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롬]5:1 |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
| [롬]5:2 |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
| [롬]5:3 |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
| [롬]5:4 |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
| [롬]5:5 |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
| [롬]5:6 |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
| [롬]5:7 |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
| [롬]5:8 |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
| [롬]5:9 |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
| [롬]5:10 |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
| [롬]5:11 |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
너무 피곤하다... 빨리 하고 어서 자야겠다.ㅠ 롱롱 선데이가 기다리고 있다...
1. 지난 주의 '즐거워하다 καυχώμεθα '와 연결 (영적으로 점점 성숙함)
① 믿음으로 서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며 즐거워하다. (미래)
② 환난 중에 즐거워하다. (과정 - 훈련 중)
③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하다. (존재 자체)
☞ 상당히 좋은 믿음이긴 하나, ①과 ②는 모두 '하나님으로 인해 받게 될 무언가 때문에' 즐거워하는 것이다. 장차 보게 될 하나님의 영광 때문에, 지금 겪고 있는 환난으로 인해 인내와 연단, 소망을 거쳐 맺게 될 열매 때문에 즐거워한다. 그러나 ③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뭔가로 인해 즐거워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안에서, 즉 하나님이시라는 존재 자체로 인해 즐거워하는 것이다. 이것을 보고 https://vanowhite.tistory.com/706 에서 아빠에 대해 쓴 내용이 떠올랐다. '하나님 안'. 마치 '아빠의 품 안'처럼 말이다.
사소할 개인적인 묵상이지만, 어렸을 때 날마다 아빠 품에 안겨 잠이 들었고, tv를 볼 때도 아빠 무릎에 앉거나 아빠 품에서 보았다. 특히 무서운 장면이 나올 때면 아빠의 다리와 팔로 나를 두르신 품 안에 들어가서 보다가 내가 무서워하면 아빠가 내 눈을 가려 주셨다. 한 번에 내 두 눈을 다 덮어 가려 주시는 커다랗고 따뜻한 손. 그 보호의 감각.
어렸을 때 아빠는 굉장히 구두쇠셨어서 뭔가를 잘 사 주시지 않았다. 건물을 지어 임대업을 하셨기에 젊은 나이에 꽤 부유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밀양 산외면 희곡리 최고 부잣집의 막내 아들로, 농사일을 물려 받으라는 할아버지의 명령에 반항하여 고 정주영 회장님처럼 콩이었나 쌀이었나... 뭔가를 훔쳐다 혼자 서울로 올라와서는 대학 다니고 석사까지 받으셨더랬다. 그 당시에 헬스를 해서 근육질 대대장이었고, 승마를 했고, 등등. 아빠의 옛날 사진을 보면서 신기했던 기억. 왜 이런 수다를 떠는지 모르겠는데 모처럼 아빠 생각을 해서 그런 것 같다. 암튼 어렵게 자수성가하셨던 아빠는 괴앵장히 구두쇠셨다. 저어엉말 구두쇠셨다. 내가 물건을 좀 험하게 쓰거나 특히 휴지를 많이 쓰는 편인데... 어쩌면 그 당시 느어무 모든 걸 아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지금에 와 드네. 하지만 반성하겠습니다.ㅠ 근데 기도하면 자주 우는 편이어서 말이지. 눈물이 펑펑펑펑 쏟아지는 걸 어떻게 하나. 암튼 이렇게 수다 떨 시간이 없고.;;
어디가 문제였냐 하면, 어렸을 때 아빠는 굉장히 구두쇠셨어서 뭔가를 잘 사 주시지 않았다. 그런데 가끔씩 장난감이나 뭔가를 사주셨는데, 그때면 세상을 날아갈 것만 같았다. 그런데 말이야... 선물이 아무리 아무리 좋아도 아빠만큼 좋지는 않더라. 아빠랑 있는 시간이 너무 소중하고 좋아서, 아빠 품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고, 아니, 아빠가 있으면 장난감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아빠가 식사하시면 옆에서 한 입씩 얻어 먹고, 아빠가 한약을 드시면 옆에서 인삼이니 대추니를 얻어 먹었다. 어느 정도였느냐 하면, 소 눈알까지 얻어 먹었.;; 아빠 참 나빠...ㅠ 아빠가 초5 때 돌아가셨는데, 중학생이 되어 생물 시간이었나 가사시간이었나 때 소의 구조에 대해 배우면서 문득 생각이 나서 엄마께 물었다가 기겁을 했다. 아빠와 나 둘 만의 비밀이었던 건데... 나중에 ts이 소 눈알을 해부해 보았다 해서, 그때 내가 먹었던 것의 구조를 말했더니 그것이 맞았다고. 아빠 참 나빴어...ㅠㅠ 아 시간 없는데 자꾸 삼천포로.;;; 아빠는 내게 장난치는 것도 좋아하셨어서는. 과하지 않게, 놀림 당하는 것이 딱 즐거울 만큼만 장난치셨다. 그래선가 나의 하나님은 종종 나를 놀리시곤 하신다.
아빠가 가장 재밌었고 가장 좋았다. 그 어떤 장난감도 아빠보다 더 재밌진 않았다.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아빠 품에 안겨 있기만 해도 좋았다. 아빠랑 함께 있으면 잠을 자도, tv를 봐도, 밥을 먹어도, 무엇을 해도 좋았다. 아빠의 뺨을 만지고 눈을 들여다보며, 넓고 탄탄한 가슴에 기대어 아빠의 살내음을 맡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행복했다. 주로 내가 종일 있었던 이야기를 재잘재잘거렸는데, 아빠는 '그랬나', '그랬드나' 하며 웃으며 들어 주곤 하셨다. 학교 숙제를 꼼꼼히 미리 봐주셨고, 내가 여기자가 되기를 원하셨던 아빠는 어려서부터 글쓰기 훈련을 그렇게나 시키셨더랬는데, 맨날 글쓰기를 시키셨어서 아주 고생이었다. 하지만 아빠는 내내 내게서 눈을 떼지 않으시고 내 모든 숙제를 꼼꼼하게 보면서 피드백을 해주셨기 때문에, 아빠 앞에서 고생하는 거라 그마저도 좋았다. 솔직히 글쓰는 건 엄청 귀찮고 정말 내 취향이 아니었더랬는데... 아빠가 원하는 거라 나는 좋았다. 그냥 좋았다. 어렸을 때 내 단골멘트는 '난 크면 무조건 아빠가 결혼하라는 사람이랑 결혼할 거야'였다. 원래는 '난 크면 아빠랑 결혼할 거야'였는데, '그건 아니라'셔서. 그렇다면 무조건 아빠가 결혼하라는 사람이랑 결혼할 것'이라 말했고, 그것은 내 진심이었다. 아빠를 믿었다. 내게 가장 좋은 것만 주시는 아빠. 그러면 아빠는 '그래, 그래야지. 우리 착한 딸래미는 그래야지'라며 기뻐하곤 하셨다. 아빠가 기뻐하시는 걸 보는 것이 너무 좋았다. 정말 너무 좋았다.
음... 이렇게 쓰고 보니 내가 하나님께 잘 못하고 있넹...ㅠㅠ 아빠께 했던 것보다 지금이 훨 못한 것 같다.ㅠ 너무 못한 것 같다.ㅠ 죄송해라...ㅠㅠ 예습하다 말고 엄청 찔림.ㅠㅠ;;
뭐, 오늘의 묵상 다 한 것 같지만서도.;;
5절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1. 이 소망은 앞에서 환난→인내→연단→소망에서의 소망인가 보다.
[NIV]And hope does not disappoint us, because God has poured out his love into our hearts by the Holy Spirit, whom he has given us.
'부끄럽게 하지 않는 것'은 '실망시키지 않는 것'이란 뜻이로구나. [ 환난→인내→연단→소망 ]으로 갖게 된 소망이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 이유는, 반드시 이루어지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 속에 폭포수처럼, 물 붓듯 부어 주신 성령님으로 인해서다.
2. ἐκκέχυται (에케퀴타이) "부어졌다" — 현재완료 수동태
부어진 그 효력이 지금도 지속되는 상태. 성령님으로 인해 우리 마음에 쏟아 부어진 하나님의 사랑이 계속 흘러 넘친다.
3. ἐλπίς (엘피스) "소망" — 확신에 찬 기대
6절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NIV] You see, at just the right time, when we were still powerless, Christ died for the ungodly.
1. ἀσθενῶν (아스테논) "연약한 자들" — 도덕적/영적 무능력
아스테논은 단지 몸이 허약한 것이 아니다. 도움을 받을 수 없고 소망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즉 우리 힘이나 능력으로는 도저히 구원에 이를 수 없는 비참한 상태, 죽어 지옥에 갈 수밖에 없었던 상태, 죄의 상태를 말한다.
2. κατὰ καιρόν (카타 카이론) "기약대로" — 하나님의 시간표에 따라 at just the right time
NIV 번역으로는 '바로 제 때', '바로 옳은 그때'로 번역이 되어 있다. 이 때는 내가 생각하는 때가 아니다. 하나님의 때이다. 하나님은 완전하시므로 하나님의 때 역시 완전하다. καιρόν 카이론, 즉 크로노스 시간 속에 하나님의 카이로스가 이루어진 때를 말한다.
3. ἀσεβῶν (아세본) "경건하지 않은 자들" — 하나님과 반대 방향
이제는 그냥 무능한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을 하는 상태를 말한다. 바로 이런 우리를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
7절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1. δικαίου / ἀγαθοῦ (디카이우 / 아가투) "의인" / "선인" — 인간 사랑의 최고 대상
① 의인: 정의로운 사람.
② 선인: 내게 은혜를 베푼 사람.
☞ 확실히 흔치 않다.
8절.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1. 법정용어 συνίστησιν (쉬니스테신) "확증하다" — 법정적 증명/입증
죄인, 확증하다, 모두 법정용어이다. 그만큼 그리스도의 속량으로 인해 하나님의 사랑이 누구도 뭐라 할 수 없도록 분명하게 확증되었음을 강조한다. 이 사실에 대해서는 그 어떤 이견도, 농담도 끼어들 수 없도록 엄숙한 선포이다. 또한 이것은 막연한 느낌이나 감정적 확신이 아니다. 엄위한 사실의 선포이다.
2. ἑαυτοῦ ἀγάπην (헤아우투 아가펜) "자기의 사랑" — 강조형 재귀대명사
사람의 사랑과 구별되는 하나님 자신의 사랑. 오직 하나님만의 사랑을 강조한다. 앞서 의인이나 선인을 위해 드문 일이지만 죽을 수 있는 것은 그나마 사람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그 차원을 달리 한다. 죄인을 위해 의인이 죽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다. 이기심으로 가득하고 자기중심, 자아실현과 자아성취가 목적인 죄인들의 세계에선 불가능한 일이다. 오직 하나님이시기에 가능하다.
3. 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원 사역
앞서 5절에서 하나님께서 부어 주신 성령님으로 인해 소망이 부끄럽지 않게 될 것이라 하셨다. 이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 성자 하나님이 죄인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성부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성부 하나님 자신의 사랑을 확증하셨다 했다. 우리의 구원과 구원의 소망을 위해 성부 성자 성령, 거룩하시고 거룩하시고 거룩하신 성삼위일체 하나님 모두가 역사하셨다. 우리의 구원은, 소망은, 그토록 우주적인 대사건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나의 구원을 '적당히' 이루지 않으셨다. '당신의 전부를 다 해' 이루셨다. 할렐루야.
9절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1. αἵματι (아이마티) "피" — 역사적 구체성
접때 오정현 목사님께서 '피, 땀, 눈물' 또 뭐였더라, '불, 연기'로 '실체성'을 설교하신 적이 있다. '성자 하나님께서 내 죄를 위해 죽으셨다'라는 표현은 관념적이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피'라고 하면, 즉시 '실재하는 피', '실제 피'를 떠올릴 수 있다. 예수님 희생의 실제성과 구체성이 확연하게 증폭된다.
2. 더욱 — 강조(점층)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께서 죄인을 의롭다 하시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였다. 생명이 피에 있는데 죄의 삯은 사망이니, 죄인 된 우리는 죽게 되고, 그 죽음은 '피'로 상징된다. 그런데 의인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그의 '피'를 흘려 대신 죽으셨으므로, 우리의 죄값이 대신 치러졌고 우리는 '의롭다 칭함을 받았다'. 가장 불가능했던 죄인을 의롭다 하시는 일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인해 성취되었으니, 이미 의롭다 칭함을 받은 우리를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구원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3. 하나님의 진노
죄에 대한 진노
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1. ἐχθροί (에크트로이) "원수들" — 점층의 정점
6절 '연약함', 8절 '죄인'에서 드디어 '원수'로 하나님 앞 우리의 상태는 점점 더 악화된다. 단지 구원에의 소망이나 능력이 없는 죄인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는 원수인 상태, 즉 우리가 지은 죄의 피해자이신 하나님으로서 절대 구원하고 싶지 않으셨을 '하나님 당신의 원수가 된 우리'를 위해 예수님이 죽으셨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므로 우리는 바로 예수님의 원수였다. 자신의 원수를 위해 대신 죽으신 예수님의 사랑은, 가장 구원을 기대하기 힘든 '원수'의 상태에서 가장 강력하고 절대적인 '구원이 주어진 역설 중의 역설이다. 이 분이 하나님이시다.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 사역이다. 하나님이시기에 가능한 구원이다. 하나님이 아니시면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구원이다. 하나님이신 예수님. 할렐루야.
2. κατηλλάγημεν (카텔라게멘) "화목하게 되었다" — 수동태 부정과거
화목하게 하였다가 아니다. 화목하게 되었다라는 수동태이다. 예수님의 희생으로 인한 구원의 결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것은, 바깥, 즉 하나님에게서 주어진 은혜이지 우리가 이루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3. 더욱 — 점층법
[ 의인 → 선인 → 죄인 ] 또한 더 악화되는 점층법이랄까 점강법이랄까, 암튼 그런데, 10절의 내용 상으로 보면, 원수를 위해 죽는 것이 가장 힘든데, 그 가장 힘든 일을 예수님께서 하셨기에 화목하게 되었다. 그러니 이제는 하나님과 원수가 아니라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는 양자의 영을 받은 자녀가 되었기에, 아버지 하나님과 화목한 자녀로서 우리가 구원 받는 것은 더 확실하고 당연한 일이다.
4. 원수였을 때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인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을 때 예수님의 살아나심으로 인해 구원을 받게 된다.
아... 더 묵상하고 싶은데 1시가 넘었다. 너무 피곤해.ㅠㅠ 4시에 일어나야 하는데.ㅠ
11절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1. νῦν (뉜) "이제" — 지금 이 순간의 현재성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것은 이미 (λάβομεν, "받았다" — 부정과거) 과거에 완성된 사건으로, 화목하게 된 상태는 지금 현재, 이제 누리고 있는 것이다.
2. ἐν τῷ θεῷ (엔 토 테오) "하나님 안에서" — 위치이자 내용
앞에서 내가 묵상한 내용이다. 아빠의 품 안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했듯,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한다. 이것은 하나님과 나의 관계성에서 그 위치의 개념이 비롯된다. 하나님과 친하지 않으면 하나님 '안'에 있을 수 없다.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전제로 한다. 그랬을 때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한다.
생각나는 구절이 있네.
시27:4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요즘 거의 매일 이 구절로 기도하고 있다. 내 인생구절이다. 내게 주신 말씀이 많고, 이 말씀 저 말씀 붙잡고 기도를 한다. 그렇게 기도하고 기도하고 기도하고, 간절한 마음에 울고 울고 또 울며 기도한다. 그런데 내 기도의 가장 끝에는... 가장 끝에는 이 기도를 하더라. 매번 그렇다. 이것도 구하고 저것도 구하지만 기도가 정점에 이르면 나는 꼭
"하나님. 꼭 하나만 들어주겠다신다면 이 기도를 들어 주옵소서. 다른 것 다 안 들어주시더라도, 이것 하나만은 꼭 들어 주옵소서.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게 하옵소서. 내 평생에 주를 두 번 다시 떠나지 않으며, 그 어떤 순간에도 주님만을 갈망하며, 주님의 집에 살게 하옵소서. 주님의 품 안에 살게 하옵소서. 언제 어디서든 늘 주의 품 안에 있게 하옵소서. 주님의 품에서 주님의 포근한 살내음을 맡으며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겠습니다. 내 평생에 주의 성전에서 주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주님 만을 사모하겠습니다. 그것 만은 꼭 들어 주옵소서. 저의 모든 기도를 단 하나만 남기라 하신다면, 저는 이 기도로 환원합니다."
눈물이 펑펑펑펑 폭포수로 쏟아지는 기도가 된다.
3. καυχώμενοι (카우코메노이) "즐거워하느니라" — 원어는 "자랑하다"
boast 자랑하다의 뜻이 있다 하네. 하나님 안에 있다는 건 하나님을 제대로 안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안다면 하나님을 사랑할 수밖에 없고 즐거워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을 즐거워하게 되면 자랑할 수밖에 없다. 진정한 효자/효녀는 아빠를 자랑할 수밖에 없다. 아빠를 그 무엇보다 사랑하기 때문이다.
아빠가, 부모가 자녀에게 무엇을 가장 원할까. 아들 딸이 미국의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바로 그 아빠를 사랑하지 않고 즐거워하지 않으며 부끄러워한다면, 그 자녀는 결코 아빠를, 부모를 기쁘시게 할 수 없다. 세상에서 가장 부유하고 가장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대단한 인물이 된다 하더라도, 자신의 아빠를, 부모를 사랑하고 즐거워하지 않는다면, 아빠에게 있어선 불효자/불효녀에 불과하다.
반면, 자랑할 것 아무것도 없는 무능한 자녀라 하더라도, 아빠를 너무나 사랑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만나는 사람들에게마다 자랑하고 다닌다면, 아빠에게는 최고의 효자/효녀가 된다. 아빠를 가장 기쁘시게 하는 자녀가 된다. 우리의 아빠는 찬양 받아 마땅하신 우주의 창조주이자 유일한 주인이시다. 누구에게든 자랑함이 마땅하고 마땅하신 분이다.
주님을 자랑하는 것은 결국 '증인'이 되는 것이다. 주님을, 아빠를 '증거'하는 것이다.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이렇게 지상명령이 연결되는구나. 오묘한 성경이로다...!!!
1시 반이다. 어서어서 잠들어야 함.ㅠㅠ 주여! 세 시간 같은 한 시간의 꿀잠을 주옵소서!!!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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