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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훈련QT] 로마서 3:(26)27-31

Q.T.

by Vano 2026. 3. 20. 00:10

본문

(본문)

[롬]3: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롬]3:26 곧 이 때에 자기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롬]3:27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롬]3:28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롬]3:29 하나님은 다만 유대인 하나님이시냐 또한 이방인하나님은 아니시냐 진실로 이방인 하나님도 되시느니라
[롬]3:30 할례자믿음으로 말미암아 또한 무할례자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롬]3:31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 자기, 하나님 ] 7번
[ (예수를) 믿음 ] 6번
[ 의로우심, 의롭다 ] 5번

[ 의롭다 하심 ] 3번
[ 율법 ] 3번
[ 믿음으로 말미암아 ] 3번
[ 이방인, 무할례자 ] 3번

[ 유대인, 할례자 ] 2번
[ 행위  ] 2번
하나님께서는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시며 이 믿음은 율법을 세운다.

(문단나누기)
A. 26절. (예수를 화목제물로 세우심으로써 드러나는)  하나님의 의 (공의 δικαιοσύνης Justice + 칭의 δικαιοῦντα Justification)
B. 27-28절. 자랑 배제 (행위 ❌, 믿음⭕)
C. 29-30절. 한 분이신 하나님은 모두의 하나님이시다.
D. 31절. 믿음은 율법을 파기하지 않고 세운다.

 (내용요약)
26절. (예수를 화목제물로 세우심으로써) 하나님은 하나님의 의로움을 나타내시고 예수 믿는 자도 의롭다 하심.
27절. 오직 믿음으로 된 것이니 (사람이) 자랑할 것 없다.
28절. 믿음으로 사람은 의롭게 된다.
29절. 하나님은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의 하나님이시다.
30절. 할례자도 무할례자도 한 분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의롭다 하신다.
31절. 믿음으로 율법을 굳게 세운다.

(단어연구)
* 의로우신 δικαιοσύνης (dikaiosynēs, just)
-  하나님 자신의 본질적 의로우심
- 단순히 도덕적 깨끗함이 아니라,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통치적 정의
- 과거 참으심(ἀνοχή) 속에 숨겨진 의를 “지금 이 때”(νῦν καιρῷ)에 나타내심.

* 의롭다 하시는 
δικαιοῦντα (dikaiounta, justifier)
- 칭의를 수여하시는 하나님의 행동
- 법정적 용어로, 죄인을 '무죄'라고 선언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행위
- 하나님 자신이 의로우시면서 동시에 믿는 자를 의롭다 하심(just and justifier

 * 자랑 καύχησις (kauchesis, Boasting) 
- 자기 자신의 공로나 혈통적 특권을 내세우는 유대주의적 태도를 지칭 

- 자기 의지로 구원 받는 교만
- 종교적 우월감 
➡ 믿음은 이것을 구조적으로 제거함

(배경연구)

◇ 바울은 주후 57년경 고린도에서 로마 교회(유대인+이방인 혼합 공동체)에 이 서신을 보냈다. 로마 교회는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유대인 추방(AD 49) 후 이방인 중심으로 재편되었고, 유대인 귀환 후 율법 vs 은혜 갈등이 있었다. 바울은 로마 방문 전 자신의 복음을 체계적으로 설명하며(롬 1:15), 유대인-이방인 화합과 칭의 교리를 강조했다.

(다른 번역)
[헬라어]
Rom 3:25 ὃν προέθετο ὁ θεὸς ἱλαστήριον διὰ τῆς πίστεως ἐν τῷ αὐτοῦ αἵματι εἰς ἔνδειξιν τῆς δικαιοσύνης αὐτοῦ διὰ τὴν πάρεσιν τῶν προγεγονότων ἁμαρτημάτων ἐν τῇ ἀνοχῇ τοῦ θεοῦ 
Rom 3:26 πρὸς τὴν ἔνδειξιν τῆς δικαιοσύνης αὐτοῦ ἐν τῷ νῦν καιρῷ εἰς τὸ εἶναι αὐτὸν δίκαιον καὶ δικαιοῦντα τὸν ἐκ πίστεως Ἰησοῦ
Rom 3:27 ¶ ποῦ οὖν ἡ καύχησις ἐξεκλείσθη διὰ ποίου νόμου τῶν ἔργων οὐχί ἀλλὰ διὰ νόμου πίστεως
Rom 3:28 λογιζόμεθα γὰρ δικαιοῦσθαι πίστει ἄνθρωπον χωρὶς ἔργων νόμου
Rom 3:29 ἢ Ἰουδαίων ὁ θεὸς μόνον οὐχὶ καὶ ἐθνῶν ναὶ καὶ ἐθνῶν
Rom 3:30 εἴπερ εἷς ὁ θεός ὃς δικαιώσει περιτομὴν ἐκ πίστεως καὶ ἀκροβυστίαν διὰ τῆς πίστεως
Rom 3:31 νόμον οὖν καταργοῦμεν διὰ τῆς πίστεως μὴ γένοιτο ἀλλὰ νόμον ἱστάνομεν
[ESV]
26 It was to show God’s righteousness at the present time, so that he might be just and the justifier of the one who has faith in Jesus. 
27 Then what becomes of our boasting? It is excluded. By what kind of law? By a law of works? No, but by the law of faith. 
28 For we hold that one is justified by faith apart from works of the law. 
29 Or is God the God of Jews only? Is he not the God of Gentiles also? Yes, of Gentiles also, 
30 since God is one—who will justify the circumcised by faith and the uncircumcised through faith. 
31 Do we then overthrow the law by this faith? By no means! On the contrary, we uphold the law.

(묵상)

[롬]3:26 곧 이 때에 자기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Rom 3:26 πρὸς τὴν ἔνδειξιν τῆς δικαιοσύνης αὐτοῦ ἐν τῷ νῦν καιρῷ εἰς τὸ εἶναι αὐτὸν δίκαιον καὶ δικαιοῦντα τὸν ἐκ πίστεως Ἰησοῦ
26 It was to show God’s righteousness at the present time, so that he might be just and the justifier of the one who has faith in Jesus. 

1. 의로우심과 의롭다 하심 δικαιοσύνης δικαιοῦντα
1) 하나님의 딜레마 
지난 주 설교에서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어째서 우리의 죄 문제는 말씀으로 해결하시지 않고 하나님(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몸을 찢고 피를 흘리심이라는 우주적 값을 치루셔야만 했나?에 대한 통렬하고도 애통한 묵상이 있었다. 그러게. 그 생각은 못 해 봤는데, 선물님의 그 피 토하듯 애절한 절규를 들으며 나도 애통해졌다. 그리고 돌아서 묵상에 들어갔다.

창조와 죄사함은 다르다. '창조'에는 선악, 옳고 그름의 문제가 들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창조는 전적으로 창조주이신 하나님께만 해당하는 사항이므로, 완전히 옳으신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니 창조 또한 완전히 옳다. 아무 문제 없다.

그러나 죄사함은 다르다. '죄사함'을 위해선 '죄'와 '사함(용서)' 둘 다가 필요하다. '죄'는 사람에 해당하고, '사함'은 하나님께 해당하는 사항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사람의 죄는 악이자 그름이고, 하나님의 사함은 선이자 옳음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죄=사함이라 하면 악=선이 되며 그름=옳음의 구조가 되어 버린다. 이것은 성립하지 않으며, 여기에서 딜레마가 생성된다.

하나님의 딜레마는 이것이다. 하나님은 선이시며 사랑이시기에 우리를 용서하고 싶으시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은 의로우시기에 불의와는 공존이 전혀 불가하시다. 의와 사랑 둘 다가 하나님의 속성이자 성품이시기에, 그 성품을 적용하시려는 대상인 인간이 죄를 짓지 않은 상태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으나, 죄를 지어 버린 상황에선 절대적 문제가 되는 것이었다. 죄와 함께할 수 없으신 절대 선 하나님께서는 죄인과 공존할 수 없으셨다. 그런데 동시에 죄인을 너무 사랑하시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고대근동의 신화 거짓에 등장하는 신들에게는 문제가 없다. 하나님을 흉내 내었으나 결국 인간이 만들어낸 짝퉁에 불과한 그것들에는 공의도 사랑도 없거든. 사람이 만들어냈기에 그 다른 '신'들에겐 사람의 불의와 사랑 없음이 반영될 뿐이었다. 그러나 유일한 창조주이자 참 신이신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달라, 의로우신 동시에 사랑이시다. 그래서 의로우심으로 인해 절대 용서할 수 없으신 인간을 사랑으로 인해 용서하실 계획을 세우셨다. 그 비밀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속죄물이자 화목제물(힐라스테리온 ἱλαστήριον, hilasterion)이시다.

2) 예수 그리스도. 화목제물(힐라스테리온 ἱλαστήριον, hilasterion) 

[요]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1: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요]1: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아멘.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악이 전혀 없고 선하시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실 때의 그 말씀께서 육신을 입고 오셔서 우리 가운데 거하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인간 몸을 입으신 하나님이시다. 그러니 100% 인간이신 동시에 100% 하나님이시다. 인간이시기에 인간의 모든 죄성의 영향을 받으시지만, 하나님이시기에 죄가 없으시다. 단 한 순간도 죄를 선택하신 적이 없고, 단 한 번의 죄도 지으신 적이 없다. 이는 행위뿐 아니라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 있어 마음이나 생각조차 단 한 번의 죄도 지으신 적이 없으신, 하나님 앞에 '완전한 인간'이었다. 이미 죄 속에 태어난 인간으로서는 불가한 일이었다. 

하나님이시나 죄의 지배를 받는 인간의 몸을 입으셨기에 (이 부분은 나의 상상이다) 육신으로 지은 죄(선악과를 '먹음')로 인해 이 육신에 새겨진 죄의 모든 유혹과 영향을 그대로 다 받으셨을 것이다. 올 초에 받은 심비 말씀 중에

에스겔 36: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가 있었는데, 이 말씀을 암송하며 신기했더랬다. 새 영과 새 마음을 주시는데 우리의 마음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신다... 육신은 마음이 거주하는 집의 역할을 하기 때문인 걸까? 암튼, 접때 잠시 묵상한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선악과를 바라보는 것'으로 죽는다 하지 않으셨다. 심지어 탐하거나 더 나아가 만지고 향을 맡는 것으로 죽는다 하지 않으셨다.

창세기 2: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when you eat of it you will surely die. [NIV]

먹을 때 반드시 죽는다 하셨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묵상이 진행되고 있다. 선악과를 만지거나 향을 맡는 것은 인간의 육신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그런데 그것을 먹게 되면, 악이 내 육신 안으로 들어오게 된다. 선물님께서 종종 말씀하시듯 You are what you eat 내가 먹는 것이 나를 구성하기 때문이다. 선악과를 먹었으니 악이 내 몸의 일부가 되었다. 그리고 우리의 영혼은 육신 속에 거한다. 

그러나 동시에 내 마음에 없는 것을 행동하지 않는다. 내가 어떤 행동을 하는 데에는 반드시 그 근원이 되는 마음이 있다. 슬픈 마음이 들기 때문에 울고, 분노하는 마음이 들기 때문에 소리를 지른다. 선악과를 마침내 먹고야 만 것은, 그 안에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하는 교만의 마음이 있었다. 그러니 굳이 따지자면 시작은 마음의 부패가 먼저였겠으나, 하나님께서는 최초의 인간에게 거기까지도 용납하셨다.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기 전까지 먹고 싶다고 이미 생각하지 않았겠나. 

창세기 3:3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하필 에덴동산의 중앙에 있었다. 하나님의 명백한 의도를 알 수 있다. 동산 어디서나 보이는 나무. 또는, 동산의 어디로 가건 지날 수밖에 없는 곳에 이 유일한 금기 나무가 서 있다. 아담의 일은 

창세기 2:15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에덴 동산을 경작하며 지키는 것이었다. 그러니 아담의 유일한 베필이었던 하와는 아담과 함께 에덴 동산을 경작하며 지키러 다니면서 하루에도 여러 번 동산 중앙에 있는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한 그 선악열매를 보았을 것이며, 마음으로 탐했을 것이었다.

사실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선 당신의 성품대로 하시자면 이 부분에서 이미 그들을 치셨어야 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참으셨다. 이는 사람 창조의 핵심이 '육신'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과 다른 것이 바로 이 육신이다. 하나님은 영이시고 우리도 영으로 지으셨다. 하나님께 마음이 있는 것처럼 우리에게도 마음이 있다. 그런데 하나님은 육신이 아닌 영이시며, 영이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육신으로 지으셨다. 물질 세계 창조의 마지막이자 정점으로 물질 속에 영을 넣으신 것이다. 그러고는 당신을 대리하여 물질 피조세계를 다스리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우리는 육신 속에 두신 영인데, 그 '물질'이 이전에 창조하셨던 천사들과 다른 점이기에, 하나님께서는 이 육신으로 마침내 죄를 짓기까지는 길이 참으신 것이었다. 창세기 3장에 범죄 장면이 나오기에 이 범죄가 창조 즉시 이루어진 것 같아 보이지만, 모르지, 이 사이 수천 년이 흘렀을지? 삼천포가 심했는데...;; 다시 돌아가서.;;;

죄로 인해 영이 죽어(... 이 부분 잘 모르겠다) 마음까지 온통 부패한 인간은 죄의 노예이기에 죄의 유혹과 영향을 받는 족족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다. 고통조차 없이 죄에 복종한다. 그러나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마음이 부패하지 않으셨다. 육신을 입으셨기에 육신에 새겨진 죄의 모든 유혹과 영향을 그대로 받으셨지만, 마음이 부패하지 않으셨기에 죄를 선택하지 않으실 수 있었다. 그것이 쉽지 않지 않으셨을까? 영이신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으신 것 자체가 온몸을 쇠사슬로 칭칭 묶으신 것과 같았을 텐데 그 육신이 죄의 영향을 받는 속성이 있는 것이었으니, 모르긴 몰라도 가시 쇠사슬로 매일 찔림을 받으셨을 것 같다. 나의 상상이니 틀렸을 수도 있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완벽한 하나님이시자 완벽한 인간이신 예수님은 육신의 죄성을 완전히 이기셨다. 인간의 모든 죄가 담겨 있는 인간의 육신을 입었으나, 그 육신과 육신 속에 거하는 마음은 물론이고, 그 마음을 통해 육신으로까지 단 한 번도 죄를 짓지 않은 완전히 의로운 사람이신 예수님이 죽는 것은 부당했다. 그런데 그가 모든 인류의 죄를 그의 육신에 담아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이제 사탄은 단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만큼은 하나님께 송사할 자격을 잃었다.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하나님의 피조물(죄 없는 인간의 육신)에 가한 사탄의 부당함(죽음)에 대해 심판하실 터였다. 죄의 삯으로 사망을 휘두르는 사탄에게 있어, 죄 없이 죽으신 인간 예수 그리스도는 당위성과 논리가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담 한 사람으로 인해 모든 인류의 죄를 붙잡고 송사하는 사탄이기에, 바로 그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영역 안에 들어가는 사람은 누구도 송사할 수 없다.

[롬]5:18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롬]5:19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3) 하나님의 의 (공의 δικαιοσύνης Justice + 칭의 δικαιοῦντα Justification) 
죄의 삯은 사망이다. 인간은 죄를 지었다. 인간은 죽는다. 그것이 하나님의 공의이다. 인간을 구원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다. 인간이 죽었다. 그러니 하나님의 공의가 충족되었다. 그런데 죄인이 아니라 의인이 죽었다. 죄의 결과가 사망인데 죄가 없기에 그는 죽어선 안 되는 존재였음에도 불구하고 죽으셨다. 음... 인간의 '육신'은 '죽을 수 있음'의 기능이었겠구나... 하나님이나 천사, 사탄와 같은 '영'은 죽을 수 없으니까. 음. 그렇다면 죄를 지은 사람의 영이 죽는다는 것은 뭐지?

에베소서 2: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에베소서 2: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이사야 59:2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에베소서 4:18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요한복음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영이 죽는다는 것이 문자 그대로 영이 죽어 그 존재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임.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듣지 않으시며, 우리와 소통하지 않으시는 상태를 영이 죽었다고 하는구나... 근데 명확하게 '영이 죽었다'라는 표현은 없는 것 같은뎅. 이 부분은 정확하지 않고 지피티 씨에게 물어도 위의 구절 외 성경에서 '영이 죽음 = 하나님의 단절'이라 명확하게 규정한 부분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어서 이 부분은 넘어가기로 한다.

죄가 없어 죽어선 안 되는 존재가 죽으셨다. 그 부당한 피값으로 모든 죄인들의 생명을 살 수 있게 되었고,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다. 이 짧은 문장을 이렇게 돌아왔어.;;ㅠㅠ 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을 의롭다 하심, 즉 '칭의'하신다.

4) 카이로스( καιρός) vs. 크로노스(χρόνος) 
Rom 3:26 πρὸς τὴν ἔνδειξιν τῆς δικαιοσύνης αὐτοῦ ἐν τῷ νῦν καιρῷ εἰς τὸ εἶναι αὐτὸν δίκαιον καὶ δικαιοῦντα τὸν ἐκ πίστεως Ἰησοῦ
① ἐν (at) ② τῷ (the) ③ νῦν (present) ④ καιρῷ (time) = 지금 시간에, 이 때에

우리 교회 성도들에게는 익숙한 '카이로스'이다. 단순한 시간의 흐름을 뜻하는 크로노스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하신 구원의 결정적 적절한 때를 의미하는 '카이로스'는, 선물님 표현대로 '신적 개입의 시간'이다. 하나님과 관계된 시간. 하나님의 의지가 드러나는 시간. 구약 내내 예언하신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마침내 신적 개입으로 보내신 바로 그때. 그 카이로스 시간은,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는 동시에 죄인을 의롭다 하여 구원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까지 충족시킨다. 로마서가 성경의 핵심이고, 그 중 이 3장 26절이 모든 것의 핵심이라 하는 글을 읽었는데, 과연 그러하다.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 모두를 증명하신 바로 그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명확하게 선포하신 말씀이니 말이다. 거룩한 구절이다. 할렐루야. 이 놀라운 구속사역을 이루신 성부 성자 성령, 거룩하고 거룩하고 거룩하신 성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모든 영광을 홀로 받으시옵소서. 아멘. 아 근데 나 지금 26절 하나 한 거임?? ㅠㅠ


[롬]3:27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롬]3:28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Rom 3:27 ¶ ποῦ οὖν ἡ καύχησις ἐξεκλείσθη διὰ ποίου νόμου τῶν ἔργων οὐχί ἀλλὰ διὰ νόμου πίστεως
1. 배제하다 ἐξεκλείσθη(exekleisthē) 
부정과거 수동태로서 '배제되었다, 차단되었다'
to shut out, to turn out of doors
to prevent the approach of one
☞ 완전히 닫아버리고 접근 자체를 막는 것. 무엇에 대한? καύχησις (kauchēsis) 자랑에 대한. 아예 자랑 자체를 못하게 하는 구조로서 'πίστεως (pisteōs) 믿음'이 있다.
☞ 전폭 <인간> 부분의 첫 말씀이 '인간은 죄인입니다. 죄인은 자신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이다.

로마서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죄인이 자신을 구원할 수 없고 죄인인 인간이 다른 죄인인 인간을 위해 죽어 보아야 결국 그는 자기 자신의 죄 때문에 죽는 것일 수밖에 없다. 아무리 엄마가 딸을 사랑해도, 아무리 아빠가 아들을 사랑해도, 엄마와 아빠는 아들 딸을 위해 대신 죽어 줄 수 없다. 자신의 죄 때문에 죽을 뿐이다.

구원에 나의 공로가 전혀 작용할 수 없다. 구원받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기에 내가 자랑할 것이 없되 아무것도 없다.

2. 행위 (ἔργων) vs. 믿음 (πίστεως)
행위는 인간의 공로이고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에베소서 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전폭 1단계 첫 단계에서 암송합니다. 오늘 좀 있다 1시에 있을 관계전도에서 난 이 믿음과 인간 부분 암송하고 제시하게 됨. 주여!!😫;;; 믿음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로 의한 결과라는 사실이 놀랍지. 그러니 믿음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맞구나. 지난 주 설교에 따르면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두 손이 믿음이라 하셨다. 하늘에서 내려 주시는 선물인 은혜를 두 손 내밀어 받는 믿음. 내 것으로 삼는 것이 믿음. 

야고보서 5:15-16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크니라
히브리서 10:38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행위는 인간 내면에서 비롯된 결과이고 믿음은 인간 외부(하나님)에서 주어진 은혜의 결과이다. 구원을 받는 근거가 되는 예수님을 구주로 '믿음'조차 내 공로가 아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다'라고 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조차 성령님을 통해 주시는 선물인 것이다. 구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히 삼위일체 하나님의 작품이다.  구원을 계획하신 분도 성부 하나님이시고 실행하신 분도 성자 하나님이시고 그것을 믿게 하시는 분도 성령 하나님이시므로,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 만의 작품이다. 여기에 나의 어떤 것이 전혀 작용하지 않았기에 내 자랑할 것이 전혀 없다.

아래에는 긁은 것.ㅠ

3. 칭의(稱義, Justification, δικαιόω, dikaioō)
1) 뜻
δικαιόω' - 의롭다고 선언하다', '법적으로 의롭다고 판결하다'
법정적 칭의 justificatio forensis -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법정적 선언
- 개신교 칭의의 기본 내용을 정리하면: 첫째, 칭의는 과정이나 변화가 아니라 법정적 판결이다. 둘째, 칭의를 통해 죄인은 죄를 용서받아 하나님의 자녀로 받아들여진다. 셋째, 칭의는 과거·현재·미래에 모두 적용되며 반복되지 않는다. 넷째, 칭의는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로만, 믿음을 통해 이뤄진다. 다섯째, 인간에게 내재적인 의로움이 없으므로, 하나님의 외재적인 의, 곧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움이 전가되는 것이다. 
https://biblehub.com/commentaries/romans/3-27.htm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11:1은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하나님께서 유효하게 부르신 자들을 또한 값없이 의롭다 하시는데, 이는 그들 안에 의를 주입함으로써가 아니라, 그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그들의 인격을 의롭다 하시고 받아들이심으로써, 그들 안에 이루어진 것이나 그들이 행한 것 때문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만을 위하여, 믿음 자체나 믿는 행위나 그 밖의 어떤 복음적 순종도 그들의 의로 전가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순종과 만족을 그들에게 전가함으로써이며, 그들이 믿음으로 그분과 그분의 의를 받고 쉬는 것이며, 이 믿음은 그들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다."

구약 히브리어 צָדַק(tsadaq, 자다크) - "의롭다고 선언하다"는 법정적 의미

창 15: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로마서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빌립보서 3:9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


2) 구조
소극적 요소 (Negative Element: 사면 pardon) - 죄의 용서, 죄책 제거, 정죄 면제, 수동적 순종 기반 (그리스도의 죽음)
적극적 요소 (Positive Element: 전가된 의 imputed righteousness) -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 의인 신분 획득, 하나님의 자녀됨, 능동적 순종 기반 (그리스도의 생애)

3) 특성
① 은혜성 - 그리스도의 공로로 말미암는 전적인 은혜(롬 3:20–24)
② 인정성 - 실제 상태는 죄인이나 하나님께서 의롭다 인정하심으로 법적 신분이 의인이 된 것
③ 전가성  - 자신의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의가 전가됨의 결과(롬 5:18–19)
④ 즉각성 - 점진적이 아니라 신앙을 가짐과 동시에 즉각적으로 완전하게 이루어짐
⑤ 선언성 - 성화시키는 분은 성령이나, 의롭다고 선언하시는 분은 성부 하나님이시다

4) 근거
그리스도의 두 가지 순종 개혁신학은 칭의의 객관적 근거를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으로 구별하여 설명한다.
수동적 순종(Passive Obedience, Obedientia Passiva)
수동적 순종(obedientia passiva)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대한 것인데, 그가 그 어떤 저항을 하지 않으면서, 죄값을 치루기 위해 고난과 십자가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인 것을 말한다.
→ 이는 신자의 죄 용서(소극적 칭의)의 근거가 된다. 
② 능동적 순종(Active Obedience, Obedientia Activa) 
능동적 순종(obedientia activa)은 그리스도의 탄생에서 죽으심까지, 특별히 그의 공적인 사역 기간 동안에, 죄를 범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뜻에 완벽하게 순종하셨음을 설명하는 것이다. 만일 그리스도가 모든 율법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능동적인 순종을 하지 않았다면, 죄 없으신 어린 양이라고 할 수 없게 되며, 성도들에게 그리스도의 의로움을 전가시켜줄 아무런 근거도 없어지게 된다.
→ 이는 신자에게 그리스도의 의가 전가되는(적극적 칭의) 근거가 된다.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60문답: "마치 내가 전혀 죄를 범하지 않은 자처럼, 그리고 내가 친히 그리스도가 나를 위해 이루신 온전한 순종을 성취한 것처럼 하나님께서 인정하신다."

제2 스위스 신앙고백: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 덕분에 우리의 죄에 대해 은혜롭게 대하시고, 그 죄를 우리에게 돌리지 않으시며,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의 것으로 전가하신다(고후 5:19 이하; 롬 4:25)."

5) 수단: 믿음(Faith)
J. I. Packer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로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값없이 주시는 의를 받으러 내미는 빈손, 전유적 도구이다." 믿음은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행위가 아니며, 믿음 자체가 칭의의 근거도 아니다.

종교개혁의 핵심 선언은 "우리는 믿음을 통해, 그리스도 덕분에(on account of Christ) 구원받는다"는 것이지, "그리스도를 통해 믿음 덕분에(on account of faith) 구원받는다"는 것이 아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신 하나님의 은혜로운 행동이지, 믿음 자체가 아니다. 만일 믿음이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행위이거나, 하나님이 그 믿음을 보시고 칭의로 보상해 주시는 것이라면, 그것은 기능적으로는 로마 가톨릭 신학과 다름없다.

믿음과 행위의 관계
야고보는 "칭의하는 믿음은 결코 홀로 있지 않다. 그것은 살아 있는 믿음이기 때문에 선행으로 표현될 것이다. 선행은 칭의 믿음의 실재에 대한 증거이지, 그것의 대체물이거나 준비물이거나 추가물이 아니다"라고 가르친다.


 

① ② ③ ④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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