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롬]4:9 | 그런즉 이 복이 할례자에게냐 혹은 무할례자에게도냐 무릇 우리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이 의로 여겨졌다 하노라 |
| [롬]4:10 | 그런즉 그것이 어떻게 여겨졌느냐 할례시냐 무할례시냐 할례시가 아니요 무할례시니라 |
| [롬]4:11 | 그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그들도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
| [롬]4:12 | 또한 할례자의 조상이 되었나니 곧 할례 받을 자에게뿐 아니라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무할례시에 가졌던 믿음의 자취를 따르는 자들에게도 그러하니라 |
| [롬]4:13 |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
| [롬]4:14 |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상속자이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파기되었느니라 |
| [롬]4:15 |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법도 없느니라 |
| [롬]4:16 | 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는 그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 그러하니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
| [롬]4:17 |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
| [롬]4:18 |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
| [롬]4:19 |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
| [롬]4:20 |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
| [롬]4:21 |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
| [롬]4:22 |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
| [롬]4:23 |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
| [롬]4:24 |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
| [롬]4:25 |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
로마서 4장의 구조는
1) 1-8절 아브라함 —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칭의
2) 9-12절 할례 이전의 칭의 — 이방인도 포함
3) 13-17절 율법이 아닌 약속으로 칭의
4) 18-25절 아브라함의 믿음의 본질과 우리에게 적용
으로 되어 있다. 이 중 9-12절은 건너뛰시는 건데... 일단 이 구절을 살펴 본다면
9절 그런즉 이 복이 할례자에게냐 혹은 무할례자에게도냐 무릇 우리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이 의로 여겨졌다 하노라
이 부분은 할례/무할례에 관한 칭의가 문제이다. 계속해서 아브라함을 중심으로 논지가 전개된다. 일단 아브라함은 믿음이 의로 여겨졌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고 그것을 앞에서 다루었다.
10절 그런즉 그것이 어떻게 여겨졌느냐 할례시냐 무할례시냐 할례시가 아니요 무할례시니라
그 의롭다 칭해진 것이 할례 전이냐 할례 후냐를 따졌을 때 무할례 때 이미 의롭다 칭해졌다. 사실상 할례 받기 20년 전에 이미 의롭다 칭해졌음. 문제는 유대인들이다. 당시 유대인들은 할례 받지 못한 이방인을 사람 취급 안 했으니까, 무할례의 이방인을 의롭다 여길 수 없었다. 오죽했으면 베드로에게 하나님께서 그 동물들 환상을 보여 주셨겠는가.
11절 그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그들도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자, 여기서 할례의 기능이 나온다. 할례는 믿음의 근거가 아니라 믿음의 증표라는 것이다. 할례를 받았기 때문에 의롭다 칭해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할례 이전에 믿음으로 인해 의롭게 되었는데 그것에 대해 인을 친 것, 즉 증표를 써준 것이 바로 할례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로써 아브라함은 모든 할례자와 무할례자, 즉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의 믿음의 조상이 된 것이 맞구나. 무할례자였던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인해 의롭다 칭해졌고, 그 증표로 할례로 인을 쳤으니, 무할례자라도 하나님을 믿으면 의롭게 되는 것이고, 할례자가 믿으면 더더욱 아브라함의 육신적 자손이니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겠다. 물론 육신으로 하나님의 백성이라 해서 믿음이 없어도 의롭다 칭해지는 건 아니겠지. 암튼 할례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할례자든 무할례자든 하나님을 믿기만 하면 아브라함의 자손이 된다는 거다.
12절 또한 할례자의 조상이 되었나니 곧 할례 받을 자에게뿐 아니라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무할례시에 가졌던 믿음의 자취를 따르는 자들에게도 그러하니라
위에서 한 이야기.
13절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할례니 무할례니 율법을 지키느니 안 지키느니로 의롭다 칭해지는 것(상속자 되는 것) 아니고, 오직 믿음으로 인해 칭의됨으로써 상속자가 되는 것이다.
14절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상속자이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파기되었느니라
그렇지. 믿음에 상관없이 율법에 속했다, 할례를 받았다, 즉 아브라함의 혈통적 자손이라는 이유만으로 상속자가 된다면 믿음도 헛것이 되고 약속은 파기된다. 음... 사실 아브라함 때는 할례는 있었으나 율법은 없었지. 율법은 무려 4세기 후 모세 때 시내산에서 주신 거니까.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여기는 유대인들이 율법으로 의롭다 아니다 하는 것은 말이 안 되네 그러고 보니. 아브라함 때는 아예 율법이 없었어. 그리고 노아 때도 율법은 없었다. 그런데도 노아는 의롭다 칭함을 받았다. 율법 자체가 칭의의 근거가 된다면 아브라함 자체가 의로움에 들어갈 수 없는 거다. 아브라함 때는 율법이 없었으니까. 자기 모순이로군 율법에 맴맴거리는 유대인들은.
15절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법도 없느니라
맞지. 내가 물건을 훔쳤어. 근데 그것이 잘못이라고 아무도, 아무 데서도 말하지 않아. 그러면 내가 잘못한 것인지 알 수가 없는 거다. 그런데 법에서 물건을 훔치면 죄라고 해. 그래서 비로소 범법이 되는 것이다. 율법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의 법을 따르지 않는 것을 죄라고 한다. 그리고 우리의 죄는 의로우신 하나님의 진노를 산다.
16절 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는 그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 그러하니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율법에 속한 자, 즉 혈통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인 유대인에게 뿐 아니라 하나님을 믿음으로써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계보에 속하게 된 이방인(우리)도 모두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고 아브라함은 모든 믿는 사람의 조상이 된다.
11절 그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그들도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와 연결되는 구절.
17절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1.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핵심 구절이다.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신 것이 앞에서 나온 언약인 것 같다. 14절의 '약속은 파기되었느니라' 할 때의 약속 메이비?
창세기 17:5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2. 그가 믿은 바
믿음의 결과라는 것이다. 무엇이? 뒤에 나오는 내용이.
3.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드디어 나왔다... 오늘 부활주일 설교의 핵심.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로마서 4장이 어떻게 부활주일 설교가 되는가 했더니 캬...!!!! 역시 우리 선물님...!!!! 이렇게 연결되는구나!!! 감탄 또 감탄.👍👍👍👍👍✨✨✨✨✨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아 뒤에 나오는데, 그러니까 '믿은 결과' 하나님께서는 죽은 자를 살리셨잖아. 부활시키셨잖아. 이것은
1) 아브라함이 죽은 것과 같은 자신의 늙은 몸과 이미 생리가 끊어져 임신과 출산에 관한 한 죽은 것과 마찬가지인 사라의 몸, 즉 두 사람의 육신은 물리적으로 보았을 때는 아이를 가지고 낳기에는 '죽은 상태'나 다름 없었다. 그런데도 아브라함은 믿음이 시들어지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다는 것이다. 이것을 하나님께서는 의로 여겨 주셨고, 그 결과 죽은 것과 같았던 두 사람의 몸을 통해 이삭이라는 생명이 나온 것이다. 즉 출산에 관한 한 죽었던 두 사람의 몸이 다시 살아난 것이었다. 한 가지,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지?
요한복음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한복음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내가 너무너무 좋아하는 말씀이다. 즉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은 것'은 곧 '예수님을 믿은 것'과 같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말씀이시니까!!! 할렐루야!!
2) 또한 이것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적용된다. 앞서 계속 나온 것이 믿음으로 인한 아브라함의 자손 이야기였잖아. 육신의 혈통이 아니라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고 세상의 상속자가 된다는 말. 즉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인해 죽었던 자가 살아난 것과 같이, 오늘날의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죽음에서 부활하게 된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 당신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셨거든!
로마서 8: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아멘!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속하여 죽으셨음과 부활하셨음을 믿고 예수님을 우리 자신의 구주로 받아들임으로써 예수님의 영이자
로마서 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이신
로마서 8: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내주하시게 되고, 그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성부 하나님께서? 성령하나님께서? 문맥상으로 보면 성부 하나님이신 거 같은데... 이 부분 정확히 모르겠넹. 암튼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으로 인해 우리의 죽을 몸도 부활시키신다는 말씀이다!
2.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로마서 8: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히브리서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사람들은 보는 것을 있는 것, 존재하는 것으로 여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없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유물론적, 물질주의적 세계관을 지닌 사람들이 아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으신다. 그러나 계시잖아. 천사도 악마도 있잖아. 사랑도 미움도 기쁨도 짜증도 있잖아. 눈에 안 보이는데 존재하잖아.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즉 사람들이 없다고 여기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다. 이 세상 자체가 하나님 말고는 아무도 없던 무에서 이렇게 창조된 것인데, 대체 이 세상에서 그 무엇을 하나님께서 못 만들어 내시겠는가 말이다! 도무지 하나님으로서는 하지 못하실 일이 없으신 거야.
마태복음 3:9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거 봐. 하나님께서는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신다니깐? 심리적으론 내가 그 돌들 중 하나이지 말이징... 쭈글;;;
18절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다. 앞서 말했듯 그의 몸과 사라의 육신 상태로서는 도저히 도저히 임신과 출산을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랐다.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는 것 자체가 믿음이라는 거다. 그러니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을 의로 여기시고는 약속하신 말씀대로 그로 하여금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신 것이다.
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많은 민족의 아비가 될 것이라 약속하신 것이 아브라함 나이 75세, 그리고 그가 마침내 이삭을 낳은 것이 100세이니 무려 25년 동안 하나님의 약속 말씀에 대한 아브라함의 진정한 믿음이 견고해지기까지 기다리신 거네... 그렇다면... 지금 내게 주신 언약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도... 그 언약들에 대한 나의 진정한 믿음이 굳건해지기를 기다리고 계신 거겠네....?? 아... 말씀 많이 읽어야겠당.ㅠ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말씀으로 말미암는 거니깐. 또 쭈글.;;;
19절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단번에 이렇게 믿음이 굳건해진 것은 아니었지. 지난 주 설교에도 말씀하신 것처럼 애굽 바로 때도, 아비멜렉 때도 사라를 동생이라 속였으며, 또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리지 못해, 즉 온전히 믿지 못해 이스마엘을 얻었으니까. 그때만 해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아브라함의 믿음과 신뢰가 전적이지 않았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더 기다리셨다. 음 그런데... 어쩌면 앞 18절에서 한 생각이 틀린 걸지도 모르겠네...? 창세기 17장과 18장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내년에 이삭을 낳을 것이라 말씀하신 것은 아브라함 99세 때였다.
창세기 17:1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창세기 17장 17절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 하고 18절 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아뢰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그 때만 해도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믿지 않았다. 그렇다면... 100세 때 이삭을 낳은 후에 믿었는가...? 아니면 그 1년 사이에 믿었는가...? 아 헷갈.;;;🤪 아니다. 그 1년 사이였나 보다. 왜냐하면 이 절에서 말하기를 자기 몸과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했다고 했거든. 그 말은 곧 이삭이 태어나기 전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1년 사이 아브라함은 어째서 하나님을 믿게 되었을까?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노출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믿음은 들음에서 들음은 말씀에서... 그렇구나...!!! 하나님을 만났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시 한 번 언약을 받았기에 그의 믿음이 완성되었구나!! 오...!!!
이것은 신빙성이 있는 것이, 내가 작년 내내, 그리고 올해도 상당히 이상하다 생각하는 것이 하나 있거든. 내가 이전에 비해 성경말씀을 많이 읽지 못하고 있는데? 그런데도 이상하게 믿음이 점점 더 굳건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어째서일까? 고민해 봤는데, 아무래도 새벽예배 때문인 것 같다는 결론에 닿았다. 새벽예배 때마다 목사님들의 정제되고 영양가 풍부한 설교를 듣잖아. 그 설교가 주님의 말씀이잖아. 매일 같이 주님의 말씀을 혼자 큐티 예습하고 이어서 목사님들의 깊은 해석까지 듣게 되니, 내 부족한 믿음이 나도 모르게 이상하게도 굳건해지고 있더란 말이야... 역시 말씀이구나. 믿음의 밀도를 높이는 것은 말씀이구나! 좀 더 읽어야겠다. 사실 나도 알고 있다. 지금 이 광야의 시기에 나는 말씀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걸. 왜냐하면 광야 동안 율법이 내려왔고 하나님의 성막이 내려왔거든. 하나님과 동행하며 애굽에 있는 동안 들을 수 없었던 하나님의 말씀이 모세를 통해 쏟아진 시기가 바로 광야였다. 그리고는 충분한 말씀과 임재의 동행을 한 결과 마침내 가나안 땅, 언약의 땅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래서 나도 알고 있다. 작년부터 계속 '말씀을 읽어라'고 끝없이 말씀을 주고 계시거든. 근데 난 어쩐 일인지 올해 들어 말씀을 큐티만 겨우 읽고 있어서. 그리고 주일 설교 준비 때만 읽고 있어서... 앙대게따. 통독을 다시 회복해야겠다! 이대로는 앙대!!!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을 더욱 주옵소서! 주여!!!!😫😫😫
20절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아무 것도 이루어진 것 없는 동안에도 이미 하나님을 믿음으로써 하나님의 약속(또한 말씀으로 이루어진 것이다)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진 증거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계속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징.
21절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같은 말이다. 약속하신 말씀을 능히 이루실 것을 확신하는 것! 아멘! 나도 내게 주신 수많은 주님의 언약의 말씀들을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합니다! 아멘!
22절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오와...!!! 꺄아...!!! 나두 의로 여겨지고 있는 중... 좀 더 굳건한 믿음이 필요한 걸 거야. 히힛.
| [롬]4:23 |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
| [롬]4:24 |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
| [롬]4:25 |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
아멘! 위에서 한 말이다.
음. 그런데 본문은 여기까지이나 아브라함의 죽음에서 다시 부활한 사건에 대해서는 죽은 몸에서 이삭이 태어난 것 말고 하나가 더 있지.
히브리서 11:19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이것이 아브라함의 믿음이었다. 아브라함은 그냥 순종한 것이 아니라, 부활을 믿고서 순종했다. 왜냐하면 '사라의 몸에서 나게 될 아들이 너의 자손이 될 것인데, 그 아들의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고 하나님께서 직접 주신 언약의 아들이며 이름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당신의 말씀을 반드시 이루시는 하나님의 성품상, 바로 그 말씀하신 언약의 아들인 이삭을 죽인다면 다시 살려서 자신의 대를 잇게 하지 않으실 수가 없으심을 믿은 거임. 크...! 대단한 믿음이다!! 하나님 정말 좋으셨겠당...💖 감사해라... 난 아직 믿음이 연약해서 맨날 휘청휘청 흔들리는데 ㅠㅠ 아직도 병아리 믿음인데 ㅠㅠ 아브라함은 이렇게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딴딴한 믿음의 소유자였구나... 우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주어서 아브라함님에게 넘 감사함.💖 사실 난 그래서 우리 선물님에게 감사함. 그 탄탄한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니깐.🥰
아아 이 뒤에는 지피티 씨의 표를 실어야겠다.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났엉.ㅠ
요소이삭 사건예수 그리스도
| 약속의 아들 | 아브라함의 외아들 이삭 |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 |
| 기적적 출생 | 죽은 몸에서 출생 | 동정녀 탄생 |
| 아버지의 사랑 | '네 사랑하는 독자' |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
| 희생 명령 | 하나님이 요구 | 하나님이 계획 |
| 산으로 올라감 | 모리아 산 | 골고다 |
| 순종 | 저항 없음 | 십자가 순종 |
| 죽음 직전 | 실제 죽기 직전 | 실제 죽음 |
| 되돌려 받음 | 상징적 부활 | 실제 부활 |
아아... 이렇게 보니 아브라함은 정말이지 대단한 사람이었고 또 영광스러웠겠다... 부럽당.ㅠㅠ
믿음에 관하여... 좀 더 깊이 묵상하고 싶으나 이미 자정이 넘어따아...ㅠㅠ 언능 자야 해. 나 4시 반에 일어남.ㅠㅠ
캬아...!!! 선물님 증말 대단하심...!!! 어케 이 구절에서 부활주일 설교를 딱!!! 크...!!!👍✨💖
이 중에 얼마나 겹칠까? 아니면 아예 완전 다른 말씀하시는 거 아니심? 으앙;;;;😫😫😫😫😫;;;;
암튼 지금은 자야게따. 감탄하고 기대하며 잠들어야징. 히힛.💖🥰
| [개인QT] 로마서 5:5-11 (0) | 2026.04.19 |
|---|---|
| [개인QT] 로마서 5:1-4 (0) | 2026.04.12 |
| [QT] 로마서 4:1-8 Sola Fide (0) | 2026.03.29 |
| [개인훈련QT] 로마서 3:(26)27-31 (0) | 2026.03.20 |
| [QT] 디모데전서 6:11-21 (0) | 2026.01.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