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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훈련QT] 이사야 6장 ① 하나님의 임재

Q.T.

by Vano 2025. 1. 31. 14:04

본문

 

(본문)
이사야를 선지자로 부르시다
[]6:1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가 본즉 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6:2 스랍들이 모시고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6:3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6:4 이같이 화답하는 자의 소리로 말미암아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성전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6:5 그 때에 가 말하되 화로다 여 망하게 되었도다 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
[]6:6 그 때에 그 스랍 중의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제단에서 집은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게로 날아와서
[]6:7 그것을 입술에 대며 이르되 보라 이것이 입에 닿았으니악이 제하여졌고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6:8 가 또 의 목소리를 들으니 께서 이르시되 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가 이르되 가 여기 있나이다 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6: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6:10 이 백성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귀가 막히고 그들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
[]6:11 가 이르되 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하였더니 께서 대답하시되 성읍들은 황폐하여 주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는 황폐하게 되며
[]6:12 여호와께서 사람들을 멀리 옮기셔서 이 땅 가운데에 황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6:13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아직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황폐하게 될 것이나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하시더라
(단어연구)
거룩 [ holiness ]
성경 원문에서는 다양한 단어들이 사용되었는데, 그 기본 의미들은 구별하다’, ‘분리(구분)하다’, ‘깨끗하게 하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 죄악과 부정으로부터 철저히 자신을 분리시키고, 오직 하나님의 소유로서 자신을 구별하여 드리는, 변화된 상태를 지칭한다. 그리고 세상의 속되고 부패한 행실이나 풍습에서 구별되어 하나님의 법대로 살아가는 것을 가리키기도 한다( 11:44). 특히 신약성경에서는 죄악과 구별된 도덕적인 삶( 17:19)이나 세속적이고 비신앙적인 것으로부터 자신을 엄격하게 구별하는 경건한 행위를 말한다(벧전 1:16). 거룩은 하나님의 속성 중에 가장 중심 되는 성품이요, 하나님의 백성에게 첫 번째로 요구되는 명령이기도 하다( 19:2; 벧전 1:15-16). 그리고 성전, 성물, 제사,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절기,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 등 거룩하신 하나님과 관련된 모든 것들 역시 지극히 거룩하다. [네이버 지식백과] 거룩 [holiness] (라이프성경사전, 2006. 8. 15., 가스펠서브)
 
영광 [ 榮光 , glory ]
빛나는 영예.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초월한 빛. 하나님의 임재나 긍휼, 완전성을 찬양하며 높이 드러내는 행위 등을 나타내며, 사람이나 사물과 관련해서는 아름다움’, ‘뛰어남’, ‘명성등의 의미로 사용된다. 구약성경에서 영광을 나타내는 다양한 단어가 있으나 대표적으로 카보드를 들 수 있다. ‘카보드의 기본 의미는 무거움으로서, 어떤 중요함이나 가치를 나타내며, 이것이 영광’(존귀, 광휘)을 가리키게 되었다. 특히 하나님과 관련되어서 그분의 위엄 넘치는 현현(임재)에 대한 표현으로서, 또는 초월한 광휘(위엄, 권위, 장엄)와 인간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지존함을 뜻하는 말로 묘사되었다( 16:7; 24:16; 9:6). ‘카보드에 상응하는 헬라어는 독사인데 이 단어의 기본 의미는 의견’(판단)이며, 여기서 평가’(평판), 그리고 좀더 발전하여 영광’(영예, 광채)이라는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영광 [榮光, glory] (라이프성경사전, 2006. 8. 15., 가스펠서브)
 

1. 정의
목재를 무산소환경에서 가열해 탄화시켜 수분과 불순물을 없앤 탄소덩어리를 칭한다. 어떤 나무라도 탄화되면 숯이 될 수 있다. 목질이 단단한 나무가 좋은 숯이 되고, 목질이 성기어 연한 나무는 전소되어 재가 되어버린다. 그래서 숯을 만들 때 참나무를 주로 쓴다.
2. 용도
1) 연료: 순수한 탄소 덩어리로 변한 숯을 태우면 완전연소하며 증발열로 인한 손실도 없으므로 연소 효율이 크게 높아진다. 따라서 숯을 사용하면 목재를 태울 때보다 연비도 향상되고 열도 더 뜨겁다. 게다가 잡성분 없이 탄소만이 타게 되므로 연기가 없는 것이 큰 장점이다.
2) 탈취, 제습, 가습, 정수
3) 미술도구
4) 식품
 
[, (이사야)] 1, 5(4), 6, 7(4), 8(4), 11= 15
[, , 만군의 여호와] 1(2), 3(2), 5, 8(3), 9, 11(2), 12= 12
[스랍, 자기, 화답하는 자] 2(2), 3, 4, 6= 5
[이 백성, 너희(이스라엘, 유다)] 9(2), 10(4) = 6
[깨닫지 못하다, 알지 못하다] 9(2), 10(3) = 5
[황폐하다] 11(4), 12, 13= 6
[그루터기, 거룩한 씨] 13(3) = 3
 
(문맥연구)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유다에 보내어 그 땅이 많이 황폐하게 될 때까지 깨닫지 못하여 고침 받지 못하게 하시지만, 그루터기를 남기신다
 
(배경연구)
◇ 유다
웃시야 왕 때 유다는 강성했지만 종교적으로는 부패하고 있었다. 하나님의 선택 받은 백성답게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지 못하고 있었다.

고대근동
앗수르의 디글랏 빌레셀의 세력이 점점 커지고 있었고 고대근동 지역에는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인물/관계연구)
* 유다 왕 웃시야
[대하]26:3 웃시야가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십육 세라 예루살렘에서 오십이 년 간 다스리니라 [대하]26:4 웃시야가 그의 아버지 아마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며 [대하]26:5 하나님의 묵시를 밝히 아는 스가랴가 사는 날에 하나님을 찾았고 그가 여호와를 찾을 동안에는 하나님이 형통하게 하셨더라 [대하]26:8 암몬 사람들이 웃시야에게 조공을 바치매 웃시야가 매우 강성하여 이름이 애굽 변방까지 퍼졌더라 [대하]26:9 웃시야가 예루살렘에서 성 모퉁이 문과 골짜기 문과 성굽이에 망대를 세워 견고하게 하고 [대하]26:10 또 광야에 망대를 세우고 물 웅덩이를 많이 파고 고원과 평지에 가축을 많이 길렀으며 또 여러 산과 좋은 밭에 농부와 포도원을 다스리는 자들을 두었으니 농사를 좋아함이었더라 [대하]26:13 그의 휘하의 군대가 삼십만 칠천오백 명이라 건장하고 싸움에 능하여 왕을 도와 적을 치는 자이며 [대하]26:15 또 예루살렘에서 재주 있는 사람들에게 무기를 고안하게 하여 망대와 성곽 위에 두어 화살과 큰 돌을 쏘고 던지게 하였으니 그의 이름이 멀리 퍼짐은 기이한 도우심을 얻어 강성하여짐이었더라 [대하]26:16 그가 강성하여지매 그의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되 곧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분향하려 한지라 [대하]26:19 웃시야가 손으로 향로를 잡고 분향하려 하다가 화를 내니 그가 제사장에게 화를 낼 때에 여호와의 전 안 향단 곁 제사장들 앞에서 그의 이마에 나병이 생긴지라 [대하]26:20  대제사장 아사랴와 모든 제사장이 왕의 이마에 나병이 생겼음을 보고 성전에서 급히 쫓아내고 여호와께서 치시므로 왕도 속히 나가니라 [대하]26:21 웃시야 왕이 죽는 날까지 나병환자가 되었고 나병환자가 되매 여호와의 전에서 끊어져 별궁에 살았으므로 그의 아들 요담이 왕궁을 관리하며 백성을 다스렸더라 [대하]26:23 웃시야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누우매 그는 나병환자라 하여 왕들의 묘실에 접한 땅 곧 그의 조상들의 곁에 장사하니라 그의 아들 요담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 웃시야는 선한 왕으로 시작했으나 강성해졌을 때 교만해져서, 해서는 안 되는 제사장의 일을 마음대로 하려다 나병을 얻어 별궁에서 죽었다.
 
(묵상)
[]6:1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1. 유한의 왕 vs 무한의 왕 = 인간의 유한성 vs 하나님의 무한성



→ 음뭔가 표가 만족스럽지 않네.ㅠ 글로 풀려니 복잡할 것 같은데 표로 만드니 좀 뭔가 부족하다. 하지만 갈 길이 멀고 나는 피곤하므로…;;

 
이 한 절에서 묘한 대조가 이루어지고 있다. 50년이나 다스린 웃시야 왕은 좋은 왕이기도 했지만 말기에는 교만의 죄로 인해 나병을 얻어 비참하게 죽었다. 아무리 대단한 왕이라 해도 그는 유한하며, 그의 생명의 주권은 하나님께 있다. 유한한 왕이 죽어 그의 보좌가 비어 있는 시점에(물론 그의 아들 요담이 다스렸지만 웃시야의 자리는 비었다), 영원한 왕이신 하나님의 보좌가 조명되는 이 장면은, 인간 사회의 최고 권력자라 하더라도 결국 한 줄기 풀에 불과한 유한성을 강조함과 동시에 영원한 보좌의 영원한 왕이신 하나님의 영원성을 강조하여 대조한다. 하나님에 대해 영원대신 굳이 무한을 쓴 것은, 영원은 주로 시간에 국한하여 사용되지만 무한은 시간과 능력, 장소 등 모든 것에 적용되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웃시야를 비롯하여 수없이 많은 왕들이 태어나고 다스리고 죽어 사라지지만, 하나님의 보좌는 영원하며 하나님의 통치도 영원하다. 그러니 여기서 깨달아야 할 점은 무한하신 하나님 앞에 유한한 인간으로서의 겸손이 되겠다. 우리가 이처럼 무한하신 하나님을 경배함이 마땅하다.
 
2. 하나님의 사람은 위기 때 하나님께 예배한다(= 성전을 찾는다)
50년이나 다스렸던 웃시야가 죽었다. 50년의 익숙하던 일상이 깨어졌다 동시에 앗수르의 디글랏 빌레셀이 강성해지고 있었고, 이것은 유다에 위협이 되었다. 국가의 위기 앞에 하나님의 사람인 이사야 선지자는 사람들과 걱정을 주고 받지 않았다. 대신 성전을 찾았다. 하나님께 나아갔다. 하나님께 예배했다.
 
3. 국가적 위기는 예배를 해야 하는 시기이다.
이것이 지금의 대한민국 상황에 정확히 적용되어야 하는 바가 아닌가. 국가적 난국 속에 사람들끼리 모여 아무리 이 편 저 편 욕을 하면 무엇하나. 우리가 할 일은 성전에 모이는 일이다. 하나님을 찾는 것이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다. 우리끼리 모여서 우리끼리 수다를 떤다 한들 해결책이 있는가. 함께 모여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한다. 하나님께 예배해야 한다. 그럴 때 하나님의 보좌를 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임재를 누리게 될 것이다. 지금 우리는 말이 너무 많다. 우리끼리 말이 너무 많다. 하나님께 아뢰어야 한다. 예배가 서야 한다. 예배가 부흥해야 한다!
 
4. 보다 = 하나님을 보아야 한다.
→ 성전에 앉아 자기 연민이나 빠져 있거나 망연자실해 있으면 안 된다. 절망해서도 안 된다. 절망은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자비하심을 불신앙하는 자세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답답하더라도, 아무리 답이 보이지 않더라도, 절망하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 보아야 한다.
8:17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자를 반드시 만나 주신다. 말씀하셨으니 이것은 틀림이 없다.
 
5. 위기 때 하나님을 찾는 자에게 하나님은 임재하신다.
 
6. 하나님의 높이 들린 보좌와 성전을 가득 채운 옷자락
1) 하나님의 높이 들린 보좌
① 하나님의 영광
[]113:4 여호와는 모든 나라보다 높으시며 그의 영광은 하늘보다 높으시도다
② 예수님의 영광
[]12:41 이사야가 이렇게 말한 것은 주의 영광을 보고 주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
→ 굉장하다. 이렇게 읽으니 잘 모를 수 있겠는데, 사랑의교회 안아주심의본당에 하나님의 보좌가 높이 들려 있다고 상상해 보면 조금은 실감이 날까.
 
2) 성전을 가득 채운 옷자락
→ 그리고 안아주심의본당 가득 채운 하나님의 옷자락예배 때 하나님의 옷자락이 보일 때가 가끔 있다. 주로 <창조의 아버지>를 부를 때 그러한 편이고. 찬양을 하다 보면 보좌가 보이고 옷자락이 촤라락, 펼쳐지는 거다. 그럴 땐 꼭 빛이 함께 한다. 머리 위로 더욱 환한 빛이 사방 가득 확, 하고 비추는 느낌. 빛이 비친다고 꼭 옷자락이 보이는 건 아닌데, 옷자락이 보일 땐 꼭 빛이 비치더라. 그런 날은 꼭 은혜롭다. 모든 예배가 은혜로운데 유독 그런 날이 있어.
 
 
[]6:2 스랍들이 모시고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1절 하나 했는데에너지가 떨어지고 있.ㅠㅠ 빨리 해야겠다.;; 스랍들은 찾지 않으려고. 찾으면 또 한참 digging 해야 할 것 같아서. 그리고 나는 천사, 특히 사탄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다. 어떤 분은 적을 잘 알아야 싸움에서 이길 수 있다고 하셨는데, 그 말씀 맞는데, 그런데 어둠을 몰아내기 보단 빛이 가득 채우면 어둠은 자연히 물러가는 것이라 생각해서. 육신에 거하기에 한정될 수밖에 없는 에너지를 사탄 보다는 성령님께 더 사용하는 것이 훨씬 유익하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성령님을 더 연구하고 더 찾고 더 친밀하고 더 순종하면 성령님께서 나를 더 채우신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이 나를 가득 채우시면 거짓의 영인 마귀는 자연히 떠날 수밖에 없다. 애초에 양신의 역사라 하던가? 난 그런 거 모르고 또 믿지 않기도 하고. 모르겠다. 이 부분은 교리대학에서도 자세히 다루어 주시지 않았던 기억인데사실 좀 다루어 주셨으면 했던 부분이었긴 했지만서도 다루어 주시지 않았던 것은 이유가 있겠지. 기본적으로 성령님이 계신데 어떻게 마귀가 동시에 역사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내 생각이긴 하다. 있는 건 마귀에게 유혹 당한 나의 죄성이겠지. 성화 과정에서 아직 십자가에 미처 못 박지 못한 나의 옛사람이겠지. 모르겠다, 이 부분은. 언제 시원하게 배우고 싶긴 한데. 기도를 많이 하시는 분들께서 양신의 역사니 뭐니 하시니 좀 그렇더라. 좀 확실하게 알고 싶다 언젠가는. 에또 삼천포 탔당.ㅠㅠ 나 에너지 별로 없는데.
 
얼굴을 가림은 하나님의 영광을 직접 볼 수 없음이겠고 발을 가림은 비천함과 정결하지 못함을 가리는 것이며 나머지 두 날개로 날다의 본 역할을 하고 있다. 날아다니는 천사가 땅에 발을 딛는가? 발이 부정할 일이 별로 없을 것 같긴 한데. 거기다 천사는 죄를 안 짓지 않나? 천사는 죄가 없나? 죄를 지을 수가 없나? 근데 타락한 적 있잖아. 아아 왜 자꾸 이쪽으로 기울지 오늘.;; 넘어가쟈!
 
천사는 발이 부정할 일이 별로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징적이 거겠지. 사람을 상징하는 것인 것 같다. 근데 얼굴과 발이 있다는 건 천사는 사람의 형상이야?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하고 있는데 그러면 천사도 하나님의 형상이야?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과 결혼하고 어쩌고또 이쪽으로 가네. 오늘 왜 이래 자꾸.ㅠㅠ 그건 그렇고 우리에게 두신 하나님의 형상은 우리의 지정의, 마음이라고 배우긴 했다. 딱히 눈코입 육신의 외모가 아니라.
 
근데 사탄이 뱀으로 하와를 유혹한 거면 천사도 다른 모양으로 바뀔 수 있는 거 아닌가?
 
……
 
그만! 그마안!!😫
 
결론: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 피조물은 겸비해야 .
 
 
[]6:3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1. 하나님의 거룩하심
→ 라이프 성경사전에 따르면 거룩함구별되다, 깨끗하다에서 비롯된 단어이다. 하나님은 유일한 창조주로서 다른 모든 존재인 피조물들과 다르시다. 구별되신다. 깨끗하시다. 거룩하시다. , 세상과 다르심을 지칭하는 표현이다.
 
2. 하나님의 영광
라이프 성경사전에 따르면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의 위엄 있는 현현(임재)’을 표현한 것이라 했다. 하나님의 현현, 임재, 즉 이 땅, 이 세상과 연관된 표현이다.
[]72:19 그 영화로운 이름을 영원히 찬송할지어다 온 땅에 그의 영광이 충만할지어다 아멘 아멘
[왕상]8:11 제사장이 그 구름으로 말미암아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성전에 가득함이었더라
? 솔로몬 성전봉헌식 때와 비슷한가? 뭔가 비슷한 듯 아닌 듯 아닌 듯 비슷한 듯 하네
 
3. 듣다
1, 2절에서 이사야는 보았다’. 그리고 3, 4절에서는 듣는다’.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을 모시는 스랍들을 보고, 하나님을 향한 스랍들의 찬양을 듣는다. 뒤에 8절에 가면 이사야는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게 된다. 이처럼 예배 때는 하나님을 보고 들으며 모든 감각을 하나님께 집중해야 한다.
 
 
[]6:4 이같이 화답하는 자의 소리로 말미암아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성전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1. 연기, 구름 =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
[]19:18 시내 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 가마 연기 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
[왕상]8:11 제사장이 그 구름으로 말미암아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성전에 가득함이었더라
→ 와아. ㅠ 내가 구약에서 너무너무너무너무 좋아하는 두 장면이다.ㅠㅠ 시내산 하나님의 임재와 솔로몬 성전 하나님 임재.ㅠㅠ 내가 너무너무 간절하게 소망하고 있는 하나님의 임재.ㅠㅠ
[]10:4 여호와의 영광이 그룹에서 올라와 성전 문지방에 이르니 구름이 성전에 가득하며 여호와의 영화로운 광채가 뜰에 가득하였고
 
1) 성경 속 연기의 상징
https://digitalbible.ca/article-page/modern-topics-what-does-the-bible-say-about-smoke
참고

Divine Presence 하나님의 임재
[]15:8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으로 말미암아 성전에 연기가 가득 차매 일곱 천사의 일곱 재앙이 마치기까지는 성전에 능히 들어갈 자가 없더라
→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이 가득한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가 가득한 성전이며, 여기에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 다 이루어지기까지는 능히 들어갈 자가 없게 된다.
Prayer of Saints 성도의 기도
[]8:4 향연(the smoke of the incense)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Judgment 심판
[]9:18 이 세 재앙 곧 자기들의 입에서 나오는 불과 연기와 유황으로 말미암아 사람 삼분의 일이 죽임을 당하니라
Apocalyptic Vision 종말론적 환상
[]19:3 두 번째로 할렐루야 하니 그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더라
Transformative Power 변화능력
[]2:19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를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2) 성경 속 구름의 상징
Xie Rongchang (谢荣)에 의하면 구름은
① 하나님의 부르심
② 인도하심
③ 임재
를 상징한다고 한다. 이 중 ③ 임재 를 좀 더 자세히 분석한 Timo Schmitz의 흥미로운 글이 있어서 참고한다.
https://schmitztimo.wordpress.com/2023/01/15/the-cloud-as-symbol-of-gods-presence-in-the-torah/
Timo Schmitz에 따르면 하늘을 덮고 있는 구름은 하늘과 땅 사이의 존재로서 노출과 엄폐의 상반된 두 기능을 하고 있다.
① 언약의 노출
i) 노아 언약 - 노아홍수 후 언약을 표현함
[]9:13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와 세상 사이의 언약의 증거니라 []9:14 내가 구름으로 땅을 덮을 때에 무지개가 구름 속에 나타나면 []9:15 내가 나와 너희와 및 육체를 가진 모든 생물 사이의 내 언약을 기억하리니 다시는 물이 모든 육체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할지라
→ 음다시는 홍수로 세상을 멸하지 않으시겠다는 언약은 무지개 자체이다. 그런데 그 언약인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셨다는 그렇다면 구름은 언약을 감춘 것인데…? 그런데 팀은 왜 드러낸 것이라 주장하지? 아아, 그러니까 구름이 등장하면 그 구름은 속에 언약 무지개를 감추고 있음을 드러낸다는 뜻이라고알겠는데 뭔가 좀 복잡하넹.
ii) 모세 언약 시내산을 덮은 구름과 십계명
[]19:16 셋째 날 아침에 우레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 소리가 매우 크게 들리니
[]19:18 시내 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 가마 연기 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
→ 이 또한 하나님의 언약인 십계명과 하나님의 규례들을 감싼 구름이긴 한데. 엄밀하게 말하자면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구름이며. 아 난 자꾸 이 모든 것을 엄폐가리는 것으로 보고 싶지.;
② 하나님의 엄폐(掩蔽 1. 명사 가리어 숨김. Veiling),
[]19:16 셋째 날 아침에 우레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 소리가 매우 크게 들리니
→ 그리고 18절까지 사용한다. 여기에서 구름과 연기는 하나님을 가리는 역할을 한다. 이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면 죄인 된 사람은 살 수 없기 때문이다.
[]33:20 또 이르시되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13:22 (마노아 삼손의 아버지)의 아내에게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을 보았으니 반드시 죽으리로다 하니
근데 비단 죄인이어서 사람만 하나님을 볼 수 없는가? 위에서 스랍조차 두 날개로 눈을 가리지 않았는가. 유일한 창조주 하나님의 모습은 피조물로서는 그 누구도 볼 수 없는 것일까.
 
욥기에서 사탄과 천사들은 하나님과 같이 대화를 했지하지만 하나님이 어떤 모습이었는지는 나타나 있지 않지하나님도 천사, 사탄도 모두 영이라 딱히 형상이 의미가 없는 걸까나. 아 왜 자꾸 그 생각이 확장되는 건지 모르겠는데, 사탄도 뱀의 형상으로 하와를 유혹했고, 천사들도 사람의 모습으로 아브라함과 롯 등 구약의 사람들을 찾아갔던 것처럼, 어쩌면 영은 특정한 형상이 없거나 있어도 다른 형상으로 변화가 가능한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딱히 형상이 의미가 없겠고.
 
그런데 위에서 스랍들이 두 눈을 가렸다고 한 것은, 그렇다면 욥기에서의 천사들과 사탄도 하나님의 형상을 직접 본 것은 아닌지도 모르겠다. 그 사이 뭐가 있었는지는 모르지. 거기서도 하나님을 구름이 덮고 있었으려나.
 
암튼 스랍들이 하나님의 영광 앞에 눈을 가림으로써 하나님을 직접 볼 수 없었다면그렇다면예수님은 그 하나님이시다. 그러니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을 당연히 직접 볼 수 있으셨겠지. 그런 예수님께서 인간의 육신을 입고 오셔서 죽은 후 부활하셨기에 육신의 한계를 극복하셨다(벽을 통과하심, 하늘로 승천하심 등). 그 예수님께서 첫 열매, 맏아들이 되셨기에 예수님을 믿는 우리 모두 주루룩 예수님을 따라 구원의 열매가 되며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하나님을 보면 죽는 육신을 하나님을 보아도 죽지 않는 존재로 승격시키신 것이 아닐까아닐까이건 여기서 처음 하는, rough한 생각이므로아아 이것이 틀렸다면 하나님께서 말씀이나 설교로 교정해 주시거나 잊게 해주실 것이고, 맞는 묵상이라면 말씀, 설교로 확증해 주시거나 묵상을 좀 더 확장해 주시겠징. 저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실 것을 믿습니다. 아멘!
 
아니 잠깐 근데.
[]1:3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라고 하셨자노. 예수님은 영이시기에 우리 육신의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본체의 형상이신데? 제자훈련 때 그렇게 배웠는데? 아니 그렇담
[]33:20 또 이르시되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이건 뭐임? 아아그러니까 삼손의 아빠인 마노아의 경우, 천사가 대신 나타난 하나님의 형상이었나 보다. 그리고 출애굽기의 모세에게 하신 말씀은, 우리가 말하는 물성을 지니신, 또는 특정 형태를 지니신 얼굴이 아니라하나님의 현존’, 또는 임재를 의미하는가 보다아왜냐하면 하나님은 영이시니까. 영은 육의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본체의 형상으로 우리 눈에 보이고 우리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육신으로 오신 거니깐. 우어어 뭔가 풀리는 거 같은데 더 꼬이는 것도 같고. 으앙.😫
 
2. 왜 연기나 구름이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할까?
, 이것 또한 지금 처음 하는 rough한 생각이다. 일단 펼쳐 보자, 뭔지.
 
1) 연기는 불을 상징한다.
→ 불이 있는 곳에는 연기가 있다. 불이 나기 전에도 연기가 피어 오르고 불이 나는 중에도 연기가 있으며 불이 꺼지고 나서도 연기가 흔적으로 일정 시간 동안 지상에 형체로 남는다. 연기가 있는 곳에는 불이 없을 수 있지만, 불이 있는 곳에는 연기가 있다. 그렇다면 연기는 불을 감싸는 존재이다. 연기가 정말 표현하는 것은 이다.
 
정화의 기능을 담당한다. 죄악된 것을 소화燒火하는 불. 태워 없앤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죄가 없되 아예 없으신 분이다. 그리고 죄와 함께 하실 수 없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계신 곳에 죄는 견딜 수 없다. 하나님의 불길에 타서 소멸된다. 우리가 하나님의 현존, 임재를 견딜 수 없는 것은 그 이유다. 특히 예수님의 보혈이 없던 구약의 시절, 하나님의 임재를 죄인들은 감당할 수 없었다. 오죽하면 그 귀한 하나님의 임재가 있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에게 하나님이 자신들에게 임하지 말아 주시라고 간청했을 정도다.
 
2) 구름은 물을 상징한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비를 상징한다. 비는 물이므로. 비가 오기 전후로, 또 비가 오는 동안 구름이 있다. 마찬가지로 구름이 있다 해서 반드시 비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비가 있으면 반드시 구름이 있다. 구름은 비의 가능성을 암시한다. 연기가 불의 가능성을 암시하는 것과 같다.
 
물 또한 정화, 정결의 기능이 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노아의 홍수로 죄악이 가득한 세상을 심판하셨고, 나아만은 강물에 몸을 씻어 나병이 나았다. 죄로부터 떠나 구원과 은혜 속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나기 위한 세례 또한 물을 통해 이루어지며, 예수님 시대 유대인들은 초대되었을 때 물로 발을 씻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며 정결하시므로 더러움과 함께 하지 못하신다. 그러니 하나님이 계신 곳에는 정결하게 하는 물을 상징하는 구름이 있나 보다.
 
3) 하나님의 임재는 정화와 정결을 요구하며 행하신다.
불을 상징하는 연기와 물을 상징하는 구름으로 표현되는 하나님의 임재는 그러므로 죄인들을 정화하고 정결하게 하는 기능을 하며, 또한 그것을 요구하신다.
 
4) 그렇다면 왜 구름기둥과 불기둥인가?
여기서부터 또 엉뚱한 생각으로 들어간다 나는.ㅠㅠ 왜 구름기둥과 연기기둥이 아닌가? 왜 물기둥과 불기둥이 아닌가? 광야에서 주의 택하신 백성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백성들 앞에 나타나셨다.
 
일단 구름기둥 대신 물기둥이면 광야의 뜨거운 낮의 태양을 가려주지 못한다. 그렇다고 밤에 불기둥 대신 연기기둥을 피우면 매캐하기만 하고 광야의 추운 밤 동안 열기를 제공해주지 못한다. 그러니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인 것이 기능적으로 맞다. 그런데 여기에 좀 더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
 
낮은 사람의 감각이 제대로 작용하는 시간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사람의 압도적으로 강력한 감각인 시각이 온전히 작용하는 시간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는 분이시다. 눈으로 볼 수 없는 영이시다. 그러니 낮에는 물이 아닌 물(정결, 거룩의 상징)을 상징하는 구름기둥을 세우신 것이 아닐까.
 
밤은 바로 그 사람의 시각이 감기는 시간이다. 그러니 연기라는 상징이 아니라 그 연기가 상징하는 실체인 불로 임하시는 걸까.
 
너무 나간 거 같당. 이건 걍 기억에서 지워 버려야지. 훠이훠이!!;; 하나님 말씀 묵상하며 놀다 보면 좀 과하게 나가는 때가 있다. 틀리면 정정해 주시고 맞으면 더 확장해 주시는 거라. 에잉. 하나님께서 알아서 해주시겠징. 난 또 이렇게 속 편하게 놀라리하고.ㅋㅋ
 
……
 
근데 뭐 하다 이렇게까지 왔지 난…?
성전 연기에서 여기까지 와따. 으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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