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이사야 53:1~6 "세상을 변화시키는 치유자The Wounded Healer Who Transforms the World" [이사야 새길 New Way Isaiah - 앙망하라! 반드시 새로운 길이 열리리라!] 시리즈 11
https://www.youtube.com/watch?v=LGJ-qWKpZIQ&t=3s
[이사야 53:1~6]
1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Who has believed our message and to whom has the arm of the LORD been revealed?
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He grew up before him like a tender shoot, and like a root out of dry ground. He had no beauty or majesty to attract us to him, nothing in his appearance that we should desire him.
3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He was despised and rejected by men, a man of sorrows, and familiar with suffering. Like one from whom men hide their faces he was despised, and we esteemed him not.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Surely he took up our infirmities and carried our sorrows, yet we considered him stricken by God, smitten by him, and afflicted.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But he was pierced for our transgressions, he was crushed for our iniquities; the punishment that brought us peace was upon him, and by his wounds we are healed.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We all, like sheep, have gone astray, each of us has turned to his own way; and the LORD has laid on him the iniquity of us all.
오정현 우리 담임 목사님💖 · 주후 2025.04.13 주일예배(성찬식)
§ NW 이사야 새 길 시리즈 - 앙망하라! 반드시 새로운 길이 열리리라!
1. 새해, 특별한 초청
2.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자
3.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4. 굳게 믿어야 굳게 선다
5. 독사 굴에 여호와의 영이 임하시면
6. 역사를 보는 눈, 분별력
7. 사망의 덮개를 제하시리라
8. 의로운 나라, 견고한 성읍
9. 슬기로운 새판짜기
10.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도다
11. 세상을 변화시키는 치유자
* 오늘 본문: 구약의 복음서, 구약의 골고다.
◇ 고난 받는 종: 이사야 52:13부터 시작됨
◇ 고난 받으신 후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어떻게 하셨는가.
이사야 52:13 보라 내 종이 형통하리니 ① 받들어 ② 높이 들려서 ③ 지극히 존귀하게 되리라
① 받든다
다시 일어나신다. 어떤 사람도 경험하지 못한 받들림, 부활하심을 경험하신다. 고차원적인 존재로 승격되신다.
② 높이 들리신다
빌립보서 2: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③ 지극히 존귀하게 된다
조직신학: 승귀하셨다(승천하여 귀하게 되셨다).
☞ 복음 안에는 이렇게 지극히 존귀하게 되는 은혜가 있다.
◇ 높임 받기 전 주님의 모습
이사야 52:14 전에는 그의 모양이 타인보다 상하였고 그의 모습이 사람들보다 상하였으므로 많은 사람이 그에 대하여 놀랐거니와
로마 군인에게 채찍질 당하시고 가시면류관 쓰신 것 때문에 찢긴 예수님의 얼굴과 몸을 표현함. 피투성이 되셨던 예수님의 모습.
이사야 52:15 그가 나라들을 놀라게 할 것이며 왕들은 그로 말미암아 그들의 입을 봉하리니 이는 그들이 아직 그들에게 전파되지 아니한 것을 볼 것이요 아직 듣지 못한 것을 깨달을 것임이라
여호와의 종 메시야가 회복 불능의 상처를 입고 망가졌는데, 이후에 찬란하게 회복되고 권위가 회복되어, 사람들이 입을 다물게 될 것이라고 한다.
☞ 우리 또한 처참하게 망가져 회복 불능의 치명상을 입어 피투성이가 되더라도 남들이 놀랄 만큼 다시 살아나 회복될 수 있다. 복음의 핵심에 대해 눈이 열리고 말씀에 순종하면, 세상 사람들이 깜짝 놀라고 입을 봉하게 되는 대반전의 역사가 일어날 것이다.
[겔]16:6 내가 네 곁으로 지나갈 때에 네가 피투성이가 되어 발짓하는 것을 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다시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하고
◇ 본문
1-3절 메시아를 향한 사람들의 그릇된 평가
이사야 53: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버림받은 자, 실패자처럼 보이는 예수님을 기록하고 있다.
이사야 53:3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멸시: 얕잡아 본다.
간고: 어렵고 고통스럽다.
질고: 질병으로 인한 괴로움.
→ 멸시, 버림, 간고, 질고: 상처의 용어
◇ 예수님이 상처받은 이유가 무엇인가?
사 53:4 a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질고: 겉으로 드러난 고통
슬픔: 내적, 정신적 고통
→ 예수님은 우리의 수많은 안팎의 고통을 다 짊어지셨다.
사 53:4 b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런데 사람들은 예수님이 하나님께 징벌을 받은 것이라 오해한다. 이에 대해 이사야는 명백하게 선포한다.
사 53:5a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허물: 율법을 의도적으로 깨뜨린 죄악
죄악: 우리의 내적 외적 죄의 통칭
우리의 허물이 예수님의 옆구리를 찔렀고, 우리의 죄악의 막대기가 예수님을 무자비하게 내리쳤다.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에는 인간 존재가 가진 모든 상처와 수치가 다 담겨져 있다.
◇ 예수님의 역설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님이 죽임을 당하셨다.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이 허기지셨다.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이 어둠에 삼키운 바 되셨다.
생수이신 예수님이 목이 마르다 하셨다.
율법의 주인이신 예수님이 율법에 의해 부당하게 처형 당하셨다.
거룩하신 분이 거룩하지 않은 사람과 동일시 되셨다.
세상을 창조하시고 죽은 자를 일으키신 분이 생명을 잃어 뻣뻣해질 때까지 못박혀 계셨다.
(4월14일 월요일 새벽예배 김대규 목사님 설교:
세상의 심판자이신 예수님께서 심판 대상자인 죄인들에 의해 불의의 심판을 받으셨다.)
십자가의 고통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그리고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그 이상의 상처와 고통까지도 포함된 것이다.
◇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결과
사 53:5b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그가 찔림은 000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000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000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000는 나음을 받았도다”
기억이 기록을 대신할 수 없다. 역사를 창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역사를 기록하는 것도 중요하다. 적자생존.ㅋㅋ 180권 가량의 사역수첩. 부목사님들 공포의.ㅋㅋㅋㅋ
♥ 오정현 목사님 일화: 31세에 교회 개척하고 1년 뒤 캘리포니아의 Hemet에 <갈라디아서 2:20절 기도원>에 기도하러 가셨다. 언덕 위 돌무더기에 세워져 있는 큰 나무 십자가 밑에서 기도하는데, 아래의 말씀이 내 마음에 떠올라서 수첩에 기록해두었다.
이사야 53:5 ...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나(예수님)의 십자가의 상처를 통해 너의 상처가 치유되리라.
이 말씀을 묵상하며 다음 날 아침에 언덕에서 기도하는 중에 십자가 뒤로 아침 해가 떠오르면서 말씀이 생각났다.
말 4:2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그 때부터 목사님 뛰심.ㅋㅋㅋ 특새 때도 뛰심.ㅋㅋㅋㅋㅋ
☞ 돌 무더기 위의 커다란 십자가 그림자는 목사님을 안아 주시는 예수님의 팔, 안아주시는 십자가인 것 같았다. 안아주심의 본당이라는 이름은 이 때부터 시작된 건지도.ㅋㅋ 징차 우리 본당 이름 엄청 이쁘고 독특함.👍💖✨
* 우리 본당의 십자가: 갈릴리 바다 난파선의 나무로 만든 십자가. 탄소동위원소 확인하여 2천년 전의 나무임을 확인함.(나 이거 알고 있었지롱. 접때 두어 번 목사님께서 스치듯 언급하신 적 있다.)
☞ 2천 년 전의 십자가가 오늘날의 우리도 치유해 주옵소서.
* 가정은 천국의 예고편이 되어야 하는데 오늘날 수많은 가정이 지옥의 현장이 되고 있다.
* 우리 삶의 수많은 상처는 오직 십자가만이 치유한다.
◇ 우리가 십자가로 인해 치유되었다는 증거: 바로 뒤의 54장 말씀
사 54:1 잉태하지 못하며 출산하지 못한 너는 노래할지어다 산고를 겪지 못한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 이는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고대 근동사회에서 출산하지 못하는 고통은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었다.
창 30:1 라헬이... 야곱에게 이르되 내게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
☞ 죽음의 고통과 같은 상황에 처해 있을지라도 노래할지어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다 처리해 주신다.
복음의 핵심: 십자가 만이 우리를 구원하며 치유해 준다.
이것 때문에 예수님은 바리새인들과 논쟁을 피 튀기는 하였고, 바울도 율법주의자들과 극렬한 논쟁을 했고, 종교개혁자들도 로마카톨릭의 행위 구원자들과 피 튀기는 논쟁을 하고 구원론을 완성했다.
예) 성 어거스틴 vs. 펠라기우스Pelagius(성악설인 어거스틴 vs. 성선설인 펠라기우스: 펠라기우스는 인간에게 선을 행할 능력이 있기에 그리스도의 구원이 필요 없고 그리스도는 도덕적 모범을 가진 자라 주장(도덕적 구원론) → (당연히) 이단
§ 구원론: Soteriology, Soteria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음으로서 구원이 약속된다는 것은 기독교의 공통적인 교리이나, 확실한 구원에 대해서는 교파별로 다른 해석을 보이고 있다. 구원론에서 다루는 주제들은 성령의 일반적 사역, 소명과 중생, 회심, 신앙, 칭의, 성화, 성도의 견인 등이다. 성경의 진리에 따르면 형상을 초월하시는 전능의 하나님께서 존재하시고 그분의 친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모든 성도는 구원받으며 그 확정적 각 성도의 구원은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통한 새로 태어남으로써 이루어지고 심판 날에 하나님께서는 인과에 따라 각 사람의 언행대로 갚아주신다. 그러므로 이 핵심적인 네 가지의 교리가운데에서 각 성도의 구원에 가장 중요한 것은 거듭남이며 거듭난 자는 이제 성령님으로 인해서 영혼이 거듭났기 때문에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제어하심에 따라 하나님의 뜻대로 살며 하나님 앞에서 본질적인 범죄 즉 자신의사욕에 따른 범죄를 저지르지 않게 된다. 그리고 열매를 보면 나무를 아는 것처럼 거듭난 성도는 바람이 부는 것처럼 알 수 있다. 즉 행위와 믿음은 열매와 나무의 관계인데 거듭나지 못한 성도는 자신의 원죄에 따라 행위를 강조하거나 믿음을 강조함으로써 자신의 사욕을 따라 범죄를 옹호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의 진리는 한결같이 거듭남의 진리를 선포하고 있다. 주님을 3번 부인했다가 다시 태어남으로써 구원받은 베드로를 포함한 12사도와 이방인의 사도 바울로의 예를 보라. 성경은 영원불변하는 진리이자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굳건한 반석이며 단지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의하여 진리를 깨닫게 된다.
올해 10/27에 WEA 서울총회를 한다. 복음이 답이다. 십자가가 답이다. 세계선교의 추진력을 확보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란다.
◇ 결론
이사야 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로마서 4:25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 죄의 전가: 우리의 죄가 예수님께로 전가되고 예수님의 의가 우리에게로 전가되었다.
원래 종이 주인을 위해, 신하가 왕을 위해 죽는 것인데, 예수님은 주인이 종을 위해, 왕이 신하를 위해 죽으셨다.
십자가는 사랑의 심장 파열 사건이다. 예수님께서 한 손으로 내 손을 붙잡고, 또 한 손으로 하나님의 손을 붙잡고, 사랑의 심장이 터진 곳이 십자가이다. - 故 김준곤 -
십자가가 답이다! 복음이 답이다!!
→ ◇ ☞ † ⇒ ☆ § ※ √ ♥ ♥ ♥ ① ② ③ ④
* 입틀막 ㅋㅋㅋㅋ
*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에스겔서의 이 말씀은 금식 기간 동안 내게도 주신 말씀이었는데 키르의 선교사인 사촌에게도 주신 말씀이었고, 또 오정현 담임 목사님께도 예전에 주신 말씀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사역자분들은 한 번씩 받는 말씀인 것도 같고. 그렇잖아. 하나님의 일이 치열하고 끔찍한 영적 전쟁이니깐. 이 말씀은 읽을 때마다 마음이 먹먹해진다.
* 말라기 말씀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때부터 목사님 뛰심.ㅋㅋㅋㅋ 특새 때마다 뛰신다고.ㅋㅋㅋ 사실 난 목사님 뛰시는 거 잘 모르는데. 찬양 땐 거의 눈을 감고 하기도 하고... 암튼 난 잘 모르거든? 근데 hs은 목사님 엄청 뛰신다고 감탄하곤 한다. 근데 권사님들 집사님들 말씀 들으면 이전에 목사님은 대단하셨다고. 특새 때마다 방방 통통 뛰셨다고. 엄청 뛰셨다고. 음... 상상이 안 감.🤔 나야 뭐 워낙 콘서트 세대이니. 이전 방황 때 크랜이나 자우림, 인디밴드들 콘서트나 이태원 축제 등에 가면 문자 그대로 퐁퐁 뛰니깐.ㅋㅋㅋ 근데 하나님이 좋아서 그렇게 뛰었던 적이 있던가? 하면 잘 모르겠긴 하다. 집회에 열심이었던 대학 때도... 온누리교회나 두란노경배와찬양 등에서... 뛰었던가... 그래도 밴드 콘서트 때만큼 정줄 놓고 뛴 적은 없는 것도 같고. 그러고 보니 좀 그르네 다윗은 하나님의 언약궤를 다시 모셔 오는 것이 넘 즐거워 옷이 흘러내리는 줄도 모르고 온 힘 다해 뛰며 춤을 췄는데. 그르네... 음... 천국 가면야 당연 하나님 좋다고 하나님 앞에서 그 콘서트 저리 가라 싶도록 방방 뛰겠지마는... 지상에서 그런 날이 올까? 음. 정말 이거 기도하고 싶네. 분명 지금도 있지 않을까? 2030 가스펠 콘서트랄까 그런 곳에선 있지 않나? 아아 맞다! Planet Shakers! 그 때 나 뛰었다! 근데... 본당 2층이었어서. 경사가 있어서 실컷 못 뛰었당. 또 주변이 다같이 뛰는 그 즐거움이 있는 건데, 다들 상대적으로 얌전하셨어서는.ㅠㅠ 주일 예배나 특새 때 신나는 찬양을 할 때 나는 천국에서 하나님 앞에서 천국 백성들 맨 앞에서 내가 방방 뛰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박수치며 신나게 찬양하긴 한다. 근데 우리 본당은 방방 뛰기엔 자리가 좁지. 긴 의자는 뛰기에는 적합하지 않으며. 꼭 뛰어야만 하는 건 아니겠으나. 그러나. 하나님께선 다양한 방법으로, 모든 방법으로 찬양 받고 싶어하시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하나님은 워낙 창조적이시며 다채로우시니깐! 히힛.
목사님 고고장 하실 때마다 나도 모르게 웃음 터짐. 아니 그 우아한 손짓이 고고춤이냐고요.ㅋㅋㅋㅋ 증말 춤 못 추시는 우리 목사님.ㅋㅋㅋ 딱히 못 추시는 건 잘 모르겠다. 추신 적이 없다시니깐? 의의로 재능이 있으실지도? 팔다리 길어 우아하셔서 잘 어울리실 듯도. 또 예술을 사랑하시고 음악 감각 좋으셔서 잘 하실지도. 참 그렇다. 목회자는 하나님을 위해 참 절제하시는 것이 많구나. 주의 종은 그래서 참 귀하시구나. 그런 생각. 세상 실컷 놀다가 주의 종이 되신 분들도 귀하시다. 하지만 처음부터 나실인처럼 드려져서 내내 주님 안에 수많은 것들을 허벅지 찔러 가며 절제하고 참고 인내하며 주의 일을 해오신 주의 종을 하나님께서 이렇게 세계적으로 크게 사용하시는 거 보면 참 당연하단 생각이 든다. 하나님께서 이토록 주를 위해 헌신한 사람을 그냥 두실 리가 없지. 우리의 선하시고 위대하시며 자비하신 창조주는 결코 피조물에게 빚지지 않으시니까. 우리가 1을 드리면 하나님은 100, 1000, 10000을 주시니까. 할렐루야.
* 사 54:1 잉태하지 못하며 출산하지 못한 너는 노래할지어다 산고를 겪지 못한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 이는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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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징... 나 깜딱 놀라따... 작년 가을 특새 때 내게 주신 말씀 시편 113편 중의
[시]113:9 | 또 임신하지 못하던 여자를 집에 살게 하사 자녀들을 즐겁게 하는 어머니가 되게 하시는도다 할렐루야 |
랑 같잖아... 내가 매일 암송하며 붙들고 기도하는 말씀인데. 우리 목사님 징차.ㅠㅠ 내 머릿속에 사신다니깐.ㅠㅠ 아 왜 성령님께서 목사님에게 가르쳐 주시는 거임 매주??? ㅠㅠ 넘 싱기방기하당... 핵심은 비탄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찬양하며 노래하는 것. 이로써 나는 이사야 54장을 레마로 받게 되었습니당. 할렐루야. 암송할 구절이 날로 늘어가는구나앙... 하나님 훈련이 그렇지. 멈추는 법이 엄따!!! 뒤처지지 않도록 열심히 외워야겠다. 후아, 아직 신명기 8장 다 못 외웠는데. 이사야 54장은 언제 또 암송하징. ㄷㄷㄷ 아쟈아쟈!! 달려달려!!!
개인적으로는 이번 설교는 "The Wounded Healer Jesus Christ"로 요약할 수 있는 것 같다. 예습할 땐 이 영어제목을 못 보았거든. 보았더라면 여기에 맞추어 묵상을 더 했을 것 같은데. The Wounded Healer. 자신이 상처를 받았기 때문에 치유한다는 사실. 의사라 해서 꼭 자신이 그 병을 앓아야 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의도적으로 그 병을 앓으신 분이다.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피조물의 육신에 들어오신 것 자체가 그러하며, 무한이신 주님이 유한의 몸으로 오신 것이 그러하다. 거기다 육신에 계시는 동안 육신이 가지는 모든 질병, 그 가능성을 창조주 신성으로 다 느끼지 않으셨을까.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마침내 찔리고 상하고 징계를 받고 채찍까지 맞으셨다. 이 당시 십자가형 죄수에게 채찍형으로 사용하는 채찍은 접때 검색한 적 있지만 그냥 채찍이 아니었다. 돌이나 유릿조각, 가시 등을 같이 섞어 여러 가닥으로 꼬아 만든 가죽 채찍인데, 그것도 그냥 때리는 것이 아니라 물에 불렸다가 묵직해진 것으로 때린다. 그러면 한 번 때려도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뼈가 드러난다고. 목사님 설교 대로 채찍에 맞으신 예수님의 몸은 그야 말로 말이 아니었을 것이다. 온통 피투성이 정도가 아니었을 거다. 바늘에 살짝 찔려도 아프고 작은 가시가 박혀도 아픈 건데, 이 채찍을 맞아 살점이 떨어져 나가 뼈가 드러나고 유릿조각이 온통 살에 박힌 채 가시관 쓰고 골고다 언덕을 십자가 지고 오르신 예수님의 몸은... ㅠㅠ 모르긴 몰라도 보는 사람들이 탄식할 정도의 모습이었을 듯.ㅠ 거룩하고 무흠하신 창조주께서... 죄인들의 손에 망신창이가 되신 모습. 그 모습으로 십자가에 매달리신 상태로 끝까지 강도를 구원으로 인도하실 뿐 아니라, 하나님께 우리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신 예수님.ㅠ 십자가 피가 흥건한 복음이 선포된 설교였다.
[히]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이건 개역한글이 낫네.
[히]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체휼하다體恤- , sympathize' ‘함께 아파하고 고통하다’, 즉 ‘아픔과 슬픔을 공유할 뿐만 아니라 깊은 연민으로 불쌍히 여기다’, ‘상대방의 형편과 처지를 전 인격적으로 이해하다’는 뜻. 만왕의 왕으로서 죄인의 자리에까지 낮아지셔서 인생의 고통을 경험하시고 또 그 절망을 기꺼이 도우셨던 예수님의 성육신(成肉身, Incarnation)이 여기에 해당한다(빌 2:5-8). 개역개정판은 ‘동정하다’(히 4:15; 벧전 3:8)로 번역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체휼하다 [體恤-, sympathize] (라이프성경사전, 2006. 8. 15., 가스펠서브)
몸 체 불쌍할 휼.
→ ◇ ☞ † ⇒ ☆ § ※ √ ♥ ♥ ♥ ① ② ③ 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