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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시편 40:1~2 "기다림의 은혜 The Grace of Waiting" 윤대혁 후임목사님

Sermon

by Vano 2026. 6. 24. 00:55

본문

https://www.youtube.com/watch?v=3HUmuHg1AXM

[시편 40:1~2]
1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I waited patiently for the LORD; he turned to me and heard my cry.
2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
He lifted me out of the slimy pit, out of the mud and mire; he set my feet on a rock and gave me a firm place to stand.


윤대혁 후임목사님 · 주후 2026.06.21 주일예배

 

* 필립 브룩스(Phillips Brooks, 19세기 유명한 설교자) - “나는 너무나 마음이 급한데, 하나님은 하나도 급하지 않으신 것 같아.”

◇ 다윗이 기다린 것 (성경 학자들의 추측) 
 자유 
→ 자신을 죽이려 한 사울의 끈질긴 추격으로 인한 도망자의 삶으로부터의 자유
 승리 
→ 주변 여러 나라들과의 전쟁에서의 승리
③ 회복 
→ 밧세바 범죄에 대한 하나님으로부터의 용서와 회복
☞ 이유에 상관없이 다윗은 꽤 오랜 시간 '기다렸다'.


† 하나님은 왜 우리를 기다리게 하시는가?  

1. 기다림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빚으시는 시간이다. 
→ 기다림의 주체는 내가 아니다. 상대이다. 내가 아무리 노력하고 화내고 온갖 일을 다 하더라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 기다림을 통해 인생의 주체는 내가 아니라 상대방이라는 사실을 배우게 된다.

성도에게 있어 기다림이란 내 인생의 주체는 내가 아니라 주님이시므로 주님께 나의 모든 것을 맡겨야 함을 배우는 시간이다.

베드로전서 1:7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우리가 거쳐가는 과정으로 불로 연단되는 시간이 있다: 고난과 오랜 기다림

기다림의 시간에 기다리지 못하고 조급하게 자신의 판단대로 행동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예 
시내산에서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었다.
→ 하나님의 처벌
광야에서 불평했다.
→ 광야 40년
☞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광야 40년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빚으시고 다듬으셨다.
신명기 8:15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기다림의 시간을 통해 우리가 알게 되는 것
하나님은 하나님이시고 나는 피조물에 불과하다.
하나님 없이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야고보서 4:6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 기다림의 시간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만한 사람으로 빚어지는 시간이다.

기다림은 하나님의 은혜를 기다리는 시간이다.

 

2. 기다림은 우리에게 소망을 품게 하는 시간이다. 
워런 W. 트라이온(Warren W. Tryon)의심리학 저서《Motivation, Emotion, and Goal Direction in Neural Networks》내에 있는 'Learned Helplessness and the Dynamics of Hope'라는 챕터에 등장하는 쥐 수영 실험

 커트 리히터(Curt Richter)의 쥐 수영 실험(Rat Swimming Test) 
두 개의 물을 담은 통에 크기과 나이와 모든 조건이 같은 쥐를 각각 한 마리씩 넣었다. 한쪽 통은 뚜껑을 닫았고, 다른 통은 뚜껑을 열었다. 뚜껑을 닫은 통의 쥐는 채 5분도 지나지 않아 죽었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 둔 통의 쥐는 36시간을 살았다.
☞ 소망은 우리를 다시 일어나게 한다.
로마서 15:13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빌립보서 2: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기다리면 기다릴수록 우리에게 소망이 무엇인지 알게 하신다.(?)

* 많은 경우, 우리는 우리의 소망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

* 20년 간의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 들어 오실 때 짐을 정리하시면서, 목사님은 그동안 한 번도 집에 쓰레기를 가져간 적이 없는데 의외로 쓰레기가 아주 많음을 발견하고 놀라심

기다림이 시작되면 나에게 무엇이 중요한지 깨닫게 된다.

욥기 23:10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 기다림의 시간을 통해 나의 불순물이 태워 사라진다. 잘못된 꿈들이 사라진다. 내가 붙들어야 할 참소망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다윗은 오래 기다리고 기다리기를 여호와를 기다렸다.
→ 성도들 중 몸의 병을 얻은 후 정말 바라는 것을 깨닫게 된 예가 많다. 건강을 회복시켜 주신다면 성가대에서 열심히 찬양하겠다, 교회에서 열심히 섬기겠다 등.

우리는 기다림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1.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기다림 
1)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기를 소망한다. 
시편 40:1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 단순히 가만히 있어 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린 것이 아니다. 

기다림은 오늘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그날만을 생각하고,
나의 고통과 절망의 인생에 주님이 역사하시길,
주께서 일하시길,
광야에 길을 내시고 사막에 강을 내시길,
나의 막힌 인생에 큰 길을 만드시고 큰 기적을 행하시길 기다리는 것,
이것이 바로 능동적인 기다림입니다.

주님을 능동적으로 기다린 예 
요셉 
길이 없었으나 주님께서 역사해 주시면 길이 있다고 믿었고 주님께서 일해 주셨다.
② 바울과 실라 
→ 감옥에서 벗어날 길이 없었으나 하나님을 찬미했을 때 주님께서 역사하셔서 감옥 문이 열렸다.

* 2000년 총신대 신대원 1학년 때 한국교회 미래를 준비하는 세미나(한미준 세미나)가 하용조, 이동원, 오정현 목사님과 함께 안성수양관에서 열렸다. 그때 윤대혁 목사님을 오정현 목사님께서 멘토링하셨는데, 윤 목사님이 질문을 했다.
"남가주 사랑의교회 교역자를 채용할 때 목사님께선 어떤 기준으로 뽑으십니까?"
이에 대한 오정현 목사님의 답은
" 가능성 Potential팀웍 Teamwork입니다."
였다. 이 말씀은 당시 윤대혁 전도사님에게 신선하여, 남가주 사랑의교회에서 사역하게 되는 소망을 품었다. 길은 전혀 보이지 않았으나 마음에 소원을 품었다. 

2002년 12월 13일 11시, ㅋㅋㅋ, 한 통의 국제전화가 왔다. 

"남가주 사랑의교회에서 함께 사역하지 않겠습니까? 1월 말까지 학생 비자 받고 들어오지 않으면 무효입니다."(ㅋㅋㅋㅋ) 
당시 막내도 어렸고 전세도 6개월 밖에 되지 않았고 여러가지 해결할 일이 많았음에도 하나님께서는 다 해결해 주셔서 남가주 사랑의교회에서 사역할 수 있었다.


* 우리는 꿈꾸어야 한다. 소망을 가지고 기다려야 한다.

2) 하나님께 부르짖는다. 
시편 40:1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 다윗은 기다림의 시간을 '부르짖으며 기다렸다'.

기다림의 파트너는 기도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며 기다릴 때 하나님께서는 귀를 여시고 부르짖음을 들으십니다.

→ 기다림의 시간은 하나님께 시간을 정해 두고 땡깡 부리는 시간이 아니다.
→ 하나님을 협박하는 기도는 안 된다.
→ 기다림의 주체는 내가 아니다. 하나님이다.
→ 기다림은 하나님의 은혜를 믿으며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이다. 

예레미야 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 수렁 속에서 누군가를 원망하는 것은 소용없다. 다만 주님께 나를 긍휼히 여겨 주시기를 부르짖어 기도해야 한다.

* 기다림의 시간에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 소망하며 기다릴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심을 느끼게 된다.

* 피 흘림 없는 복음적 평화통일이 일어나 평양에서 특새하는 날을 부르짖는 마음으로 기도하며 기다리자.
→ 복음적 평화통일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시는 일이다.
이사야 35:4 겁내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굳세어라,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희 하나님이 오사 보복하시며 갚아 주실 것이라 하나님이 오사 너희를 구하시리라 하라

기도하지 않고 그냥 기다리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기도하고 부르짖으며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다리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역사하신다. 아멘.




 ◇ ☞ † ⇒ ☆ § ※  ♥      ② ③ ④  




[시편 40:1~2] 
1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2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


1.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קַוֹּה קִוִּיתִי יְהוָה 카보 키비티 아도나이 (Qavoh Qivviti Adonai)  


1) 강조 문법

- 히브리어 수사법 중 부정사 독립형(Infinitive Absolute) + 정동사 구조로, 같은 동사를 두 번 겹쳐 쓰는 방식
- 반복을 통해 강조함.

2) 사용된 동사
- קוה (qavah, 카바/카와, Q-V-H) [영] expect, hope, look eagerly

의미 설명
1차적 의미 밧줄이나 실을 꼬다, 당기다, 팽팽하게 하다
2차적 의미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다, 소망하다
신학적 의미 하나님을 향한 능동적이고 긴장된 신뢰와 기대

카바(קָוָה)의 어원적 이미지는 팽팽하게 당겨진 밧줄이다. 단순히 수동적으로 앉아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온 신경과 존재가 하나님을 향해 긴장되고 집중된 상태로 기다리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오정현 목사님의 표현으로 치환하자면, '하나님을 한결같이 변함없이 꾸준하게 충성되게 끝까지 기다리다'가 될 것이다. 소망하지 않으면 끝까지 기다릴 수 없지.

다음은 '기다리다'의 히브리어에 대한 클로드의 답이다.


히브리어에는 "기다리다"는 뜻의 동사가 여러 개 있으며, 각각 뉘앙스가 다릅니다.

히브리어 음독 차이점 대표 구절
קָוָה 카바 긴장된 기대, 소망을 품은 기다림 사 40:31, 시 40:1
יָחַל 야할 희망 속에 기다림, 소망 시 130:5
חָכָה 하카 잠잠히, 인내하며 기다림 사 30:18
דָּמַם 다맘 침묵하며 기다림, 고요 시 37:7

시편 40편은 가장 강렬하고 능동적인 카바를 선택했습니다. 이것은 시인이 단순히 체념하고 기다린 것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이사야 40:31과의 연결

시편 40:1의 카바는 이사야 40:31의 그 유명한 구절과 같은 단어입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קֹוֵי, 코베이/카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사 40:31)

두 본문 모두 하나님을 향한 긴장된 기다림과 소망이 결국 응답과 회복으로 이어짐을 보여줍니다.


정리하면, 본문에 사용된 '기다리다'의 '카바'는 그냥 조용하게 잠잠하게 기다리는 다맘, 하카 등의 기다림과 다르다. 이는 수많은 실을 꼬아 밧줄을 만들 뿐 아니라 그 밧줄을 하나님께 묶어 팽팽하게 당기는 것을 의미한다.

본문의 '기다림'은 '고난', '광야'와 같은 의미인 것 같다. 공통점은 고난과 광야, 기다림 모두 나의 모든 능력치를 벗어난 고통이자, 문제 해결이 안 되는 구간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문제의 상황을 일컬어 우리는 고난, 광야, 기다림이라 말한다. 고난, 광야와의 차이점으로 '기다림'은 '시간'이 특별히 강조된 단어이다. 이것이 적절한 이유는, 시간과 때는 오직 성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기 때문이다. 성자 하나님조차 알 수 없는. 그 '기다림'은 철저하게 창조주 앞에 피조물로 설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강조한다.

'기다림'에 대해 본문에서 선택한 단어 '카바'의 '밧줄'은 

위의 제미나이가 만들어준 이미지에서 보듯 여러 많은 가는 실들을 서로 꼬아서 만든 밧줄을 무언가에 연결하여 팽팽하게 당긴 상태를 의미한다. 다음부터는 그냥 나의 추측이다.

여러 많은 가는 실들 
광야와 고난에서의 기다림 속에 누적되는 여러 시간
② 아무리 기다려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상황에 대한 여러 생각들 또는 고민
③ 고난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늘어나는 하나님의 행하심에 대한 소망과 기대 ☆ 바람직함

그런데 중요한 것은, 고난과 광야의 시간, 즉 기다림의 시간 동안 나의 시선과 소망을 촘촘하게 엮어 다른 존재가 아닌 바로 '하나님께 묶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것이 핵심이다. 목사님이 강조하신 대로 기다림의 주체는 내가 아니라 대상, 즉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냥 묶어만 놓고 느슨하게 '될 대로 되겠지 언젠간 뭐라도 하시겠지'하며 안일하게 기다리는 것은 '카바'가 아니다. 나의 모든 시선을 오직 하나님께 묶어 팽팽하게 당긴 채로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기다리는 것. 마무리 찬양에서 오정현 목사님께서 '모든 시선을 주님께 드리고'라는 찬양을 선택하신 이유가 아닐까. 참으로 탁월한 선곡이야 정말 우리 목사님...💖 이렇게 정리하면서 또다시 감탄하고.👍✨😍

기다림의 시간은 예상을 훨씬 뛰어넘도록 이어진 채 아무 일은 일어나지 않는 상황. 어차피 일을 해결하시는 주체는 하나님이시다. 내 힘으로는 그 무엇도 움직일 수 없는 고난의 시간 광야, 기다림에서 해결의 주체는 오직 하나님이시다. 그렇다면 해결을 위해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사랑과 자비하신 하나님. 나를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죽음에 내어 주신 그 지극한 사랑의 하나님께서 무엇 때문에 그 사랑하시는 나의 이 고통의 시간을 견디고 계실까? 기다림은 나만의 것이 아니다. 나를 기다리게 하시는 하나님 역시 뭔가를 기다리고 계시는 거야. 내가 견디는 이 시간 동안 하나님 역시 나를 견디고 계시는 것이다. 무엇 때문에?

하나님의 성품, 즉 여호와라 여호와라 은혜롭고 자비롭고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자와 진리가 풍성하신 하나님이심을 이해한다면, 은혜롭고 자비로우셔서 내게 모든 복을 쏟아 부어 주기를 원하시는 하나님께서, 고난을 괴로워하는 나를 보시는 것이 무엇보다 괴로우실 사랑의 하나님께서 굳이 나의 이 광야의 기다림을 연장하시는 이유가 뭘까?를 생각해야 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토록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주시면서까지 사랑하신 나이다. 이런 나를 지켜 보시며 견디시는 하나님의 의도은 절대로 '나의 유익'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것이 아닐 수 없다.

나의 작은 땀방울 하나가 떨어질 때 세상에는 하나님의 우주적 땀방울과 눈물방울, 그리고 그리스도의 핏방울이 떨어진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소유이며 공간이기 때문이다.

누워 있던 아기가 쓰러지고 또 쓰러져도 힘 없는 무릎을 세워 기어서 부모님에게 닿기를 간절히 기다리며 응원하는 부모처럼, 하나님께서는 내가 마침내 나를 내려놓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의지하기를 간절히 기다리며 응원하시는 마음이 아닐까. 그렇게 울며불며 하나님을 향해 끝까지 포기 않고 기어가 닿을 때,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우주적 팔을 펼쳐 나를 포옥 안아주시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의 돌파의 응답과 은혜가 쏟아진다.


2.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예레미야 33:3은 눈물겹다. 23년 한 해 금식 내내 붙들고 부르짖으며 기도했던 구절이기도 하고. 지금도 제천의 통나무실에 갈 때면 이 구절을 부르짖으며 기도한다.

시편 34:15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그들의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도다

또 다른 눈물 나는 구절. 올 초 심비 말씀이었어서 암송했던 구절인데(나는 항상 주소를 기억하지 못함;;) '의인'에 대한 묵상에서 꼭 떠오르는 구절이다. 하나님은 이런 분이시다. 모든 피조물을 사랑하시지만, 하나님을 '행동하시게 하는' 존재는 아주 자주 '의인'임을 성경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높이 계신 하나님께서는 스스로를 낮추사 천지를 살피실 때 당신을 의지하는 자를 찾으신다.

역대하 16:9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의인'은 하나님을 믿으며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은 그 '의인'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신다. 금식기도를 할 때면 하나님의 우주적인 귀가 내 앞에 있어 나를 향하고 계심을 느끼곤 하는데, 이는 내가 예수님의 피로 인해 '의롭다 칭함'을 받았기 때문이며, 무엇보다 생명 유지의 기본인 음식을 끊은 채로 오직 하나님 만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상태에 놓여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 상태에서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기도를 하면, 그야 말로 세상에서 누릴 수 없는 절대 기쁨이 쏟아진다.

묵상이 너무 길어지네...


2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

3. 구조 
하나님께 내 모든 소망을 묶어 팽팽하게 부르짖어 기대하고 기도하며 기다렸더니, 하나님께서 내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여 들어 주셔서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 하나님이 아니라면 도저히 해결될 수 없는 고난에서 구해 주시고, 내 발을 반석, 예수 그리스도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다. 하나님을 향한 나의 길이 흔들리지 않고 견고하게 하셨다. 앞으로 하나님의 사명의 길을 걸어갈 때 세상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게 하셨다. 아멘. 

에너지 떨어짐... 어서 마무리해야.;; 자정이 넘었;;

 

 ◇ ☞ † ⇒ ☆ § ※  ♥      ② ③ ④  


윤대혁 목사님의 설교는 간결 명쾌하다. 아마 젊은 남성분들이 졸음에서 많이 깨어나시지 않을까 싶고. 역시 사랑의교회 3대 목사님답게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은혜 받을 설교다. 

나로 말하자면 정리하면서 지난번에 느꼈던 것과 비슷했다. 설교 시간에 들은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오정현 목사님의 설교를 정리할 때보다 시간도 적게 들고 묵상도 단순할 것이라 생각했다. 오정현 목사님의 설교는 워낙 다채롭고 풍성해서 다양한 사람들에게 맞춤형 은혜로 가닿기도 하거니와, 나로서는 따로 정리할 때 즐거운 포인트가 많거든. 그것은 그런데 오정현 목사님 설교의 특장점인 거라서.

그런데 정리하면서 의외로 다른 각도에서 묵상할 것이 풍성함을 발견하게 되었네. 신기함. 아마도 윤 목사님의 설교를 대하는 나의 마음의 자세가 변했기 때문이겠지. 이전에는 그냥 초청 목사님으로 편하게 들었던 건데, 이제는 후임목사님이신 만큼 좀 더 제대로 듣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 것 같다.

오정현 목사님의 설교는 내 취향 저격이다. 처음부터 좋았고 그냥 내게는 너무나 풍성한 놀이동산 같다. 주일에만 세 번 네 번을 들었어도 돌아와 정리를 하면 또 다른 깊은 깨달음이 솟아나는, 그것이 본문의 이해를 벗어나 나의 개인적 일기로까지 번지기 일쑤인, 내 전 존재에 가깝도록 다양한 측면에서 즐기고 누릴 수 있다. 과연 '물 댄 동산'의 은혜라 하겠다.

윤대혁 목사님 설교의 매력을 하나 발견한 것 같긴 한데, 보물찾기와 같이 앞으로 좀 더 발견하게 되겠지. 기대가 된다.


* “나는 너무나 마음이 급한데, 하나님은 하나도 급하지 않으신 것 같아.”
공감 100%. 으어... 이 말 만으로 위로를 받는 성도님들이 많으실 걸.


* 기다림 = 고난 = 광야
위에서 설명함. 이 부분은 설교 본문 정리하는 중에 그때그때 미리 적어두는 거라.


* 신명기 8:15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빌립보서 2: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이사야 35:4 겁내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굳세어라,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희 하나님이 오사 보복하시며 갚아 주실 것이라 하나님이 오사 너희를 구하시리라 하라

신기하다. 신명기 8장은 2024년부터 내게 주신 레마로, 암송하며 기도하는 장이다. '너를 낮추시며'는 지금의 나로서는 처절에 가까운 공감을 자아내는 구절이고. 빌립보서 2:13은 당장 지난주에도 묵상한 구절이지. 내게 두신 '소원'을 분별하는 것이 쉽지 않다며 지금까지도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마다 온 맘을 뒤틀며 고민하는 부분이다. 그리고 이사야 35장. 참... 신기해... 한 달쯤 전에 내게 레마로 주신 장이어서 매일 이사야 35장을 암송하며 기도를 하고 있는데... 그 중 4절은 흔히 다루시는 구절이 아니거든... 지난 주에 기도하다 '최 권사님의 아드님에게 주시는 구절이네?' 싶어서 권사님께 말씀드려야겠다 생각했던 건데, 본문에서 딱! 다뤄 주셔서 당황했음. 오늘 기선대 후 기도를 하는데 권사님께서 늦게 오셨어서 이 부분 나누어 드렸다. 신기해 하셨던. 


* 바께스...
처음 듣고는 귀를 의심함.;; 윤 목사님 서울 분 아니셨어?? 서울에서도 이 단어 사용했어??? 3부 땐 배스캣으로 고치셨는데, 오정현 목사님께서 한 말씀하시겠다 싶긴 했었음. ㅋㅋ 아니시려나. 혼자 고치셨으려나. ㅎㅎ 윤 목사님 의외의 모습이 신기하고 즐거웠다.


* 로마서 15:13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빌립보서 2: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기다리면 기다릴수록 우리에게 소망이 무엇인지 알게 하신다.
음. 이 부분은 좀 신기하던. 본문의 내용과 정확히 연결된다는 걸 잘 모르겠거든. 이 두 구절에는 '기다림'이 없지 않나? 그런데 '기다림이 참된 소망을 드러낸다'라는 내용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모르겠당.;;


* 그동안 한 번도 집에 쓰레기를 가져간 적이 없는데 의외로 쓰레기가 아주 많음을 발견하고 놀라심.
와... 엄청 찔렸당...ㅠㅠ;; 나도 쓰레기 가져간 적 한 번도 없는뎅...ㅠㅠ 그런뎅...ㅠㅠㅠ;;

* " 가능성 Potential  팀웍 Teamwork입니다."
호오... 뭔가 꿀득템을 한 느낌.👍💖 가능성은 오정현 목사님의 N에서 나온 특징일 테지. 팀웍은... 확실히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일을 하시는 걸 좋아하시니깐. 사람이 많이 모일수록 더욱 큰 일을 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 교회 사역의 규모가 큰 것 같다. 사람이 많을수록 일을 하는 데 있어 중요한 것은 팀웍이다. 팀웍이란 공동체의 비전을 향해 한 방향으로 정렬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개인적 주장을 기꺼이 내려놓음이 필수적이다. 각 팀원이 제각각의 필요와 의견을 주장하며 양보하지 않는다면 공동체의 팀웍은 이뤄지지 않는다. 사랑의교회 제자훈련을 통해 훈련하는 것 또한 '자기부인'이다. 이는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의 일은 우주적인 스케일이며, 그 일은 한 개인으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단결된 공동체의 규모가 클수록 사람도 많고 자원도 많은 만큼 더욱 큰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다. 그렇게 우리 교회에 주신 사명이 제자훈련의 세계화에 더불어 한교섬과 세교섬. 생각하면 할수록 가슴이 뛴다. 이렇게 귀한 사역을 하는 교회라니. 내가 무슨 짓을 하면 한 해에 7천 명의 목회자(ㅡ는 곧 교회)를 섬길 수 있겠는가. 대체 어떤 노력을 어떻게 하면 나 혼자 그런 일을 할 수 있는가 말이다. 단 한 명의 목회자님을 섬기는 것도 힘겨운 상태인데. 그것을 단지 사랑의교회 성도라는 이유로 할 수 있다. 교회 공동체 안에 있기 때문에 교회에서 감당하는 그 엄청난 사역을 나도 일원이 되어 동참하는 영광을 누리는 거야. 이것이 팀웍의 힘. 탁월하시다 정말. 이런 건 어디서 어떻게 배우시는 거지??🤔 나는 평생을 고민해도 몰랐을 거임.

* 남가주 사랑의교회에서 사역하게 되는 소망을 품었다. 길은 전혀 보이지 않았으나 마음에 소원을 품었다. 
지금의 나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 말씀을 해 주셨는지 윤 목사님은 아실까. ㅡ 는 아실 리 없지 당근.😑🥕

나에게 소원이 있다. 24년 6월, 마포의 교회에서 은사 기도하던 중에 뜬금없이 생긴 소원인데, 처음 그 소원이 생기고는 너무 당황했다. 이게 뭐지?? 하던 느낌. 그리고는 그해 10월 특새 때는 기대하지도 않았던 레마를 주셨다. 시편 113편. 6월의 소원을 확인하는 레마였다. 레마이니 매일 시편 113편을 암송하며 기도는 하는데 아무래도 소원이 너무 말이 안 되는 것 같아서 올 초에 의도적으로 중단했다. 그러면서 기도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혹시라도 저의 욕망인 것이면... 이라기엔 그런 걸 꿈도 꾼 적이 없는데... 암튼 그렇다면 제가 중단한 기간 동안 소원을 지워 주세요, 라고 기도했다. 한 달이었다. 내가 정한 기간은 한 달이었고, 실제로는 한 달 넘게 의도적으로 그 소원을 지웠다. 그런데... 기간이 지나고 다시 부활했다.

요즘 하나님께서는 내 입을 막는 훈련을 시키시는 중이셔서. 비전을 드러내어 선포할 때가 있고 안으로 숨겨 키워야 할 시기가 있다. 하나님께서 내게는 언어를 칼로 주신 만큼 언어를 혹독하게 고치시는 중이셔서 지금. 이전에 비해 침묵을 어느 시기까지 유지했을 때 응답이 펑펑 쏟아지는 것을 목도하는 중이어서 요즘은. 이 소원은... 지금 이 순간조차도 믿을 수 없고 아직도 조심스럽다. 안 그래도 며칠 전까지 그 기도를 했던 건데 윤 목사님의 이 간증이... 묘하게 그 소원에 대한 확신을 또 다시 주시는 것도 같아서. 아 또 혼란스러워짐.;; 

더 기도해야겠다.


* 다윗은 기다림의 시간을 '부르짖으며 기다렸다'.
안 그래도 제천 가고 싶다고 생각하던 중이었는데 자꾸 스케줄이 생긴다. 이제 좀 그만 좀 생겨야 하는뎅.ㅠ 금요일에 다락방 없으니 제천 가서 당일로 부르짖고 올까?

* 요즘 예배 때마다 임재가 많다. 몸으로 느끼는 만큼 확실히 느끼고 있다. 주일 예배뿐 아니라 수요예배, 새벽예배 때도 임재가 잦다. 물론 주일예배 때는 몸을 무겁게 누르실 정도다. 최 권사님도 느끼고 계시고, 주변의 기도하시는 분들 중 민감하신 분들은 느끼시더라. 하나님께서 주의 일을 새롭게 맡기실 때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주신다고 예전 새들백 교회 목사님께서 설교에서 말씀하셨다. 윤 목사님이 부임하실 때 하나님께서 기름을 쏟아 부어 주실 이유가 된다. 오정현 목사님 부임하시던 당시 여기 없었던 나는 간절히 기다리며 기도하는 중. 기름을 쏟아 부어 주시기를! 거기다 워낙 기름 부으심이 강하신 오정현 담임목사님께서 우리 위해 모든 좋은 것을 다 쏟아 주시고 계신다. 486 임재의 은혜가 점점 숙성되는 중. 두 분의 강력한 사명자를 향하신 기름 부으심이 두 배로 겹쳤으니, 이제 우리 교회는 난리 날 거다. 하반기를 엄청 기대해. 고귀한 기름 부으심의 시혜를 먼저 받는 자는 민감하게 깨어 기도하는 자가 될 것이다. 나도 그들 중 한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앞으로의 임재의 은혜를 위해 매일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지금은 민감한 사람들이 느끼고 있으나, 모든 사람들이 누리게 되기를.

내게 주신 레마로 매일 암송하며 기도하는 구절이 있다.

말라기 3: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 또 너희가 구하는 바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리니 곧 너희가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리니... 이 구절을 암송할 때마다 심장이 쿵쾅쿵쾅 뛴다. 23년 금식 때부터 간절히 간절히 소망하며 기도해 오고 있는 성막의 임재, 예루살렘 성전의 임재가 우리 위에 임하시기를. 주여...!!!

또 지난주에 여기에 이어 주신 레마가 있다.

사도행전 1:4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나 선물님 안 계시는 동안 순복교회 예배 드리려 했는데 1부를. 두 번 다녀온 동안 치유받았거든. 지금도 치유 받고픈 곳 있어서 가려고 했는뎅.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기다리라셔서... 그 예루살렘이 우리 교회인가용?ㅠ 하고 기도하는 듕. 주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은 다름 아닌 성령님이시징!!!💖😍🔥 성령의 불!!!! 🔥 🔥 🔥 🔥 🔥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늘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아멘!!!!!

매일 기도 때마다 암송하며 하나님께 기도하는 성경 구절들이다. 요즘은... 기도할 때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성경구절들이 많아서 기도 시간이 점점 더 길어짐.;;; 성경구절만 암송해도 한 20분은 훌쩍 지나가는 듯.

......

윤대혁 목사님 설교는 정리가 짧을 거라며 한편으로 신났더랬는데... 한 6시간 정리했나 봄... 새벽 1시라니.ㅠㅠ 나 세 시 반에 일어나야 하는데. 으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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