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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요한복음 1:43~51 "무화과나무 아래로 Beneath the Fig Tree" 윤대혁 후임목사님

Sermon

by Vano 2026. 7. 13. 22:53

본문

정말 그거 https://www.youtube.com/watch?v=U_YAwm0i4jc

 

[요한복음 1:43~51]
43  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The next day Jesus decided to leave for Galilee. Finding Philip, he said to him, 'Follow me.'
44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이라
Philip, like Andrew and Peter, was from the town of Bethsaida.
45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Philip found Nathanael and told him, 'We have found the one Moses wrote about in the Law, and about whom the prophets also wrote-Jesus of Nazareth, the son of Joseph.'
46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이르되 와서 보라 하니라
'Nazareth! Can anything good come from there?' Nathanael asked. 'Come and see,' said Philip.
47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When Jesus saw Nathanael approaching, he said of him, 'Here is a true Israelite, in whom there is nothing false.'
48 나다나엘이 이르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
'How do you know me?' Nathanael asked. Jesus answered, 'I saw you while you were still under the fig tree before Philip called you.'
49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Then Nathanael declared, 'Rabbi, you are the Son of God; you are the King of Israel.'
5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Jesus said, 'You believe because I told you I saw you under the fig tree. You shall see greater things than that.'
51 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He then added, 'I tell you the truth, you shall see heaven open, and the angels of God ascending and descending on the Son of Man.'



윤대혁 후임목사님 · 주후 2026.07.13 주일예배

* 문화평론가 손드라 티더맨(Sondra Thiederman) - “편견은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것으로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만이 지니는 특정한 성향이 아니라, 모든 선한 사람들이 갖고 있는 삶의 태도이다”
우리는 삶의 경험과 가치관과 시각에 따라 어떤 일을 판단한다.


* 나다나엘: 편견과 선입견에 사로잡힌 그가 예수님을 만나고는 '바돌로메(돌로메의 아들)'로 이름이 바뀐다. 변화한 그는 앞으로 페르시아와 인도에서 복음을 전하다 순교하게 되었다.

* 빌립이 예수님에 대해 증거했던 처음 당시 나다나엘은 편견과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요한복음 1:46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 나다나엘 본인도 갈릴리 가나라는 시골 출신이었다. 그리고 나사렛은 깡시골이었다. 시골 갈릴리 가나에서도 대단한 것이 나오지 않는데, 더 깡시골 나사렛에선 대단한 것이 날 수 없다는 편견이 있었다.
= 가데스 바네아에서의 열 정탐꾼도 이런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부정적인 생각 vs. 믿음의 생각
☞ 생각의 차이
- 로마 치하 이스라엘의 부정적인 상황 + 타락한 제사장들과 유대인들로 인한 부정적인 상황 ⇒ 편견과 선입견 고착
= 교회 나오지 않는 남편, 방황하는 자녀, 암울한 나라 상황에 대한 오늘날 우리들의 실망과 부정적인 낙담.
= 요즘 청년들의 늘어가는 우울감과 좌절감
☞ 패냉회비(패배주의, 냉소주의, 회의주의, 비관/비판주의)


† 선한 것을 기대할 수 없을 때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 

1. 주님이 다 알고 계심을 고백해야 한다. 

요한복음 1:48 나다나엘이 이르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
→ 선한 것이 없어 마음 상해 가고 있는 너를 내가 안다.
이 고난과 광야가 언제까지이겠습니까 하는 나를 주님께선 다 알고 계신다.
☞ 사람은 '자신을 알아줄 때' 위로를 받는다.


2. 주님이 다스리시는 왕이심을 고백해야 한다. 
요한복음 1:49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 선한 것이 없는 이 세상에 왕은 당신이십니다. 주님이 이 땅에 임하시면 선한 것이 없는 이 땅이 진정한 왕으로 인하여 평강이 올 것입니다 라는 고백이다.
→ 선한 것이 없는 나의 삶에 주님께서 왕으로 임하시면 내 삶이 바뀔 것입니다.
→ "주여, 우리가 부르짖나이다" "주여, 은혜를 주옵소서!": 주님이 은혜를 주시면, 주께서 왕으로 나의 삶을 다스려 주시면, 나의 삶의 모든 문제가 완전하게 해결됨을 믿습니다.
☞ "왕이신 주님, 저를 다스려 주옵소서."
- 39세에 담임목사님이 되신 사랑의빛선교교회에서의 두 가지 문제. 재정과 사고. 그 때 왕으로서 주님의 통치를 간절히 기도하셨고 해결되었다. 


3. 주님이 하실 일을 꿈꾸어야 한다. 
요한복음 1:50-51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 두려워하던 야곱에게 주셨던 바로 그 말씀을 나다나엘에게도 주셨다.
☞ "단지 내 삶의 문제를 해결하실 뿐 아니라 그 해결을 뛰어넘어 더 큰 하나님의 일을 행하여 주시고 저를 사용해 주실 줄 믿습니다."
타이거 와이프가 순한 양 되기를 꿈꾸시는 남편분들 ㅋㅋㅋ




 ◇ ☞ † ⇒ ☆ § ※  ♥      ② ③ ④  


[요]1:19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네가 누구냐 물을 때에 요한의 증언이 이러하니라
[요]1:20 요한이 드러내어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니 드러내어 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한대
[요]1:21 또 묻되 그러면 누구냐 네가 엘리야냐 이르되 나는 아니라 또 묻되 네가 그 선지자냐 대답하되 아니라
[요]1:22 또 말하되 누구냐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대답하게 하라 너는 네게 대하여 무엇이라 하느냐
[요]1:23 이르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
[요]1:24 그들은 바리새인들이 보낸 자라
[요]1:25 또 물어 이르되 네가 만일 그리스도도 아니요 엘리야도 아니요 그 선지자도 아닐진대 어찌하여 세례를 베푸느냐
[요]1:26 요한이 대답하되 나는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으니
[요]1:27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하더라
[요]1:28 이 일은 요한이 세례 베풀던 곳 요단 강 건너편 베다니에서 일어난 일이니라
하나님의 어린 양을 보라
[요]1:29 이튿날 요한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요]1:30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요]1:31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
[요]1:32 요한이 또 증언하여 이르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요]1:33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요]1:34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 하니라
[요]1:35 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요]1:36 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요]1:37 두 제자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거늘
[요]1:38 예수께서 돌이켜 그 따르는 것을 보시고 물어 이르시되 무엇을 구하느냐 이르되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니 (랍비는 번역하면 선생이라)
[요]1:39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보라 그러므로 그들이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 날 함께 거하니 때가 열 시쯤 되었더라
[요]1:40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는 두 사람 중의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
[요]1:41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요]1:42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요]1:43 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요]1:44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이라
[요]1:45 빌립나다나엘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요]1:46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이르되 와서 보라 하니라
[요]1:47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요]1:48 나다나엘이 이르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
[요]1:49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요]1:5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요]1:51 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가나의 혼례
[요]2:1 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요]2:2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
[요]2:3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요]2:4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요]2:5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요]2:6 거기에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요]2: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요]2:8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요]2:9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요]2:10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요]2:11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요]2:12 그 후에 예수께서 그 어머니와 형제들과 제자들과 함께 가버나움으로 내려가셨으나 거기에 여러 날 계시지는 아니하시니라

흥미로운 포인트가 많은 본문이네... 빨리 자야 하는데 또 검색하고 묵상하며 노느라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ㅠ

1. 지리적 위치 
1) 예수님 이동 경로와 사건 발생의 장소: 베레아 베다니(≠ 마르다/마리아의 베다니)  갈릴리 가나 

[요]1:28 이 일은 요한이 세례 베풀던 곳 요단 강 건너편 베다니에서 일어난 일이니라
[요]1:43 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요]2:1 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사건의 순서와 발생 장소 
[1일] 요단강 건너편 베다니: 세례요한이 바리새인들의 정체성 질문에 답하다.
[2일] 같은 베다니: 세례요한이 예수님에게 세례를 베풀고 예수님에 대해 증언하다: 세상 죄를 지고 가시는 하나님의 어린양
③ [3일] 같은 베다니: 세례요한과 있던 두 제자(그중 한 명이 안드레)가 예수님을 따라가다.
[4일] 베다니 또는 근교: 예수께서 갈릴리로 향하시던 중 빌립과 나다나엘을 만나시다 본문
[7일 - 이동 시간 사흘 경과] 가나: 혼인 잔치에서 예수께서 첫 기적을 행하시다.

※ 고려할 포인트 
1: 본문의 '요단강 건너편 베다니'는 '나사로/마르다/마리아의 베다니'와 다른 곳임. 후자는 예루살렘 바로 곁에 있음.
2. 본문의 요단강 건너편 베다니의 구역은 베레아이며 분봉왕 헤롯 안디바가 통치했다. 그런데 이후 사건들이 일어나고 예수님의 주요 사역지가 되는 갈릴리 지역도 분봉왕 헤롯이 통치했다. 그런데 두 지역 사이는 사마리아로 인해 단절되어 있었다. 흥미로운 일이다.

구역 위치 통치자(예수님 공생애 당시) 대표 지명
갈릴리 북부 헤롯 안디바(분봉왕) 나사렛, 가나, 벳새다
사마리아 중부 로마 총독(직할, 유대와 함께 관리) 수가, 세겜
유대 남부 로마 총독(본디오 빌라도) 예루살렘, 여리고, 베들레헴
베레아 요단강 동편, 유대 맞은편 헤롯 안디바(분봉왕, 갈릴리와 함께) 베다니(요단강 건너편)

3. 사도 요한은 1-2장을 기록하는 데 있어 '이튿날' 세 번과 '사흘째 되던 날'로 그 시간의 추이를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다. 7일 째에 예수님의 첫 이적이 일어남.

2) 예수님과 제자들의 고향으로서의 지역
① 예수님: 갈릴리 나사렛
 벳새다: 갈릴리 빌립, 베드로, 안드레

[요]1:44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이라

③ 나다나엘: 갈릴리 가나

[요]21:2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


3) 고향으로서의 지리적 위치에 따른 추측
나의 묵상이 본격 시작되는 지점이다. 

[요]1:45 빌립 나다나엘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요]1:46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이르되 와서 보라 하니라


빌립은 나다나엘을 찾아갔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굳이 찾아갔다. 빌립이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아 좇아가자마자 찾아가 예수님을 전한 대상이 나다나엘이라 함은 그만큼 나다나엘은 빌립의 두터운 신임을 얻었다는 뜻이다. 나다나엘의 회의적인 대답에도 불구하고 빌립은 포기하지 않고 '와서 보라'고 강청한다. 이는 그만큼 빌립의 신앙심이 두터웠음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그만큼 나다나엘로 하여금 예수님을 간절히 만나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기도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빌립은 왜 이렇게 나다나엘을 강청했을까? 빌립이 나다나엘을 예수께로 데려오는 것과, 안드레가 그 형 베드로를 예수께 데려오는 것은 비슷하면서도 차이가 있다.

[요]1:41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요]1:42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우선 안드레의 경우 세례요한이 그와 예수님을 연결하는 매개인이 되었다. 바로 전날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으로서 예수님을 증언하며 세례를 주었고 그 자리에 세례요한의 제자였던 안드레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만약 그랬다면 하늘에서 성령께서 비둘기로 내려와 예수님 머리에 앉으셨고, 또 성부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던 그 역사적인 순간 또한 안드레는 목격했는지도 모른다. 그랬기에 그 다음날 예수께서 세례요한과 두 제자 앞을 거니셨고, 그를 본 세례요한이 '(바로 어제 말한 그) 하나님의 어린양이다'라 했을 때 두 제자 중 한 명이었던 안드레는 예수님을 쫓아갔던 것이다. 세례요한이 말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은 바로 구약에서 예언했고 온 이스라엘이 기다리고 있는 바로 그 메시아를 의미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안드레는 성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순간을 목격했을 수 있고, 아니었더라도 자신이 믿고 따랐으며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인정한 선지자였던 세례요한이 직접 증언한 메시아로서의 예수님을 따랐고, 바로 그 예수님을 베드로에게 증언했을 때 베드로 역시 따라갔다. 왜냐하면 동생으로서 전날 세례요한이 예수님께 세례를 주었을 때의 환경과 증언과 기적의 순간들을 베드로에게도 증언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요]1:43 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요]1:44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이라
[요]1:45 빌립 나다나엘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요]1:46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이르되 와서 보라 하니라

그런데 빌립의 경우 예수께서 직접 빌립을 만나 '나를 따르라' 하셨다. 그런 빌립은 공교롭게도 바로 전날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던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인 벳새다 사람이었다. 즉 고향 친구였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 고향에서 상당히 떨어져 있는 요단강 건너편의 베다니 또는 그 근방에 있었다. 아무래도 타지에서 그들은 뭉쳤을 확률이 많고, 전날 예수님의 제자가 된 안드레와 베드로가 빌립에게 예수님에 대해 말했을 확률이 크다. '그가 바로 그 메시아다. 다른 사람도 아닌 세례요한이 증언했다'라고. 빌립은 그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다나엘의 경우는 다르다. 나다나엘은 세 사람과 다른 지역인 '가나' 출신이다. 벳새다와 가나와 나사렛 모두가 갈릴리 지역 안의 동네이긴 하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벳새다는 좀 다른가 보지만, 통념적으로 당시 모두 갈릴리 지역으로 고려했다고 한다. 하지만 갈릴리 지역 내에서도 벳새다는 가나와 나사렛에서 상대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었다. 가나는 나사렛과 아주 가까웠다.

나다나엘은 자신의 고향 가나와 아주 가까운 나사렛을 잘 알고 있었다. 시골인 가나보다 더 깡촌인 나사렛. 어쩌면 가나 출신 사람들에게 있어 나사렛은 멸시할 만한 곳이었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당시 갈릴리 지역 자체가 이스라엘 전체에 있어 덜 중요한 취급을 받는 지역이었고, 그중에서 나사렛은 정말로 멸시받았던 곳이었다고 한다.

나다나엘의 친구 빌립은 나다나엘을 상당히 좋아했던 것 같다. 나다나엘은 신실하고 진지하며 그 속에 간사함이 없는 참 이스라엘 사람인 만큼 신앙심이 좋았던 것 같다. 그런 나다나엘은 메시아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고, 빌립 또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다나엘의 거부감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만나라고 강청한 것이 아니었을까?


2. 예수님과 나다나엘의 대화 

[요]1:47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요]1:48 나다나엘이 이르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
[요]1:49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요]1:5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요]1:51 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이 대화 이상하지 않아요? 예수님께서 사람들과 하실 때의 대화, 특히 1:1 대화 중 상당 부분은 '징검다리 화법'을 사용하시는데, 대개는 그 대화를 잘 쫓아오지 못하거든. 수가성 여인도 그랬고 영생에 대해 대화했던 니고데모도 그러했다. 지식의 여하에 상관없이 예수님의 대화는 사람의 논리적 전개를 뛰어넘으면서도 논리적으로 하자가 없는, 아주 독특한 화법을 사용하신다고 나는 생각하는데, 그것을 '징검다리 화법'이라고 칭하고 있다. 1 - 2 - 3이 아니라 1 - 2.5 - 5.5 식이랄까. 아주 흥미롭다. 

그런데 희한하게 나다나엘이 그 화법을 잘 따라간다. 정말 신기해. 1에서 예수님께서 1.5를 하시면 나다나엘이 2를 답하고, 예수님께서 3을 말씀하시면 나다나엘이 4.5를 말하고 예수께서 7을 답하시는 격이다. 두 분 정말 흥미로워... 그래서 여기에서 행간을 상상하는 묘미가 크다. 다만 그 사이에 성경적 오류가 없는 것이 중요하며. 그래서 클로드와 제미나이와 코파일럿 셋을 오가며 확인하느라 묵상의 시간이 길었다. 아... 자야 하는데.ㅠ

이제부터는 나의 상상이 아주 강력하게 가미된 묵상임을 밝힌다. AI를 통해 오류 여부를 확인했지만, 그래도 나의 성경적 지식과 신학적 지식은 미천하며 AI 역시 오류의 확률을 간과할 순 없으므로(실제로 이번 묵상에서도 제미나이가 잡아내지 못한 나의 오류를 클로드가 잡아냈다. 아무리 AI라도 사람의 교차확인이 꼭 필요함), 얼마든 또 다른 오류가 발견될 확률이 있음을 미리 밝힌다. 그냥 이렇게 상상한 사람도 있구나, 하며 편하게 읽어 주세요.

1) 예수님 says, "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나다나엘이 자신에게 나아오는 것을 보신 예수께서 대뜸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참으로 당혹스럽다. 이 부분을 예수님의 신성이라 보는 것이 보편적인 해석인 것 같다. 사람의 마음과 본질을 한눈에 꿰뚫어 보시는 것은 창조주로서 당연한 능력이며 권리이다.

그렇다면 나의 궁금증은 이것이다. 예수님께선 나다나엘의 어떤 점 때문에 그를 '참 이스라엘 사람'이며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다'라고 하셨을까?

이스라엘 - 야곱(간사함) 
이스라엘은 얍복강가 씨름 직후 환도뼈가 부러진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직접 붙여 주신 이름이다. 즉 하나님을 직접 만난 야곱, 자신의 마지막 환도뼈가 부러진 야곱이 바로 하나님의 언약 백성 이스라엘이 된다. 나다나엘은 바로 그 이스라엘 중에서도 참 이스라엘 사람이다. 이제 하나님의 언약 백성다운 사람이란 뜻이다.

하나님의 언약백성은 어떤 사람인가?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킨다는 것은 율법을 지킬 뿐 아니라 하나님의 예언도 믿고 기다리는 사람이다. 메시아에 집중하는 사람이다. 

그 속에 '간사함이 없음'은 '야곱스럽지 않다'는 뜻이다. 

[창]27:35 이삭이 이르되 네 아우가 와서 속여 네 복을 빼앗았도다
[창]27:36 에서가 이르되 그의 이름을 야곱이라 함이 합당하지 아니하니이까 그가 나를 속임이 이것이 두 번째니이다 전에는 나의 장자의 명분을 빼앗고 이제는 내 복을 빼앗았나이다

야곱=עֲקֹב "발꿈치를 잡은 자/속이는 자이다. 

이와 같이 나다나엘을 향해 야곱을 연상시키는 단어를 사용하신 것은 이후 야곱의 벧엘 사닥다리 꿈에서 보여 주셨던 모습과 비슷한 말씀을 나다나엘에게 하신 것으로 연결된다.

[요]1:51 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창]28:12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어느 분 설교에서였지... 권성수 목사님이셨나... 이 사닥다리가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셨는데. 나 그 설교 정리 안 했나 봄. ㅠㅠ 이래서 설교는 다 정리해 두어야 하는데.ㅠㅠ 그 설교에서 이 두 본문을 연결시켜 주셨더랬다. 아주 명쾌하고 시원했던 설교였는데 아까움.ㅠ

② 간사함이 없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란? 
다시 말하지만 그는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기다리는 사람이다. 즉 언약의 사자인 메시아를 기다리는 사람이다. 간사함이 없으니 이것저것 재지 않고 자신의 유익으로 재물이나 사람들의 인정(당시 바리새인들이 추구했던) 따위에 관심을 두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만 집중했던 사람. 하나님의 언약인 메시아를 간절히 기다리고 그에게 집중했던 사람이었을 것이다.

2) 나다나엘 says,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이것은 충분히 할 만한 질문이다. 자신을 알지도 못하신다고 여겼던 예수께서 대뜸 자신을 보자마자 '참 이스라엘 사람이니 그 속에 간사함이 없느니' 말씀하시는데, 예수님이 누구시길래 자신의 속까지 아신다는 듯 말씀하시는 건지 의아함이 당연하다. 여기의 나다나엘의 반응은 납득할 만하다.

3) 예수님 says,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
예수님의 이 말씀은 그럴 수 있겠다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말씀이다.

4) 나다나엘 says,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자, 여기에서 나다나엘의 실력?이 드러난다. 정말 뜬금없고 정말 놀랍다. 대체 어떤 경로를 통해 나다나엘은 이런 어마어마한 신앙고백을 했는가? 이 고백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는 베드로의 신앙고백과 닮았다. 그런데 베드로는 그 신앙고백을 3년 간 예수님의 제자로 살면서 수많은 기적과 예수님의 말씀과 그 성품을 다 경험한 결과 나온 제자로서의 삶의 결정체였다. 베드로의 고백을 기점으로 예수님의 고난과 죽으심, 그리고 부활이 선포된다. 사실상 제자들의 마지막 고백으로 정점을 이루는 고백이다. 그런데 그와 아주 흡사한 고백을 나다나엘이 예수님을 만나자마자 한다. 예수님에 대해 아무 것도 겪지 않은 상태로 그가 이 엄청난 고백을 하고 있는 거야... 어째서???

5) 예수님 says,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대박...! 이게 무슨 말씀인 거야... 내가 두 분 옆에 있었더라면 멘붕이 왔을 듯. 대체 무슨 말씀들이신 거야??!!?? 이러며.;; 

① 내 말을 네가 믿느냐. 보지 않고 믿는 자는 더욱 큰 복이 있나니, 너는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다. 
이 말씀은 실제로 성취되었다. 바로 이 말씀하신 사흘 뒤, 다른 곳이 아닌 바로 나다나엘의 고향 '가나'에서 말이다. 예수님께서는 가나 혼인잔치에서 그의 첫 이적인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셨다. 

[요]2:1 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요]2:2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
[요]2:3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요]2:11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개인적으로 이 부분 묵상에서 은혜를 많이 받았는데, 나다나엘의 하나님을 향한 진지함과 정성을 예수님께서 칭찬해 주시고 귀하게 여겨 주신 것 같아서. 그래서 나다나엘의 신앙고백에 대한 응답으로 나다나엘의 고향에서 첫 번째 기적, 즉 '메시아로서의 증거'를 보이신 것 같아서. 내가 알고 사랑하는 예수님이시라면 그렇게 해 주셨을 것 같아서. 예수님은... 정말 자상하셔서... 사람의 마음 하나하나 그냥 넘어가지 않으시거든... 아주 작은 정성 하나도 귀하게 여겨 주시고 꼭 풍성하고 좋은 것으로 응답해 주시거든... 나의 예수님은 반드시 그러한 분이셔서. '알 사람만 알도다' 응답이랄까. 나다나엘은... 사흘 후 예수님의 이 기적을 보고 그 심정이... 얼마나 놀라웠을까. 얼마나 환희에 찼을까.

②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그 속에 야곱의 간사함이 없고 하나님의 언약을 기다리며 하나님의 말씀인 나(예수님)의 말을 그대로 믿는 너 나다나엘과 그와 같이 나의 말을 믿는 너희 모두에게는 야곱에게 일어났던 신적개입이 일어날 것이며, 세상으로부터 눈을 들어 하나님 나라의 일을 나(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보고 꿈꾸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사자들은 일반인들이 볼 수 없는 존재들이며 그들의 일도 볼 수 없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면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일을 하는 천사들의 역할을 알게 된다. 무엇보다 예수님(사다리)을 통해 우리가 올려 드리는 기도들을 천사들이 들고서 하나님의 보좌로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알게 된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인해 들어 주시고 응답해 주시기 때문에, 우리의 삶과 이 세상에 하나님의 신적개입을 직접 기도로 체험하게 될 것이다란 뜻이다.


3. 무화과나무의 의미 
내용이 길어지고 있어서... 나다나엘은 내가 좋아하는 인물들 중 하나이기 때문에... 암튼 그래서 지금 컴퓨터가 엄청 버벅거린다. 컴퓨터가 너무 낡아서... 이상하게 긴 용량을 쓰면 커서가 엉뚱한 데 가 있기도 하고 페이지가 너무 렉에 많이 걸려...ㅠ 그래서 긴 글을 쓰고 싶은데 쓰는 것이 물리적으로 쉽지 않음. 이미 오랜 시간 묵상을 한 후에 정리하는 거라 더욱 그렇다. 아아 10시. 나 자야 하는데.ㅠㅠ 아직 쓰고 싶은 것을 쓰지 못한 거여서.ㅠ 어서어서 빨리 넘어가야겠다.;;

1) 묵상의 자리
이거 다 검색했는데... 나 이거 지금 6시간 내내 하고 있는 데다가 어서 잠을 자야 해서... 20개 넘게 열려 있는 창들 중 찾아내기 피곤함.ㅠ 암튼 당시 유대인들이 하나님과 그 말씀에 대해 묵상할 때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묵상하곤 했다고 한다.

① 큰 나무, 그늘 
검색하고는 무화과 나무가 생가보다 아주 크다는 사실에 놀랐다.

첫 번째 + 두 번째 사진 출처: https://ilan-nursery.co.il/en/catalog-en/ficus-carica/ * 세 번째 사진 출처:https://www.alamy.com/stock-photo-israel-the-upper-galilee-fig-tree-ficus-carica-in-biria-forest-15783269.html
첫 번째 사진 출처 :https://stacylynharris.com/growing-holy-fruits-on-southern-soil-history-and-adaptability-of-the-fruits-of-the-bible/

과연... 무더운 낮 동안 앉아서 묵상하기에 딱 좋게 생긴 나무네... 무화과나무에 대해서도 조사했는데. ㅠㅠ 내 에너지가... ㅠㅠ

② 성경 속 무화과나무 
크게 보면 아담과 하와, 나다나엘, 예수님께서 저주하신 나무로 볼 수 있다. 물론 그 사이에 이스라엘의 평화와 번영의 상징으로 신명기 8장에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의 하나로 제시되어 있기도 하다. 그 중 본문과는 상관없이 내가 흥미롭게 보았던 것이 아담과 하와의 무화과나무인데, 정확하게는 무화과나무잎이다. 

[창]3: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왜 무화과나무잎이었을까를 물었더니 클로드와 제미나이 씨의 답인 즉, 당시 고대근동의 나무 중 잎이 가장 큰 나무였다 한다. 근데... 나는 왜 사람의 손과 같아 보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지?? 위의 사지니에 보면 무화과나무잎은 희한하게도 사람의 손과 같이 다섯 갈래로 갈라져 있지 않나. 손으로 가리자니 양손이 자유로워야 하니 대신 비슷하게 생긴 무화과나무잎으로 가린 것은 아니었을까? 혼자 생각해 봄. 이건 중요한 건 아니고. 중요한 것은 역시 '묵상의 자리'라는 점이다.


4. 나다나엘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무엇을 묵상했을까?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대체 그는 무엇을 묵상하고 있었길래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 너를 보았다'라는 말씀에 대뜸 나다나엘이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라는 어마어마한 비약의 고백을 했을까?

그는 확실히 메시아에 대해 묵상하고 있었을 것 같다. 

이제부턴 그냥 글을 적어 나가야겠다...

그러니까 나다나엘은 성경에 대해 상당히 잘 알고 있었다. 그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했던 것은 구약의 어디에도 '나사렛에서 메시아가 날 것'이란 구절이 없기 때문이었다.

[미]5: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베들레헴은 예언에 있는 마을이었다. 그래서 만약 빌립이 예수님을 '베들레헴 출신'이라 했더라면 나다나엘도 눈을 반짝였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구약의 어디에도 '나사렛'을 메시아와 연관지은 구절은 없다. 예수님은 베들레헴에선 태어나기만 하셨을 뿐, 자라기는 나사렛에서 자라셨으니까. 그 배경을 다 알지 못한 나다나엘으로서는 예수님을 언약의 메시아로 볼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빌립은 자신이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는 바로 그 메시아라고 했다. 선지자들이 말한 그 메시아가 예수님이라고. 성경을 진지하게 연구하고 묵상하던 나다나엘로서는 의심하고 거부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그는 어째서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보았다'라고 하시자마자 예수님을 바로 그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을까?

[클로드 답변] - 구약에서 '메시아'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언급한 부분
1. 나단의 예언 — 사무엘하 7:14 (다윗 언약)

가장 근본이 되는 본문입니다. 하나님이 선지자 나단을 통해 다윗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삼하 7:14)

이 예언은 일차적으로 다윗의 아들 솔로몬에게 적용되지만, 다윗 왕조가 "영원히" 서리라는 약속(삼하 7:16)과 결합되어 있어, 궁극적으로는 영원한 다윗의 자손 곧 메시아에게서 완전히 성취되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이 본문은 역대상 17:13에도 그대로 반복됩니다 → About Bible Prophecy, 삼하 7:14 해설

2. 시편 2:7 — 가장 직접적으로 인용되는 본문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시 2:7)

이 시편은 그리스도 시대 이전부터 이미 유대 전통 안에서 메시아 예언으로 이해되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바벨론 탈무드(수카 52a)는 시편 2:7~8을 메시아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직접 인용합니다. 즉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표현을 메시아에게 적용하는 것은 기독교의 독창적 해석이 아니라, 랍비 유대교 전통 안에서도 이미 통용되던 메시아 이해였습니다 → About Bible Prophecy, 시편 2:7 해설

신약은 이 시편을 예수님께 명시적으로 적용합니다. 히브리서 1:5과 5:5은 이 구절을 그리스도께 적용하며, 사도행전 13:32~33에서 바울도 이 시편이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성취되었다고 선포합니다 → Friends of Israel Gospel Ministry, "Psalm 2: The Messianic Kingdom Foretold"

3. 시편 89:26~27 — 같은 계열의 본문

"그가 내게 부르기를 주는 나의 아버지시요... 내가 또 그를 장자로 삼고 세상 왕들에게 지존자가 되게 하며"(시 89:26~27)

이 역시 다윗 언약(삼하 7장)을 시적으로 풀어낸 본문으로, 다윗 계열 왕(메시아)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고 하나님이 그를 "아들"이자 "장자"로 삼으신다는 동일한 신학적 틀을 보여줍니다.

4. 나다나엘의 고백과의 연결 — 왜 "하나님의 아들"과 "이스라엘의 임금"이 나란히 나오는가

이 대목이 정말 중요합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표현은 천사(욥 1:6), 이스라엘 민족 전체(출 4:22~23), 그리고 특히 이스라엘의 왕(삼하 7:14)에게 사용되는 표현이었습니다 → Jews for Jesus, "The Messiah would be called God's Son"

즉 구약적 용법에서 "하나님의 아들"과 "이스라엘의 임금"은 본래 거의 동의어에 가까운 왕적·메시아적 칭호였습니다. 다윗 언약을 알고 있던 나다나엘이 요한복음 1:49에서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이스라엘의 임금"이라고 두 표현을 나란히 고백한 것은, 바로 이 구약적 배경(삼하 7:14, 시 2:7) 안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표현입니다.

이것이 지난번 살펴본 크리소스토무스의 관찰과도 정확히 맞물립니다 — 나다나엘의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은 이 시점에서는 아직 요한복음이 나중에(특히 서문 1:1, 1:14) 계시하는 본질적으로 신적인 아들 됨의 충만한 의미라기보다는, 구약이 오랫동안 예비해 온 다윗 계열의 왕적 메시아라는 의미에 훨씬 가까웠을 것입니다. 반면 베드로의 고백(마 16:16)은 사역 후반부, 예수님의 신성이 훨씬 더 분명히 드러난 시점에서 나온 것이기에 그 깊이가 다르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나의 비약적인 상상이자 추측이다. 나다나엘은 무화과나무 아래 앉아서 메시아를 묵상하고 있었다. 메시아에 대한 구약의 예언들을 하나하나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아들'과 '이스라엘의 임금'에 대해 집중해서 묵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였다면... 예수님의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 너를 보았다'라는 말씀에 이 고백을 하려면, 아마도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다음과 같은 묵상을 했을 것 같다. 

'메시아라면 우리의 구원자라면 하나님의 아들일 것이고 이스라엘의 임금이실 텐데. 그렇다면 지금 내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앉아서 당신 자신을 이렇게 묵상하며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는 것도 아실 텐데. 왜냐하면 하나님의 아들이시면 창조주이실 거니까. 사람의 외면뿐 아니라 내면까지 다 아실 테니까. 정말 그가 메시아가 맞다면, 하나님의 아들이 맞다면, 나를 보았을 때 내가 이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메시아를 묵상하고 있음을 말씀해 주시면 좋겠다. 그러면 나는 바로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며 이스라엘의 왕'이라 고백할 텐데!

내가 이렇게 상상한 이유는 내가 종종 쓰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내게는 말씀으로 많이 임재하시고 또 응답해 주시는 편이시라. 그러니까 상당히 정확한 워딩을 나도 올려 드리고, 하나님께서도 그렇게 응답하시곤 하시기 때문이다.

평생 어머니와 사이가 너무 나빠서 만나면 욕만 듣는다 했던 sy집사님이 어느 날 내게 전화를 해서 "자매님이지? 이 기도 한 사람 자매님이지?"라 물었다. 자신을 너무 싫어하고 자신도 미워하는 친엄마께서 어느 날 자신을 불러 밥을 먹였다. 집사님이 먹는 동안 어머니는 두 손을 턱에 괴고는 말도 안 되도록 사랑스런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시더니 난 데 없이 평생 들어보지도, 상상도 못했던 말씀을 하셨다. "우리 딸, 사랑해..."

거의 패닉상태가 된 sy 집사님은 내게 전화해서 "자매님이지! 자매님이지? 그 기도 한 사람. 맞지? 나는 물론이고 내 주변에 그 누구도 그런 기도 해 줄 사람 없어. 오직 자매님 뿐이야, 이 황당한 기도를 할 사람은!!"이라고.

......

맞거든. 나 그 기도 했거든.ㅋㅋ

그리고 sh집사님의 이야기를 1년 반 전에 듣고는 거의 1년 내내 기도했다. 아내인 jh 집사님은 내가 sh집사님에게 너무 큰 고통을 준 아버님 어머님께서 어느 날 아드님에게 '미안하다'라 말씀하시게 해 달라 기도하는 것을 듣고는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기도를 하느냐'라는 표정을 지었다. 아직도 펄펄 날뛰시는 두 분이시라 그런 건 꿈도 못 꾸는 일이라는 듯. 나는 기도했고. 두 달 전, sh 집사님이 울면서 말했다. 어머니께서 '미안하다'라고 하셨다고. 상상도 못한 어머니의 말씀에 충격과 감동을 받은 그의 표정에서 치유받은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아버님도 그 말씀을 하게 해주시기를, 그리고 '고맙다, 사랑한다, 아들아'까지 기도하고 있는 중.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해 주실 것이다. 언어에 관한 한 민감하게 만나 주시니까 나의 아버지께서는.

계속해서 내 언어를 꾸짖으시고 교정하시는 중이시기도 하고...
글로 나를 사용하실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나의 모든 질문에 대해 설교로 꼭 정확하게 응답하시기도 하고...
그래서 나는 모든 질문에 대해 반드시 '성경에서의 답'을 찾고 있다.
어김없이 주시거든. 그리고 정확하게 이루신다.

암튼 내가 '언어'로 하나님과 정확하게 소통하는 편이기 때문에 나다나엘 역시 그래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사실 그렇지 않나. 만약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 맞다면, 그 메시아가 맞다면, 나를 만났을 때 내가 지금 무화과나무 아래 있는 것을 보았다고 말해 주시면 좋을 텐데'라고 생각했다 치자. 그런데 바로 그가 와서는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는 것을 내가 봤다'라 말한다면, 당연히 '하나님의 아들이요 이스라엘의 임금'이라 고백할 수밖에 없지 않겠나? 너무 일차원적인 생각이긴 하다만.;; 어쩌면 나는 묵상을 너무 단순하게 하고 있는 걸지도.ㅠㅠ;;

5. 믿느냐. 보리라. 

[요]1:5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요]1:51 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이것은 뭐... 굳이 본문이 아니더라도 다룰 만한 것이지만... 은 엄밀히 말하면 본문의 묵상에선 벗어난 묵상이긴 한데, 본문에 있으므로 살짝 언급만 하기로. 

[히]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히]11:2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믿는 것이 보는 것이다. 믿음이 응답의 열쇠이다. 아멘.


6. 와서 보다.
말로만 아무리 설명하는 것보다 직접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것이 믿는 것이다. 복음 전파에 있어 논쟁은 필요 없다. 말씀 그 자체 앞으로 데리고 가야 한다. 나의 언변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자체에 능력이 있다. 또는 내 삶으로 말씀을 살아냄으로써 말씀을 눈에 보여 주어야 한다. 

아아 자야겠다 어서...!!



Hope you like this, My dear Mr.Present. I miss you so very much. Been praying for you.




*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 바로 너희 때문에 이 아빠가 힘든 거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사랑의빛선교교회에서의 어려웠던 일 앞에 목사님께서 취하신 행동
- 겸손과 진정한 사랑에서 나온 책임과 희생의 반응 - 목자의 심정 - 상대가 감동한다. - 문제 해결
☞ 하나님은 나의 변화와 겸손과 희생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신다.

이전 담임 목사님께서 바로 옆에 개척을 하셨으면 정말 타격이 컸겠네... 성도분들의 마음에 상처가 많았을 것 같다.

이 설교를 정리하면서 깨닫게 되었다. 윤대혁 목사님이 우리 교회 3대 목사님으로 오신 것은 사랑의빛선교교회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떠안고 진심을 다해 희생하며 섬기셨기 때문이구나... 하나님께서는 그 마음을 어여삐 여기셨겠구나... 목자의 심정, 마음이 따뜻한 분께서 우리 3대 목사님으로 오셨네. 감사합니다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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