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원의 약속 | |
| [사]43:1 |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
| [사]43:2 |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
| [사]43:3 |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를 대신하여 주었노라 |
| [사]43:4 |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네 대신 사람들을 내어 주며 백성들이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
| [사]43:5 |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네 자손을 동쪽에서부터 오게 하며 서쪽에서부터 너를 모을 것이며 |
| [사]43:6 | 내가 북쪽에게 이르기를 내놓으라 남쪽에게 이르기를 가두어 두지 말라 내 아들들을 먼 곳에서 이끌며 내 딸들을 땅 끝에서 오게 하며 |
| [사]43:7 |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
* 정치, 역사, 사회적 배경 등은 다 건너뛰고... 본문 묵상 들어간다. 방학과제 안 했는데.ㅠ 자자! 달리자!
1절.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NIV (New International Version) But now, this is what the LORD says—he who created you, Jacob, he who formed you, Israel: “Do not fear, for I have redeemed you; I have summoned you by name; you are mine.”
ESV (English Standard Version) But now thus says the LORD, he who created you, O Jacob, he who formed you, O Israel: “Fear not, for I have redeemed you; I have called you by name, you are mine.”
MSG (The Message) But now, God’s Message, the God who created you, O Jacob, the God who formed you, O Israel: “Don’t be afraid, I’ve redeemed you. I’ve called your name. You’re mine.”
1. But now 그러나 이제(지금)
앞서 이사야 42:18-25절의 말씀은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한탄의 말씀이었다. 그들의 어두운 영적 상태를 보여주었다. 그 직후 '그러나 이제'라는 말씀과 함께 하나님은 '구원의 약속'을 일방적으로 선포하신다. 분명 바로 앞서 이스라엘 백성은 어느모로 보나 하나님의 구원을 받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들이며 그런 상태였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모든 자격없음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사랑과 구원을 선포하시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다.
우리가 구원 받는 데 있어 우리의 공로란 없어도 아예 없다. 자격 있어 구원 받는 것이 아니요, 오로지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다. 앞서 사랑하시고 사랑하셔서 진노하시며 이리저리 이스라엘을 찾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끝까지 깨닫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의 구원의 선포와 축복 사이, 이 역접 접속사 'But now'에서, 당신의 공의를 침범하여 넘쳐 흐르는 하나님의 절대 사랑을 느낀다.
2. 야곱아, 이스라엘아
야곱과 이스라엘은 같은 사람이다. 그런데 이 곳에서 분리/구분하여 따로 부르고 계신다. 이 차이가 있을까?
1) 야곱
야곱은 얍복강가에서 하나님과 씨름하기 전의 이름이다. 설교에서 여러 번 강조하여 다루셨던 것 같이 '뒤꿈치를 잡는 자', '속이는 자'의 의미를 지닌다. 수많은 인간적 약점을 지닌 사람. 탐욕스럽고 이기적이며 사람의 꾀와 방법을 사용하려 애썼던 사람. 그러면서 자신은 오랜 기간 더 간교한 자(라반)로부터 속임을 당했으며, 겁 많고 비겁한 한 사람의 약자의 이름이다. 어떻게든 복을 받기 위해 형과 아버지까지 속이면서 혼자 힘으로 고군분투했던 사람. 믿음 부족하고 죄 많은 한 사람의 이름이다. 이름 자체만 하더라도 부끄럽기도 하겠다. 그는 내내 이 이름으로 불리웠다. 그런 약점 투성이의,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깊이 만나지 못했거나, 만났더라도 크게 변화하지 못했고,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의지하지는 못했던 한 사람의 성도라 하겠다.
2) 이스라엘
야곱 평생의 공포, 에서. 그 에서를 만나기 직전 얍복강가에서 밤새 하나님과 씨름한 후 축복을 빌었을 때 받은 이름. 환도뼈를 바치고서, 즉 자아가 깨어진 상태로 하나님으로부터 부여 받은 영광의 이름이자 승리의 이름이다. 그리고 동시에 이 이름은 이스라엘 민족 전체, 즉 공동체의 이름이기도 하다. 이스라엘 백성을 '야곱 백성'이라 부르지 않고 '이스라엘 백성'이라 부르며, 이스라엘 나라를 '야곱'이라 부르지 않고 '이스라엘'이라 부른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라고 칭해 주시며, 그런 자를 누가 이길 것인가! 라고 원수에게 보란 듯 이름을 붙여 주시지만, 실상 이스라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점 투성이였다. 승리의 이름, 성공의 이름, 그러나 여전히 약점이 존재하는 이름, 그리고 무엇보다 공동체적 이름이 '이스라엘'이다. 하나님께선 우리를 허약하고 세속적인 한 개인으로서도, 주 안에 연단되어 강제로든 순종을 몸에 새긴 한 개인이자 신앙 공동체로서도 부르고 계신다.
3.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 너를 지으신 이
1) 창조하다 בָּרָא, bara, to create
창세기 1:1 בְּרֵאשִׁית בָּרָא אֱלֹהִים אֵת הַשָּׁמַיִם וְאֵת הָאָרֶץ 베레쉬트 바라 엘로힘 에트 하샤마임 베에트 하아레츠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1절에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의 그 창조(바라)와 같은 단어다. 천지창조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압도적 창조권위를 보여준다. 바로 그 천지를 창조하신 마음으로 야곱, 즉 인간적이고 이기적이며 연약함 투성이인 우리, 나를 창조하셨음을 묵상한다. 하나님을 볼 줄 모르며 제대로 의지할 줄도 모르는 나를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신 무게로 창조하셨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셨음을 생각하면 나 또한 이전에 없던 완전히 새롭고 유일무이한 존재로 만드셨음을 알 수 있다. 바로 그 단어 '창조하다'를 사용하여 나를, 우리를 만드시고 부르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묵상한다.
2) 짓다 יָצַר yatsar 짓다, 빚다, 형성하다, to form
기본 의미는 ‘압착·빚어서 형태를 만듦’으로, 토기장이 점토를 ‘형성’하는 동작 이미지가 핵심인 단어다.
① 아담을 짓다(형성하다)
창세기 2:7 וַיִּיצֶר יְהוָה אֱלֹהִים אֶת-הָאָדָם, עָפָר מִן-הָאֲדָמָה, וַיִּפַּח בְּאַפָּיו, נִשְׁמַת חַיִּים; וַיְהִי הָאָדָם, לְנֶפֶשׁ חַיָּה.
**'야차르(יָצַר)'**는 위 문장에서 **'와이체르(וַיִּיצֶר, Wayyīṣer)'**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이는 동사 '야차르'가 주어 '여호와'에 맞춰 완료형으로 변화된 형태입니다.
② 토기를 빚다(형성하다)
예레미야 18:4 וְנִשְׁחַת הַכְּלִי אֲשֶׁר הוּא עֹשֶׂה בַּחֹמֶר בְּיַד הַיּוֹצֵר, וְשָׁב וַיַּעֲשֵׂהוּ כְּלִי אַחֵר כַּאֲשֶׁר יָשַׁר בְּעֵינֵי הַיּוֹצֵר לַעֲשׂוֹת.
예레미야 18장 4절에 '빚다' 또는 '만들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아사(עָשָׂה, ‘āśāh)’ 와 '야차르(יָצַר, yāṣar)' 가 함께 사용됩니다.
‘아사(עָשָׂה, ‘āśāh)’: '만들다', '행하다'라는 일반적인 의미로, 여기서는 토기장이가 **"만든 그릇(‘āśeh)"**이라고 할 때 사용됩니다.
'야차르(יָצַר, yāṣar)': '빚다', '형성하다'라는 의미로, 토기장이라는 명사형(요체르, יוֹצֵר)에 그 어근이 포함되어 있어, '빚는 자'라는 의미를 강조합니다. 또한, '그가 그것으로 자기가 좋게 여기는 대로 다른 그릇을 만들더라'라는 부분에서도 동사 '와야아세후(וַיַּעֲשֵׂהוּ, wayya‘ăśēhû)' 와 '라아소트(לַעֲשׂוֹת, la‘ăśôt)' 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두 단어 모두 '제작하는 행위'를 나타내지만, **'야차르'**가 '빚는' 행위에 더 특화된 반면, **'아사'**는 그 결과를 포함한 전반적인 '제작'을 의미합니다. 예레미야 18장은 이 두 단어를 모두 사용하여 하나님의 주권적인 창조와 형성 능력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회색은 AI 검색 결과)
......
정신차렷!! 이러고 놀면 앙대!! 어서 휙휙 정리하고 과제 하란 말이다!!! ㅠㅠ;;; 자자, 어서어서 넘어간다. 휙휙 얼른 써야지.
내가 제대로 묵상한 건지는 모르겠는데(마음이 점점 급해져서;;) '창조하다'에는 딱히 시간의 지속 개념이 느껴지지 않는 반면, '짓다, 빚다'에는 시간의 지속과 흐름이 느껴진다. 비슷한 개념이겠으나... 자신의 힘과 지혜, 노력으로 살던 야곱이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 힘을 의지하여 사는 이스라엘로 성장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시간을 들여 정성껏 '빚으신다'는 의미일 수 있겠다. 한 사람의 성도를 공동체 안에서 '빚어가는 것' 또한 마찬가지이다. 혼자서 하는 신앙생활과 공동체로 하는 신앙생활은 완전히 다른 것이기 때문이며, 공동체 안에서 포도나무의 가지, 한 몸의 각 지체로서 기능하는 것은 필히 자아를 깨고 하나님을 의지해야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묵상하면 나는 언제 다 끝내지.ㅠ 나 아직 1절도 안 끝났엉.ㅠㅠ
4. 여호와, 나의 창조주
'스스로 계신 이'라는 뜻의 '여호와'는 애굽에서 고통 받는 이스라엘 민족을 인도하라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모세가 질문한 하나님의 이름이다. 이 이름은 위대하신 이름이며, '스스로 계신 분'으로서의 하나님을 '다른 모든 피조물'로부터 구별하는 이름이다. 이 이름에는 하나님의 지존하심과 완전하심과 전능하심과 무엇보다 거룩하심이 담겨 있다. 바로 그 우주 창조 이전에 스스로 계신 유일하신 분, 이 모든 우주만물의 유일한 창조주로서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 그 거룩하신 이름으로 바로 야곱, 즉 연약한 나를 창조하셨다. 나는 연약하나 나를 지으신 이는 우주의 창조주라는 정체성.
그릇이 하나 있다. 한 그릇은 아주 멋지고 휘황찬란한 금그릇이다. 다른 그릇은 투박하고 소박한 질그릇이다. 금그릇의 주인은 거지이고, 질그릇의 주인은 왕이다. 그랬을 때, 존귀함을 받는 그릇은 거지의 금그릇이 아니라 왕이 즐겨 사용하는 질그릇이다. 나는 약점 투성이 야비하고 비겁한 야곱일지언정, 나를 지으신 분이 우주의 창조주이시며, 하나님께서는 우주를 '창조하신' 단어로 나를 '창조하셨다'. 그것이 나의 정체성이 된다.
5. 말씀하시느니라
말씀으로 천지만물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셔서 온 인류를 구원하신 분이 예수님. 그 '말씀'이다. 절대권위를 지니며, 반드시 이루시는 확실성을 특징으로 한다. 그런 무게로 말씀하시기를,
6.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접때도 썼다. 구약의 하나님, 신약의 예수님 모두 백성들과 제자들을 만나면 '두려워 말라', '무서워 말라'를 반복하여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없는 사람은 공포 속에 살 수밖에 없다. 궁극의 죽음이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며, 세상에서 자신을 보호해줄 압도적인 절대자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는 죄인이기에 무죄하시고 완전무결하신 하나님 존전에서는 두려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주권적 구속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셨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선택하여 구하신 백성에게는 두려워하지 않도록 허락하시는 것이다.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려는 것이니라. 아멘.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깊이 만나고 소통하는 삶과 그렇지 않은 삶 사이에는 결코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은 어떻게 해도 이해할 수 없는 신비가 있다. 세상 사람들이 '우연'과 '기적'이라고 일컫는 일들이 수없이 점철된 삶.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으며 만질 수 없는 하나님의 확실한 보호하심. 그것을 영안이 닫힌 사람이 무슨 수로 알겠는가!
7.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1) 구속하다 גָּאַל — gaʾal / גֹּאֵל goʼel (구속하다 / 구속자)
법·사회적 배경(핵심): 고대 이스라엘 사회는 '친족적 연대'가 삶의 핵심 구조였고, **goʼel(구속자)**는 (1) 가까운 친족이라는 법적 자격을 바탕으로 (2) 팔린 사람·팔린 토지·빚 갚기·가문의 권익 회복 등의 일을 수행했습니다(예: Leviticus 25의 ‘토지 회복/속환’ 규정, Ruth 4의 보아스 사건). 고대 근동의 유사한 ‘재매입/대리구속’ 관행과도 통하는 제도입니다.
의미 확장: goʼel은 단순한 '값 지불'뿐 아니라 법적·도덕적 권리·책임(원한의 복수/avenger of blood도 포함)까지 포괄합니다(예: ‘goel hadam’). 따라서 신적 '구속' 묘사에서 ‘하나님이 친족적 의무를 대신하여 회복·구원하신다’는 윤곽이 드러납니다(이사야의 하나님의 ‘구속자’ 칭호)
본문 적용(사 43): “내가 너를 גְאַלְתִּיךָ (gᵉ'altīkha, 내가 너를 구속했다)”는 표현은 단순 ‘값 지불’이라기보다 **법적·언약적 회복(너를 내 것으로 되찾아 옴)**의 선언으로 읽히며, 포로상태에서 공동체의 재구성·회복을 약속하는 맥락과 잘 맞습니다.
ㅡ라고 챗지피티 씨가 말했습니당.
'고엘(속량, 구속자)'은 룻기의 대표적인 단어인데, 보아스가 룻의 고엘이 되어 주었지? 즉 우리가 하나님의 '친족'이라는 거다. 이게 얼마나 말이 안 되는 말이냐 하면,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나는 피조물인데 피조물이 어떻게 창조주의 친족/가족이 될 수 있나. 내가 만든 그릇이 어떻게 나의 가족/친족이 될 수 있느냔 말이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나를 위해 희생 시키신 것은, 내가 만든 그릇을 구하기 위해 내 하나 뿐인 아들을 희생 시킨 거랑 마찬가지란 거야. 정말이지 모르겠다. 난 하나님의 사랑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하나님이 내가 아니시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몰라. 정말 이해 못하겠다 나는.ㅠㅠ 왜 이런 은혜를 주시는 것인지 도무지.ㅠㅠ 그릇 구하려고 아들에게 죽으라 하시는 아버지나, '네' 하고 그릇 대신 죽는 아드님이나 증말.ㅠㅠ
지피티 씨의 말대로 나는 하나님의 소유이므로 하나님께서 나를 구속하신 것은 '당신의 것을 되찾아 오는 것', '소유권을 회복하는 것'의 의미였다. 그냥 냉정한 주인이 아니라 친족으로서, 가족의 의무와 책임을 가지고서 되찾으신 것.
| [롬]8:31 |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
| [롬]8:32 |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
| [롬]8:33 |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
| [롬]8:34 |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
아멘.ㅠ
8.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I have summoned you by name / I have called you by name
summon 소환하고 호출하시는 거다. 아 단어 자체에 나에 대한 권한이 소환하는 자, 곧 하나님께 있음을 나타낸다. 원래 하나님의 소유인데 잠시 다른 곳에 있는 것을 다시 부르시는 거. 그런데 '지명' 즉 '이름으로 부르셨다'. 그냥 아무나 대충 '어이, 거기! 이리로 와!' 가 아니라 특별히 지정하여 'ㅇㅇ야! 이리로 (돌아)와라!' 하고 부르셨다는 뜻이다. 이름은 사람의 정체성을 담고 있다. 이름이 없는 사람은 타인에게 기억될 수 없으며 소통할 수 없다.
문화적 뉘앙스: 고대 근동에서 ‘이름(name)’은 단순한 레이블이 아니라 정체성·권리·명성(=character)의 요약이므로, ‘이름으로 부름’은 법적·관계적 귀속을 나타냅니다(예: 베살렐을 ‘이름으로 지정’하여 성막 일을 맡김—출 31:2의 병행
라고 합니당.
'이름으로 부르다'라는 것은 '이름을 알다'를 전제하는 일이다. 즉 온 세상의 왕이신 하나님께서 내 이름을 친히 아신다는 뜻. 나를 아신다는 뜻이다.
여담인데 오정현 목사님이 내 이름을 부르신 적이 있당(으쓱). 그것도 칠천기도용사 앞에서 부르셨당(으쓱). 부르시고는 내가 올린 짧은 기도문을 읽어 주셨당(으쓱). 히힛.🥰
목사님이 내 이름 불러 주셔도 이렇게 좋은데. 사람들에게서 엄청 부러움 받았는뎅. 세상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나를 이름으로 기억하시고 사랑하시며 불러 주신다. 사실... 하나님은 너무 높은 분이셔서 잘 실감이 안 나긴 하지... 근데 우리 담임 목사님을 만드신 분이라 생각하니깐 초큼은 더 감이 오는 것도 같당.
은사로 기도하면... 기도가 깊어지면... 보여 주시는 것들이 있고 느끼게 해주시는 것들이 있어서 가끔 하나님의 위대하심 앞에 말을 잃기도 하긴 하는데. 또 가끔은 그 존엄하심에 벌벌벌 떨기도 하는데. 평소에는 정말 철딱서니 하룻강아지인 것 같다 나는.ㅠ
하나님께서 내 이름을 불러 주신다. 그리고 말씀하신다.
9. 너는 내 것이라
남자분들도 그런가? 성별은 상관없나? 나는 이 말씀 들으면 짜릿해... 너 내꼬! 캬...!!! 우리 하나님의 소유욕이잖어. 나 왜 이렇게 가슴이 설레징.💕 누구보다 신실하시고 누구보다 책임감 강하시며 누구보다 전능하신 분, 누구보다 선하시고 누구보다 사랑이신 분이시기에, 그런 하나님의 소유욕을 누리는 것이 이토록 설렘. 둑흔둑흔. 꺄아😍😆🥰💖💕
Yes, my Lord and Love. I'm all Yours.💖
......
이... 이제 한 절 했어...?? 아아아.ㅠㅠㅠ
2절.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NIV (New International Version) “When you pass through the waters, I will be with you; and when you pass through the rivers, they will not sweep over you. When you walk through the fire, you will not be burned; the flames will not set you ablaze.”
ESV (English Standard Version) “When you pass through the waters, I will be with you; and through the rivers, they shall not overwhelm you; when you walk through fire you shall not be burned, and the flame shall not consume you.”
MSG (The Message) “When you’re in over your head, I’ll be there with you. When you’re in rough rivers, you will not go down. When you’re in a fire, you will not be scorched—not even a smell of fire on you!”
1. 물/불을 지나다.
이 2절은 접때 묵상해서 은혜게시판에 쓴 적이 있으니 간단히 넘어가자. 개인적으로 몹시 좋아하는 구절이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해서, 지존자의 사랑과 구원을 받았다 해서 물/불이 없지 않다는 말이다. 하나님은 자판기가 아니다. 내 물질적 편리함을 위해 존재하시는, 내 기복신앙을 채워주시는 자판기가 아니시란 말이야.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다.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자 목표 그 자체이시다. 그러니 하나님을 믿어 그 사랑을 받는다 해서 물리적 꽃길만을 걷게 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하나님을 잘 믿어도 우리는 물'들' 가운데를 지나고 강'들'을 통과하며 불 가운데로 지나게 된다. 잠시 이 물/불의 이미지를 살펴보자.
1) 물을 지나다
당연히 출애굽을 생각하고 홍해가 떠오른다. 내 앞의 바다가 갈라지지 않으면 주가 나로 바다 위 걷게 하리. 아멘. 그리고 이것은 믿음으로 인해서만 가능하다.
① The Waters
그리고 이 물은 그냥 작은 물줄기가 아니다. the waters. 심지어 복수다. 어떤 물이 될 지 알 수 없는 거다. 작은 물일 수도 있고 해일일 수도 있다. 둘 다일 수도 있다. 맑은 물일 수도 있고 더러운 흙탕물일 수도 있다. 근데 중요한 건 그 물이 어떤 물이며 얼만큼의 몇 개의 물줄기인가가 아니다. 그 물이 어떤 물이건 상관없다. I will be with you.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이것이 중요하다. 천지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데 누가 뭘 어찌하랴. 하나님이 나를 의롭다 하시는데 누가 나를 고발하랴. 하나님이 날 위하시는데 세상 어느 누가 내게, 어? 다 뎀뵤!!!! ㅡ 하고 하나님 뒤로 쏙! 숨기 신공. ㅋㅋㅋㅋㅋ 나 이런 거 잘 행.ㅋㅋㅋ😝
② The Rivers
물은 포괄적이다. 한 바스켓의 물일 수도 있고 아주 많은 물일 수도 있다. 그런데 '강'이라 하면 이 또한 지속적으로 흐른다. 고난이라 한다면 끝 없이 흐르는 것 같은 고난일 수 있겠다. 어디서부터 시작하고 어디서 끝나는지도 모르겠는 고난. 그러나 아무리 고난'들'이 끝없이 밀려 온다 하더라도 그 (강)물이 나를 침몰하지 못한다. 나를 해치지 못한다. 중요한 건, 나를 침몰하지 못한다 하셨지 나를 젖지도 못하게 한다고 하시진 않았다?
③ '물을 지나는 것'의 의미
'고난을 지나다'가 가장 안정적인 해석일 것이다. 또 하나는 출애굽의 홍해 건너는 사건을 '세례'로 보는 시각도 있는 것으로 안다. 이는 신분의 변화를 뜻한다. 세상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를 상징하는 의식. 상징이란 단어가 좀 그런가? 변화를 실현하는 의식? 삶의 여러 과정들이 있을 것이고 신앙의 여정에서 여러 단계와 국면들이 있을 것이다. 그 어떤 것이든 세상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면, 그렇다면 그 무엇도 내게 해를 입힐 수 없다.
2) 불을 지나다
그리고 이 '불을 지나다'는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연상시킨다.
| [단]3:24 | 그 때에 느부갓네살 왕이 놀라 급히 일어나서 모사들에게 물어 이르되 우리가 결박하여 불 가운데에 던진 자는 세 사람이 아니었느냐 하니 그들이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왕이여 옳소이다 하더라 |
| [단]3:25 | 왕이 또 말하여 이르되 내가 보니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니는데 상하지도 아니하였고 그 넷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 하고 |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라 아멘.
그런데 번역서마다 살짝 뉘앙스가 다르네.
[NIV] the flames will not set you ablaze
[ESV] the flame shall not consume you.
[MSG] you will not be scorched—not even a smell of fire on you!
역시... MSG는 MSG 맛이 좀 나징... (앗... 왜 내가 우리 담임 목사님의 아재개그를. ㅠㅠ 나 목사님 많이 그리운가 봄.ㅠㅠ 아재개그를 다 따라하고 있.ㅠㅠ💖) NIV가 '불꽃이 붙지도 않으리라' 정도라면 MSG는 '불냄새조차 안 날 거래!!!' ㅋㅋㅋ
그거 엄청 은혜로운 말씀인데 음. 내가 뭘 잘못 믿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는데, 나는 물 가운데로 지났을 때 물이 나를 해하지는 못해도 물에 젖기는 하며, 불 가운데로 지났을 때 불꽃이 나를 사르지는 못해도 지나간 연기 냄새 정도는 배는 것 같거든... 내가 믿음이 작아서 그런 건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아예 아무 것도 없을 것이면 왜 물과 불을 건너게 하시느냐는 거지. 내게 상처로 남지 않는 흔적이 남아 두고두고 그 물과 불 속에서 나와 함께 하셔서 그 엄청난 시련을 잘 통과하게 해주신 하나님을 기념하며 감사하게 하시지 않을까? 내 생각입니당.
2.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 임마누엘
살아 보니 이거더라. 세상 가장 부러운 사람이 에녹인데. 엘리야도 죽음을 보지 않고 올라갔지만 엘리야는 혼자 올라갔잖아. 에녹은 하나님에 데려가셨잖음.
창세기 5:24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참... 부럽당... 그니깐 에녹은 하나님과 임마누엘 동행하다 하나님이 데려가 버리셨단 말이야... 내가 하는 기도도 이러하다.
"하나님. 저로 하여금 어제 보다 오늘 더, 오늘 보다 내일 더, 내일 보다 모레 더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사, 날로날로 주를 더더욱 사랑하게 하시어, 마침내 내 삶에 주를 향한 사랑이 최고점을 찍는 그 순간, 내 주 하나님은 나를 기뻐하시는 그 마음을 견디지 못하시어 마침내 나를 주의 영원의 품에 품어 주소서."
나의 이 땅에서의 마지막 순간을 위한 기도다. 내 마지막 순간은, 창조주 나의 하나님께서 지으신 피조물들 중에 가장 깊고 감동적인 사랑을 나로부터 받으시기를, 그 벅찬 감격 견디지 못하셔서 나를 영원의 품으로 안아 버리시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3. 번지점프/롤러코스터 묵상
이것이 은혜게시판에 했던 묵상인데 아... 에너지 떨어져... 벌써 네 시간 째 묵상 중. 아아...ㅠㅠ 이제 2절이라니.ㅠㅠ 그러니까 그리스도인들도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물불 시험을 겪는다. 똑같이 까마득한 낭떠러지에서 수직낙하한다. 차이는 생명줄 안전띠의 유무이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줄이 허리에 또는 발목에 묶여 있다. 비그리스도인들은 그것이 없는 맨몸으로 뛰어 내리게 된다. 그러니 비그리스도인들은 떨어져 내려 우울과 좌절, 절망에 빠지게 되고, 그리스도인들은 똑같이 떨어지지만 생명줄이 당겨 퉁! 하고 튕겨 올라가 살게 된다. 그리고는 내려서는 "어휴! 무서워 죽을 뻔 했네! 한 번 더 탈까?"라고 하게 되는 것. 그 어마어마하고 결정적인 차이를 알겠는가? 그리스도인이 절대 패할 수 없는 이유이다. 무려 죽음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줄이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생명줄이라고. 누가 어찌 하랴!
아 뭐 중요한 건 다 했다ㅡ고 믿는당.;;
3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를 대신하여 주었노라
NIV (New International Version) “For I am the LORD your God, the Holy One of Israel, your Savior; I give Egypt for your ransom, Cush and Seba in your stead.”
ESV (English Standard Version) “For I am the LORD your God, the Holy One of Israel, your Savior. I give Egypt as your ransom, Ethiopia and Seba in exchange for you.”
MSG (The Message) “Because I am God, your personal God, The Holy of Israel, your Savior. I paid an outrageous price to get you out of Egypt, a huge sum of money to get you back from Cush and Seba.”
1. 속량하다
1) 속량하다 뜻
‘속량하다’(→ 어휘체계 정리: gaʾal / padah / kaphar / kopher / pidyon)
많은 번역서가 한 단어(“redeem/ransom”)로 처리하지만, 히브리어는 다층적 용어체계를 갖고 있어 서로 다른 법·종교적 뉘앙스를 구별해야 합니다.
גָּאַל (gaʾal) / גֹּאֵל (goʼel)
* 의미: (주로 친족적) 되찾아 줌, 권리회복, 보호·복수 등.
* 법적 맥락: Leviticus 25(토지 회복·속환), Ruth 3–4(Boaz가 ‘구속자/구속권자’ 역할).
פָּדָה / פַּדָּה (padah / pidyôn)
* 의미: 일반적으로 값을 지불하여 해방·구속(ransom) — “pay the price and free”의 뉘앙스.
* 용례: 포로·노예의 구출, ‘피동사적’ 혹은 명사 형태(pidyôn)로 ‘속전’ 개념. SAHD·사전 설명들이 상세 정리.
כָּפַר (kaphar) / כֹּפֶר (kōpher)
* kaphar(동사): ‘덮다/속죄하다/화해시키다’의 의미로 속죄·대속(atonement) 영역에서 중요.
* kōpher(명사): ‘속전·대가(ransom, price)’를 뜻할 때도 있음(예: Exodus 21:30의 ‘ransom’), 그러나 ‘cover/covering’의 기본 이미지와 함께 사용되므로 문맥에 따라 ‘bribe/pitch/ransom’ 등으로 번역됨.
[구별 요약(실무적)]
* gaʾal = ‘가족·권리 회복’(법적·관계적 강조)
* padah / pidyon = ‘값을 지불하여 해방/속량’(경제적 교환 강조)
* kaphar / kopher = ‘덮음/속죄/때로는 대가(속전)’(종교적·제의적 강조)
* pidyon/have ceremony = 실전적 관습(예: ‘pidyon haben’ 신생아 속전).
법·사회적 함의(문화인류학적 관점)
* 가족(kin-group) 중심의 사회에서 ‘구속/속환’은 단순 경제행위가 아니라 가계 보존·혈통·토지의 귀속·명의 회복을 담는 사회적 제도였습니다(Leviticus 25 규정과 Ruth 사건에서 실감). 고대 근동에서도 ‘재매입/대리구속’ 관행이 있어 문헌학적 교차비교가 가능합니다.
앙대... 나 에너지 떨어짐... ㅠㅠ 과제 넘 많이 남았는뎅.ㅠㅠ 근데 이거 선물님 선물이란 말이야앙. ㅠㅠ 아쟈! 힘내쟈!!!✨✨✨🌹
2) 속량하다 해석
하나님께서 나를 값을 치르어 속죄하시고 해방하여서 가족으로 권리 회복을 시켜 주셨다!
2. 대저
대저2 大抵: 1. 대체로 보아서. 예) 대저 효는 인륜의 근본이다.(네이버 국어사전)
이사야 43:3의 '대저'(對底)는 **"왜냐하면", "그 이유는"**이라는 뜻의 접속사입니다. '대저'의 기능 이유나 근거를 설명할 때 사용 앞 문장의 내용에 대한 설명이나 증명을 제시 현대어로는 **"왜냐하면", "그것은", "그 이유는"**으로 번역합니다(claude AI)
왜 국어사전과 AI의 설명이 다른가. 근데 영어판으로는 For/ Because이니 왜냐하면 뜻이 맞지. 문체상 어울리긴 할 텐데 요즘 아예 안 쓰는 단어이지 않나, '대저'는? 아 그렇다고 현대인의 성경으로 바꿀 순 없긴 하고 참... 번역은 역시 반역이당.ㅠㅠ 성령님의 성령충만으로 이루어진 한국어 성경 번역 화이팅!!
3. 나는 네 하나님이요
나를 소유 삼으신 하나님께서 이제 직접 나의 편이 되어 주신다 한다. For I am the LORD your God
문자 그대로 보자면 하나님은 '나의 소유'가 되어 주신다신다. 꺄아.😍😆🥰💖✨🌹💝 나는 하나님꼬 하나님 내꼬. 히힛.😍💖
하나님이 내꼰데 세상에 무엇이 무서우랴!!!! 하나님께서 직접 내 하나님이라 하셨으니 이젠 막 용기 내는 고야!
골럇 앞에 선 다윗이 생각나넹...
사무엘상 17:45b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다윗은... '나의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10대 때부터 확고했넹... 그러니 이런 용기가 가능했지.
4.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 네 구원자
역시 이스라엘의 소유시라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소유,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위하시는 하나님. 이스라엘, 우리의, 나의 구원자.
5.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를 대신하여 주었노라
뭐, 훗날 고레스가 이스라엘 포로들을 성전재건을 위해 예루살렘으로 돌려 보낼 때, 이스라엘 대신 애굽과 구스와 스바를 공격했다(그 중 구스였나 스바였나는 고레스의 후손이 공격했다고)고 하는데, 그것을 의미한다고 하네. 애굽이야 워낙 유명한 고대근동의 최강국이었고, 구스는 지금의 에티오피아? 이집트 아래쪽 아프리카였고, 스바도 그 근방으로, 고대근동의 부강한 나라들이었다고.
보통은 귀한 이를 위해 천한 이를 희생하지 않나? 왜, 옛날에 보면 왕자/공주를 때릴 수 없으니 그 종이나 친구가 대신 맞는 일이 있었잖어. 그런데 하나님은 역시... 약한 이스라엘을 대신하여 강대국이었던 애굽, 구스, 스바를 고레스의 매질에 갖다 주심. 크...!!!! 우리 하나님 이런 분이셩!!! 👍😍✨
철저하게 강강약약이신 우리 하나님!! 그건 당연한 것이 하나님보다 강한 이가 없기 때문이다. 더 강한 자가 없으므로 하나님께선 누구의 비위도 맞추실 필요가 없다. 당신이 최강자이시므로 강한 것으로는 하나님을 감동시킬 수 없다. 아무리 강해 봐야 하나님이 더 강하시거든. 그래서 하나님께 없는 것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 하나님은 약하지 않으시니 약한 자에게 마음이 끌리시는 거임. 과부와 고아를 극진히 챙기시는 이유이다. 하나님 앞에 잘난 척, 강한 척 해 보아야 백해무익이다. 아무 소용 없어. 하나님 앞에선 납작 엎드려서 '저를 불쌍히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간절히 구할 일이다. 그리하면 자비롭고 긍휼이 많으신 사랑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시고 마음을 열어 주신당.
난... 이런 우리 하나님이 증말 너무 좋아.ㅠㅠ 세상에서 강약약강 만큼 비겁하고 못나 보이는 사람도 없는데, 우리 하나님은 세상 그 누구보다 찐 강강약약이시니깐.👍💖😍 하나님 아니면 의지할 이 누구도 없는 철저히 약하고 못난 자를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의 왕이자 아빠이자 보호자 되어 주시는 우리 주 하나님은 세상에서 제일제일제일제일👍👍👍👍✨!!!! 멋지시당!! 할렐루야!!💖💖✨
와아.. 나 증말... 다섯 시간 째.ㅠㅠ 이 페이지가 렉 걸림.ㅠㅠ
4절.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네 대신 사람들을 내어 주며 백성들이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NIV (New International Version) “Since you are precious and honored in my sight, and because I love you, I will give people in exchange for you, nations in exchange for your life.”
ESV (English Standard Version) “Because you are precious in my eyes, and honored, and I love you, I give men in return for you, peoples in exchange for your life.”
MSG (The Message) “That’s how much you mean to me! That’s how much I love you! I’d sell off the whole world to get you back, trade the creation to recover you.”
1.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하나님께 보배와 같이 보인다니 참... 실은 내가 보배는 아닌데 나를 보는 하나님의 눈에 하트가 뿅!😍 켜져 있는 거. 히힛. 아 징차 성경 넘 빠져 읽으면 곤란함. 우리 하나님은 징차 애정 표현이 완전 돌직이셔서는... ㅠㅠ 막 설렌다규. 마구마구 설렘. 쿵쾅쿵쾅.💕💝💖 막 돌려 말하지 않으시고 징차, "너! 내 눈에 보석 같이 예쁘다!", "너 내게 정말 귀하다!", "내가 너 싸랑한다!" "일루 와! MWAH!!😆🥰😍" 히힛.💖 막 그러심.💕 아 물론... 섬세하실 땐 세상 섬세하시다. 구약의 하나님은 찐 내 스타일이신데 흐엉.ㅠㅠ 얼마나 멋지신지 몰라.ㅠㅠ 막 훈련 땐 엄하시고는. "어따 대고 엄살이냐! 너 이거 할 수 있잖아!" 하시는가 하면, 그래도 못하겠다 징징거리고 막 울면 어느 샌가 다가와서 호~ 호~ 하며 부드럽게 토닥여 주시고. 초큼만 한 눈 팔면 막 푸르르 질투하시는가 하면, 살짝만 하나님 위해 드려도 막 감격하셔서는 다윗에게 퍼부으시는 그 은혜 은혜 은혜를 좀 봐...ㅠㅠㅠ 그리고는 이사야서에서는 불같이 화를 내시다가도 또 못내 불쌍하셔서는 먼저 다가와서 손 내밀어 주시고, 눈물 닦아 주시고, 사랑한다 사랑한다 고백해 주시고, 증말이지...ㅠㅠ 내가 몬살아 우리 하나님 땜에... ㅠㅠ 하나님은 정말 너무 멋지심. 정말 너무 하심. 너무 멋지심.ㅠㅠ 꺄아.😍😆🥰💖💕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느냐 하면
John 3:16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ly begotten Son, that whoever believes in Him should not perish but have everlasting life.
이 정도시다. 세상을 이토록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아멘.ㅠ
2. 내가 네 대신 사람들을 내어 주며 백성들이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여기서도 역시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 MSG의 번역이 있다.
[NIV] I will give people in exchange for you, nations in exchange for your life.
[MSG] I’d sell off the whole world to get you back, trade the creation to recover you.
널 돌려 받기 위해서라면 전세계를 다 팔아 버리겠다! 널 회복 시키기 위해서라면 피조물 몽땅 다 줘 버리겠다! 크...!!! 더 감동적인 건 잊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님께서 이렇게까지 절절하게 사랑고백을 하시는 대상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도 모르고 죄를 짓고 있는 이스라엘이란 말이야. 엉엉.ㅠㅠ 우리 하나님은 대체 왜 이러신 걸까, 왜...ㅠㅠ 사람으로서 이해할 수 없는 분이시당. 넘나 은혜로우셔.ㅠㅠ
5절.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네 자손을 동쪽에서부터 오게 하며 서쪽에서부터 너를 모을 것이며
NIV (New International Version) “Do not be afraid, for I am with you; I will bring your children from the east and gather you from the west.”
ESV (English Standard Version) “Fear not, for I am with you; I will bring your offspring from the east, and from the west I will gather you.”
MSG (The Message) “So don’t be afraid. I’m with you. I’ll get your children safely home from the east and from the west.”
1. 또 다시, 내가 너와 함께 하여 = 임마누엘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유일한 이유는 바로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임재'인 것인데... 내가 구약에서 너무나 가슴 벅차게 읽고 또 간절히 소망하며 기도하고 있는 하나님의 임재 구절은 이미 너무 많이 말을 했고. 그런데 올해 내내 사명기도 중 하나이기도 해서. 정말 너무나 간절한데, 그저께 또 다시 말씀을 받았다.
말라기 3: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 또 너희가 구하는 바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리니 곧 너희가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
이사야 46:13 내가 나의 공의를 가깝게 할 것인즉 그것이 멀지 아니하리니 나의 구원이 지체하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나의 영광인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원을 시온에 베풀리라
하나님 말씀 주시면 이렇게 확실하게 주셔서.ㅠㅠ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신다. 임마누엘. 할렐루야. 우리는 주의 성전입니다. 나는 주의 성전입니다. 할렐루야.
나는 늘 이것이 걱정이다. 이것을 간절히 기도한다. 하나님은 임재하실 것이다. 계속해서 말씀을 부어 주고 계시니, 피 흘림 없는 복음적 평화통일도, 2033-50도, 제사장 나라도, 영원예수한반도도, 하나님은 이루실 것이다. 반드시, 꼭 이루신다. 다만 그 때와 방법이 철저히 하나님의 것이라 우리는 알 수 없는 것인데, 본문에서도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는 것처럼 '갑자기' 임하실 거거든. 그거 너무 확실히 안다. 정말 갑자기 임하실 거다. 그런데... 우리는 준비가 되어 있는가. 나는 준비가 되어 있는가. 하나님께서는 부글부글 복음의 때를, 부흥의 때를, 언약 성취의 때를 준비하고 계신데, 나는 준비가 되어 있는가. 나는 되어 있는가. 우리는 되어 있는가. 나는 그것이 걱정이다. 한류가 무르익고 있다. 더 지나가기 전에 우리는 빨리 준비되어야 하고 구비되어야 하며 깨어 하나님의 손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땅!" 신호탄을 쏘시고 달리기 시작하시면 재빨리 하나님 곁에서 함께 신나게 달려야 한다. 달리며 평화통일에 쓰임 받고, 북한의 복음화를 이루고, 2033-50을 넘어 전세계 골리앗을 향해 다윗의 거룩한 물맷돌을 던져야 한다. 아니, 우리가 물맷돌 되어야 한다. 주저함 없이 날아가 하나님께서 누르시는대로 골리앗의 이마에 들어가 꽝! 박혀야 한다. 선물님은 누구보다 준비가 된 분이신데, 내가 준비가 되었는가. 내가 너무 부족하다.ㅠ 그래서 마음이 급하다. 나도, 나도 어서 준비되어 함께 달리고 싶다.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2.네 자손을 동쪽에서부터 오게 하며 서쪽에서부터 너를 모을 것이며
뿔뿔이 흩으섰던 이스라엘의 자손들을 사방에서 모으신다. 흩으시는 분도, 모으시는 분도 하나님이심. 죽으나 사나 하나님께만 매달릴 일이다.
6절. 내가 북쪽에게 이르기를 내놓으라 남쪽에게 이르기를 가두어 두지 말라 내 아들들을 먼 곳에서 이끌며 내 딸들을 땅 끝에서 오게 하며
1. 북쪽, 남쪽, 땅끝
5절의 동쪽, 서쪽과 함께 세상 모든 끝을 말한다.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모든 주의 백성들을 불러 모으시는 모습이다.
2. 내놓으라, 가두어 두지 말라, 이끌며, 오게 하며
하나님의 주권적 명령이다. 세상의 유일한 창조주이자 통치권자로서 하나님의 명령이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명령하시면 그 무엇이라 하더라도 내놓을 수 밖에 없다. 역시 천지를 창조하신 말씀의 권능으로 묵상이 수렴하네 오늘은.
7절.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NIV (New International Version) “everyone who is called by my name, whom I created for my glory, whom I formed and made.”
ESV (English Standard Version) “everyone who is called by my name, whom I created for my glory, whom I formed and made.”
MSG (The Message) “Every last one who carries my name and whom I created for my glory, yes, whom I formed and made.”
1. 하나님의 이름으로 불려지다.
하나님께서 나의 이름을 불러 주셨을 때 나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불려진다. 갑자기? 김춘수 시인의 <꽃>은 혹시 이사야 43:7을 읽고서 쓴 것인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불리우던 사람들. 지금 신약시대에는 예수님의 사람, 예수님의 소유, 예수님을 닮은 등의 의미를 지닌 크리스천, 그리스도인이 되겠다.
2.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목적 없이 창조하시지 않았다. 우리를 만드신 목적이 분명하게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창조되었다. 뒤집어 말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고 있지 않다면 우리는 존재할 이유도, 가치도 없다. 내가 그릇을 만들었다. 밥그릇을 위해 만들었다. 그렇다면 그 그릇은 밥을 담아야 한다. 그 그릇을 만든 나의 의도가 그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만드셨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만드셨다. 그러니 나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살아야 한다. 내 삶의 모든 순간이 하나님을 향한 예배가 되어야겠지만, 가장 공식적으로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주일예배, 공예배에서는 정말로 모든 것 다해 하나님을 예배하고 주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그것이 내가 창조된 목적이기 때문이다.
3.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아멘. 내가 쓰기 위해 내가 만든 내 그릇은 내 소유이다. 그러니 내가 지니는 것이 맞다. 하나님께서 나를 만드셨으니 나는 하나님의 소유이고 하나님 손에 들려 사용되는 것이 옳다. 하나님의 이 소유권 선언.
나를 지은 이가 없다는 건 부모 없는 고아와 같다. 대체 어떻게 하면 우연히 이 우주가 만들어졌으며 아메바에서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진화했다는 것을 믿을 수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은 방황 동안 나도 그걸 믿을 뻔 했당 ;; 죄송해요 하나님.ㅠㅠ 제가 멍청했어요.ㅠㅠㅠ 그러니까 막 흙과 쇠와 돌과 페인트와 플라스틱과 유리를 넣고 막막막막 흔들었더니 뚝딱! 건물이 만들어지는 것과 같잖아? 그게 말이 돼? 아니 하다 못해 아주 작은 장난감 집 하나라도 말이다. 손바닥만한 장난감집 하나라도 플라스틱이랑 물감이랑 나사랑 못이랑 풀이랑 페인트랑 한 봉투에 집어 넣고 막 죽을 때까지 흔들어 보라고, 뚝딱! 장난감집이 만들어지나. 그 작은 장난감 하나 안 만들어지는데 이 복잡다단한 우주와 모든 생물이 어떻게 우연히... 우연히... 우연히... 미칠 노릇이다... 우연히 만들어졌다는 걸 믿을 수 있는 건가? 이쯤 되면 진화론을 믿는 믿음이 더 엄청난 믿음인 거 아냐??? 어떻게 그것이 말이 되느냐고. 마치 사람들은 생각을 포기한 뇌정지 상태인 것 같다. 어떻게 하면 진화론을 믿을 수 있는 것인지, 작은 것 하나도 우연으로 완벽 조립되지 않는데, 이 어마무시하도록 광대한 우주가 우연히 끼워 맞춰져서 만들어졌다고 믿을 수 있는 것인지, 대체 무엇에 brain-washed 된 것인지를 도통 모를 일이다. 온 세상 비그리스도인들은 단체로 집단최면에라도 걸린 것일까? 흔들어 보라구요, 장난감집 재료를, 죽어라고 죽어라고 흔들어 보라구요! 만들어지나.
[일기]
아이 참, 야심차게 준비한 웰컴백 묵상 선물이 이상한 데서 흥분하면서 끝나 버리다닝.ㅠㅠ 이상하게 진화론으로 생각이 번져서 흥분해버려땅.ㅠㅠ 벌써 오후 다섯 시... 나 이거 아침 9시부터 했어... ㅠㅠㅠ 나 과제 할 시간과 에너지 다 날려땅...ㅠㅠㅠ 선물님을 위한 선물이니 신나게 놀았다만서도ㅡ는 누구를 위한 선물이라구??;;;
*
jh 집사님이랑 어제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 두 사람 다 선물님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jh 집사님이 선물님을 기다리는 것은 조금 다른 느낌이긴 한데. 나야 사명이니까. 선물님 위해 기도하고 지원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 기도 중 하나이니, 하나님께서 마음 부어 주시는 거 어쩔 수 없다. jh 집사님은... 백반이 그리운 것 같아 보인달까. ㅎㅎ 나도 백반 엄청 그립당.ㅠㅠ
이번 방학 초청목사님들 설교들 좋았거든. 근데... 그래도... 우리는 선물님 주시는 꼴이 고프당.ㅠㅠ 너무너무 예쁜 선물을 들고 돌아오신 우리 선물님. 어쩜 이런 가이드북을 만드실 생각을 다 하셨어 그래.ㅠㅠ 상상도 못했다. 이렇게까지 준비해 주실 줄은.ㅠ 그래서 나도 가능한 이쁘고 정성스러운 선물을 드리고 싶은 건데 내 에너지가 저질이심.ㅠㅠ 느어무 느어무 피곤하당... 나 방학과제 어떡해...ㅠㅠ
*
최근 며칠, jh 집사님이 부쩍 나와 더 친해지는 느낌이다. 이는... 우리 둘 다 갈급함이 심하기 때문인데... 나는 최근 치아, 구체적으로는 잇몸뼈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더욱 하나님을 간절히 붙잡고 있다. 하나님 아니시면 될 수가 없다. 도저히 해결될 수가 없다. 나를 창조하신 나의 하나님 만이 해결해 주실 수 있다. 그래서...
아까는 문득 그런 기도를 했다. 기도라기보단 하나님과의 대화인데.
"하나님. 제가 최근 좀 덜 절실했죠. 매일 새벽예배 때마다 기도는 울면서 간절히 하지만... 그래도 통나무실에 가지는 않으니까요. 몇 시간이고 퉁퉁 울며 체력을 소모하여 기도하지만, 그래도 기절할 정도로 목숨 걸고 부르짖어 기도하진 못하니까요. 하나님, 제가 배가 좀 불렀죠... 솔직히 몸이 많이 축나서요... 좀 많이 피곤하고, 새벽 3시 반에 일어나는 것이 11개월 째 지속되다 보니 이제는 만성피로 때문에 너무 힘들기도 하고. 아마도 잇몸은 그것 때문에 더 악화되었을 텐데요... 정말이지 이건 제겐 너무 큰 충격이에요.
그런데 하나님. 저요, 감사해요. 확실히 저 좀 나태했어요. 이렇게 문제가 드러나니 정신 바짝 차리고 하나님께 더욱 매달리게 되네요. 어떻게 하면... 어떻게 하면 태평성대 시대에도 하나님을 간절히 붙들 수 있을까요?"
정답을 안다. 선물님이 가르쳐 주셨다. 믿음의 모험. 징차...ㅠㅠ 믿음의 용량 키우기. 그릇 키우기. 그것은 나를 찢어야 한다. 아... 이거 정말 천만금을 주고도 못 사는 지혜인 건데... 우리 교회 성도들, 우리 선물님이 얼마나 얼마나 귀하신지 아실까? '믿음의 모험' 이건 정말이지 하나님 은혜를 받는 완전 치트키란 말이다!! 이거 다들 못 찾아서 그렇게 힘들어하고 성령충만 떨어지고 과거의 은혜 파먹고 살고 그렇게 사는 거란 말이야... ㅠㅠ 눈물겹다.ㅠㅠ 이렇게 귀한 깨달음을 가만히 앉아서 편하게 공짜로 넙죽넙죽 받아 먹다니.ㅠㅠ 그런데도 정신 못 차리고... 전력질주 하지 못하다니.ㅠㅠ 죽어라 달려야 한다. 그것이 원수에게 먹히지 않고 성령님의 힘으로 원수를 짓밟으며 사는 유일한 답이다.
암튼 아직 나는 믿음의 모험을 감행하는 것이 서툴러서... 는 우리 선물님이야말로 징차 세련되셨지... 지독하게 세련되셨지... 캬...!!! 앗, 잠시만 방심하면 선물님을 감탄하고 그런다 나는.;;; 다시 다시 돌아가서!! 암튼 그래서 지금으로서는 이렇게 또 시련을 허락하셔서 하나님을 더욱 붙잡게 해주셔서 감사함.ㅠ 덕분에 다소 느슨해졌던 마음을 다시 바짝 당겼다.
육신에 고난이 오고 보니(사실 이건 암에 비하면 고난도 아닌 건데;;), 그동안 중보기도로 마음 찢게 하신 것이 얼마나 얼마나 얼마나 얼마나 가장 난이도 낮고 가장 쉬운 일이었는지를 절감한다. 그것도 주님 주신 중보기도 은사로 기도하는 거였는데 그걸 힘들다고 징징댔으니 참...ㅠ 부끄럽고 또 부끄럽당. 하나님 앞에 고개를 들 수가 없.ㅠㅠ;;;
이렇게 아프고 보니 매일 매 순간 얼마나 기적적인 은혜로 나의 몸을, 환경을, 상태를 섬세하게 조율하시며 불꽃같이 보호하고 계신지를 절감하겠다. 치아 두세 개 힘든 것으로 이렇게 고통스러운데... 나머지 치아들을 매일같이 지켜 주고 계시고, 내 온몸의 뼈와 근육과 관절과 힘줄, 신경, 혈관 등 모든 것을 지금도 지켜 주고 계시며... 교세권 집이랑 좋은 이웃들, 영가족들 무엇보다 교회와 선물님, 베프와 가족들, 훈련 집사님들, 목사님들, 또 좋은 날씨에 좋은 환경에 좋은 나라에 안전한 나라에 참... 천장이 무너지지 않는 집과 수많은 가능했을 천재지변으로부터 나를 보호해 주고 계시니, 감사를 하자면 한도 끝도 없다. 그 어마무시한 모든 것을 지금 이 순간도 하나님은 친히 꼼꼼하게 챙기시며 나를 보호하고 계신다. 덕분에 내가 이렇게 살아 숨을 쉬며 컴을 켜서 키보드로 이 글을 타이핑하고 있는 거다. 하나님은... 나의 주 나의 하나님께서는... 이 수많은, 일일이 다 생각조차 못 하겠을 정도로 다양하고 많은 것들을 다 챙겨서 보호해 주시면서도, 내가 알아서 감사하기는 커녕 몇 가지 아주 사알짝 불편한 것을 불평하고 있고... 그러고 살았다 지금까지.ㅠ 철딱서니도 정도껏이어야지 원.ㅠ 이 정도면 배은망덕도 최하 배은망덕이 아니겠는가.ㅠㅠ
그래서 이 고통, 이 고난이라면 내게는 정말 큰 고난이고 절망에 가까운 일이었던 건데... 이 일을 허락하심이 감사하다. 덕분에 내가 얼마나 엄청난 보호를 받고 있는지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감사합니다 하나님.ㅠㅠㅠ 이제라도 매일 매순간 생각나는 뭐라도 주께 감사하는 습관을 들여야겠다. 이 순간 키보드를 칠 수 있는 손가락 관절 주신 거, 몇 시간이고 앉아 있을 수 있는 건강한 허리 주신 거, 다 감사하다.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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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jh 집사님과 나는, 절실하다. jh 집사님의 아들은 아직도 희망을 부르짖는 집사님을 향해 '기도 하나도 안 이루어졌잖아'라고 했다고. 정작 본인이 갈 수 없었던 학교에 우리가 함께 기도해서 갔는데도? 아들의 말은 우리나라에 대한 이야기다. 세 명 가족 모두가 극우 애국보수거든. 이제 대학생인 아들은 많이 현 정국에 많이 낙담한 듯.
jh 집사님과 sh 집사님 부부도 그랬다. 자꾸 낙담하고 또 낙담했다. 아무래도 현장에서 몸으로 뛰며 참여하고 운동하는 집사님들이셔서, 현 정국 상태가 피부로 절실히 와닿기 때문인 것 같다. 그 때마다 나는 하나님께서 주신 언약 말씀으로 격려하고 격려하고 격려하곤 한다.
최근 생각한다. 나는 어째서 이런 환경인 걸까. 광야이긴 한데, 정말이지 광야 치곤 호텔 광야 아니야? 너무너무 감사하고... 천국과 같은 광야인 건데. 하나님이 만나 주셔, 하나님이 먹여 주셔, 채워 주셔, 좋은 분들 가득 보내 주셔, 정말이지. 그런데 어째서...? 하고 최근 질문을 한 거였다. 그리고는 생각한다. 어쩌면... 이런 나의 믿음이라도 하나님께선 원하시는 것이 아닐까.
삶의 터전 최전선에서 비그리스도인들과 피터지게 싸우는 사람들은 온통 절망적인 상황 속에 믿음을 지키기 어렵다. 정말이지 어렵다. 눈 앞에서 거대한 숫자가 왔다갔다 하고, 엄청난 언어와 단어들이 희번득거리고, 침 튀기는 고함, 삿대질, 언어 폭력, 신체 폭력, 이 모든 어글리한 현실들을 최전선에서 온몸과 존재로 맞닥뜨린다면, 세상 사람들의 조롱에 낙담하고 분노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아무리 목 놓아 기도하고 시위해도 기도 응답은 엉뚱한 것처럼 보이도록 내려오고, 낙담에 낙담을 쌓게 되는 현실. 그들이 좌절하는 것은 정말 너무 당연하다.
어쩌면 그래서 나를 이렇게 격리하시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최근 하고 있다. jh 집사님은 가장 최전선에 있으면서도 현재 삶에 하나님의 신적개입을 풍성하게 누리고 있는 사람이다. 작년 제자반 때부터 함께 모든 기도제목을 나누면서 달려가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그런 집사님이 최근 많이 낙담하고 좌절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마도 나를 이렇게 격리 시키시는 것은, 불완전한 믿음일지라도 이런 믿음을 지니는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하나님께선 나의 이런 신기한 환경을 허락하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나는 믿는다. 비록 불완전한 믿음일지라도 말씀을 매일같이 쏟아 주고 계시고, 그 말씀이 너무 확실한 레마로 오며, 말씀을 붙들고 기도를 할 때 마음의 확신은 더더욱 커지기 때문에 믿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믿음의 격려를 하면 jh 집사님을 다시 일어서고, 다시 꺼지면 다시 격려를 하고, 다시 일어나고... 의 반복. 그러나 결단력 있는 jh 집사님은 최근 며칠 사이, 무슨 일에선지 결단을 내린 것 같다. 아까 오전에 새벽예배 마치고 나서 jh 집사님이 말했다.
"집사님. 아무래도 우리가 remnant인 것 같아요."
동의했다.
"정말이지 힘들어요. 망상증과 믿음은 종이 한 장 차이 같아요. 저도 정말 헷갈려요. 하지만 저는 이제 돌아갈 곳이 없어요. 죽어도 이것 뿐이에요. 그러니 끝까지 갈 거예요."
한동대에서 우파 학생들이 집사님의 수업을 미어 터지도록 많이 수강하는데, 극우파 입장으로서 강의를 하며, 좌파 일색의 학교 내에서 차별 받으며 불이익 당하는 우파 학생들을 독려하고, 세이브 코리아 연단에 서서 연설했다는 이유로, 거의 확정되었던 정교수 자리도 팽 당하고 강의 마저 다 빼앗길 뻔 했는데 막판에 간신히 과목 하나를 배정 받은 상태. 쟁쟁한 좌파 교수님들이 집사님 향해 원색적인 공격을 퍼붓고, 좌파 지도교수님은 '실망했다'라며 집사님을 제자 목록에서 빼다시피 한 상태, 여기저기서 극우파라는 이유로 고난 당하고 있는 jh 집사님은 명백히 의를 위해 핍박 당하고 있는 상태이다. 어쩌면 이것은 또 다른 기회일 수 있겠다 싶어서 '한동대만 고집하지 말고 총신대, 숭실대, 백석대 등에 정교수 지원을 해 보라'고 조언한 상태이고 그렇게 기도하고 있다. 정말 똑똑한 재원이고 용감한 애국보수 지성인이자 몸으로까지 뛰는 강인한 전천후 무기인데, 모태신앙으로 마음이 보드랍고, 나와 같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섬겨 주는 참 귀한 동역자다.
나는 계속 말씀을 주고 계시고 계속 확신하고 있다. 너무나 믿어지는 상태. 이 모두가 하나님의 크신 응답으로 가는 과정이라는 것. 끝까지 믿는다. 끝까지 남는다. 우리는 끝까지 남아, 주의 역사를 똑똑히 목도할 것이다. 마침내 그날, 우리는 목청 다해 주를 찬양하고 춤을 추며 주께 영광을 돌릴 것이다. 함께, 우리 함께! 눈물 흘리며 하나님의 승리를 축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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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ㅊㅅ'가 우리 교회 성도라고??????? 충격 받았다... 그 ㅊㅅ... 그 ㅊㅅ...??? jh 집사님 말이니 맞을 것이다. 극우파 논객. 수많은 mz 우파들을 성경적 가치관으로 인도한,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유튜버. 여기저기서 모셔 갈 판인데, 우리 교회 성도라니. 교회에서 좀 사용할 수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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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절망을 말하지만 나는 희망이 부글부글 끓고 있는 것을 느낀다. 응답의 물이 끓으려 하고 있다. 마음이 흥분 돼. 우리는 준비가 되어야 한다. 이번 WEA 서울총회가 그 임계점이 되기를!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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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그릇 키우기. 말씀에 근거해 믿음의 그릇 키우기. 해 보쟈! 아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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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 this is my welcome-back present for you, my Dear Mr. Present,Sir. Hope you like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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