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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훈련QT] 이사야 2:1-4 "Let’s bury the hatchet in the LORD"

Q.T.

by Vano 2025. 1. 9. 21:47

본문

훈련큐티나 신앙일기 쓸 때마다 듣는 음악이다. 참 좋아.

작성일2025.01.08     훈련큐티     제출자┃Vano

 

훈련주차
믿음의 밀도, 중재자, 하나님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성경본문
이사야 2:1-4 큐티제목 Let’s bury the hatchet in the LORD.

 




 

내용
관찰
(본문)
[]2:1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받은 바 유다예루살렘에 관한 말씀이라
[]2:2 말일에 여호와의 전이 모든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2:3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여호와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이르자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 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2:4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 판결하시리니 무리그들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을 쳐서 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
 
(문단나누기)
A. 1.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애 대한 말씀을 받음.
B. 2-3. 말일에 하나님의 전이 뛰어나 만방이 모여 하나님의 말씀이 나오는 곳으로 갈 것임.
C. 4. 하나님이 열방을 판단하시니 전쟁이 없을 것임.
 
(내용요약)
1.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한 말씀을 받음..
2. 말일에 여호와의 전이 높이 서 만방이 그리로 모일 것임.
3. 많은 백성이 여호와의 전에 이르자 그곳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나올 것이라 함.
4. 하나님이 나라들 중에 판결하시고 서로의 전쟁 무기를 농사 도구로 바꾸고 전쟁이 없게 될 것임.
연구

묵상
(단어연구)
* 만방: all nations, 모든 민족
 
* 시온: Zion: 요새’라는 뜻. 예루살렘 성이 세워진 해발 약 790m의 산. 원래 구약 시대에는 여부스 족속의 거주지였으나(삼하 5:6-9) 다윗이 이곳을 점령하여 성곽을 쌓고 다윗 성이라 불렀다. 다윗은 법궤를 시온 산(아브라함 당시 모리아산)으로 옮겨왔으며(삼하 6:10-12), 나중에 솔로몬은 이곳에 성전을 세웠다. 이후로 시온은 거룩한 산( 2:6), 여호와의 산( 4:2), 거룩한 자의 시온( 60:14), 왕의 성( 48:2) 등으로 불렸다. 또 시온은 예루살렘 전체를 가리키는 말로도 사용되었으며(왕하 19:21; 48; 69:35; 133:3; 1:8), 이스라엘 회중이나 국가에 대해 사용되었고( 126:1; 129:5; 33:14; 34:8; 49:14; 52:8), 영적으로는 세상 마지막 날 새 하늘과 새 땅에 세워질 새 예루살렘, 즉 천국을 상징한다( 12:22; 14:1; 21:1-2). 성경에 사용된 시온의 다양한 의미들을 살펴보면, 예루살렘 사람( 3:11; 10:32; 51:35; 4:2; 1:17; 21:5; 12:15), 이스라엘 백성( 126:1; 4:31; 6:23; 31:12; 9:33; 벧전 2:6),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 125:1),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이 선포되는 곳( 51:10), 하나님이 계신 도성( 48:2), 거룩한 산( 2:6), 하나님께서 택하신 장소( 9:11), 하나님의 성소( 20:2), 구원의 처소( 20:2), 찬양과 예배의 처소( 9:14),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곳( 24:23), 천국( 14:1), 피난처( 16:1, 4) 등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시온1 [Zion] (라이프성경사전, 2006. 8. 15., 가스펠서브)
하나님이 계신 곳
 
* 보습: plowshare 쟁기의 날

 
 
[여호와, 하나님, ] 2, 3(5), 4= 7
[여호와의 전, 유다, 예루살렘, 그리로, 시온(하나님 계신 곳, 하나님 백성)] 1(2), 2(2), 3(4) = 8
[] 2(3), 3= 4
[그의 길, 율법, 여호와의 말씀] 3(4) = 4
[만방, 많은 백성, 우리, 무리, 열방, 그들] 2, 3(4), 4(5) = 10
[모이다, 오라, 오르며, 이르자(모이다)] 2, 3(3) = 4
[, , 서로 치다, 전쟁(싸움)] 4(5) = 5
[보습, ] 4(2) = 2
[판단하다, 판결하다] 4(2) = 2
[굳게 서다, 뛰어나다] 2(2) = 2
[가르치다, 나오다] 3(3) = 3
 
(문맥연구)
말일에 하나님의 전으로 만방이 모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것이고, 하나님께서 열방 중에 판단하실 것이니, 전쟁이 없어질 것이다.
 
(배경연구)
◇ 이사야서 당시 이스라엘 상황: 예수님 오시기 740여년 전에 기록된 예언서 이사야. 북 이스라엘은 멸망하여 앗수르에 포로로 잡혀간 상태였고 남 유다도 거의 멸망 직전의 상황이었다. 이사야서 기록 120년 후 남 유다도 바벨론에 멸망 당한다. 이 글 당시 남 유다는 온몸이 병든 환자와도 같은 영적 상태였다.
 
앞서 1장에서는 예루살렘의 타락과 하나님의 징계에 대해 말했다. 그리고 21-4절에서는 1장에서의 경고를 듣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큰 평화와 대 건설의 역사가 있을 것임을 말한다. , 종말론적 구원의 역사에 대해 말한다.
 
(묵상)
[]2:1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받은 바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한 말씀이라
1. 받은 바 = [/] 보다
[NIV] This is what Isaiah sone of Amoz saw concerning Judah and Jerusalem:
1) 계시되었다
→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의 지력으로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직접 당신을 보여 주셔야, 계시해 주셔야만 올바로 깨달을 수 있다.

2) 생생하고 확실하다
보는 것은 오감 중 가장 확실한 감각이다. 눈으로 직접 본 것을 믿지 않을 수 없는 만큼 확실하다.
 
2. 유다와 예루살렘
→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하나님의 백성을 의미한다.
 
 
[]2:2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NIV] In the last days the mountain of the LORD'S temple will be established as chief among the mountains; it will be raised above the hills, and all nations will stream to it.
1. 말일에
[NIV] In the last days [NRSV] In days to come
→ 초림과 재림 사이. 단순한 시간의 끝이 아니라 마침내 하나님께서 정하신 구원의 때가 이른 날을 의미한다.
 
2. 여호와의 전의 산
1) 시온
[]2:6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Zion: 요새’라는 뜻. 예루살렘 성이 세워진 해발 약 790m의 산.
→ 하나님이 계신 곳

2) 교회
→ 본문은 예수님이 오시기 전 이스라엘이 유일한 언약 백성이었던 구약 시대의 일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오셨고 복음이 이스라엘을 넘어 모든 이방 민족 땅끝까지 퍼지는 오늘날 신약 시대의 시온이란 어디인가.
 
시온이 하나님이 계신 곳, 하나님의 선택하신 백성들이 모이는 곳이라면, 오늘날의 시온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백성들이 모이는 교회이다. 물론 이 교회는 무형교회를 의미한다. 성도 개인 개인이며, 더 중요하게는 개인 성도들이 모인 교회를 말한다.
 
3.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1) = 나라
[]68:16 너희 높은 산들아 어찌하여 하나님이 계시려 하는 산을 시기하여 보느냐 진실로 여호와께서 이 산에 영원히 계시리로다
→ 여호와의 전의 산, 즉 시온 산은 해발 약 790m로 비교적 낮은 산이다. 그런 시온 산, 즉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산이 말세에는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서게 된다.

2) = 성도
→ 성경에 성도를 산이라 직접적으로 표현한 구절은 없다. 그러나
[]125:1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시온 산이 흔들리지 아니하고 영원히 있음 같도다
Psalm 125:1
Those who trust in the Lord are like Mount Zion, which cannot be shaken but endures forever.

→ 비유이긴 하나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시온산과 같다고 되어 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이며, 하나님께서 임하시는 자이니,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성도를 시온 산으로 본다면, 비록 작은 시온 산, 즉 낮고 작은 사람이라 할 지라도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자가 모든 사람들 위에 굳게 서게 되는 것이다. 시온 산이 산 자체의 가치로 다른 산들보다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거하시기에 높아지는 것이듯, 성도 또한 자신의 능력이나 가치 때문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거하시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 위로 높아지는 것이다.
 
4.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1) 만방 = all nations 모든 나라들
→ 말세에는 모든 나라들이 시온으로 모인다. 말세에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교회로 모인다. 아멘. 아멘.

2. 모여들다 = stream 흘러 들어가다
all nations will stream to it. 이것은 억지스럽거나 강제적인 것이 아니라, 물이 흘러 들어가듯 말씀과 은혜가 없는 사람들이 말씀과 은혜가 넘치는 교회로 자연스럽게 흘러 들어가게 된다는 뜻이다. 부흥은 억지스럽지 않다. 부흥은 자연스럽다. 자연스럽고 기쁘고 행복한 것이다. 무리가 되고 고통스럽고 마음에 덕이 되지 않는다면 올바른 부흥이 아니다. 부흥은 받은 은혜가 넘치고 넘쳐 흘러 나가 그 은혜에 닿은 사람들이 은혜의 진원지인 교회로 흘러 들어오는 것이다. 자연스레 모이는 것이다.
 
 
[]2:3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1. 오라 = 회복에의 권유
1장에서도 같은 표현이 나온다.
1) 하나님의 오라
[]1: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Isaiah 1:18 Come now, let us settle the matter,” says the Lord. “Though your sins are like scarlet, they shall be as white as snow; though they are red as crimson, they shall be like wool.
→ 우리의 죄를 사하심. 하나님이 주체가 되어 회복하시며, 우리를 그 회복에로 초대하심의 오라’.

2) 구원의 때, 만방의 오라
Isaiah 2:3 Many peoples will come and say, “Come, let us go up to the mountain of the Lord, to the temple of the God of Jacob. He will teach us his ways, so that we may walk in his paths.”
→ 하나님 계신 곳(구원의 장소)으로 가자. 회복을 위해 함께 하나님 계신 곳으로 가자고 독려하는 성도들의 초대.
→ 은혜 받은 성도들의 할 일은 구원과 회복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곳, 즉 교회로 다른 사람들을 초대하며 함께 올라가는 것이다.
 
2.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let us go up to the mountain of the LORD
1) 산에 오르다
→ 하나님의 말씀에 닿는 일은 평지나 내리막길을 가는 것이 아니다. 산을 오르는일이다. 노력이 필요하고 노동도 필요하다. 가만히 누워 회복이 떨어지기를 바라서는 안 된다. 애써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 물론 우리가 노력해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구원은 순전히 은혜로 인해 값없이 주시는 선물이지만, 온전한 회복과 부흥을 이루며 구원의 완성에 이르기 위해 끝없이 하나님의 거룩한 산에 ‘오르도록’ 노력해야 한다.

2) 산에 오르기 위해 필요한 것
① 방향
→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올라가야 한다. 내가 지금 가는 길이 세상으로 내려가는 일인지 하나님 계신 거룩한 산으로 올라가는 것인지 그 방향을 정확히 정해야 한다.
② 복장과 짐의 간소화
→ 산에 가면서 집 근처 가는 평상복이나 슬리퍼를 신고 갈 수는 없다. 단단하게 몸과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또한 산에 가면서 이것저것 짐을 다 가져갈 순 없다. 산에 끝까지 오를 수 있도록 꼭 필요한 물건들만 잘 챙겨서 올라가야 한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닿겠다면서 온갖 세상적인 욕심들과 가치관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올라갈 수는 없다. 그렇게 되면 등산을 완주할 수 없고 도중에 포기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 계신 곳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최대한 나의 짐을 가볍게 해야 한다.
 
3.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 흥미롭게도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전’이 아니다. ‘야곱의 하나님의 전’이다. 야곱은 이스라엘과 같은 인물이지만 하나님과 씨름하여 이기기 전의 상태이다. 아직 죄성이 가득한 부족한 상태의 인물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아니라 바로 그 야곱의 하나님이다. 부족함 투성이인 야곱의 상태인데도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성전이 되면 구원이 임하는 것이다.

지금 나의 모습이 성스럽지 않아도, 부족해도, 연약해도, 인간적이라 해도, 하나님을 간절히 찾으면 하나님께서는 나와 함께 해주신다. 하나님의 산에 오르면 하나님의 길을 나에게 가르쳐 주신다. 율법과 하나님의 말씀을 내려 주신다.

내가 많이 부족해도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면 내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께서 양심의 법을 활성화 시켜 죄를 짓는 것을 불편하게 만드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볼 때 영안을 열어 깨닫게 해주신다. 그렇게 나의 길을 한 발 한 발, 주님의 길로 인도해 주신다. 아멘.
 
4.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1) 율법 = 여호와의 말씀
→ 율법과 여호와의 말씀은 같은 것이다. 애초 율법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법으로서,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도록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배려였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 율법을 자신의 죄성으로 왜곡하고 오용하여 오히려 구원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율법의 완성이신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예수님이 오셨다.

2) 성도에게선 하나님의 말씀이 나와야 한다.
→ 율법이 시온에서 나오고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 나온다는 말은 곧, 시온과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법과 말씀이 나오는 곳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시온과 예루살렘이 하나님께서 선택하여 성령께서 거하시는 성전, 즉 성도와 교회를 뜻한다면, 교회와 성도에게서는 하나님의 법과 말씀이 나와야 한다는 의미다. 교회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성도들은 그 말씀을 실제 삶으로 살아내어야 한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님을 따라, 우리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육신으로 살아내어야 하는 것이다.
 
 
[]2:4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
1. 열방 사이를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는 하나님
→ 구원의 때가 되면 세상의 통치자가 아니라 온전한 선이신 하나님께서 직접 열방 사이를 판단하시며 백성들을 판결하신다. 하나님은 선하시며 공의로우시고 정의로우시니 그때는 억울한 판결이 없다.
 
2.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든다.
→ 칼과 창이라는 공격무기를 쳐서 보습과 낫이라는 농사도구로 만든다.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정의와 공의의 날에는 더 이상 전쟁이 없게 되기에 공격무기는 필요가 없다. 그리고 그 공격무기들을 건설적인 도구로 만들어 사용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구원의 날은 역사상 마침내 오게 될 날이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지금 현재 이 땅에서 미래에 살게 될 천국의 삶을 미리 누리는 사람들이다. 우리의 삶이 진정 모든 영역에 있어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삶이라면, 나의 자기부인이 온전히 이루어지고 주님의 정의와 공의가 통치하시는 삶이라면, 그렇다면 내 삶에 있어서도 모든 공격무기는 필요 없게 된다. 상대가 어떤 사람이건 간에 나는 화평케 하신 예수님을 따라 화평케 하는 자가 될 것이며, 그런 나의 삶에 있어 더 이상 전쟁은 없겠기에 공격무기 또한 필요 없게 된다. 자연히 나의 모든 것, 즉 나의 생각과 마음, 언어와 행동, 눈빛 등 내가 바깥으로 사용하게 될 나의 모든 것과 재능, 은사들은 상대를 파괴하는 공격무기가 아니라 더욱 나은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건설도구, 또는 많은 열매를 맺는 농기구가 될 것이다. 내가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세워질 것이고 열매들이 열릴 것이다.

인류 전체가 구원되고 온전히 하나님을 섬기는 그날이 반드시 오겠지만, 이미 말세를 살고 있는 지금, 주후 2025년 1월 현재, 진정한 하나님이신 성령님께서 내주하시는 내 안의 세계가 온전히 성령님의 통치를 받는 하나님의 나라가 되어 있다면, 내 안의 전쟁은 없으며 내가 가는 곳마다 평화가 세워지게 된다.

 

 




 




 
(전환) 어떤 마음이 드는가?
인류 전체, 모든 피조 세계를 위해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절대 구원의 날이 반드시 이르겠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지금 당장 그 구원의 날을 앞당겨 ‘누릴 수 있는’ 사람들이다. 신약시대의 은총이란 그만큼 엄청난 은혜다. 주님께선 이 일을 위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죽어 부활하심으로 이 모든 일을 이미 이루셨다. 거기다 보혜사 성령님의 내주하심까지 있다.
 
성부 성자 성령, 성삼위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이미 주셨다. 이 위대한 구원을 누리고 아니고는 우리의 자유의지에 맡기셨다. 내가 나를 하루속히 비우고, 죄악된 나를 예수님의 십자가에 못박고 내 삶의 모든 영역의 주권을 주님께 내어 드린다면, 구원의 모든 혜택을 이 땅에서 지금 바로 온전히 누릴 수 있다. 내가 가는 곳마다 천국이 임할 수 있다. 전쟁이 사라지고 화평이 임할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성령님의 통치를 온전히 받는다면 가능한 일이다. 말씀이 나를 다스리신다면, 그럴 때만 가능한 일이다. 이 끔찍한 전쟁, 타인과 나 사이의 전쟁, 그리고 내 안의 전쟁들이 끝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반응) 나는 어떠한가?
간절히 바라는 것과 별개로 참 잘 되지 않는다. 정말 눈물 나도록 바라는 일인데 이것이 그렇게 안 된다.
결단

적용
(문제제기)
최근 다 끝난 제자반 모임에서 작은 불화가 있었다. 워낙 불화 없이 잘 지내온 제자반이었기에, 다 끝난 이후 이런 일이 불거져 몹시 당황했고 마음이 힘들었다. 문제는 나였다. 이쪽과 저쪽의 중간에 있는 나는 양쪽의 심정을 둘 다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애를 써도 한 쪽은 받아 들이는데 다른 한 쪽이 아무리 노력해도 점점 꼬여가기만 했다. 발버둥치며 노력해도 일은 점점 더 꼬여만 갔다.
 
양쪽으로 갈라져 불화가 생겼을 때 중간 지점에 있는 사람의 역할이 필수적이다. 이 일을 가장 완벽하게 해내신 분이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은 당신의 몸을 희생하여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화목케 하셨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화목케 하신다. 진정한 중재자. 내가 보고 따를 분은 다름 아닌 이 예수님이시다.
 
어려서부터 그랬다. 정확히는 초등학교 4학년 때였던 것 같다. 항상 나를 두고 양쪽이 갈라졌다. 양쪽은 다 나를 원했다. 그런데 양쪽은 나를 보기만 하면 상대를 험담했다. 양쪽을 다 아끼기에 마음이 너무 괴로웠던 나는 양쪽이 서로를 향해 한 험담 9를 삼키고, 1의 칭찬만을 서로에게 전달했다. 그러기를 한 반 년 가량 지나면, 어느 순간 양쪽은 화해를 하고 있고 나는 소외되었다. 왜냐하면 나는 양쪽이 서로를 향해 쏟아내었던 그 모진 9씩의 험담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겠지. 그 소외됨이 서운하긴 했지만 이미 양쪽에 너무 시달렸던 나는 크게 상관 없었다. 그 친구들 아니었어도 내가 친할 사람들은 늘 있었으니.
 
그런 일이 연이어 4-5년 일어났던 것 같다. 내가 가는 곳마다 그랬다. 나를 두고 양쪽은 갈라졌고, 나는 잇느라 애썼고, 마침내 이어지고 나면 나는 버려졌다.
 
이번에 또 이런 일이 일어났고, 한 쪽은 대놓고 ‘내가 Vano 때문에 A집사님을 질투하는 것 같아. Vano가 나를 두고 A 집사님을 더 챙기는 것 같아서 질투 나’.
 
놀라운 건 A집사님은 내가 바로 그 B집사님을 너무 챙기는 것 같다고 내게 중심을 잡아 달라고 부탁했다는 점이다.
 
이것이 내게는 영광이 아닌가. 내가 뭐라고. 영광이고 감사할 일이다. 다만 나는 중재자의 역할을 잘못하고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이 나를 사랑해 주는 것은 너무나 고마운 일이지만, 나로 인해 서로가 불화하는 것은 참으로 나쁜 일이다. 예수님은 일을 그렇게 만드시지 않았다.
 
어째서 그런 일이 일어났는가를 생각한다. 어째서 나를 두고 양쪽은 갈라지는가. 어째서 나로 인해 연합하지 않는가.
 
예수님의 방식을 생각한다. 예수님과 나는 무엇이 다른가. 예수님의 신성과 무죄하심은 이것과는 별개다. 그것은 내가 죽었다 깨어나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으니. 다만 내가 따를 수 있는 부분을 생각한다.
 
답은 명확하다. 예수님은 자신을 버렸다. 양쪽의 화해를 위해 모든 모함과 거짓고발과 멸시와 천대, 고난과 고통을 말없이 감당하셨다. 하나님에 대해서만 물러서지 않으셨을 뿐, 자신에 관한 모든 더러운 거짓과 오물들을 말없이 감내하셨다. 자신을 철저히 버리셨으므로 자신 한 명 희생하여 하나님과 사람들, 그리고 모든 사람들 사이에 평화를 이루셨다. 공의의 하나님께선 그런 예수님을 들어 올리실 수밖에 없으셨다. 하나님은 공의시니까. 예수님은 세상에서 가장 불공정한 상태에 있으셨으니까. 가장 공의롭지 못하고 정의롭지 못한 상태로 죄의 결과인 사망에 들어가셨기에, 공의와 정의의 성부 하나님께서는 그 최악의 부정을 견디실 수 없으셨다. 그래서 당당하게 예수님을 죽음에서 부활시키시고 세상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가장 공의롭고 정의로운 자리에 올리실 수 있었다. 예수님은 그런 존재다. 공의롭고 정의롭고 사랑 그 자체이신 성부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와 사랑을 온전히 충족시키신 분. 눈물나게 아름다운 분.
 
예수님이 눈물나게 아름다운 것은 자신을 주장하셨기 때문이 아니다. 자신을 온전히 버렸고 부정했기 때문이다. 신이신 예수님. 창조주인 예수님. 통치자인 예수님이, 절대 죽을 수 없는 신성을 버리셨고 피조물의 막내인 인간, 그것도 막내 중의 막내인 여성의 자궁에서 아기로 태어나셨고, 통치자가 판결하는 가장 천한 죄인으로 죽으셨다. 이 모두가 나를 위해 하신 일이다.
 
예수님과 나의 차이는 예수님은 자신을 버리셨고 나는 나 자신을 버리지 못한 일이었다. 내가 모든 것을 뒤집어썼더라면. 그랬더라면 이렇게까지 양쪽의 관계가 악화되지 않지 않았을까.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기도에 들어갔다. 너무 아팠다. 하지만 내가 희생하는 것이 맞았다. 양쪽을 논리로 상황 설명으로 납득시키는 건 소용없었다. 이미 서로를 향한 색안경을 쓴 상태였다. 그러니 이제는 희생제물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눈물로 기도를 했고. 나의 잘못을 시인하기 시작했다. 양쪽을 다 이해하는 유일한 사람인 내가 잘못했다. 내가 양쪽의 마음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렇게 되었다. 중재자인 내가 역할을 제대로 못했다. 그래서 이렇게 되었다. 미안해요…
 
그러자 한 쪽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집사님의 눈물이 너무 마음 아파요. 제가 먼저 사과할게요.”
 
그대로 제자반 모임에 나오지 않겠다고 한 집사님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마음을 먹고는 먼저 ‘미안하다’고 상대에게 말해 주었다. 상대는 사과를 받고는 마음을 풀었다. 그러며
 
“사이에 낀 집사님 마음이 많이 힘들었지. 미안해요.”
 
라고 내게 말했다. 다들 사이에 낀 내가 안쓰러워서 화해하기로 했다고들 말해 주었다.
 
이번 일로 나는 알게 되었다. 내가 나를 포기하면 되는구나. 그러면 되는구나.
 
뭔가 대단한 일을 한 것 같지만, 나는 예수님이 아니다. 나는… 내 잘못은 확실히 있다. 나는 한 쪽을 덜 사랑한 것이 맞다. 그리고 사이에 내가 잘못 전달한 것도 있다. 또한 내가 오해 받고 싶지 않아서 나를 커버했던 적도 있다. 이 모든 과거 순간순간의 작은, 비겁한 자기보호의 행동들이 시간이 지나 엄청난 눈덩이로 커진 것이다. 집사님들이 다들 착하고 사랑이 많아서 나를 좋게 보아 주고 있지만, 나는 안다. 내가 원흉이 맞았다는 것을. 오랜 시간 동안 내가 나 자신을 더 어필하려고 은연 중에 소소하게 행동했던 일을. 그 작은 일들이 쌓이고 쌓여서 감정의 앙금이 커졌던 일을.
 
일은 이제 일단락된 것 같다. 그리고 나는 하나님 앞에 홀로 무릎을 꿇는다.
 
나는… 죄인이다.
내가 모든 것을 시작했다.
내가 모든 것을 망쳤고
나 때문에 사람들 관계가 뒤틀렸다.
하나님이 아시고 내가 안다.
 
다만 나의 하나님은 자비하시고 긍휼이 많으셔서 이런 나를 불쌍히 여겨 주셨다. 그리고 나의 기도에 가장 좋은 것으로 응답해 주셨다. 내가 다 망쳐 놓은 일을 하나님께서 온전하게 해결해 주셨다.
 
(말씀)
에베소서 2: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이사야 2:4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
 
(결단&적용) 어떻게 할 것인가?
자기 육체로 막힌 담을 허신 예수님을 따라 날마다 십자가에 나를 못박음으로써 하나님의 온전한 통치를 받는 구원의 나라가 되자. 다시는 전쟁이 없는 하나님의 나라가 되어 가는 곳마다 화평케 하는 자가 되자.
 
적용 1. 일을 다 해결해 주신 주님께 감사기도하기.
적용 2. 하나님의 통치가 내게 온전히 임하시기를 기도하기.
적용 3. 말씀의 통치가 이루어지기 위해 암송하기. (로마서 8장 암기 내일부터 시작하기).
 

[사]2:2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 토비새 때 목사님께서 이 2절을 강조하셔서 몹시 기뻤다. 훈련큐티는 내 일반 큐티나 통독과는 또 달라서 감상하는 마음가짐이 살짝 다르다. 목사님께서 이 구절에 대한 응답으로 세계복음주의연맹 서울총회를 언급하셨는데 나 또한 전적 동의하는 바다. 우리나라를 제사장나라로, 우리교회를 지성소교회로. 그것이 2023년 한 해 동안 금식기도했던 이유였으니. 영원예수한반도. 주님 다시 오시는 바로 그날까지 주님을 배신하지 않으며 주께 가장 귀하게 쓰임 받는 주님의 심장나라 되는 것. 아직도 가장 마음이 뜨거워지는 기도제목이다. 당연히... 나 이전에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을 통해 기도하게 하신 기도제목인 거고, 선물님께서도 오래 전부터 한결같이 기도해 오신 내용이라 알고 있다. 그 응답을 마침내 주시는 것이라고. 우리 교회가 지성소 교회라면 올해 10.27을 통해 세워지는 것이 맞다. 그래서 올 한 해는 WEA 위해 기도를 집중하고 싶은 건데. 그래서 화요 사역반을 지원한 것이기도 한데. 사가는 자꾸 교회와 일정이 겹치니까.

같은 구절에 같은 내용으로 마음이 뛰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설레는 일이다. 더군다나 그 사람이 하나님 음성에 밝으신 선물님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내게 주신 이 마음이 맞다는 증거잖아... 내가 꿈꾸고 설레는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일하심이 옳다는 사실이 큰 기쁨이 된다.


[사]2:3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 교회가 세상의 유일한 소망인 이유다. 교회는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성도들을 하나님의 길로 이끌기 때문이다. 유형교회가 그러할진대 무형교회인 우리 또한 그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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