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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로마서 6:1~11 "죄에게 종 노릇? 안 됩니다 Shall We Be Slaves to Sin? Absolutely Not!" [로마서 강해 - 14]

Sermon

by Vano 2026. 6. 18. 22:37

본문

https://www.youtube.com/watch?v=O5Q9hlyNSy8&t=1s

 

[로마서 6:1~11]
1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What shall we say, then? Shall we go on sinning so that grace may increase?
2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By no means! We died to sin; how can we live in it any longer?
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Or don't you know that all of us who were baptized into Christ Jesus were baptized into his death?
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We were therefore buried with him through baptism into death in order that, just as Christ was raised from the dead through the glory of the Father, we too may live a new life.
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If we have been united with him like this in his death, we will certainly also be united with him in his resurrection.
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For we know that our old self was crucified with him so that the body of sin might be done away with, that we should no longer be slaves to sin-
7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because anyone who has died has been freed from sin.
8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Now if we died with Christ, we believe that we will also live with him.
9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For we know that since Christ was raised from the dead, he cannot die again; death no longer has mastery over him.
10 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가 살아 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계심이니
The death he died, he died to sin once for all; but the life he lives, he lives to God.
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In the same way, count yourselves dead to sin but alive to God in Christ Jesus.


오정현 우리 담임 목사님💖 · 주후 2026.06.14 주일예배

§ 로마서 시리즈 
0. 서론 - 정결함으로 로마서를 시작합시다
1. 로마서의 산에 들어가십시다
2. 복음의 능력을 받아야 산다
3. 인생의 진면목
4. 내로남불 인생을 향한 복음
5. 상대주의와 형식주의를 타파하는 능력
6. 전적 부패를 깨닫는 것이 은혜의 지름길이다
7. 이제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으니
8. 칭의: 너무 놀라워 자랑할 것이 없다
9. 성경은 무엇을 말하는가?
10. 어둠 속의 도약
11. 복음을 깊이 깨달으면 기쁨이 따라온다
12. 참 사랑의 신비에 반응하는 효자 효녀들
13. 은혜가, 모든 죄를 압도한다
14. 죄에게 종 노릇? 안 됩니다

* 찰스 웨슬레, <만 입이 내게 있으면> 찬송 중 "내 죄의 권세 깨뜨려 그 결박 푸시고".

  칭의 Justification 성화 Sanctification
로마서 영역 1-5장 6장 이후
정의 하나님께서 죄인을 의롭다고 선언하시는 법정적 선언 성도가 실제 삶 속에서 거룩하게 변화되는 점진적 과정
근거와 방법 예수님의 보혈 복음을 믿음으로 얻는 은혜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 말씀, 기도, 성례
인간의 행위 인간의 행위가 들어갈 수 없음. 결단과 노력이 필요함.
시점 단회적 사건 평생에 걸친 점진적 과정
결과 신분의 변화 (죄인 → 의인) 삶의 변화 (죄의 습관 → 거룩한 삶)
관계
구원의 시작점 구원의 진행 과정
비유 1 결혼식 결혼생활
비유 2 학교 입학식 학교생활

→ 결혼식을 잘하는 것과 결혼생활을 잘하는 것은 같이 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 결혼식을 잘했다 해서 결혼생활도 잘할 것이란 보장은 없다.

칭의는 우리를 '죄의 영원한 형벌'로부터 건져 주고, 성화는 우리를 '일상 속 죄의 권세'로부터 건져 준다.

 

†  죄에게 종 노릇? 안 됩니다 - 죄에 대하여 죽은 자 특징 
1. 그럴 수 없느니라. 왜? 우리는 죄에 대하여 죽은 자이다. 
로마서 6:2 그럴 수 없느니라...
Absolutely Not!
그리스도인의 정의: 죄에 대하여 죽은 자
※ 주의! 바울 당시 영지주의자: 방종적 신앙 (영이 중요하고 육은 중요하지 않으니 육신으로는 마음대로 살았음)

21세기판 영지주의자들은
은혜를 말하지만 회개가 없고,
구원의 확신을 말하지만 삶의 변화는 없으며,
영적 체험을 말하지만 말씀 순종은 희미하고,
교회 공동체에 속하기를 바라지만 교회의 권면과 훈련은 거부하며,
몸의 욕망을 즐기면서도 몸이 성령의 전이라는 사실을 잊고 사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로마서 6:2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 죄에 대하여 죽었다: 과거시제
 그리스도인의 정의: 죄에 대하여 죽은 자
로마서 6:6b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 과거 죄 아래 있던 우리는 사탄의 노예였다. 그런데 우리는 죄에 대하여 죽었기 때문에 죄에 대하여 시체가 되었다. 시체는 반응할 수 없으므로 이제 우리는 죄와 사탄의 어떤 권세에도 반응할 수 없다.
로마서 6:6a ...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
→ 옛 사람: 과거 죄 아럐 있던 우리 ⇒ 죽었고 이제는 새로운 주인인 예수님 아래에 있다.
☆ 죄에 대해 죽었다 = 죄에 대해 장례식을 치렀다 = 더 이상 죄가 우리의 주인이 아니다.
"죄야! 너는 더 이상 내 주인이 아니다!"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양다리를 걸쳐, 관뚜껑을 다시 열고 나오곤 한다.
* 우리가 죄 때문에 넘어질 수는 있으나, 죄와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으며 죄의 집에 거할 수는 없다.

☆ 죄에 대하여 죽은 자의 특징: 죄를 지으면 행복하지 않다.

→ 옛날에는 화를 내면 마음이 시원했지만, 이제는 마음이 찜찜하다.
→ 옛날에는 내 자랑을 하고 자존심을 세우면 뿌듯했지만 이제는 마음이 불편하다.
→ Lifestyle이 바뀜: 죄의 누더기를 벗고 왕자/공주의 예복을 입었다
이사야 61:10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을 내게 입히시며
→ 성도가 죄를 짓는 것은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진흙탕에 뒹굴고 오는 것과 같다.


2. 죄에 대하여 죽은 자는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이다. 
로마서 6:3 ...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 ...
→ 연합했다 = 가지를 접붙이다 = 주님과의 결속 = 주님의 생명이 나의 생명이 된다.
* 로마서의 주석 잘 쓴 마틴 루터

"우리에게 있는 모든 부정적인 것은 다 예수님께로 돌려지게 되었고, 예수님께 있는 모든 긍정적인 것은 다 우리에게로 돌아왔다" - 마틴 루터 -

* 연합 = 위대한 교환 The Great Exchange
* 주님과 연합한 자는 성지순례 갔을 때 2천 년 전 그곳에서 예수님과 함께 못 박힘을 느낄 수 있다. 


3. 죄에 대하여 죽은 자는 옛 삶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이다. 
로마서 6: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여길지어다
→ 칭의의 은혜를 입은 자의 성화는 죄에 대하여 죽었을 뿐 아니라 한 단계 더 나아가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겨야 한다.
→ 여길지어다: 명령
☞ 죄에 대하여 죽은 자요,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이기를 적극적으로 선택하라.
갈라디아서 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 '여길지어다'의 적용


4. 신앙은 선택이다. 
젊을 때 아침 잠이 좋지만 주님을 위하여 새벽예배, 특새를 선택하고, 맛있는 음식이 좋지만 주님을 위하여 금식을 선택하고, 좋은 날씨에 놀러 나가는 것이 좋지만 주님을 예배하러 예배당에 오기를 선택하는 것이 신앙이다.
◇ 우리는 왜 자꾸 옛날 노예 상태로 돌아가는가? 
착시현상 때문
→ (예전처럼) 죄가 우리를 기쁘게 한다는 착각 때문
* 성화는 추상적인 경건이 아니라, 매일의 상황에서 하나님의 것, 영원한 기쁨을 선택하는 것이다.

성화는 착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수양이 아니다.
구원 받기 위해 애쓰는 공로 쌓기도 아니다.
성화는 이미 은혜로 구원 받은 사람이 새 사람답게 살아가는 변화의 과정이다.
성화는 하나님의 은혜로 죄에 대해 죽고 하나님에 대해 살아 있는 자라는 복음적 자각을 가지고 날마다 하나님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다. 

◇ 성화에는 하나님의 은혜와 우리의 노력이 함께 가야 한다. 
빌립보서 2: 12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 여기서의 구원 = 성화
빌립보서 2: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
→ 우리 속에 주님께서 소원을 두고 계심을 깨닫는 것 =  성화

성화의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취사선택은 자기 의를 쌓는 율법적 행위가 아니라, 은혜 받은 자의 거룩한 응답이라고 할 수 있다.

→ 주님이 나를 살리셨으니 나는 더 이상 죄를 선택하지 않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선택을 하겠다.
→ 나의 모든 것을 죄에게 주지 않고 하나님께 드리는 선택이 성화이다.

"성화는 더 큰 기쁨을 선택하는 싸움이다" - 존 파이퍼 -

→ 우리가 성화를 위해 애쓰는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놀라운 기쁨의 차원이 있기 때문이다.
→ Christian Hedonism (기독교적 기쁨주의)
→ 죄가 주는 거짓된 기쁨을 이기는 방법은 하나님 안에서 더 큰 참 기쁨을 누리는 것이다.
→ 각종 중독을 이기는 방법도 하나님 안에서 더 큰 참 기쁨을 누리는 것이다.
→ 거룩한 dignity를 추구하는 삶.

죄에게 종노릇하면 아니되옵나이다!

 

 ◇ ☞ † ⇒ ☆ § ※  ♥      ② ③ ④  




* 칭의와 성화의 결혼식-결혼생활 비유
찰떡 비유!!! 콩찰떡 비유!!! 콩콩찰떡 비유!!!! 👍✨💖 한 번에 바로 이해 되는 정말 꼭 들어 맞는 비유이다. 칭의는 결혼식이고 성화는 결혼생활이다. 칭의는 입학이고 성화는 학업생활이다. 결혼식을 하고 나서도 평생 결혼생활을 해 나가듯이 주님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나서도 평생 그리스도를 닮아 가기 위해 성화의 과정을 살아 내는 것이다.

* 영남 말로 "치아뿌라!" 호남 말로 "오메, 오메, 참말로 거시기하네."
ㅋㅋㅋㅋㅋ 근데 나 목사님 경상도 사투리 하실 때마다 놀람. 너무 오래 서울 살기도 했지만 나는 쓴 적이 없는 말이거든. 아무래도 나이대 차이도 있을 테고, 또 남녀의 차이도 있을 거라. 여성들은 "치아뿌라!" 잘 안 씀. "하지 마라!"라고 했던 기억인데 난.ㅎㅎ 아! 외할아버지가 쓰신 건 들은 적 있다.ㅋㅋ 또한 "깔찌뜯고"는 정말... ㅎㅎㅎ 이렇게 적고 보니 글자 자체가 뾰족하구나. 놀라운 표현력이다. 

* 젊은 시절 그 당시에 "젊음의 욕망아! 너는 더 이상 내 주인이 아니야!"라 선포하며 죄의 유혹을 이기신 목사님.
...... 와... 이것이 가능하단 말인가...?? 여성도 아니고 남성 청년이...???? 정말이지 대단하심.;; 바늘로 허벅지 찌르면서 육신의 욕망을 이기셨다 했는데 와... 정말이지 피 흘리기까지 죄와 싸워 이기셨구나...!!! 난 목사님 이 말씀 들을 때마다 놀람 ㅡ 목사님은 참 여러 가지 방식으로 나를 놀래키신다 항상. 이것이 어떻게 가능했지... 청년들은 정말 정말 힘들다 들었는데. 어릴 때부터 주님만 바라보며 달려오신 분은 이러신가 봄. 우리 목사님들이 새삼 달리 보인다.

* 죄에 대하여 장례식을 치른 자의 특징:  옛날에는 화를 내면 마음이 시원했지만, 이제는 마음이 찜찜하다.
와... 이거 대박. 우리 담임 목사님은 적용이 늘 기가 막히신데, 이거 징차 백퍼 공감. 이전에는 무례한 사람을 미워하고 정죄하는 것이 통쾌했는데, 이제는 그것이 불편해져서 내가 스스로 당황하고 있어서.;; 기도만 하면 어김없이 회개를 시키심.ㅠㅠ 근데 회개하고 나면 맘은 또 후련해짐.;;; 아니, 나에게 무례한 사람을 미워하는 것이 왜 불편해지는 거냐고오.😩;;

*  옛날에는 내 자랑을 하고 자존심을 세우면 뿌듯했지만 이제는 마음이 불편하다.
나 아직도 이러는데...ㅠㅠ 돌아서면 꼭 이불킥한다.ㅠ 예전에 비하면 절반의 절반도 안 하고 있는데... 자랑하고 집에 오면 꼭 창피한 마음을 주셔서 회개하게 하시더라.ㅠㅠ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ㅠㅠ 난 아직 인격의 성화가 너무 덜 되었음. 쥐뿔도 없으면서 자꾸 자랑하려 해.ㅠㅠ 주여!!!!😫;;;

* 4. 신앙은 선택이다. 
대박...!!! 맞아... 결국 모든 것은 나의 선택이다. 처음부터 100% 하나님의 것을 선택하진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처음엔 5%라도 하나님의 것을 선택하며 더 기도하고 노력하면, 그다음은 10%, 20%, 50%... 식으로 점점 더 하나님의 것을 선택하게 된다.

* ◇ 성화에는 하나님의 은혜와 우리의 노력이 함께 가야 한다. 
빌립보서 2: 12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 여기서의 구원 = 성화
빌립보서 2: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
→ 우리 속에 주님께서 소원을 두고 계심을 깨닫는 것 =  성화

음... 그러니깐 12절의 말씀은 성화를 위해 우리가 해야 하는 몫이고, 13절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몫이라는 말씀이시겠지...? 그러니까 우리의 성화를 위해 하나님께서 내 안에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소원을 두고 행하심을 깨닫는 것이 성화이니... 그것이 성화인데... 음...

지금의 이 묵상은 본문의 방향과는 살짝 다른 것 같긴 한데. 난 요즘 그 '하나님께서 내 안에 두신 소원'에 대해 묵상하고 있어서 이 구절이 눈에 들어온다. 기도를 하다 보면 마음에 확실하게 하나님께서 두신 소원을 알게 되거든? 이를테면 2023년 뜬금없이 강렬하게 솟아나 지금까지 눈물 쏟아 가며 기도하게 만드시는 내 사명 기도 중 하나인 '민족 복음화'는 빼박 하나님께서 주신 소원이다. 방황 동안 나는 국가가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던 문화막시즘의 전형적인 노예였거든. 그런 내가 아무리 하나님 품으로 돌아왔다 하나 뜬금없이 갑자기 민족 복음화를 소망하며 가슴이 뜨거워지고, 그것을 위해 한 해 동안 금식을 하는 것이 말이 안 되지 않나. 그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소원임은 민족 복음화는 지상명령에 정확하게 클릭하는 성경적인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하나님께서 주신 기도제목은 많다. 재작년까지는 멸공과 이단의 몰락이었는데, 그 기도제목이 올 초부터 '이단의 복음화'로 바뀌었다. 공산주의는 주요 이단 중 하나로 보고 있는 것이고. 단순히 그들이 몰락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단의 우두머리들을 치실 때 그 아래에 있는 주민들과 신도들을 올바른 피의 복음으로 넘어오게 복음화 하는 것으로 기도가 바뀌었다. 또한 미션 벨트 또한 그러하고. 암튼, 뜬금없이 내가 이런 기도제목들로 온몸을 뒤틀며 눈물을 쏟아가며 기도하는 것이 내게서 나온 기도제목일 리 없지 않나. 무엇보다 마지막 제사장나라와 마지막 제사장 교회, 지성소 교회를 위한 간절한 눈물의 기도 역시 성령님께서 내게 허락해 주신 기도제목의 은혜임이 확실하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도제목은 헷갈리지 않아. 확실하게 주신다.

그런데 말이야... 그런 기도제목들 말고... 내가 포함되어 있는 기도제목일 경우가 참 어렵다. 너무 어려워. 이를테면 다음 학기에 내가 전폭 2단계를 들어야 할까요? 같은 기도제목. 1단계는 모든 사람이 한결같이 '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쉬고 싶었지만 전폭이 궁금도 했어서 그냥 순종했다. 그런데 2단계는 사람들의 의견이 갈리더라. '가야 한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지만, 그동안 내게 핵심적인 조언을 하신 분들께서 '집사님이 기도하고도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이라면 쉬는 것이 나을 수도 있겠다'라고 말씀을 하신다. 또 다른 분은 '쉴 때는 쉬기도 해야 해. 이번에는 쉬어요'라고 하시고.

내가 전폭을 쉬고 싶은 이유는, 제자훈련을 시작하고 3년째, 훈련 전에 누렸던 말씀의 즐거움을 다시 누리고 싶어서이다. 훈련이 시작하고 지금까지 몸이 너무 힘들고 시간이 정말 부족하다. 말씀에 한 번 빠지면 5-8시간은 푹 빠져서 이런 저런 묵상을 하며 즐거워했던 건데, 이제는 맡은 것도 많고 여기저기서 연락도 많이 오고... 특히 전폭 1단계가 할 일이 많았어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마음이 지쳐... 말씀에 좀 푹 빠져들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다. 나 좀 말씀으로 돌아가 쉬고 싶어요... 랄까.

이것을 두고 기도를 하고 있지. 그런데 내 마음이 쉬고 싶어서인지 잘 모르겠는 거다. 성령님께서 주시는 마음이 확실하게 느껴지지 않아. 이런가? 하면 다른 음성이 들리고, 저런가? 하면 또 다른 음성이 들리고. '나의 소원'이 분명히 있는 기도 제목이다 보니 순수하게 하나님의 뜻에만 마음이 모아지는 것이 힘들다 할까.

이렇게 고민하는 이유는, 기도를 해서 어떤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주님의 생각이라 믿고 추진했는데 응답이 되지 않은 경우들이 좀 있어서이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도 제목은 반드시 이루어지니까. 3년 동안 한 몇 번... 크게 2-3번 정도? 기도 응답이 엉뚱하게 되는 것을 겪고는 나 자신에게 좀 실망했다. 아, 특징은 있다. 그런 기도 제목들은 오래 가지 않는다. 처음에 뜨겁게 시작했더라도 한 2달, 길어도 6개월 정도면 하나님께서 그 기도 제목들을 가져가 버리신다. 더는 기도할 수가 없게 돼. 또는 말씀으로 알게 하신다. "그 기도 그만하라"라고. 그럴 때면 난 몹시 민망하고 또 속상한데, 왜냐하면 내게 주신 이 소중한 시간과 기도의 에너지를 엉뚱한 곳에 쏟았기 때문이다. 너무 아까워...ㅠㅠ 난 방황이 길었어서 돌아온 이제는 나의 모든 기도의 시간과 에너지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곳에만 사용되기를 원한다. 정말 간절히 원해. 그런데 다른 사람이 기도 제목을 잘못 준 것도 아니고, 내가 내 안의 욕망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왜곡하여 알아 듣고 주님 주신 귀한 시간과 에너지를 엉뚱한 기도로 낭비하는 것이 너무 싫은 거다. 그래서 지금은 잠시 멈춰 서 하나님의 눈치를 보는 중.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 주옵소서.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제 마음에 소원으로 주옵소서'라 기도한 후 드는 소원이 과연 100% 하나님의 것인가? 아니면 나의 욕망이 끼어들어 희석시키거나 왜곡한 소원인가? 그것을 분별할 필요가 있다.

주님의 뜻을 분별하려면 성경을 많이 또 깊이 읽어야 하지. 성경은 하나님에 관한 지침서이니까. 하나님을 알고 싶으면 성경을 읽으면 되니까. 그래서 내겐 말씀에 온전히 빠져드는 시간이 필요하단 말이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이 얼마나 간절한 말씀인가. 부디 내 안에서 행하시는 존귀하신 성령 하나님께서 당신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로 그것을 내 마음에 소원으로 심어 주시기를. 하나님의 뜻에만 내 심장이 기쁨으로 반응하기를.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나 자신의 욕망은 싸늘한 주검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근데 아, 이넘의 욕망은 좀비 마냥 아무리 죽여도 자꾸 살아나 자꾸 나를 헷갈리도록 괴롭혀...ㅠㅠ

가장 괴로운 것은 바로 나 자신의 감옥이다. 오늘도 내일도 부디 나의 욕망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시고 거룩하신 뜻만을 내 삶의 모든 선택 과정에서 선택하기를 간절히 간절히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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