게 여기시고 주목하신다.
돈은 사람이 원하는 모든 물질과 인력을 살 수 있는 교환수단이다. 물질세계의 마법의 열쇠, 만능 키에 해당한다. 사람이 물질이기에 물질에 일차적으로 끌리는 성향이 있다.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 물질은 죄성으로 오염되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에게 있어 물질이 얼마나 강력한 권력이 되는가. 물질숭배야말로 동서고금을 막론한 인간 최대의 지치지 않고 퇴색하지 않는 욕망의 대상이 아닌가. 바로 그 최대 욕망의 대상을 하나님께서는 주께 바치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야말로, 이 모든 세상의 유일하신 창조주이신 하나님이야말로 세상 모든 것과 유일하게 구별되는 거룩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이야말로 세상 모든 경배를 받으시기 합당하신 유일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람이 가장 집착하고 가장 많이, 손쉽게 지배당하는 물질의 최종보스인 '돈'을 바치라 하시는 것이다. 단지 돈, 또는 물질을 하나님께서 원하시거나 필요로 하시는 것이 아니다. 물질은 하나님의 고귀한 형상을 주신 인간보다 훨씬 열등한 존재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형상을 넣으시고 생기를 불어 넣어 당신의 영과 연합할 수 있도록 창조하신 당신의 지상 대리인인 사람을 귀히 여기시기에, 그 사람의 최고의 마음을 받기 원하시는 것이다. 그것의 상징이 물질이며 그 물질도 전부가 아닌, 주께서 주신 것의 십분의 일만을 요구하시는 것이다. 정말이지 자비하시지 않은가!
그나저나... 요즘 십일조 말씀을 계속 주시네... 최근 열흘 가량 계속 연속으로 주시는데.ㅠ 아까 아침에 기선대 조모임이 엄청 늦게... 자그마치 10시 반에ㅠㅠ 끝났는데 ㅠㅠ 끝난 후 은혜채플에 가서 기도를 했다. 기도를 한참 하는데 말라기 3장 7-8절이 떠서 찾았더니 위의 십일조가 나와서 또 아깜딱이야;; 놀람.ㅠㅠ
하나님께 여쭈었다. 나는 그동안 수입이 없는 중에 매주 간절하게 기도하고 기도해서 받은 돈으로 부끄러운 소액이나마 십일조를 끊이지 않고 드릴 수 있었다. 그런데 계속 십일조 말씀을 연이어 주시길래 혹시나 하고 이번 8월에 일을 그만 두게 된 hs에게 물었더니 그동안 십일조를 안 했다고. 화들짝 놀라서 마지막 달은 무슨 일이 있어도 십일조를 하라고 했다. 그러겠다 했고. 그래서 hs을 향한 말씀인 줄 알았다. 그리고는 잊었다.
그런데 이번 주일 말씀에 십일조 말씀을 하셔서 그런가 보다 했다. 은혜로운 말씀이었고 개인적으로는 큰 위로가 된 말씀이었고. 그런데 오늘 아침 은혜채플 홀로 기도에서 또 다시 십일조 말씀을 하신 것이다.
이건 좀 이상했다. 이렇게까지...??? 그래서 여쭈었다. 하나님. 제가 십일조를 20년... 은 아니고 그 중에 한 때도 있었으니 한 10년 정도 도둑질한 건 맞는데요... 그런데 여기서 어떻게 더 돈을 드리나요? 더 기도하란 뜻이신가요? 라고 여쭈었는데... 정확히는 모르곘으나 아마도...
그래서...
결론은 '언어'였다. 하나님 주신 하루 24시간 중 십일조, 즉 2시간 24분 동안 언어를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었다. 말기도를 하거나 글기도를 하거나 아니면 성경을 읽거나. 이렇게 설교 정리를 하거나. 여하튼 언어를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었다. 아마도 말기도나 글기도를 집중적으로 원하시는 것 같기는 하지만. 덕분에 그 길로 앉아서 2시간 40분 말기도를 했는데. 이렇게 설교 정리는 4-5시간 째 하고 있으니 원. 이번 건은 다른 훈련에 비해서는 명확하지 않다. 보통 하나님께서 강권적으로 명하시는 것은 더할 수 없는 확신으로 알려 주시거든. 그런데 이 건은 그렇진 않은 것이 내 영안이 흐려진 걸까?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하는 것일까? 그런데 왜 이렇게 말씀을 연이어 쏟아 부어 주시는 것이지? 정말... 해답답.ㅠㅠ 내가 이렇게 해답답인데 하나님께선 얼마나 얼마나 답답답하실까.ㅠ 도대체가 말귀를 못 알아 듣는 백성이라니ㅠ.
* 십일조를 생각할 때 야곱이 지녔던 꿈과 비전처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꿈과 비전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나 이 생각은 못했다. 이제부터 십일조를 낼 때마다 뒤에 감사기도제목을 써야겠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에게 주신 꿈과 비전을 생각하며 감사기도제목을 써야겠다. 문화막시즘을 파괴하고 성경적 세계관을 세우는 글을 쓰는 것. 아쟈!!!!
*
| [요]1:51 | 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
→ 인자(예수님)가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사닥다리가 되심
하늘과 땅이 얇아진 정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과 땅이 붙어 하나로 연결 됨 = 지성소의 휘장이 찢김.
아름답다...!
그러니까, 벧엘의 야곱에게도 하늘에서 내려온 사닥다리를 하나님께서 걸어서 내려와 야곱의 옆에 서계셨단 것이지. 굳이 하나님께서 사닥다리를 걸어서 내려 오실 일이실까 싶지만, 내가 아는 나의 하나님이시라면 그러시고도 남지. 그것은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니다. 사람을 위해서다. 사람은 물질이기에 하나님께서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물질을 사용하여 내려오시는 것이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때문이다. 눈 떠 보니 내 앞에 짠! 보다 하나님께서 사닥다리를 한 칸 한 칸 거룩하신 모습으로 천사들의 시중을 받으시며 걸어 내려오시는 모습이 훨씬 감명 깊지 않은가! 나를 만나시기 위해서 말이다!
같은 사닥다리를 걸어 내려와도 내가 걸어 내려오는 것과 하나님께서 걸어 내려 오시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을 터. 일단 내게는 천사의 시중이 없.;; 아, 암튼 같은 물질을 사용해도 존재 자체의 차이가 극명하게 나는 사건이다. 그만큼 하나님과 나(야곱)의 차이는 더욱 극명하다. 천사들이 분주했겠네. 하나님 시중 드느라 오르락내리락오르락내리락. 이번 주에 '그분이 돌아오신다'.ㅋㅋㅋ 우리 선물님이신뎅.ㅋㅋㅋ 우리 사이엔 이렇게 말하곤 한당.ㅋㅋㅋ 우리 성도들의 여유로운 날들은 이제 갔당. 그분이 돌아오시니 우린 이제 달리는 거당. 쥬거썽.ㅋㅋㅋㅋㅋㅋㅋ 아 근데 나는 이번 방학 동안 휴가 한 번 못 감.ㅠㅠ 나 십부장이라 토비새 한 번도 비우지 못하고.ㅠ 이번 12월에 십부장 끝나게 해 달라 간절하게 간절하게 기도하는 듕. 최근... 번아웃 올 것 같은 기분이 든 적이 있는데. 조금 아슬아슬하긴 하다. 매일 약속들이 있고 매일 듣고 기도해야 하고 매일 쉬지는 못하고. 어제 월요일, 처음으로 종일 잠을 실컷 잔 건 아닌데 빈둥거렸다. 침대를 벗어나진 못했고. 몸이 너무 힘들어서... 그냥 그렇게 납덩이처럼 누워 있었더랬다. 휴가 가고 싶다. 바다 보고 싶다. 나 파도 소리 들으며 잠들고 파도 소리 들으며 잠 깨고 싶엉.ㅠㅠ 방학 내내 하루도 빠짐 없이 교회 또는 제천기도동산 기도실/예배실에 있었다. 제천도 나는 기도하러 가는 곳이지 쉬러 가는 곳이 아니어서. 9월, 달리기 전에 제발 쉬고 싶다아...ㅠㅠ
* 환난의 많은 시련 속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 때문에 연보를 풍성이 넘치도록 했다: 기이한 일. * 가난한 과부 두 렙돈
이 기이한 일들이 지금 내게 일어나고 있다. 환난. 많은 시련. 넘치는 기쁨. 극심한 가난. 연보 풍성. 하나님의 은혜. 이 모든 단어가 너무나 속속들이 이해되고 체화되는 중. 나 정말 너무 잘 알아 이 구절. 지금 내가 이러하기 때문이다. 내 삶에 지금처럼 가난한 적이 없었다. 역대급이고 상상도 하지 못할 가난이다. 그런데 지금만큼 헌금을 풍성히... 더 한 적은 있었지만;; 암튼 그래도 수입의 비율로 보자면 지금이 월등하고 정말이지 말이 안 되도록 월등히 많이 하고 있다. 나는 의도적으로 더 하고 있다. 앞으로도 더 늘리고 싶도록. 왜냐하면 지금 나는 광야에 있고, 광야에서 나의 모든 돈은 과부의 두 렙돈이기 때문이다. 우주 최고 가성비 시기! 지금 나의 1만원은 누군가의 1천만 원에까지 해당할 수 있다. 그러니 나는 지금 빨리 헌금을 쌓아야 한다. 나의 모든 헌금은 매주 간절히 기도해서 하나님께 받고 있다. 그 돈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쌓아야 한다! 지금이 기회다! 절호의 기회다!! 내 모든 돈을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으로! 아쟈!!!!
* 크리스천 더 맥시멀리스트.
ㅋㅋㅋㅋㅋㅋㅋㅋ 나는 그야말로 크리스천에 합당한 사람이 아닌가. 스스로를 미니멀리스트라 부르는 jh 집사님이 내게 '맥시멀리스트'라 했다. 기도를 해도 지칠 때까지 하고, 돌보는 것도 기진맥진할 때까지 하고, 무엇을 해도 모든 것을 다해서 한다고. 도무지 남겨두는 것이 없다고. 나도 안다. 나는 맥시멀리스트이다. 아껴서 남겨 두는 것은 미련으로 곪더라. 그래서 남기지 않는다.
* 잘잘법의 문제
음. 잘잘법에서 십일조를 이상하게 다루었다고 김지찬 목사님께서 분노하셨는데. 잘잘법의 누구셨을까. 박영선 목사님께서 잘잘법에 계셔서 한동안 듣다가 김기석 목사님 설교 좋아서 조금 듣다가... 그 목사님 영상이었는지 다른 목사님 영상이었는지, 어느 순간 뭔가 좀 이상하단 생각이 들었다. 초큼 인본주의? 그런 느낌이어서 그만 두었다. 이제는 안 본다. 그런데 역시 그러했는가. 속상하다.
지난 주 우리 교회에서 있었던 선교한국에서는 갓피플tv 출신 목사님들이 대거 등장하셨다. 김선교 선교사님 원유경 목사님 고성준 목사님. 모두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분들이셔서. 특히 고 목사님은 선물님 다음으로 조용기 목사님 다음으로 거의 최애 목사님이시다. 포드 처치는 23년에 두 번 다녀왔던 곳이었고. 접때 성령님의 임재에 대해 글을 쓸 때 말씀찬양기도찬양기도찬양기도의 한 표본으로 취했던 교회였기도 하다. 그... 확실히... 뭐랄까... 비슷한 사람들의 그... 무엇이 있다...
* 할아버지의 십일조 ⇒ 아버지의 십일조 ⇒ 손자의 십일조
감동스럽다. 영광스럽고. 음... 근데 왜 선물님 생각이 나지? 만복이 위해 기도해 드려야겠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