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렙 산의 엘리야 | |
[왕상]19:1 | 아합이 엘리야가 행한 모든 일과 그가 어떻게 모든 선지자를 칼로 죽였는지를 이세벨에게 말하니 |
[왕상]19:2 | 이세벨이 사신을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반드시 네 생명을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과 같게 하리라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한지라 |
[왕상]19:3 | 그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자기의 생명을 위해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자기의 사환을 그 곳에 머물게 하고 |
[왕상]19:4 |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
[왕상]19:5 | 로뎀 나무 아래에 누워 자더니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
[왕상]19:6 |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더라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
[왕상]19:7 | 여호와의 천사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 먹으라 네가 갈 길을 다 가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라 |
[왕상]19:8 |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음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 주 사십 야를 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 |
[왕상]19:9 | 엘리야가 그 곳 굴에 들어가 거기서 머물더니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
[왕상]19:10 |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
[왕상]19:11 |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서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에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
[왕상]19:12 |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
[왕상]19:13 | 엘리야가 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나가 굴 어귀에 서매 소리가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
[왕상]19:14 |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
[왕상]19:15 |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를 통하여 다메섹에 가서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의 왕이 되게 하고 |
[왕상]19:16 | 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고 또 아벨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 |
[왕상]19:17 | 하사엘의 칼을 피하는 자를 예후가 죽일 것이요 예후의 칼을 피하는 자를 엘리사가 죽이리라 |
[왕상]19:18 |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
엘리야가 엘리사를 부르다 | |
[왕상]19:19 | 엘리야가 거기서 떠나 사밧의 아들 엘리사를 만나니 그가 열두 겨릿소를 앞세우고 밭을 가는데 자기는 열두째 겨릿소와 함께 있더라 엘리야가 그리로 건너가서 겉옷을 그의 위에 던졌더니 |
[왕상]19:20 | 그가 소를 버리고 엘리야에게로 달려가서 이르되 청하건대 나를 내 부모와 입맞추게 하소서 그리한 후에 내가 당신을 따르리이다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돌아가라 내가 네게 어떻게 행하였느냐 하니라 |
[왕상]19:21 | 엘리사가 그를 떠나 돌아가서 한 겨릿소를 가져다가 잡고 소의 기구를 불살라 그 고기를 삶아 백성에게 주어 먹게 하고 일어나 엘리야를 따르며 수종 들었더라 |
아람과 이스라엘의 싸움 | |
[왕상]20:1 | 아람의 벤하닷 왕이 그의 군대를 다 모으니 왕 삼십이 명이 그와 함께 있고 또 말과 병거들이 있더라 이에 올라가서 사마리아를 에워싸고 그 곳을 치며 |
[왕상]20:2 | 사자들을 성 안에 있는 이스라엘의 아합 왕에게 보내 이르기를 벤하닷이 그에게 이르되 |
[왕상]20:3 | 네 은금은 내 것이요 네 아내들과 네 자녀들의 아름다운 자도 내 것이니라 하매 |
[왕상]20:4 | 이스라엘의 왕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내 주 왕이여 왕의 말씀 같이 나와 내 것은 다 왕의 것이니이다 하였더니 |
[왕상]20:5 | 사신들이 다시 와서 이르되 벤하닷이 이르노라 내가 이미 네게 사람을 보내어 말하기를 너는 네 은금과 아내들과 자녀들을 내게 넘기라 하였거니와 |
[왕상]20:6 | 내일 이맘때에 내가 내 신하들을 네게 보내리니 그들이 네 집과 네 신하들의 집을 수색하여 네 눈이 기뻐하는 것을 그들의 손으로 잡아 가져가리라 한지라 |
[왕상]20:7 | 이에 이스라엘 왕이 나라의 장로를 다 불러 이르되 너희는 이 사람이 악을 도모하고 있는 줄을 자세히 알라 그가 내 아내들과 내 자녀들과 내 은금을 빼앗으려고 사람을 내게 보냈으나 내가 거절하지 못하였노라 |
[왕상]20:8 | 모든 장로와 백성들이 다 왕께 아뢰되 왕은 듣지도 말고 허락하지도 마옵소서 한지라 |
[왕상]20:9 | 그러므로 왕이 벤하닷의 사신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내 주 왕께 말하기를 왕이 처음에 보내 종에게 구하신 것은 내가 다 그대로 하려니와 이것은 내가 할 수 없나이다 하라 하니 사자들이 돌아가서 보고하니라 |
[왕상]20:10 | 그 때에 벤하닷이 다시 그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사마리아의 부스러진 것이 나를 따르는 백성의 무리의 손에 채우기에 족할 것 같으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하매 |
[왕상]20:11 | 이스라엘 왕이 대답하여 이르되 갑옷 입는 자가 갑옷 벗는 자 같이 자랑하지 못할 것이라 하라 하니라 |
[왕상]20:12 | 그 때에 벤하닷이 왕들과 장막에서 마시다가 이 말을 듣고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진영을 치라 하매 곧 성읍을 향하여 진영을 치니라 |
[왕상]20:13 | 한 선지자가 이스라엘의 아합 왕에게 나아가서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이 큰 무리를 보느냐 내가 오늘 그들을 네 손에 넘기리니 너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하셨나이다 |
[왕상]20:14 | 아합이 이르되 누구를 통하여 그렇게 하시리이까 대답하되 여호와의 말씀이 각 지방 고관의 청년들로 하리라 하셨나이다 아합이 이르되 누가 싸움을 시작하리이까 대답하되 왕이니이다 |
[왕상]20:15 | 아합이 이에 각 지방 고관의 청년들을 계수하니 이백삼십이 명이요 그 외에 모든 백성 곧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을 계수하니 칠천 명이더라 |
[왕상]20:16 | 그들이 정오에 나가니 벤하닷은 장막에서 돕는 왕 삼십이 명과 더불어 마시고 취한 중이라 |
[왕상]20:17 | 각 지방의 고관의 청년들이 먼저 나갔더라 벤하닷이 정탐꾼을 보냈더니 그들이 보고하여 이르되 사마리아에서 사람들이 나오더이다 하매 |
[왕상]20:18 | 그가 이르되 화친하러 나올지라도 사로잡고 싸우러 나올지라도 사로잡으라 하니라 |
[왕상]20:19 | 각 지방 고관의 청년들과 그들을 따르는 군대가 성읍에서 나가서 |
[왕상]20:20 | 각각 적군을 쳐죽이매 아람 사람이 도망하는지라 이스라엘이 쫓으니 아람 왕 벤하닷이 말을 타고 마병과 더불어 도망하여 피하니라 |
[왕상]20:21 | 이스라엘 왕이 나가서 말과 병거를 치고 또 아람 사람을 쳐서 크게 이겼더라 |
아람 군대의 두 번째 공격 | |
[왕상]20:22 | 그 선지자가 이스라엘 왕에게 나아와 이르되 왕은 가서 힘을 기르고 왕께서 행할 일을 알고 준비하소서 해가 바뀌면 아람 왕이 왕을 치러 오리이다 하니라 |
[왕상]20:23 | 아람 왕의 신하들이 왕께 아뢰되 그들의 신은 산의 신이므로 그들이 우리보다 강하였거니와 우리가 만일 평지에서 그들과 싸우면 반드시 그들보다 강할지라 |
[왕상]20:24 | 또 왕은 이 일을 행하실지니 곧 왕들을 제하여 각각 그 곳에서 떠나게 하고 그들 대신에 총독들을 두시고 |
[왕상]20:25 | 또 왕의 잃어버린 군대와 같은 군대를 왕을 위하여 보충하고 말은 말대로, 병거는 병거대로 보충하고 우리가 평지에서 그들과 싸우면 반드시 그들보다 강하리이다 왕이 그 말을 듣고 그리하니라 |
[왕상]20:26 | 해가 바뀌니 벤하닷이 아람 사람을 소집하고 아벡으로 올라와서 이스라엘과 싸우려 하매 |
[왕상]20:27 | 이스라엘 자손도 소집되어 군량을 받고 마주 나가서 그들 앞에 진영을 치니 이스라엘 자손은 두 무리의 적은 염소 떼와 같고 아람 사람은 그 땅에 가득하였더라 |
[왕상]20:28 | 그 때에 하나님의 사람이 이스라엘 왕에게 나아와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에 아람 사람이 말하기를 여호와는 산의 신이요 골짜기의 신은 아니라 하는도다 그러므로 내가 이 큰 군대를 다 네 손에 넘기리니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
[왕상]20:29 | 진영이 서로 대치한 지 칠 일이라 일곱째 날에 접전하여 이스라엘 자손이 하루에 아람 보병 십만 명을 죽이매 |
[왕상]20:30 | 그 남은 자는 아벡으로 도망하여 성읍으로 들어갔더니 그 성벽이 그 남은 자 이만 칠천 명 위에 무너지고 벤하닷은 도망하여 성읍에 이르러 골방으로 들어가니라 |
[왕상]20:31 | 그의 신하들이 그에게 말하되 우리가 들은즉 이스라엘 집의 왕들은 인자한 왕이라 하니 만일 우리가 굵은 베로 허리를 동이고 테두리를 머리에 쓰고 이스라엘의 왕에게로 나아가면 그가 혹시 왕의 생명을 살리리이다 하고 |
[왕상]20:32 | 그들이 굵은 베로 허리를 동이고 테두리를 머리에 쓰고 이스라엘의 왕에게 이르러 이르되 왕의 종 벤하닷이 청하기를 내 생명을 살려 주옵소서 하더이다 아합이 이르되 그가 아직도 살아 있느냐 그는 내 형제이니라 |
[왕상]20:33 | 그 사람들이 좋은 징조로 여기고 그 말을 얼른 받아 대답하여 이르되 벤하닷은 왕의 형제니이다 왕이 이르되 너희는 가서 그를 인도하여 오라 벤하닷이 이에 왕에게 나아오니 왕이 그를 병거에 올린지라 |
[왕상]20:34 | 벤하닷이 왕께 아뢰되 내 아버지께서 당신의 아버지에게서 빼앗은 모든 성읍을 내가 돌려보내리이다 또 내 아버지께서 사마리아에서 만든 것 같이 당신도 다메섹에서 당신을 위하여 거리를 만드소서 아합이 이르되 내가 이 조약으로 인해 당신을 놓으리라 하고 이에 더불어 조약을 맺고 그를 놓았더라 |
한 선지자가 아합을 규탄하다 | |
[왕상]20:35 | 선지자의 무리 중 한 사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그의 친구에게 이르되 너는 나를 치라 하였더니 그 사람이 치기를 싫어하는지라 |
[왕상]20:36 | 그가 그 사람에게 이르되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네가 나를 떠나갈 때에 사자가 너를 죽이리라 그 사람이 그의 곁을 떠나가더니 사자가 그를 만나 죽였더라 |
[왕상]20:37 | 그가 또 다른 사람을 만나 이르되 너는 나를 치라 하매 그 사람이 그를 치되 상하도록 친지라 |
[왕상]20:38 | 선지자가 가서 수건으로 자기의 눈을 가리어 변장하고 길 가에서 왕을 기다리다가 |
[왕상]20:39 | 왕이 지나갈 때에 그가 소리 질러 왕을 불러 이르되 종이 전장 가운데에 나갔더니 한 사람이 돌이켜 어떤 사람을 끌고 내게로 와서 말하기를 이 사람을 지키라 만일 그를 잃어 버리면 네 생명으로 그의 생명을 대신하거나 그렇지 아니하면 네가 은 한 달란트를 내어야 하리라 하였거늘 |
[왕상]20:40 | 종이 이리 저리 일을 볼 동안에 그가 없어졌나이다 이스라엘 왕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스스로 결정하였으니 그대로 당하여야 하리라 |
[왕상]20:41 | 그가 급히 자기의 눈을 가린 수건을 벗으니 이스라엘 왕이 그는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인 줄을 알아본지라 |
[왕상]20:42 | 그가 왕께 아뢰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멸하기로 작정한 사람을 네 손으로 놓았은즉 네 목숨은 그의 목숨을 대신하고 네 백성은 그의 백성을 대신하리라 하셨나이다 |
[왕상]20:43 | 이스라엘 왕이 근심하고 답답하여 그의 왕궁으로 돌아가려고 사마리아에 이르니라 |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서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에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엘리야가 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나가 굴 어귀에 서매 소리가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참... 하나님은 신기하셔. 난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하겠다. 주의 크신 일을 행한 직후 바로 그 주의 일을 했다는 이유로 생명이 위험에 처한다. 죽고 싶은 엘리야를 주께서 먹이시고 어루만지시며 힘을 주셔서 호렙 산에 가게 하신다. 그리고는 굴 안에 있는 그에게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라고 물으신다. 이에 엘리야가 '이스라엘이 타락하였고 내가 주를 열심히 섬겼는데 주의 선지자는 나 하나 뿐이고 이제 그들이 나를 죽이려 합니다'라고 답한다. 그 답은 투정이었겠지...? 나라면. 나라면 정말 억울했을 것 같다. 주를 위해 목숨을 걸었는데. 아... 목숨을 걸었던 걸까. 그래서 그 목숨이 위험에 처한 걸까. 그렇다면 주께서는 그 목숨을 건 엘리야를 주의 크신 일을 한 이유로 실제로 목숨이 위험에 처하게 하심으로 그의 결단을 최고의 가치로 끌어 올리신 걸까? 어차피 바알 선지자들과의 대결에서 목숨을 내놓은 엘리야였다. 음... 아니 이상한데. 그 때 엘리야는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했다. 하나님께서 이 일을 행하실 거라는 사실. 그랬다면 목숨을 내놓은 것이 맞을까? 하나님께서 자신의 목숨을 지켜 주실 거라 믿지 않았을까? 나라면... 나라면. 몰라. 지금의 나라면 엘리야 님 만큼의 믿음은 발휘하지 못했을 것도 같은데. 암튼 하나님을 절대로 신뢰했던 엘리야 님인데, 실질적인 육체적 죽음에의 위협이 다가오자 그 믿음의 선지자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잃어 버린다. 그리고는 하나님께 죽음을 부탁한다. 음... 이것이 육체를 지닌 사람의 한계겠지... 이런 면에서 다니엘 님은 굉장했네. 사자굴에 들어간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살리실 것을 믿었을까? 아니면 죽음을 각오한 것이었을까? '그리 아니하실 지라도'라고 한 것이면 후자였을까?
신약에 와서는 확실히 용감한 순교자들이 많았다. 스데반 집사님이 그러했고 베드로 님과 또 사도들, 그리고 현대까지도 수많은 선교사님들이 기꺼이 순교를 감당하신다. 구약 때도 이렇게 하나님을 위해 기꺼이 죽는 사람들이 많았나...?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세 여호수아 다윗 솔로몬... 모두 주님 주신 삶을 살다가 죽지 않았나? 주를 믿는다는 이유로 핍박 받다가 죽지는 않았지 않나? 그렇다면 순교는... 신약의 축복인가?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이요, 성령님의 내주하심으로 인한 은혜인가? 흐음...
오늘은 후루룩 하려 했는데.ㅠ 뭔가 또 길어질 것 같은 이 설레는 불안함.ㅠㅠ 21장부터는 정말로 날아야지.ㅠㅠ
그러니까 엘리야 님의 투정. '여기서 뭐하니?' 질문에 '하나님을 열심히 사랑한 나 혼자 남았는데 내가 죽게 됐어요'라고 투정했다. 그 두 대화 사이의 간극도 신기한데, 여기에 하나님은 한 술 더 떠 더욱 신기한 답을 하신다. '너는 나가서 여호와 앞에 서라'. 엘리야 님의 투정에 우쭈쭈도 않으시고 '아니, 겨우 그걸로 믿음을 잃었느냐!' 호통을 치신 것도 아니다. 단지 '(이 굴에서) 나가서 내 앞에 서라'라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말이야... '여호와 앞에 서라'라는 거... 그거 하나님께서 당신을 엘리야 앞에 보여 주시겠다는 거잖아. 그래서 엘리야 님도 겉옷으로 얼굴을 가렸고. 하나님을 누가 대면했나. 모세 님 아녔나? 아브라함 님도 대면했나? 아브라함 님은 사람 몸을 입고 오신 하나님을 대면했나? 그 부분 까묵.ㅠ 암튼, 이렇게 절망 끝에 서 있는 엘리야 님에게 하나님은 당신을 직접 대면할 수 있는 영광 중의 영광을 주신다. 참... 하나님 참...ㅠㅠ 그리고는 '죽게 해달라'는 그의 지친 마음을 불쌍히 여기셔서 그의 후대 엘리사를 세워 주시고, '하나님 따르는 선지자가 나 하나 뿐이에요'라는 그의 외로움의 절규를 또 들으사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7000명을 남긴다'라고 하신다. 또 히브리어를 몰라서.ㅠ Yet I reserve seven thousand in Israel... 현재형이야??? '남겨 두었다 reserved'의 과거가 아니라고? '남길 것이다 will reserve'의 미래도 아니라고??? 그런데 히브리어를 영어로 해석한 것에는 I will leave, I'm preserving, I will leave, Yet I have left me ... 난감하네... 현재완료 현재 현재진행 미래가 다 있다니. 거 참.ㅠㅠ 아 괴로워.ㅠㅠㅠ 암튼 뭐 현재 남기고 계시는 건가 봐. 이것이 현재이거나 현재진행이거나 미래라면 현재 완료와는 다른 것이, 엘리야를 위해 남기시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거든. 뭐 아닐 수도 있지만. 그런데 엘리야 님이 투정하니 엘리사 님에게 가 기름을 부으라 하시는 거 보면 그러신 것도 같고. 아몰랑.
여기서 한 가지 아찔한 것이 있다. 하나님은... 물론 모세 님의 경우 몇 번이나 사양하였어도 화를 내시면서까지 사용하셨다. 음. 어쩌면 하나님의 일에 한 번 쓰시고자 하시는 사람은 어떻게든 쓰시는 것 같다. 그런데 그렇게 크게 쓰신 다음에는... 더 강제하지 않으시는 것 같달까. 바로 엘리사를 세우시고 '네 다음을 준비하라'시잖아. 그 말씀은 그 후임이 하나님 일에 쓰일 때가 곧 될 것이고 그러면 엘리야는 죽게 된다는 뜻이잖아. 엘리야 님은 하나님의 특별한 마음으로 승천했지만. 하고 싶은 말이 뭔가 하면, 하나님의 일은 한 번 주의 일에 쓰신 후에는 자유의지를 존중하신다는 말이다. 누구셨더라. 어떤 목사님이 그러셨는데. 오정현 목사님은 일을 주시는 부목사님에게는 일을 계속 주시고, 버거워하는 분에게는 일을 안 주신다고. 그거 보고 참... 목사님도... 싶었는데. 너무 확실하잖아. 하나님의 귀한 일,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라, 라는. 하나님의 사명은 하나님 주신 자유 의지로 자원하는 마음으로 할 때 비록 육신이 지치더라도 그 육신의 한계를 넘어서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누릴 수 있다, 라는. 그렇게 육신의 한계를 넘어서까지 일하는 분은 다름 아닌 오정현 목사님이시고, 그리하여 하나님의 온갖 은혜와 은사와 재능을 더 받으신 거다. 그걸 아시기에 부목사님들께도 그것을 기대하시는 것이 아닐까. 조금이라도 더 복 받고 능력 받기를 원하셔서. 확실히 그렇게 엄청난 일들을 주님 믿는 마음으로 육체의 한계를 넘어서까지 일한다면... 그런다면 나중에 어디를 가도 하나님 일 가장 잘 하는 목사님이 되시겠지. 참... 스파르타. 정말이지 오정현 목사님은 스파르타셔... 어마하게 매력적이고 멋지신데, 막상 나는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 모르겠다. 믿음이... 그리고 훈련이 더 필요한 나입니다.ㅠㅠ 무슨 삼천포를 또 이렇게나. 엉엉.ㅠ
아놔 하나님이 신기하다고 한 것은 세미한 소리 때문이었는데 이렇게 빙빙. ㅠㅠ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는... 어마어마하게 강한 바람이 지났는데 거기도 하나님은 안 계셨고, 지진에도, 불에도 안 계셨다. 안 계실 거면 이 엄청난 바람과 지진과 불을 왜 보여주셨냐는 거야.ㅠ 그런데 그 불 후에 세미한 소리로 말씀하신 거야. 넘 이상하시지 않아?? 내가 아는 우리 하나님은 굉장히 효율적인 분이시다. 그 어떤 말씀도 그 어떤 행동도 버릴 것이 없으신 분. 그런데 왜 임하지도 않으실 강풍과 지진과 불을 먼저 보여 주셨는가. 그 후의 세미한 소리로 말씀하시는 건 또 왜인가.
앞의 강풍과 지진과 불에서 850 이방 선지자들과의 대결에서 임하신 하나님이 떠오른다. 그리하여 엘리야 님에게 그 일을 상기시키시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그것은 '능력의 하나님'으로 임하신다는 뜻일 테다. 그런데 거기에 하나님이 없다. 그 후의 세미한 목소리. 그 누구도 위협을 느끼지 않을, 하지만 온몸의 신경을 모아야 겨우 들리는 세미한 목소리에 임하신다. 이 세미한 목소리에서 엘리야 님을 섬세하게 돌보시는 주님의 손길이 느껴지기도 하는데, 또 한 편으로는 '세미한'에 집중해 보면... gentle whisper, gentle blowing, quiet whisper, a sound of sheer silence, sibilus aurae tenuis. 영어와 라틴어로는 이렇게 번역된다. 조용하고 부드러운 속삭임이라는 거지. 라틴어의 sibilus aurae tenuis는 섬세한 공기의 휙휙 소리... 마찰 소리... 정도 되겠다. 직전에 강풍에 지진에 불에 난리가 났는데 그 직후 미묘한 공기가 마찰하는 소리라니. 강풍 지진 불에는 딱히 신경을 집중할 필요가 없다. 그저 존재를 압도하는 자연 현상이다. 그런데 세미하게 공기가 휙휙하는 소리라면... 온몬의 신경을 집중해야 할 터. 이 순간 엘리야에게 임하신 하나님의 음성은 이런 것이구나. 그리고 지금 또한 마찬가지다. 하나님은 주로 기도 중 하나님께 온전히 집중했을 때 세미한 음성으로 말씀하시는 것 같다. 하나님의 음성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 그것이 중요한 지도.
이렇게 주께서 엘리야 앞에 당신을 드러내셨다. 그리고는 아까 했던 것과 똑같은 질문을 하신다. "엘리야야 네가 어찌 여기 있느냐" 이는 어쩌면 엘리야의 마음을 확인하기 위하심이 아니었을까? 죽음의 실질적인 위협 앞에 하나님에 대한 전적 신뢰를 놓아 버린 엘리야. 그의 절망적인 마음을 확인하신 하나님은 그 절망 앞에 하나님의 존재를 드러내신다. 그분이 얼마나 위대하신지, 얼마나 전능하신지를 강풍과 지진과 불로 보이신다. 그리고는 세미한 소리로 말씀하심으로 그의 마음을 자신의 두려움이 아닌 하나님께로 집중하기를 요구하신다. 그리고 아까 한 질문을 다시 하신다. 그리고 엘리야 님은 아까 했던 답을 다시 한다.
요나 선지자에게도 똑같은 말씀을 두 번 하셨지. 니느웨로 가서 회개시키라고. 요나 님은 처음에는 그 명령을 피하여 도망했다. 그래서 물고기 뱃속에 집어 넣으셨고. 요나 님이 회개했고, 하나님은 물고기에서 그를 구하셨고, 똑같은 명령을 다시 하신다. 그리고 요나 님은 (비록 마지 못해였지만) 이번에는 순종한다. 그런데 순종 후 하나님께서 니느웨를 용서하시자 또 다시 하나님께 화를 내며 자기를 죽여 달라고 한다. 참... ㅋㅋ 그러자 하나님은 요나 님을 아주 단단히 교육하시면서 요나서가 끝. 아 나 요나 님 넘 좋아.ㅠ 넘 기여우심.ㅠ 얼른 요나서 읽고 싶다. 빨리 빨리 읽쟈!!
요나 님도 투정부렸지만 하나님의 요구에 대해 처음과 두 번째의 요나 님 반응이 달랐다. 그런데 엘리야 님은 같았네. 하나님께서는 답이 다르기를 원하신 것이 아닐까? 답이 똑같다면 그 사이에 강풍과 지진과 불, 그리고 세미한 음성까지 펼치실 이유가 있었을까?
그만큼 엘리야 님은 지쳤다. 나라면... 호렙산(그나저나 이 호렙산은 하나님께서 모세 님에게 떨기나무에서 임하셨던 그 산이구나)까지 가지도 못했겠지는. 그런 엘리야 님의 마음을 하나님은 불쌍히 여기셨겠구나... 그래서 남은 사명을 지시하셨겠구나... 여기서 엘리야 님이 하나님을 향한 엄청난 믿음을 발휘했다면 어땠을까.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찬양하며 더욱 쓰이고 싶다고 말했으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대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그런데 그것은 불가능했다. 엘리야 님은 우리와 같은 성정을 지녔다 했다. 그는 수퍼맨이 아니었어. 나와 같은 성정을 지닌 사람. 그러면 나를 생각하면 된다. 나라면 그 상황에서 그래, 그런 반응 할 수 없었겠다. 하나님을 더 원망하지 않은 것이 놀라울 정도. 내가 하나님을 이렇게 섬겼는데 제게 이러시는 겁니까, 하고 원망하지 않은 것이 대단해.
엘리야 님의 그 지극한 고독을 위로하시는 하나님.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7천명을 남기노라. 뭐랄까. 나는 이와는 비교도 안 되는 건데. 대학 때 학교 내 내가 속한 동아리에 자매가 나 하나였다. 그래서 혼자서 그 많은 여자 화장실에 시험 때면 컨닝하지 말자는 홍보문을 붙였던 일들. 또 일마다 때마다 동아리 관련 포스터를 혼자 여자 화장실에 붙여야 했던 일들. 그런데 동아리 홍보 포스터를 내가 고안하고 만들어야 했고, 매일 두 시간씩 같이 통성으로 기도해야 했고, 매일 아침 후배들 큐티 인도에, 과 학년 탑 유지를 위한 학점 관리, 금요일 내내 철야기도회, 토/일 내내 교회 예배, 주보사 모임, 학년 모임, 성경공부 모임, 거기에 종종 동아리 차원으로 광화문 시위에 동아리 전체 모임에 이르기까지, 내 몸은 매일같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형제들은 기도하러 산에 가면 겉옷을 벗어 내게 깔고 앉으라고 바닥에 깔아 주기까지 하며 나를 안타까운 마음으로 온 힘 다해 섬겨 주었으나, 그 많은 일 중 학교 여자 화장실 홍보문을 붙이는 일은 동아리의 일인데도 형제들이 나를 도와줄 수 없었으므로 나는 늘 외롭고 또 외로웠다. 형제들이 너무나 극진히 나를 돌봐주고 섬겨 주었지만... 홍일점은 힘들었다. 그래서 청일점을 보면 참 짠하고 그래.
형제들이 함께 있었다. 나를 너무나 챙겨주고 돌봐주었던, 큰 도움이 되는 형제들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단지 학교 내 여성이 나 혼자라는 이유로 버거워 울었다. 엘리야 님은 이스라엘 전체를 통해 유일하게 남은 선지자라 자신을 여겼다. 다른 선지자는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여길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가 느꼈을 고독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런 그가 하나님을 위해 목숨을 바쳤고 그 큰 일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바로 그 일을 했다는 이유로 죽음에 쫓기게 되었다. 그가... 지친 것은 단지 일이 힘들었기 때문, 그리고 목숨이 위험에 처했기 때문 만은 아니었을 거다. 지금 생각하니 어쩌면 '나 혼자'라는 외로움이 더 버거웠던 것 같다. 그래서 하나님께선 그의 이 투정에 '엘리사'와 '7천명'을 붙여 주신 것이 아닐까.
......
나는 19장을 오늘 넘어갈 수 있을까. 20장까지는 적어도 해야 하는데. 에잉.ㅠ
엘리야가 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나가 굴 어귀에 서매 소리가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엘리야가 거기서 떠나 사밧의 아들 엘리사를 만나니 그가 열두 겨릿소를 앞세우고 밭을 가는데 자기는 열두째 겨릿소와 함께 있더라 엘리야가 그리로 건너가서 겉옷을 그의 위에 던졌더니
왕하2:8 엘리야가 겉옷을 가지고 말아 물을 치매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두 사람이 마른 땅 위로 건너더라
13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겉옷을 주워 가지고 돌아와 요단 언덕에 서서
14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그의 겉옷을 가지고 물을 치며 이르되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 계시니이까 하고 그도 물을 치매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엘리사가 건너니라
이 겉옷이 그 겉옷인가... 모세 님의 지팡이와 같이 엘리야 님의 겉옷은 하나님의 임재 앞에 노출되었던 물건이었다. 아, 이 모세 님의 지팡이도 덤불 속에 나타나신 하나님의 임재 앞에 사용되었던 그 지팡이었지 않나? 뱀으로 변했다가 다시 지팡이로 변했던? 이 지팡이가 홍해를 가르고 아말렉과의 싸움에서 이기도록 기도하는 데 사용되었던 그 지팡이었나? 평범한 지팡이와 겉옷이 하나님의 임재 앞에 노출되면 특별한 것으로 바뀐다. 아... 이것은 곧 지극히 평범한, 평범하다 못해 통상 가치가 떨어진다 여기는 돌멩이라 할 지라도 하나님의 임재 앞에 노출되면 하나님 능력이 임하시는 것으로 볼 수 있겠구나. 할렐루야. 중요한 것은 물건도, 사람도, 사람의 재능도, 사람의 능력도 아니다. 오직 하나님. 하나님의 임재다. 하나님의 임재에 노출될 때만 비로소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신다ㅡ당연한 말이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나님의 임재로 나아갈 수 있느냐 하는 것. 말씀과 기도. 말씀과 기도. 그런데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말씀과 기도 생활을 하지만 하나님의 임재를 다 경험하거나 하나님의 능력을 입지는 않지 않나? 그렇다면 그 하나님의 임재가 임하시는 말씀과 기도 생활이란 어떤 것일까. 진심과 전심을 다한... 일까...
아 나 갈 길이 멀어.ㅠ
사밧의 아들 엘리사. 사밧은 엘리야에게 물을 따르던 사람이라 하지 않았나? 그 말은 엘리야를 섬기던 사람. 즉 엘리야 주변의 사람이었단 뜻이다. 누군지 알지도 못하는 이새 님에게 가서 누군지 알지도 못하는 다윗 님에게 기름을 부었던 사무엘 님과는 다르네. 같은 선지자인 것과 선지자와 왕의 차이인가? 아 나 이렇게 자꾸 궁금해하면. ㅠㅠ 넘어가 넘어가쫌.;;
아람 왕 벤하닷과 아합 왕 이야기는 좀 코미디 같아. 둘이 무슨 어린애도 아니고. 벤하닷이 아합을 그렇게 모욕했는데. 아합은 엘리야에게는 그렇게 난리를 치더니 벤하닷에게는 또 꼼짝 못하고. 아합 왕의 캐릭터가 좀 신기한데. 엘리야를 통해 분명 하나님의 크신 일을 보았는데도 쪼르르 이세벨에게 가서 이러쿵저러쿵 일러 바치는가 하면, 나중에 또 나봇의 포도원을 탐하다가 안 되니까 또 식음을 전폐하고 누워서 낑낑, 딱 이세벨 보라는 거고, 그래서 이세벨에게 또 쪼르르 일러 바치고. 벤하닷이 자신을 모욕하자 거기엔 깨갱하더니, 자신 뿐 아니라 이스라엘 다른 고관들의 집도 수색해서 약탈할 거다 하니 옳거니! 하고는 고관들에게 가서 쪼르르 징징. 그래서 고관들이 분노하니 거기에 힘 받아서 벤하닷에게 또 떵떵거리고. 그러더니 벤하닷이 또 깨갱하며 부탁하자 우쭐해서는 용서하노라! 하고 전쟁을 이기게 해주신 하나님께는 묻지도 않고 자기 맘대로 결정하고 참... 아합 왕 캐릭터 참... 기여운 걸 넘어 한심하지 않나? 좀 너무 이상해. 외교적 능력으로 인해 그의 군주로서의 업적을 보자면 유능하다는 말도 있으나 아 과연 그런가. 그냥 와이프 컴플렉스에 비겁한데 뭔가 좀 덜 자란 것 같고 마음이. 어린애같다.
내가 궁금한 건 하나님께서는 어째서, 어째서 그에게 다시 기회를 주셨는가 하는 거다. 이 아합은 정말 악한 왕이었잖아.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탄압하고 죽였으며 아내 이세벨의 이방신들을 대거 들여와 이스라엘을 타락하게 만든 사람이다. 하나님의 그 엄청난 일을 보고서도 그 일에 사용된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야 님을 이세벨이 죽이도록 한 사람인데, 하나님은 어째서 그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시는가. 어째서 당신의 종으로 사용된 엘리야 님의 억울함을 당장 갚아주시지 않는 건가.
하나님은 한 사람 한 사람을 귀히 여기시고 몹시 사랑하시고 아끼시지만, 역사의 주인은 그 사람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사람을 사용하시고 사랑하시고 돌보시고 힘 주시지만, 이 세상은 하나님의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고 영광을 받으시기 위해 창조된 것이 이 세상 만물이다. 벤하닷의 위협 앞에 선 아합에게 하나님께선
한 선지자가 이스라엘의 아합 왕에게 나아가서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이 큰 무리를 보느냐 내가 오늘 그들을 네 손에 넘기리니 너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하셨나이다
하시며 아람을 이기게 하셨고, 다시 공격하러 온 벤하닷 앞에 선 아합에게
그 때에 하나님의 사람이 이스라엘 왕에게 나아와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에 아람 사람이 말하기를 여호와는 산의 신이요 골짜기의 신은 아니라 하는도다 그러므로 내가 이 큰 군대를 다 네 손에 넘기리니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하고 하신다. 처음에는 아합 왕에게 '너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라고 하셨고, 아람인들이 '하나님을 산의 신이니 골자기에선 힘을 못 쓸 것이다'라 하자,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라고 하신다. 하나님께선 이스라엘의 왕인 아합이,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이 여호와이신 줄 알기를 원하셨나 보다. '여호와'라는 이름은 모세 님에게 처음 가르쳐 주신 이름이었지?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라는 말씀은 그 애굽에서 모세를 사용하여 그 엄청난 기적을 행하며 너희를 인도한 여호와 하나님'이란 뜻이 아니었을까. 그 여호와 하나님께서 바로 직전에 엘리야를 통해 또 다시 그 엄청난 기적을 행하신 거고. 이번에 다시 아람 군대를 이기는 엄청난 일을 행하실 것이니 '내가 그 여호와인 줄을 알게 될 것이다'란 뜻이 아니실까. 선대들에게 들은 것 기억 쫌 하고 정신 쫌 차리라는 뜻이셨을까. 비록 타락했고 배신했을 지라도 하나님께서 사랑하신 야곱 님의 이름이 아직도 붙어 있는 (북)이스라엘이잖아. 우리 하나님 성품상 또 야곱 님 떠올리지 않으셨을까. 다윗 님도 떠올리셨겠고. 이스라엘 위해 그렇게 중보하고 또 했던 모세 님도 생각하셨을 것 같고.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의 서운함은 하나님께서 직접 챙기실 것이고, 이스라엘을 향하신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크고 또 크셔서... 끝의 끝까지 기회를 주시려고 하신 것이 아닐까. 그런데도 아합은 하나님께서 승리를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찾지 않았다. 하나님꼐 영광을 돌리지도 않았고 하나님께 여쭙지도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잘 해서 승리한 것인 양 의기양양하게 벤하닷을 자기 맘대로 용서해주기까지 했다. 그런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마지막 기회를 차버린 것이다. 그리고는 엘리야가 또 가서 하나님이 너의 가문을 멸하실 것이라 하니까 또 슬퍼서 옷을 찢고 풀이 죽어 다니고. 하나님은 참 신기하신 것이, 그렇게 악의 악을 행한 아합이 이렇게 풀이 죽어 다니니 또 '그 모든 일을 다음 대에 이룰 것이라'고 하시고. 참... 하나님은 너무나 이해를 못하겠어. 이렇게 자비하시고 이렇게 불쌍히 여기시니, 어째서? 어째서...
확실히 하나님은 이방인에 대해서는 단호하시다. 아니, 이방인이건 뭐건 하나님을 존중하지 않는 자에게는 단호박이셔. 근데 아무리 악하고 아무리 모자라고 아무리 배신자라 해도 언제 어디서건 하나님 앞에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존중하면 그 순간 또 자비를 베풀어 버리신단 말이야. 이런 구약의 하나님이 무서우시다고? 냉정하시다고? 어째서, 어디를 봐서 냉정하시다는 건가. 이렇게... 납득 못하도록, 못 말리게 자비하시고 또 자비하신 분인데. 아 난 하나님 이해 못하겠다고. 이런 내가 무자비한 건가? 그런지도. 하나님이 이런 분이시기에 내가 용서를 받았고 이렇게 은혜 받고 있는 거다. 이렇게 자비하신 분이 세상에 어디에 어디에 있냐고! 이런 하나님이 대체 왜, 왜 냉정하시다는 거냐고!ㅠ
다시 아합으로 돌아와서... 이 철딱서니 아합은 이러고는 또 정신 못 차리고 나봇의 포도원을 탐하고 또 탐하지. 대체 왜 이러는 걸까? 정신적 또는 정서적 결함이 심한 사람 같아. 왜 이러는 거지??? 성령님이 안 계시면 나도 그런 걸까. 참... ㅠㅠ 뭔가 넘 안타깝달까. 그리고는 뒤에는 바른 말을 하는 미가야를 옥에 가두고 괴롭히기까지 한다. 그러다 결국 사망. 그의 흐른 피를 개들이 핥게 되지.
성경에 독특한 성격을 지닌 사람들이 꽤 나오는데 이 아합 왕은 다섯 손가락 안에 들지 않을까 싶다. 나머지 네 명은 성경을 좀 더 읽어야 알겠지만.
끝끝내 하나님의 진노를 산 아합. 아 내가 왜 이 사람을 이렇게 묵상하고 있는 거야 증말. 아니야. 아합을 묵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긍휼이 여기심을 묵상한 거야.
왕상 두 장 남았는데 세상에 에너지 고갈. 이게 말이 돼? ㅠㅠ 교회 통독으로는 벌써 지난 부분인 건데.
[ VPRS ] 왕하1 - 2 (0) | 2023.06.06 |
---|---|
[ VPRS ] 왕상21 - 22 (0) | 2023.06.05 |
[ VPRS ] 왕상19 (0) | 2023.04.27 |
[ VPRS ] 왕상18 (0) | 2023.04.27 |
[ VPRS ] 왕상16 - 17 (0) | 2023.04.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