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롬]5:1 |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
| [롬]5:2 |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
| [롬]5:3 |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
| [롬]5:4 |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
로마서 1-4장은 이신칭의(Justification by Faith), 즉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는 복음의 정수를 다루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5장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결과'를 말하고 있다.
1절.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1. 그러므로 οὖν, oun
앞서 언급한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의 결과, 열매가 앞으로 제시됨.
2.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δικαιωθέντες 디카이오덴테스
1) 단순과거수동태
δικαιωθέντες는 단순 과거 수동태(aorist passive) 분사형이라 한다. 나의 헬라어 문법은 미천하여ㅠ.;; 암튼 현재 진행형이나 현재 분사형이 아니라 단순 과거 분사형이라는 것은 단번에 일어난 완료된 사건이라는 의미이다. 이것이 중요한 것은, 만약 현재진행형이나 현재완료진행형이었다면 계속해서 의롭다 하심을 받는 상태이므로 카톨릭에서 주장하는 '공로' 또는 구원을 위해 계속해서 뭔가가 필요하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명백하게 단순과거수동태분사라 함은 과거의 한 순간에 일어나 끝난 사건임을 나타내는 것으로, 구원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죽어 부활하심으로 단번에 이루신 사건이며, 칭의 또한 하나님의 은혜에서 비롯된 믿음으로 인해 단번에 완성된 사건이라는 사실을 보여 준다. 그 결과 우리는 하나님과의 화평이 가능하게 되었다.
2) 법정적 사건
여기에서 사용된 '의롭다'는 단어는 법정적 용어로서 피고인이 모든 혐의에서 무죄로 선고받는 것을 의미한다. 단순한 감정적인 상태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적대관계가 공식적으로 끝난 객관적인 상태'를 선포함을 의미한다.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아멘. 이것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1) 화평 εἰρήνη 에이레네
①Peace (1515) (eirene [word study) is derived from the verb eiro which means “to bind together that which has been separated.”) literally pictures the binding or joining together again of that which had been separated or divided and thus setting at one again, a meaning convey by the common expression of one “having it all together”. 분리된 것을 하나로 묶다.
② Eirene can convey the sense of an inner rest, well being and harmony. The ultimate peace is the state of reconciliation with God, effected by placing one's faith in the gospel. In eschatology, peace is prophesied to be an essential characteristic of the Messianic kingdom (Acts 10:36). 하나님과 화목한 상태로 인한 내적 평안과 조화.
https://www.preceptaustin.org/romans_5-1-2
③ 구약의 샬롬 Shalom과 신약의 에이레네 eirēnē 사이에는 차이가 좀 있다. 샬롬이 에이레네보다 훨씬 광범위한 의미라고. 평화 뿐 아니라 번영, 전인적 안녕, 관계의 온전함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라 한다.
④ 헬라-로마 시대의 평화는 전쟁의 부재를 의미했다. 당시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무력(전쟁)으로 지중해를 정복하여 'Pax Romana'를 이루었는데, 그만큼 당대 사람들은 전쟁이 없는 평화를 아주 갈망하는 상태였다 한다. 이에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하나님과의 참된 평화를 강조하는 것이다.
4. 화평을 누리자'εἰρήνην ἔχωμεν, eirēnēn echōmen
이에 대하여 에코멘(ἔχομεν) 대 에코멘(ἔχωμεν)이라는 사본상의 차이로 인한 해석의 차이가 있었나 본데, ἔχομεν이 'Verb - Present Active Indicative - 1st Person Plural'이니 '직설법'이 되겠고, 그렇다면 ἔχωμεν이 '가정법'이 되겠네. ἔχομεν의 직설법 사본을 채택하면 우리는 이신칭의로 인해 이미 '하나님과 화평을 누린다'라는 객관적인 화평의 상태를 강조하게 되는데, 개역개정판에서는 '누리자'라는 권면형으로 번역하고 있다.
2절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1. 들어감을 얻었으며 προσαγωγήν, prosagōgēn 프로사고겐
1) 단어 뜻
1. the act of bringing to, a moving to
2. access, approach
원래 배가 입항하는 의미로, 왕을 알현하거나 신과 같은 높은 존재께로 인도되거나 소개되는 것을 뜻한다. '그'는 당연히 '그리스도'를 의미함으로, 그리스도는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분이심을 나타낸다.
2. 즐거워하느니라 καυχώμεθα 카우코메타
1) 뜻
즐거워하다, 자랑하다
2) 반복
2절 καυχώμεθα, 3절 καυχώμεθα, 11절 καυχώμενοι에 걸쳐 세 번이나 사용되고 있다. 그만큼 칭의의 결과로서 하나님과의 화평으로 인한 기쁨은 성도에게 주어지는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이자 은혜라 하겠다.
① 2절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 하나님과의 화평으로 인한 즐거움
② 3절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 환난 중 즐거움
③ 11절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 하나님 안에서의 즐거움
3.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자, 여기에서 '즐거워하는 이유'를 살펴보자. 흔히 세상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이유인 건강, 물질적 번영, 명예 등의 이유로 인한 한시적 즐거움이 아니다. 우리가 즐거워하게 되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의 환경과 관계가 없는 것이다. 즐거워할 만한 어떤 환경에 있기 때문에 즐거워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기 때문에 즐거워하는 것이므로, 이후 < 환난 - 인내 - 연단 - 소망 >으로의 연결이 자연스럽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게 될 미래를 미리 바라보며 즐거워하는 것이므로, 이는 (오정현 목사님 표현에 따르면) 미래를 현재로 끌어 당겨 살고 누리는 것을 의미하겠다.
| [롬]5:3 |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
| [롬]5:4 |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
자, 이제 난해한 구간으로 들어간다. 개인적으로는 올 초에 주셔서 계속해서 묵상하고 있는 말씀이기도 하고, 이번 특새 때 권성수 목사님의 해석으로 큰 도움을 받은 구절이기도 하다.
'환난 중에 즐거워하다'라는 말은 세상 사람들에게는 어불성설로 다가갈 것이다. 이런 사람을 바보라 여기거나, 심한 경우 정신세계가 좀 이상한 사람으로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이 비그리스도인과 그리스도인의 큰 차이점들 중 하나라 생각해.
1. 환난 θλῖψις Thlipsis 들립시스 [영] tribulation [라] tribulum
Tribulum(트리불룸)은 고대 및 선사 시대부터 사용된 농업용 탈곡기인 탈곡 썰매(Threshing Sledge)를 뜻하며, 나무 프레임 하단에 부싯돌이나 금속 조각을 박아 동물이 끌게 하여 곡물을 타작할 때 사용하는 큰 나무 도구로, 스파이크가 박혀 있었다. 이것이 곡물 위를 지나가면서 알곡과 겨를 분리했다. 타작은 이처럼 알곡과 겨를 분리한다. 또는 포도 압착기에서 '압착'하여 짜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2. 인내 ὑπομονή Hypomonē 휘포모네
견인, 지속적 능력, 압박 아래에서의 신실한 인내를 뜻한다. 바클레이(Barclay)는 이를 "삶의 시련과 환난을 수동적으로 견디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극복하는 덕"이라 정의하며, "순교자들의 덕"이라고 부른다. 단순히 참는 것이 아니라, 무게 아래에서 '버텨내는 끈기'를 의미한다.
ㅡ라고 하는데, 음. 개인적으로 지금 '인내'를 지나고 있는 중이라 이 단어에 대한 마음이 특별하다.
여러 번 하는 말이지만 '환난'은 내 모든 능력과 힘을 다 동원해도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고통의 상태를 의미한다. 해결할 길이 없으니 환난 아래 인간의 선택은 견디거나 포기하거나밖에 없다. 포기함은 생명을 포기하는 것이 되는데,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자살은 금기이므로 결국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선택은 없다. 견디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는 하릴없이 무기력하게 견디는 것이 아니다. 능동적이자 적극적으로 견뎌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어째서 이것이 가능한 걸까?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이 선명하게 이해되고 전적으로 수용될 때 가능해진다. 왜냐하면 예수님으로 인해 우리는 온 세상의 유일한 주인 되신 하나님과 화평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되는 양자의 영을 받았기 때문이다. 세상에 못할 것이 전혀 없으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겪고 있는 환난 또한 통치하신다. 그 하나님의 양자가 되었기에 아빠가 자녀를 사랑하듯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 이를테면 다리가 병약하여 잘 걷지 못하는 아이에게 아빠가 매일 아침 일정 시간의 걷기를 억지로 시킨다. 아이에게는 고통스러운 시간이며 다 포기하고 그저 누워 있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억지로 일으켜 걸어야 하는 일이 병약한 아이에게는 '고난'이라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아이가 원하는 대로 포기하고 누워만 있는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아이는 점점 더 병약해질 것이고 아예 걸을 수도, 일어설 수도 없게 될 것이다. 그러나 힘들고 싫더라도 아빠를 '믿고', 아빠는 나보다 나를 더 잘 알고 정확한 해결책을 갖고 계심을 믿고, 힘들어도 일어서서 걸으라 하시는 대로 걷는 연습을 한다면, 아이의 다리에 힘이 생길 것이고 머지 않아 온전하게 걷게 될 것이다. 환난은 이처럼 '하나님의 성품'을 잘 이해함으로써 능동적으로 견뎌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알게 되면 하나님은 절대로 완전하시며 전지전능하시고 선하시며 우리를 무엇보다 사랑하심을, 그 자비와 사랑을 알게 된다. 그렇게 되면 당장 이해되지 않더라도 하나님 자체를 믿기에 순종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하나님을 잘 알게 되려면 하나님과 사이가 좋아야 하며, 교제 시간을 풍성히 또 깊게 가져야 한다. 하나님과의 교제는 말씀과 기도, 동행과 순종으로 이루어진다.
종종 '인내'에 대해 생각한다. 하나님의 모든 시험 중 가장 힘든 것이 바로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리는 것', 즉 '인내'가 아닐까 싶다. 이는 인간의 태생적 한계에서 비롯된 것으로, 무시간대의 무한하신 하나님의 시간을 시간의 지배 아래에 있는 유한한 인간이 견디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하나님 없는 세상 사람들의 상태이기도 하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시간을 견딜 방법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마치 이 삶이 전부인 듯 불나방처럼 살아간다. 누누히 말하지만 유한이 무한에 닿는 유일한 방법은 무한에 연결되는 것밖에 없다. 유한의 시간이 무한의 무시간을 견디는 유일한 방법은 무한과 연결되어 무한의 통치를 받는 것이다. 무한 + 유한 = 무한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시간의 철옹성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권성수 목사님께서 기막힌 킥을 주셨다. '인내'는 짜증❌, 불평❌'라는 것. 오정현 목사님께서 누누히 강조하신 '원불비 금지!'에 해당하는 말씀이라 하겠다. 참... 내 눈이 어둡다 싶다. 오정현 목사님께서 그동안 그토록 반복해서 외치고 또 외치셨음에도 불구하고 알아보지 못했다. 이 말씀에 적용시킬 생각을 못했다. 반성함. ㅠㅠ
하나님을 신뢰한다면 짜증이나 불평을 해서는 안 된다. 오늘... 토요일 <온전론> 강의 때 박 목사님께서 "그리스도인의 질문은 '어떻게 내게 이럴 수 있습니까!'에서 '왜 이 일을 허락하신 겁니까?'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모든 일은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으므로, 내게 힘든 일이 생길 때 불평이나 짜증을 내는 것이 아니라, 문제 출제자의 의도인 하나님의 뜻을 여쭈어야 한다는 말씀. 이 또한 이번 특새 때의 설교였네. 참... 은혜로운 특새로다...하나님을 제대로 안다면 신뢰할 수밖에 없고, 신뢰한다면 하나님의 선하시고 자비로우신 사랑의 의도를 믿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원불비는 있을 수 없다. 결국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문제이며, 그것은 하나님과의 교제 문제이다. 결국 말씀과 기도로 귀결된다.
3. 연단 δοκιμή Dokimē 도키메
금속을 제련하여 불순물을 제거한 '검증된 인격' 또는 '제련된 금'에 사용하는 단어로, 승인(approval), 즉 외부에서의 인정ㅡ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의ㅡ승인에 대해 말하고 있다. 영어로는 personality 즉 성격, 성품을 이룬다는 뜻이다.
4, 소망 ἐλπίς Elpis 엘피스
막연한 기대가 아닌, 반드시 이루어질 일에 대한 '확신적 기대'로, 이 소망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시련을 견디어 낼 수 있도록 하신다는 사실에 기초하기 때문에 실망으로 끝나지 않는다. 권성수 목사님에 따르면 '(비록 지금 환난 중에 있지만) 하나님께서 반드시 극복시켜 주실 것이(고 복으로 바꾸어 주실 거)야'라는 소망이라고 하셨다.
이것은 단순한 스토아적 고난 감내가 아니며, 환난으로부터 시작되는 연쇄 반응의 최종 결과물이 소망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환난 가운데서 영적으로 즐거워하는 것을 의미한다.
진정한 복음을 깨닫게 되면 내가 의롭다 칭하게 되었음을 알게 되므로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게 되어 하나님께 담대하게 나아가게 되고, 그렇게 하나님과의 교제가 진행되어 하나님을 더 잘 알게 되면 하나님의 성품과 능력을 알게 되기에 환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미래를 현재로 끌어와 누리며 즐거워하게 된다는 말씀.
아아 피곤하다. 두 시간 자고 특새 후 우이교회까지 다녀왔더니 정말 너무 피곤해... 이 묵상은 얼마나 제대로 한 걸까. 너무 피곤해서... 정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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