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요한복음 14:12~18 "성탄에 깨닫는 태초 진행형 생명 Life That Has Been and Will Be, NOW, Realized at Christm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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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1서 1:1~4]
1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That which was from the beginning, which we have heard, which we have seen with our eyes, which we have looked at and our hands have touched-this we proclaim concerning the Word of life.
2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
The life appeared; we have seen it and testify to it, and we proclaim to you the eternal life, which was with the Father and has appeared to us.
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We proclaim to you what we have seen and heard, so that you also may have fellowship with us. And our fellowship is with the Father and with his Son, Jesus Christ.
4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We write this to make our joy complete.
오정현 우리 담임 목사님💖 · 주후 2023.12.17 주일예배
* 태초 진행형 생명: 하나님의 말씀을 단지 기록된 말씀 Written Word이 아니라 지금 내게 하시는 말씀 Saying Word(= Rema)로 받아들이는 것 ⇒ 체험된 말씀
◇ 사도별 역할
① 베드로: 시작하는 은사
② 바울: 집을 짓고 세우는 은사(기독교의 토대)
③ 사도 요한: 치유하는 은사(그물을 깊고 있는데 부르심을 받음 mending)
→ 당시 1, 2세대 죽고 영지주의와 같은 강력한 이단들이 횡행하던 시기, 찢긴 성도들의 마음을 치유하고 꿰매는 역할을 한 사도 요한.
◇ 사도 요한이 요한일서를 쓴 이유
① 죄를 범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요한 1서 2:1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②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기 위해서
요한1서 5:13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 영생, 즉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알게 하기 위해 태초부터 있는 말씀에 대해 이야기함.
◇ 두 가지 '태초'
① In the beginning 물리적 시작의 시간으로서의 태초
창세기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 천지를 창조하시던 때
② From the beginning 영원의 시작으로서의 태초
요한복음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 천지창조 이전 영원
※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말씀이 지금 현재 내게 하시는 말씀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 태초 진행형 생명
태초 진행형 생명은 신앙 세계에서 체험하는 '실존주의적인 시작', '지금 내가 경험하고 있는 시작'을 말한다.
◇ 생명의 두 종류
① 비오스 βίος - 물리적인 생명
② 조에 ζωή - 영적인 생명, 영원한 생명
요한 1서 1: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 현재 태초 진행형 생명에는 어떤 은혜가 있는가?
1) 태초 진행형 생명을 깨달으면 하나님의 모든 것이 내 것이 된다
에베소서 1: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골로새서 2:2-3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 하나님의 모든 것이 예수님께 있고, 예수님의 모든 것이 예수님의 말씀을 지금 내 것으로 받아들이는 자에게 주어진다.
☞ 세상에 해결 못 할 것이 없다 = 삶의 어떠한 난제라 해도 해답이 있다.
이것을 깨달은 요한
요한복음 15:15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고린도후서 8:9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 최초의 Homeless = 예수님...
→ 하늘의 모든 부요와 은혜가 임하면 기쁨이 충만하게 된다.
요한1서 1:4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 단지 내면적으로 조용히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총체적이며 exciting한 기쁨이다.
누가복음 19:6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 태초부터 있던 생명이신 예수님께 현재 접목되니까 삭개오는 '즐거워했다'.
◇ 매너리즘에서 벗어나는 방법
에베소서 5:14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이사야 52:2 너는 티끌을 털어 버릴지어다 예루살렘이여 일어나 앉을지어다 사로잡힌 딸 시온이여 네 목의 줄을 스스로 풀지어다
→ 태초 진행형 은혜에 접목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어지는 은혜
한마디로 하면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님의 말씀을 현재 내게 하시는 말씀으로 받아 들이면 하나님의 모든 것을 실체화하여 누릴 수 있게 된다는 것. 이 다음 설교가 어제 주일 설교의 '말씀이 육신이 되어'였는데. 어제 것이 맞지...? 오늘 것이었던가. 이틀 연이어 설교를 많이 들었더니 헷갈.😓
음... 최근 계속 묵상 중인 내용이기도 했어서 내게는 어김없이 맞춤형 은혜의 설교였다. 더군다나 '일어나 깨어라'라는 메세지까지도.ㄷㄷㄷ 이번 12월 금식기도 때의 기도였어서는. 이 기도 후 얼마 전에 멕시코에 있던 어떤 온갖 은사 다 있으신 선교사님이 자다 하나님께서 깨워서는 '한국을 위해 기도하라, 깨어 기도하라'고 하셨다고.
......
암튼. 내가 묵상 중인 것도 하나님의 모든 비물질적 은혜를 실체가 있는 은혜로 받는 방법으로서의 '믿음'인 건데. 더 정확히는 '믿음의 의인'이 되겠다. 점점 생각이 모이고 있고 답안은 가까워져 가는 것 같다. 그런데 아직 결정적인 '그것'을 모르겠어서. 부디 머지 않았으면.
*
'태초부터 있던 생명을 현재 나의 것, 즉 현재진행형으로 받아 들인다'.
이것은 어마어마한 말씀이다. 그것을 알까? 그래서 말씀 전하시는 목사님도 계속 답답해 하시는 듯. 그 결과 어제 설교에서도 반복해서 강조하신 것일 게다. 이건 정말이지 엄청난 내용인 거거든. 이게 핵심이라고. 정말이지 핵심이라고. 하나님은 이것을 원하시는 거라고. 그런데 이것을 온전히 이해하고 실천해내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그래서 기적이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거라고. 이것을 온전히 체화한다면, 설교 그대로다, 세상 못 할 일이 도무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세상 모든 것의 시원始原이시기 때문이다. 모든 것의 기원이자 궁극이신 분. 그 분이 올더타임 더 원앤온리 룰러이심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1. 하나님은 태초 From the beginning부터 영원까지 계신 분이다.
하나님은 무시간대에 계신 분, 즉 영원에 계신 분이다. 그분께 있어 시간은 무의미하다. 왜냐하면 '시간'이라는 개념 자체가 천지창조, 즉 물리적 시간으로서의 태초에서 기인한 것인데, 하나님은 그 전에 이미 존재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무한이시다. 무한에 있어 인간이 느끼는 '시간'이란 유한의 한계에 불과하다. 그러니 하나님께 있어 '시간'은 적용되지 않는다.
이것이 인간의 불순종으로 인해 생명을 압제하는 폭정으로 변질된 물리적 '시간' 속을 사는 사람에게 있어 얼마나 이해하기 힘든 일인가.
단적인 예를 들어 보자.
무시간대를 사시는 영원이자 무한이신 하나님께 있어 사람의 1년은 천 년과 같고 사람의 천 년은 1년과 같다. 즉, 2천년 전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지금 현재 하나님께 일어나고 있는 일인 거야. 동시에 언제일지 모를 예수님의 재림의 때가 태초 천지를 창조하셨을 때의 하나님께 이미 '현재'로 일어나고 있었던 일인 거. 그리고 하나님은 수많은 인류의 머릿수 뿐 아니라 이 다 헤아릴 수 없는 만물 우주의 모든 기억까지 다 과거 현재 미래의 진행형으로 가지고 누리고 감당하고 계신 분이다. 한낱 인간이 이해하려야 이해할 수 없는 존재. 그 분이 바로 하나님이다. 그런 하나님께 '어째서 인간의 불행이 있으며 어째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느냐'라고?? 감히 따질 군번이냐 되느냐는 거다, 것도 피조물 중 가장 나중된 막내둥이 인간 주제에. 그저 은혜 주신 것에 감사할 뿐.
지금도 성부 하나님의 가슴에는 성자 하나님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외침이 울려 퍼지고 있으며, 성자 하나님의 옆구리에선 피와 물이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2. 하나님의 영원한 능력은 예수님께 주어졌으며, 예수님을 받아 들이는 자에게 주어진다.
자, 하나님께 있어 인간이 이해하는 순차적 시간 흐름으로서의 과거, 현재, 미래는 의미가 없음을 이해한다면, 그 다음 단계는 성부 하나님의 모든 그 능력이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께로 주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에베소서 1: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예수님의 아버지이신 성부 하나님께서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 안에서... 즉 예수님 안에 있는 우리에게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주신다고 한다.
요한복음 16: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요한복음 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목사님 말씀 그대로다.
하나님의 신령한 모든 것 → 예수님께로 →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로.
이 사이 → 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믿음'과 '의인'이라는 것이 지금 내가 묵상하고 있는 내용.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그가 뒤로 물러나는 것을 내가 기뻐하지 아니한다'셨는데, '의인의 믿음'이라는 거.
'의인'은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라셨는데. 결론은 하나다. 하나님과 친밀한 것. 친밀하면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게 되니까. 바로 오늘 묵상한 것이... 억울해하지 않는 것인데.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와 희생을 들여 얻은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타인을 위해 쓸 수 있는 목자의 심정, 즉 하나님의 사랑과 마음을 갖는 것. 그것이 키인 것 같은데, 그 믿음을 어떻게 소유하나... 알 것 같은데. 아 이거 알 것 같은데 모르겠네...
*
12월 금식 때 혜원 자매님이 기도 부탁을 했다. '언니가 영국에서 잠시 귀국하는데, 대학생 때 열심히 믿다가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아 완전히 마음을 닫았다. 교회에 오랜 기간 아예 다니지 않고 교회 가는 것을 싫어하며 신앙생활을 하지 않고 있다. 그 언니가 25일 성탄예배에 참석하게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했다. 그리고는 '아버지도 신앙을 갖게 되기를'이 기도 제목이었다. 그래서 25일에 아버지와 영국에서 잠시 들어온 엄청난 재원이라는 언니, 원래 신앙심 좋으신 어머니 권사님, 혜원 자매, 동생, 이렇게 다섯 식구 모두가 성탄예배를 드릴 수 있기를 기도하고 있다 했더니, '아빠네 병원은 1년 내내 쉬지 않기 때문에 아빠는 못 오신다. 오실 수 있는 확률이 없다. 그러니 언니가 오기만을 기도해 달라'고 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아버지도 같이 드리셔야 할 것 같았거든. 그래서 혼자 '25일에 다른 분이 대신 나와서 아버지는 성탄예배에 온가족 함께 참석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내내 언니 기도를 했는데 마음이 좀 그래서 오늘 성탄절 8시와 10시 예배 전에 혜원 자매님의 언니가 꼭 나오게 해달라고, 나오고 싶게 해주시고 나와서 은혜 받게 해달라고 몸까지 실어 기도했다. 그렇게 기도했기 때문에 들어 주실 것 알고 있었고.
10시 예배가 마치고 반포집에 식사하러 갔는데 혜원 자매님의 흥분에 찬 톡이 와 있었다.
"왠일이야 진짜..
아빠는 일 가셨다가 다른 사람이 나와서 안해도 된다도 돌아오셨고, 언니도 점심으로 꼬시니 가겠다고 해서 다같이 예배 가게 되었어요!!!!!!!"
그리고는 즐겁다며 기쁨의 환호를.
*
뭔가... 문득 생각이 오는 거였다. 이건가 혹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멍에라는 거. 그게 이건가? 상당히 설득력 있다. 지금껏 하나님께서 내게 요구하시는 것을 보아도 그렇고. 적당히 은혜 받고 적당히 누리려면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제대로 은혜 받고 제대로 누리려면 하나님은 적당히 하지 않으신다. 마지막의 '바로 그 영역'까지 내놓으라 하신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너는 내 앞에 행하여 완전하라' 라는, 불완전한 인간에게 완전하라고, 거룩하지 않은 인간에게 거룩하라고 요구하신다. 불완전한데 어떻게 완전할 수 있나. 거룩하지 않은데 어떻게 거룩할 수 있나. 이것이 가능한 건 딱 한 경우다. 나를 온전히 비우는 것. 나를 비우고 성령님의 전적 통치를 받는 것. 그것으로만 가능한 일.
나를 온전히 비우고 성령님으로 채운다면,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예수님께서 가신 길을 갈 수 있게 해주신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어떤 길을 가셨는가?
대표적으로 '기능의 길'을 가셨다. 굳이 '기능성'을 조명함은 최근 나의 묵상 거리가 바로 '기능'이기 때문이다. 은사자로서의 '기능성'. 나야 뭐... 아직 초보적인 기도의 은사에 불과한 데도 불구하고 이미 '기능'으로 취급 당하고 있어서 상처를 받은 적이 있다. 내가 이럴 정도인데 어릴 때부터 많은 은사가 주어진 소영 집사님은 어떠했겠나. 그래서 그렇게 힘겨워하고 피폐하게 도망쳐 살았던 것이었을 정도로. 나는 상대를 마음으로 대하는데 상대는 나를 기능으로 대할 때의 그 상처. 일반 성도가 이 정도라면, 현대 교회에서 기능으로 대표되는 사람은 다름 아닌 목사님들이다. 더군다나 이 큰 대형 교회의 담임 목사님이라면... 사람들은 그를 얼마나 기능으로 대할 것인가. 그저 뭐 하나라도 더 받아 내려 하지 않겠는가. 그러니 목사님 옷자락이라도 잡으면 영험한 기운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느니 뭐라느니 헛소리를... 아, 이럼 안 되지.;; 뭔가 잔뜩 화가 나서 그 말을 들었을 때. 악의 없이 하신 말이었는데 듣는 사람에게는 묘하게 상처 되는 말이었다. 나를 향한 말이 아님에도.
성도가 이만하고 목사님이 이만하다면 예수님은 어떠했겠는가. 오죽했으면 3년간 갖은 애를 써 기르신 제자들까지도 예수님을 기능으로 대했으니. 그 수제자 베드로도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을 막으려 했으며... 자신을 위해서였겠지...? 그리고 사랑 받은 제자인 요한마저도 누가 예수님 옆자리냐느니... 뭐... 미성숙했을 때의 일이었겠지는. 사실 나라면 더했을 수도? 아 속상하네.ㅠㅠ
예수님이 그토록 마음 찢어 가며 가르치신 제자가 결국 주님을 배반했고... 다들 달아났고... 예수님을 기능으로만 대했기 때문에... 그나마 요한이 돌아와서는 주님의 어머니를 맡았고. 뭐.
예수님은... 당신께서 당신의 몸을 깎고 자아를 쳐서 복종시켜 하나님의 의인이 되신 것을 아낌 없이 사람들에게 기능으로 대해지면서 쓰셨다. 그리고 억울해하지 않으셨다. 그것이 핵심이지 않을까, 오늘 문득 생각을 했다. 좀 더 묵상이 진행되어야 하는 부분이고. 이것이 '멍에'임은... 정말 무거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길로, 그 방향으로 걷기 위한 것이며, 무겁고 힘겹지만 할 수 있음은 그 짐을 함께 져 주시는... 은 실제로 거의 다 져 주시는 예수님이 함께 그 멍에를 매고 계시기 때문이다. 예수님만 의지하면 그 멍에 지는 법을 제대로 배울 수 있다. 그래서 가장 효율적으로 멍에를 지며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거야.
하나다. 사람들의 시선을 벗어나는 것. 사람으로부터 인정 받으려는 욕구를 버리는 것.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는 것. 그것.
생각은 쉬운데 왜 이리 실천이 어렵나.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능력에 있다 했다. 아 졸려. 어김없이 졸리네.ㅠ 요즘 너무 많이 졸려.ㅠ 아무래도 내일 아침 기선대는 못 가지 싶다. 요즘 같아선 글기도 타이핑 치다 말고 고개를 뚝뚝 떨어뜨리며 졸곤 하니까. 왜 이리 조는 것이지...
→ ◇ ☞ † ⇒ ☆ § ① ② ③ 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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