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sarang.org/tv/sermon.asp?sflag=chocung&db_idx=22401
[창세기 13:4~9]
4 그가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and where he had first built an altar. There Abram called on the name of the LORD.
5 아브람의 일행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
Now Lot, who was moving about with Abram, also had flocks and herds and tents.
6 그 땅이 그들이 동거하기에 넉넉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니라
But the land could not support them while they stayed together, for their possessions were so great that they were not able to stay together.
7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주하였는지라
And quarreling arose between Abram's herdsmen and the herdsmen of Lot. The Canaanites and Perizzites were also living in the land at that time.
8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So Abram said to Lot, "Let's not have any quarreling between you and me, or between your herdsmen and mine, for we are brothers.
9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Is not the whole land before you? Let's part company. If you go to the left, I'll go to the right; if you go to the right, I'll go to the left."
주후 2023.07.23 주일예배 / 윤대혁 목사님(사랑의빛선교교회)
* 갈등葛藤 칡갈 등나무등: 칡나무는 오른쪽에서 왼쪽, 등나무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감아 올라가는데 두 나무가 만나 얼기는 관계를 말함.
→ 누구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 것이 갈등인데 우리는 이 갈등 앞에 실망하게 된다 ⇒ 풀기 보단 숨기려 한다.
→ 그러나 성경에서 갈등을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라 하지 않는다.
* 성경 속 갈등의 예:
→ 아벨 vs 가인, 모세 vs 바로 왕, 다윗 vs 사울 왕, 여호수아/갈렙 vs 열 명의 정탐꾼, 바울 vs 바나바, 예수님 vs 바리새인/서기관, 예수님 제자들 사이 천국에서의 자리 차지로 갈등. 그리고 본문 손 아브람 vs 롯
◇ 아브람 vs 롯의 갈등 상황
창세기 13:6 그 땅이 그들이 동거하기에 넉넉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니라
→ 아브람의 종들과 롯의 종들 사이 갈등 ⇒ 처음에는 문제에서 시작되었다가 갈등으로 번지는 경우가 많다 ⇒ 그랬을 때 해결이 되지 않는다.
† 갈등 해결 방법
1) 문제와 감정보다 가치에 집중하라.
창세기 13:8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 '우리는 하나'임이 우리가 가진 재산보다 더 중요하다.
☞ 아브람이 붙든 가치: 하나 됨
에베소서 4: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 우리는 모든 관계에서 하나 됨을 지켜 가야 하는 하나님의 공동체이다 ⇒ 사탄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교회의 하나 됨을 깨어 교회와 성도의 선한 영향력을 파괴하려 한다.
◇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최고의 가치
마태복음 22:37-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 "사랑"
예) 목사님 어머님께서 20년간 아버님 병간호를 하셨을 때: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아들이고 종이라는 생각으로 끝까지 병간호를 하셨던 일.
요한복음 21:15-17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먹이라' 한 이 양은 베드로의 양이 아니다. 예수님의 양이다. 그리고 예수님의 양은 베드로가 사랑했던, 사랑할 만했던 사람들이 아니었다. 예수님을 핍박하고 십자가에 못박은 유대인들이었다. 예수님과 베드로와 제자들을 힘들게 했던 사람들이었다.
☞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사람들이다. 그들을 사랑해야 한다.
2) 무엇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가를 생각하라.
창세기 13:7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주하였는지라
→ 갈등을 풀어야 하는 이유: 우리를 보고 있는 이방인들/비기독교인들이 있다.
마태복음 5: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 갈등의 상황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기회로 바꾸어야 한다.
→ 갈등의 문제 앞에서 세상과는 다른 반응을 함으로써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 모습을 보고 예수님에 대한 소망을 가질 수 있게 해야 한다.
☞ 갈등을 지혜롭게 풀어감으로 복음이 능력 되게 해야 한다.
3) 나보다 상대방을 존중히 여겨라.
창세기 13:9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 아브람은 시시비비를 가리지 않았고 삼자대면을 하지 않았다. 자신을 주장하지 않고 조카 롯을 인정했다. 그리고 모든 결정권을 롯에게 주었다. 롯이 선택한 땅은 아브람에게도 좋게 보이는 땅이었다. 그러나 그는 롯에게 결정권을 주었다.
→ '내 것'을 주장할 때 갈등이 시작한다. '주어라'를 실천할 때 평강과 평화가 임한다.
예) 목사님의 애프터쉐이브.ㅋㅋㅋ🤣😁😂 "애프터쉐이브는 그렇게 바르는 게 아니여!" ㅋㅋㅋㅋ "그냥 이상해" ㅋㅋㅋ "주라" 하시는 건 정말이지 하나님다우심. 우리 하나님이 그러시지... 😆 그리고는 다음 날 시작한 기적! ㅋㅋㅋㅋㅋ 주었더니 자유케 되고 누리게 되고 풍성하게 누리게 되는 하나님의 은혜. ㅋㅋㅋㅋㅋㅋ 💖
☞ 우리 것 내어 줘도 죽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지켜 주신다.
* 음... 명쾌하네. 설교 들을 때도 명쾌했는데 정리해도 명쾌하다. 정리 시간이 짧고 확실하다! 윤대혁 목사님은 작년이었나 설교를 들었는데? 그때도 여름이었던가. 승준 군 이야기를 들으니 작년에는 대학부 수양회 때 설교하셨다 했는데. 올해는 청년부 수양회 설교를 담당하신다고. 대학부 설교 때는 더욱 유머러스하시고 편안하시고 풍성하시다고. 그렇구나... 나름 긴장?하신 거였구나... 들으면서 굉장히 좋았다. 작년에도 이렇게 좋았나? 싶었을 정도로. 그리고는 2부 예배 중보 갔는데 설교 넘나 좋았다고 싱글벙글하시고들. 또 다락방에서도 목사님 설교 좋았다고 설교 캡처 올라오고 하트 꾹꾹 누르시고들. 간단명료한데 성경구절들과 일화들과 유머와 개인적 솔직함까지. 성도들의 집중을 끌어내는 모든 것이 적절히 들어 있다. 이런 설교 방식... 그러니까 논문이나 페이퍼의 서론 - 본론 - 결론의 기능을 충실히 갖춘 설교는 항상 명쾌하다. 결론에서 본론의 정리를 해주시기 때문에 머리에 새기기 좋다. 그래서 누구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고 즐겁게 마음에 새길 수 있는 훌륭한 설교다.
* 나로 말하자면 정말 즐거웠다. 다시 정리해도 참 좋은 설교이고 참 좋은 목사님이다 싶다. 탐이 나도록. 그런데... 음...
몰라. 나는 근데 오정현 목사님 설교가 참 좋다. 윤대혁 목사님 설교는 제자반이나 사역반 하는 동안 들으면 좋을 것 같아. 설교 정리하는 시간이 역대급 단축되었거든. 설교 정리만은 한 30분? 좀 넘은 것 같다. 오정현 목사님 설교는 제대로 정리하면 설교 정리만 두세 시간 가거든. 많은 사람들이 오정현 목사님의 설교에서 맞춤형 은혜를 받는다. 그런데 일부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당연히 있을 텐데, 그 분들이 말하는 어려움은 아마도... '복잡함'에 있는 것 같았다. 나로 말하자면 바로 그 복잡함을 굉장한 매력으로 치는 건데.
그냥 복잡한 것 만으로 매력이라 할 순 없지. 오정현 목사님 설교는 그냥 한 번 듣기만 해서는 그 매력을 구석구석 알기 힘들다고 난 생각해. 아마 많은 맞춤형 은혜를 받은 사람들조차도 설교의 전반적 부분에서 모두 감탄했다기 보단 일부가 본인에게 맞춤형 은혜로 다가간 경우이지 않을까. 내가 정리해 보니 그랬다. 현장 설교에서 들었을 때 받은 감동이 30이라면, 집에 와 몇 시간을 들여 꼼꼼히 정리했을 때 받은 감동은 90, 100에 이른다. 매번 참 신기하단 말이야...
왜, 성경의, 특히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 풍덩 풍덩 건너 뛰시잖아. 논리의 비약이 휙휙 일어나는데, 제대로 읽으면 언뜻 '여기서 어떤 맥락으로 이런 말씀을 하시지?' 하는 경우가 꽤 많다. 이를 테면 사마리아 여인이 '유대인 남성인 당신이 어찌 사마리아 여성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십니까(말을 거십니까)?'하니까, '내가 목이 말라 그러하다' 라거나 '나는 다른 유대인들처럼 사마리아인이라 해서 차별하지 않는다'라거나, '여기 물을 부탁할 다른 사람이 없지 않는가'라는 정답을 말씀하시지 않는다. 오히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라는 엉뚱한 말씀을 하신다. 여성의 질문인 즉 '왜 내게 말을 거느냐' 하는 건데, '하나님의 선물'은 무엇이며 '네가 알았더라면 내게 구하였을 거다'는 또 뭐란 말인가. 언뜻 들으면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으시는 것만 같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이신 예수님은 그 자체로 세상을 창조하신 능력이시지. 희한하게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 비약화법에 매번 말려든다? 이 말씀에 '당신은 이 깊은 우물에서 물 길을 그릇도 없으면서 어떻게 내게 물을 준단 말입니까? 이 우물은 우리 조상 야곱이 우리에게 준 건데 당신이 그 야곱보다 더 큰 사람이란 말입니까?'라 여성이 질문하자, 예수님은 또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라고 하신다. 여성의 질문에 대한 정답은 '내가 어떠어떠하게 물을 길어 네게 줄 수 있다' 또는 '야곱 보다 내가 더 낫다. 야곱이 준 이 우물보다 더 좋은 우물을 내가 알고 있거든'이 되는 건데 말이다. 아 그런데 여성은 또 예수님의 말씀에 말려 들지는.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라 하고... 이에 대한 예수님의 답은 또 껑충 뛰어 넘는다.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물론 예수님께서 이 우물로 가신 것 자체가 특별한 의도에 의한 것이었다. 그러니 예수님은 그 의도대로 대화를 주도하고 이끄셨다. 다만 질문과 답의 논리적 전개에 따르면 그 사이에 단계들을 뛰어 넘는다는 이야기.
오정현 목사님 설교를 들으면 한 번에 명쾌하게 잡히지는 않는다. 내게는 지독한 맞춤형 설교를 거의 매번 주시는 건데도, 현장 설교를 하루 세 번을 들어도 전체가 다 잡히지 않는 거다. 일부만 내게 콕! 박혀서 반짝반짝거리지. 그리고는 집에 와 글로 정리하며 그 사이사이 빈 공간에 드디어 드러나는 수많은 발화發話되지 않은 문장들. 마치 안개 속에 가리웠던 보물들이 하나씩 드러나는 것처럼 말이다.
오정현 목사님 설교는 수많은 형형색색의 씨줄과 날줄이 복잡하고도 유기적으로 얽혀 있다. 수많은 성경구절들과 메인 메세지에 목사님 개인적 깨달음과 에피소드, 예화와 다양한 서적들, 교회 역사, 한국 역사, 세계 역사에 음악과 미술에 이르기까지. 정말이지 화려하고 화려한 설교다. 이 많은 것들이 한 설교에 담기려니 제한된 시간 안에 극도로 응축되어야 하는 것이다.
시를 읽다 보면 한 번에 이해가 되지 않지. 시는 소설과 다르며 에세이와도 다르고 논문과는 아주 몹시 다르다. 특히 영시를 해석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머리를 쥐어 뜯게 되는데... 한 단어에 책 한 권이 응축되어 있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안내자 베아트리체'라는 구절이 있다 치면, 독자는 단테를 떠올려야 하고 단테의 특히 『신곡』의 「천국편」을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단테의 이루지 못한 첫사랑에 순수의 상징까지도. 영시를 읽다 보면 온통 문법이 틀린 것 같은 구절 투성인데, 옆에 두꺼운 문법책 갖다 놓고 일일이 해석하면 무섭게도 단 한 문장도 문법적으로 어긋난 것이 없음을 알게 되어 공포에 질리곤 한다. 무슨 말이냐 하면, 음률, 음보에 두운, 각운까지 맞추기 위해 가능한 모든 문법적 잉여를 생략하는 것이 시이다 보니, 시인은 최고의 문법가적 실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영시 한 편을 온전히 해석하고 누리기 위해서는 두꺼운 문법책에 문학을 비롯한 온갖 장르의 서적이 다 동원되곤 한다. 아 왜 이야기가 이리로.ㅠㅠ 야속한 엘리엇과 에즈라 파운드여.ㅠㅠ
개인적으로 오정현 목사님의 설교는 시에 가깝다. 조금 더... 음... 그러니까 잘 다듬어지면 좋겠긴 한데... 그래도 전체적으로 음악, 또는 음악성이 돋보이는 시... 예술로 치자면 종합예술이랄까. 종합설교? 그런 게 있나? 암튼 그런 쪽의 느낌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예술에 대한 어느 정도 지식이나 취향이 있는 사람이라면 몹시 즐길 것이 많을 텐데,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면 자신의 취향이나 상태에 맞는 부분만 누리게 될 거라는 이야기. 아 말이... 왜 꼬이나. 그러니까 간단하게 말하자면 '예술적'이라 하겠다. 아 이 단어 하나를 못 잡아내어서는 이렇게 복잡하게...ㅠㅠ 나야말로 간단명료한 글을 쓸 수 있어야 할 텐데 말이다.ㅠㅠ
뭐, 오늘 설교 정리는 엉뚱하게 오정현 목사님 설교 분석으로 뻗은 거나? 이 수다스런 손가락 같으니라고.
아, 목사님 설교 정리는 30분에 끝났는데, 그 이후로 1시간이 훌쩍 지났. 엉엉.ㅠㅠ
* 윤대혁 목사님 설교는 간단명쾌해서 그 매력이 뛰어났다. 그리고... 나로 하여금 엄청난 유혹?을 이기게 만든 설교였으며... 무엇보다 4부 예배 때의 찬양 인도에 이르기까지. 탐났다. 탐이 났어. 내가 모르는 찬양을 인도하셨어서 좀 몰입이 덜 되었긴 했지만서도, 그래도 은혜로웠다 몹시. 한 말씀 한 말씀, 또 찬양 인도하실 때도 굉장히 정성스러우시던. 거기다가... 심지어 축도까지 좋았는데... 나는 '-지어다' 축도를 좋아하거든. 어렸을 때부터 익숙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추측하지만 이상하게 '-축원하옵나이다'보다 '-지어다' 축도를 받으면 굉장히 행복해지곤 해서. 그런데 요즘 젊은 목사님들은 '-지어다' 축도 잘 안 하시던데, 해주셨어서 엄청 좋았다.
청년부가 부럽네. 이 좋은 설교, 은혜로운 찬양인도를 더 풍성한 유머와 편안함과 함께 누릴 수 있다니. 우리 사랑의교회 청년들 은혜 많이많이많이 받았기를! 아쟈아쟈!!
* 그나저나 윤대혁 목사님도 예술적 재능이 있으실까? 우리 오정현 목사님은 워낙... 워낙... 너무나 다양한 분야의 너무나 다양한 재능과 은사들을 너무나 많이 받으셨어서는. ㅎㅎ 혼자 두 분 비교하면서 뭔가 즐거웠다. 두 분 다 반짝반짝✨ 반짝반짝✨ 아름다우셔서. 교회 게시판에 보니 연로하신 어머님의 병간호를 위해 귀국하셨다던데. 아침에 기도할 때 엄청 많이 시켜주셨는데. 주님의 은혜가 가득하시기를 바라고 또 기도합니다.
* 9시 취침이 목표였건만 벌써 11시 반이다.ㅠ 4시에 일어나야 하는데.ㅠㅠ 얼른 자야지.
→ ◇ ☞ † ⇒ ☆ § ① ② ③ 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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