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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마태복음 11:28~30 "참된 쉼 True Rest"

Sermon

by Vano 2023. 8. 6.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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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sarang.org/tv/sermon.asp?sflag=sun

[마태복음 11:28~30]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Come to me, all you who are weary and burdened, and I will give you rest.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Take my yoke upon you and learn from me, for I am gentle and humble in heart, and you will find rest for your souls.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For my yoke is easy and my burden is light.'


오정현 목사님 / 주후 2023.07.09 주일예배 

* 24시간 풀가동 시스템의 사회가 현대인에게 쉼이 없게 만든다.

전도서 2:23 일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뿐이라 그의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 의외로 좋은 일과 안 좋은 일 모두 스트레스 강도가 높다. (예: 결혼 = 직계 가족의 사망)

* 쉼이 필요 없으신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우리에게 쉼에 대한 롤모델을 해주셨다. 범죄 전에도 쉼이 필요했는데, 범죄 후엔 더 필요하다.

◇ 출애굽 후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두 가지

① 할례 : 오늘날 우리는 영적인 할례를 받았다.

② 안식 : 그냥 육체적 쉼 정도가 아니다.

우리 마음은 주님 안에서 쉼을 얻을 때까지 쉴 수 없습니다. - 성 어거스틴, 『참회록』

* 마태복음에만 있는 이 '쉼'의 내용이 나와 있다 마가, 누가, 요한에 비해 세리 출신인 마태의 경우 스트레스가 훨씬 많아서 쉼이 절실히 필요했을 듯. 그런데 예수님 만나고 짐을 벗고 참된 쉼을 누릴 수 있었기에 기억했다가 쓴 것이 아닐까.

* 마음에 쉼이 없는 사람 특징: 남을 비난한다.

예) 한경직 목사님이나 조용기 목사님의 설교에서는 남 비난하는 말씀이 없다.

 

 † 두 가지 쉼 

 1) 주어지는 쉼 [(V) 수동 / 은혜] 

마태복음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주님이 주시는 쉼. 주께 아가기만 하면 주시는 쉼. 

예배에 나오기만 해도 쉼을 주신다.

지혜로운 자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같이 순전하게 믿는 자에게 쉼을 주심.

◇ 수고 (헬) κοπιῶντες 코피온테스 

"노동으로 수고하고 지쳐 있다."

율법의 무거운 짐으로 지쳐 있다.

원래 범죄 전 아담의 노동은 짐이 아니었다. 기쁨이었다. 범죄 이후 짐과 고통이 되었다.

주님 안에 참된 쉼을 누리게 되면 감사와 기쁨으로 인해 노동이 짐이 아니라 즐거움이 된다.

불순종 때문에 생긴 고통과 가시와 짐을 다 벗겨 주시고 이 시간 사명과 기쁨과 지혜와 아이디어로 참된 쉼을 허락해 주옵소서.

요한계시록 22:17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 혈루병 걸린 여인: 의사들에게 시달림을 당했고 무거운 짐을 졌다. 그런데 군중을 뚫고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을 때 치유를 통한 참된 쉼을 얻었다.

주께 나오기만 해도 쉼을 얻는다.

* 주께 나오다: 주님께 짐을 다 맡겨라.

예) 공항 짐 찾는 곳 컨베이어벨트에서, 자신보다 큰 짐을 꺼내겠다고 낑낑대는 어린 아이를 보는 아버지의 심정 그 짐을 아빠께 맡겨라.

 2) 배우는 쉼 (획득된 쉼) [(V) 능동 / 의지] 

마태복음 11:29 ...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 대부분의 사람들이 첫 번째 주어진 쉼으로 끝낸다. 그래서 그 쉼이 오래 가지 못한다.

→ 이 '주어진 쉼'을 받은 사람이 은혜를 받아서 주님의 멍에를 메고 '배움의 쉼(= 획득된 쉼, 주님 안에 성숙해서 얻게 된 쉼)'을 얻게 되면 주님께 받은 '주어진 쉼'이 더 깊어진다.

◇ 멍에 (yoke)

→ 큰 밭을 갈 때 소 두 마리가 힘을 받을 수 있도록 그 어깨에 연결시키는 나무 멍에

주인이 좌 하면 좌 하고 우 하면 우 한다.

주인이 원하는대로 끌고 가기 위해 씌우는 것.

* 그 멍에를 통해 배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멍에를 주신다.

 사명, 비전, 주님 일을 더 잘 감당하기 위해 배우는 일

예) 9.26 

주님의 멍에는 쉽고 가볍다.

주님 주신 영역 안에서 배우면 쉽고 가볍게 될 것이다.

예) 독수리의 날개: 무겁다 해서 없애면 날지 못한다.

 

 † 이 두 가지 '주어진 쉼'과 '배우는 쉼'을 획득했을 때의 결과 

 주님의 온유와 겸손을 배우게 됨

마태복음 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온유'는 예수님의 주권 앞에 전적으로 의탁하는 자세이다.
'겸손'은 자기 자아를 주장하지 않는 자세이다.

겸손한 사람은 자아를 주장하지 않기에 남이 나를 어떻게 대우하든 화나지 않는다.

남이 나를 인정하지 않는다 해서 화내지 않는다.

쉼이 있어야 가능하다.

은혜의 선순환 

출애굽기 33:14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

백성들에게 너무 시달린 모세를 향한 하나님의 처방: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

 한 때 사람을 때려 죽였을 정도로 과격했던 모세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참된 쉼을 받은 후

민수기 12:3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Work-and-Life Balance 워라밸이 아니라,
Worship-and-Life Balance 워라밸이 되어야

Scripture Song: 성경구절 자체로 만든 찬양




* 와... 우리 목사님 바이브레이션.ㅠㅠ 내가 목소리가 별로 좋지 않고 노래를 잘 못 하고 바이브레이션이 없어서 바이브레이션을 부러워하긴 하는데, 그래도 아무 바이브레이션이라고 다 좋아하진 않는단 말야. 오히려 성악가분들 중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바이브레이션을 지니신 분들이 많아서 스스로도 의아할 정도인데. 그러니까 진폭이랄까. 그 영역이 내가 듣기엔 좀 떠있거나 가라앉아 있거나 진폭이 너무 크거나 너무 자잘하면 듣기에 몹시 불편해서, 차라리 바이브레이션 없는 노래를 훨씬 선호한다. 그러다 보니 바이브레이션을 들을 때면 좀 불안하기까지 해. 내가 안 좋아하는 종류일까 봐서.;; 근데... 우리 오정현 목사님 바이브레이션은 내가 너무너무, 정말 너무 좋아하는 진폭을 가지고 있어서, '바이브레이션을 들으면 가슴이 설렌다'는 어떤 음악 평론가의 말을 드디어 이해하게 되었달까. 자주 들려주시지는 않는데 이렇게 영상으로 딱! 잡혀서 좋다. 그런데... 마냥 좋아하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네.ㅠ 지금 목사님 아버님 목사님 장례식 중이신 거라. 아까 장례식장 갔다가 입구에서 빼꼼 보고는 도망 나왔거든. 권사님 집사님들 바글바글하실 거라 생각했고, 그 무리에 껴서 저 뒤에서 살짝 목사님 괜찮으신지 보고 부의금이랑 편지를 부의금함에 넣고 바로 나오려 했는데... 지금 어차피 금식이라 먹을 수도 없고 하니. 암튼 그러려 했는데 목사님들이 오가시고는 입구쪽에 우리 장로님이랑 3기 회장 장로님께서 서계시는 바람에 빼꼼 보고는 그분들이 날 보시기 전에 도망쳐 나왔다. 교회 관련 일에 가는 곳마다 계시는 권사님들 집사님들이 아무도 안 계셔서... 는 더 안쪽에 들어가면 계셨을까... 암튼, 나같은 일반 성도는 가는 곳이 아닌 것 같아서.ㅠㅠ 내일 5시 천국환송예배에는 가도 될까. 내일도 가면 곤란할까.ㅠㅠ 최 권사님께 여쭈었는데 내가 장례식장 갔다니까 웃으셨다. 날 귀여워해주시니 기특하다시긴 했는데, 내가 너무 놀라서 어쩔 줄 몰라 하니까 '그러면 내일 5시 예배 때는 사람들 정말 많이 갈 거니까 그 틈에 껴서 다녀 와'라고 하셨다. 그런데... 내일 예배에는 가도 될까? 뭔가 내가 가는 곳이 아닌 것만 같아서.ㅠ 목사님 보고 싶은데. 괜찮으신지 걱정되는데... 는 걱정할 필요 없긴 한데. 하나님께서 어련히 최고로 지켜 주실 텐데. 난 그냥 목사님이 보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ㅠ 

근데 권사님께서 신기한 말씀을 해주셨다. '나는 만약 오정현 목사님이 돌아가셨다 하면 누가 뭐래도,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조문 갈 거거든. 그런데 목사님의 아버님은 내가 개인적으로 모르기 때문에도 그렇고, 우리 목사님은 공인이시니까, 정말 사회 각계각층에서 오신 조문객들이 많으실 거니까, 나를 알지도 못하시는데 가서 괜히 목사님 더 피곤하게 해드리고 싶지는 않아서'라고. 최근 아버님을 잃으셨기에 수많은 조문객분들을 맞이해 보셨기 때문에 목사님을 배려하신 말씀 같았다.

근데... 신기했던 거다. 나는 오히려 오정현 목사님의 장례식에는 갈까 싶거든? 아직 50년은 더 지난 후의 일이겠지만. 그러니까 내 생각에 '장례식'은 남겨진 자들을 위로하는 자리인 거 같아서. 성도는 죽으면 영혼이 바로 천국 가잖아. 그러면 장례식장에 있는 건 영혼이 떠난 육체일 뿐이잖아. 내가 이번 장례식에 가고 싶었던 건, 내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목사님의 마음이 어떠실까... 물론 나를 알지도 못하시는데 내가 간다 해서 위로가 되지는 않으시겠지만, 그냥 아끼는 사람의 마음은 그런 거여서. 남겨진 목사님을 위해 장례식에 가고 싶은 거. 그런데 권사님은 오히려 반대시라고? 흠... 그러시며 '예수님 장례식에는 몇 사람이나 갔을까...?'라고 혼잣말씀처럼 물으셨는데.

내가 신기하게 생각하는 것 하나가 베다니의 마리아님이 예수님 장례식 문상객들 이름에 뜨지 않는 것이었다. 궁금했지만 입장 바꾸니 금방 이해 되었고. 나사로님의 죽음 때 마리아님이 나올 때까지 멀리서 기다리셨던 예수님. 그리고 마르다님에게 공격 받는 마리아님을 커버하셨던 예수님. 또한 그 예수님의 장례를 위한 향유를 깨뜨려 알았든 몰랐든 제자들도 몰랐던 예수님의 장례를 홀로 치루었던 마리아님. 바로 그 베다니의 마리아님이 예수님 죽음의 자리와 장례의 자리에 없었다. 더군다나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가까운 곳이었는데도? 난 그 마음이 너무나 이해가 간단 말이야. 정말 너무나. 너무너무나. 예수님께서는 마리아님에게 따로 말씀하시지 않으셨을까? 예수님의 장례를 유일하게 미리 치른 그녀에게, 그 이후 말씀하시지 않으셨을까? 예수님이었다면 그랬을 것 같거든. 그런 민감하고 예민한 그녀가 자신의 죽음을 보고 마음이 찢어질 것을 걱정하셨을 것만 같아서. 그래서 '나의 죽음의 자리에 오지 말라'라고, 나의 예수님이었다면 나에게도 꼭 그렇게 말씀해주셨을 것만 같아서. 근데 몰라. 막상 일이 생기면 가서 보고 싶을까 또. 아니면... 사모님이 걱정되어서 가거나. 

......

권사님 말씀에 뜬금없는 생각을 했네. '안식'이 메세지인데 '죽음'과 '장례식'을 생각하고 있어. 그런데 이 날 불렀던 찬송이 또 신기하게 클릭했던 거여서.

우리가 천국 가면 영원한 기쁨 주와 나누리. 주의 얼굴 뵐 때 승리의 노래 부르리.

그만 해야겠다.

*

Worship-and-Life Balance 워라밸이 되어야

역시 우리 목사님! 어쩜 이렇게 반짝반짝✨하신가...!!💖 그런데 여기에도 이야기들이 있다는 말씀은 무엇이었을까? 흠. 🤔 혹시 일과 삶이 적정 비율로 배치되는 것이 work-and-life balance라면, worship-and-life balance에서 또한 예배와 삶이 '적정 비율로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실까? 그게 맞다면 그것이 맞지. 예배는 일상과 비율을 맞추어 배치되는 것이 아니지. Life = Worship이 되어야 하지. 하지만 '워라밸'이라는 단어를 'Worship-and-Life Balance'으로 푸신 것은 참 은혜롭다. 역시...!!👍❤ 아 근데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생각할 것이 있다'는 무엇이었는지 해궁금.🤔

*

주어지는 쉼과 배우는 쉼. 전자는 수동이고 후자는 능동이 아닐까 생각해 봤는데. 물론 '주어지는 쉼'은 '주님께 나아가는' 능동을 전제로 한 것이다. 그런데 주 앞에만 있으면 주어지는 것이고, '배우는 쉼'은 주 앞에 있을 뿐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주님을 '적극적으로 배워야' 하는 것이니까. 그것에는 주님께서 주신 자유의지가 강력하게 발휘되는 것이다. 요즘 자유의지 자꾸 말씀 주시고 또 묵상하는 중인데. 그런데 벌써 12시 13분. 졸립다. 주일이니 어서 잠들어야겠다. 1부 예배, 2부 중보, 3부 예배 후 2시 반에 쏭 만나기로 했고 지금은 4시 반에 천국환송예배 갈까 하는데 과연 그래도 될까. 분위기 보고... 는 못 갈 확률이 많지 않을까.ㅠ 모르겠다. 

나, 하나님께 기도하려고. 괜찮으시면 6.3 토비새 직후와 같은 음성은 주시지 말아 달라고. 목사님은 너무 크신 분이어서 내가 다가갈 수 없단 말이야. 괜히 내가 폐가 될 것만 같으니, 그러니 부디 멀리서 기도하는 것으로 하게 해 주시라고 기도하려고. 물론 하나님이 가장 크시지만 내가 너무 작아서. 지나치게 작아서. ㅠ 아몰랑.ㅠㅠ 믿음은 크고 싶은데 모르겠다. 그냥 담대함 용기 이런 문제가 아니라, 귀한 분께 폐가 될까 봐... 는 아몰랑. 생각할수록 생각이 꼬인다. 생각 말고 자야겠다.

사흘 간 기도만 하면 자꾸 목사님 기도를 하게 되어서. 이제 금식 시작되었으니 주의 종은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기고 나는 금식 기도제목에 집중해야겠다. 

ㅡ는 이 정리, 나중에 다시 정리해야 할 필요가 있겠지는?

 

→ ◇ ☞ † ⇒ ☆ § ① ② ③ 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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