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도다 | |
[사]30:18 |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심이라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
[사]30:19 | 시온에 거주하며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백성아 너는 다시 통곡하지 아니할 것이라 그가 네 부르짖는 소리로 말미암아 네게 은혜를 베푸시되 그가 들으실 때에 네게 응답하시리라 |
[사]30:20 | 주께서 너희에게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을 주시나 네 스승은 다시 숨기지 아니하시리니 네 눈이 네 스승을 볼 것이며 |
[사]30:21 | 너희가 오른쪽으로 치우치든지 왼쪽으로 치우치든지 네 뒤에서 말소리가 네 귀에 들려 이르기를 이것이 바른 길이니 너희는 이리로 가라 할 것이며 |
[사]30:22 | 또 너희가 너희 조각한 우상에 입힌 은과 부어 만든 우상에 올린 금을 더럽게 하여 불결한 물건을 던짐 같이 던지며 이르기를 나가라 하리라 |
[사]30:23 | 네가 땅에 뿌린 종자에 주께서 비를 주사 땅이 먹을 것을 내며 곡식이 풍성하고 기름지게 하실 것이며 그 날에 네 가축이 광활한 목장에서 먹을 것이요 |
[사]30:24 | 밭 가는 소와 어린 나귀도 키와 쇠스랑으로 까부르고 맛있게 한 먹이를 먹을 것이며 |
[사]30:25 | 크게 살륙하는 날 망대가 무너질 때에 고산마다 준령마다 그 뒤에 개울과 시냇물이 흐를 것이며 |
[사]30:26 |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일곱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 |
* 배경: 예수님 탄생 700년 전, 고대근동은 앗수르(앗시리아)가 최강국이었다. 앗수르의 산헤립은 북이스라엘을 정복하여 포로로 잡아간 후 남유다까지 공격하려던 시점으로, 그 위협 앞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력감과 공포를 느꼈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대신 당시 또 다른 강국이던 애굽(이집트)를 의지하려 했다.
[사]30:18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심이라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Therefore the Lord waits to be gracious to you, and therefore he exalts himself to show mercy to you. For the Lord is a God of justice; blessed are all those who wait for him.
1. 여호와 YHWH = JEHOVAH or YAHWEH
1) 다양한 여호와 이름
1. 여호와 이레 : 여호와께서 준비하신다. (창 22:13∼14)
2. 여호와 라파 : 치료하시는 하나님 (출 15:26)
3. 여호와 닛시 : 여호와는 나의 깃발 (출 17:15) < 나의 힘이되신여호와>
4. 여호와 샬롬 : 여호와는 나의 평강 (삿 6:24)
5. 여호와 로이 : 여호와는 나의 목자 (시 23:1) 0
6. 여호와 삼마 : 여호와가 거기 계신다 (겔 48:35)
7. 여호와 치두케누 : 여호와는 우리의 의 (렘23:6)
8. 여호와 메카디쉬켐 : 거룩하게 하시는 하나님 (출 31:13, 레 20:8)
- '여호와'는 '스스로 있는 자 I AM, saying: “I AM that I AM, I will be who I will be.” His name is ‘Always’.'로서 떨기나무에서 모세를 만났을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당신의 이름이다.
2) 언약의 이름 여호와
하나님을 대표하는 이름으로 엘로힘(위대한 창조주)과 여호와(야훼)가 있다. Derek Walker라는 이름이 있을 때, 엘로힘은 Mr. Walker, 여호와는 Derek에 해당하며, 하나님을 아는 언약의 사람들에게 더 친근하게 당신을 표현하신 언약의 이름이다.
https://oxfordbiblechurch.co.uk/index.php/teachings/the-character-of-god/2327-the-jehovah-yahweh-covenant-names-of
앞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애굽을 의지하여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그렇게 진노하심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라며 '하나님'이 아닌 '여호와'를 사용하신 것은, 아브라함과 모세, 다윗에게 하신 하나님 당신의 언약을 스스로 기억하심을 의미한다. 바로 그 언약으로 인해 끝없이 당신을 거역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은혜와 긍휼을 베푸시는 것이다.
구약 때는 아직 예수님의 피가 없었다. 그러니 구약의 하나님은 정말이지 죽을 맛... 이 아니라... 하나님께 쓰기에는 너무 불경한 표현인가.ㅠㅠ 암튼 정말이지 넘나 힘드셨을 것이다. 인간의 수없이 많은 죄악들, 그 경멸스럽고 혐오스러운 것을 날것 그대로 당신의 온 존재로 맞닥뜨리셔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약의 하나님께서 굳이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언약'으로 당신 스스로를 묶으셨는지도 모른다. 공의의 유보. 자비와 긍휼의 견인을 위해. 당장 쳐서 멸해야 마땅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사랑을 돌이키고 긍휼을 끌어내기 위해 당신의 마음을 만족하게 한 극소수의 사람들에게 일방적인 은혜의 언약을 내리셨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런 절절한 정성과 사랑을 아는가 모르는가.ㅠ 이런 구약의 하나님이 무서우시다고?ㅠㅠ 징차... 내가 다 억울해.ㅠㅠ
2.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고 긍휼을 여기려 하심이다.
[렘]29: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이것을 절대로 신뢰해야 한다. 그 어떤 일이 있더라도 하나님은 선하시며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 절대로 우리에게 재앙이 아니라 평안 주기를 원하신다는 사실, 미래와 희망 주기를 의도하신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지금의 탄핵 정국 또한 그런 맥락에서 믿어야 한다.
3. 대저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심이라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정말이지 타이밍이 기가 막히다. 현재 자신의 처지가, 또는 나라의 상황이 정의롭지 못하다, 부당하다 싶더라도 기다려야 한다. 왜냐하면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정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사람이, 상황이 정의롭지 못하더라도 하나님이 정의로우시니 반드시 정의를 이루신다. 그 하나님을 믿어야 기다릴 수 있다. 그러니 결국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믿는 자가 복이 있다.
[사]30:19 시온에 거주하며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백성아 너는 다시 통곡하지 아니할 것이라 그가 네 부르짖는 소리로 말미암아 네게 은혜를 베푸시되 그가 들으실 때에 네게 응답하시리라
[NIV] O people of Zion, who live in Jerusalem, you will weep no more. How gracious He will be when you cry for help! As soon as He hears, He will answer you.
1. 시온과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백성을 향한 말씀
고난과 고통, 공포 속에 다른 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 거하는 사람들. 즉 '남은 자 remnant', '그루터기', '알곡'들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2. 다시 통곡하지 아니할 것이라
눈에 보이는 세상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백성들은 다시 통곡하지 않게 된다.
[계]7:17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3. 부르짖는 소리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렘]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하나님께서는 부르짖는 기도, 즉 간절한 기도에 응답하신다.
[잠]8:17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조용히 부르짖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왜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지 않느냐'라 물었다. 한 번도 소리내어 기도하는 것을 본 적이 없어서. 그랬더니 '소리를 내지 않는다 해서 부르짖지 않는 것은 아니다. 조용히 부르짖는 것도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부르-짖다1. 큰 기쁨이나 슬픔, 고통 따위의 격한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여 소리 높여 크게 떠들다. 만세를 부르짖다. 2. 어떤 주장이나 의견 따위를 열렬히 말하다.
하지만 그 말은 틀렸다. 국어사전에 부르짖다는 '소리 높여 크게 떠들다'라 정의되어 있기 때문이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하더라도 적어도 몸으로라도 부르짖게 되어 있다. 그런데 고요하게, 정말이지 고요한 모습으로 어떻게 부르짖는다는 건가.
하나님께서는 왜 부르짖는 기도, 간절한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는가. 이는 우리를 '육신'으로 창조하신 이유를 생각하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육신으로 지으신 것은 육신을 쓰라는 뜻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하나님을 구하고 찾고 누리기 위해 지어졌다. 육신으로 지어졌다. 그렇다면 우리는 모든 것을 다하여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 그 '모든 것'에는 '육신'도 포함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육신을 사용하여 부르짖어 하나님을 찾기를 원하지 않으셨다면 우리를 육신으로 만들지 않으셨을 것이다. 굳이 육신으로 만드신 것은 이 육신을 받으시기 위함이다. 그런데 육신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그렇다면 그 사람에게 있어 육신은 소용없는 껍데기다. 내 삶의 모든 영역이 하나님께 드려져야 한다. 그 모든 영역에는 육신도 포함된다. 그런데 육신은 자신의 입맛에 맞게 사용하겠다고. 마음만 우아하게 부르짖겠다고. 그게 무슨 말인가.
그가 네 부르짖는 소리로 말미암아 네게 은혜를 베푸시되
'부르짖는 소리'라고 하시잖아.
4. 그가 들으실 때에 네게 응답하시리라 As soon as He hears, He will answer you.
1) 내 기도를 들으시자마자 응답하신다.
부르짖어 기도를 한다. 그로 인해 내게 은혜를 베푸신다. 어떤 은혜인가? 하나님께서 내 부르짖음을 들으시자마자 내게 응답하신다.
[단]9:23 곧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명령이 내렸으므로
단]10:12 그가 내게 이르되 다니엘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깨달으려 하여 네 하나님 앞에 스스로 겸비하게 하기로 결심하던 첫날부터 네 말이 응답 받았으므로 내가 네 말로 말미암아 왔느니라 [단]10:13 그런데 바사 왕국의 군주가 이십일 일 동안 나를 막았으므로 내가 거기 바사 왕국의 왕들과 함께 머물러 있더니 가장 높은 군주 중 하나인 미가엘이 와서 나를 도와 주므로
이것을 믿는 것은 중요하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대로 응답하시기 때문이다.
2) 때로는 그 응답이 내가 생각한 모습과 다를 수도 있다.
이것이 우리의 딜레마일 것이다. 열심히 기도할 수 있다. 정성 다해 기도할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최선을 다했는데도 돌아온 응답은 다른 것이거나 오히려 정반대의 것일 수도 있다.
[요]11:3 이에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니 [요]11:4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요]11:5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 [요]11:6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 [요]11:14 이에 예수께서 밝히 이르시되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요]11:15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 하시니... [요]11:43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요]11:44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베다니의 마르다와 마리아는 예수님을 간절히 찾았다. 오라비가 죽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곧 죽었으니 정말 나사로는 위급했을 것이다. 그랬으니 얼마나 다급하고 간절하게 찾았겠는가. 더군다나 예수님은 그 삼남매를 사랑하셨다. 그런데 그 말씀을 들으시고 바로 출발하지 않으시고 계시던 곳에 더 머무르셨다. 이것은 마르다와 마리아의 입장에서는 기도에 대해 완전히 매몰차게 거절 당한 셈이다 자신들을 사랑하신다면서, 오빠 나사로를 사랑하신다면서, 그 오빠가 죽어가는데, 자신들이 애타게 찾고 있는데 바로 오시지도 않을 뿐더러, 자신들이 있는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오 리 정도 밖에 떨어지지 않았는데도 오지 않고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이 될 때까지 지체하셨다. 지척에 계시면서도 안 오신 거였다. 두 자매의 마음은 얼마나 배신감이 들었겠는가? 기도의 거절이자 정반대의 응답이다.
하지만 알다시피 예수님의 뜻은 훨씬 크셨다. 주님께서 시간을 들이시는 이유는, 주님께는 그 시간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시간은 시공의 제약을 받는 우리 사람, 물질 피조물에게 있어 치명적인 것이지, 영원한 영이신 하나님껜 영향력이 없다. 예수님은 모든 기적을 행하실 수 있는 분이시므로, 주님께 시간은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문제는 우리가 유한하기에 우리가 시간에 늘 쫓긴다는 점이다. 시간 앞에 우리는 늘 불안의 종이 되어 안절부절한다. 그러나 주님은 시간의 통치자이시자 모든 것의 주권자이시다. 그러니 주님께선 우리의 영혼을 보실 뿐이다. 죽은 자를 언제든 다시 살릴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그 사람이 죽어간다 해서 서두를 필요가 없지 않겠나. 죽으면 살리면 되니까. 예수님이 얼만큼 위대한 분이신지를 묵상해야 한다. '주님은 못할 것이 없으시다'라는 표현이 얼만큼 무겁게 믿어지는지, 스스로의 믿음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시간에 조급한 건 시간의 노예로 사는 나이지, 시간의 통치자이신 주님이 아니시다. 그러니 나는 시간의 노예에서 벗어나 시간의 통치자이신 선하신 주님의 종으로 사는 것을 선택해야 한다.
기도응답시간 묵상이 좀 이상하게 삼천포를 탔는데.ㅠㅠ
마리아와 마르다의 경우, 주님께선 그들의 요청(기도)을 들으신 순간 이미 응답하셨다. 나사로를 고치시기로 하신 것이다. 다만 두 자매의 타이밍과 방식이 아니라 주님의 타이밍과 방식으로 하셨다. 그리고 그 결과는 사람들 앞에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신 것이며, 나사로의 부활을 목격한 사람들과 두 자매는 물론이고, 나사로 본인에게도 상상도 하지 못했을 크나 큰 은혜이자 기쁨이고 영광이었을 것이다. 내가 죽었는데 다시 살아났다니!!
내가 기도한대로 응답하지 않으셨다면 더욱 기대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작년, 단선 때 훈련 목사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번 단선 후 각 집사님들에게마다 플러스 원의 은혜가 있을 거예요'. 다들 단선 다녀오고 은혜를 많이 받았다 했는데 나는 그냥 그랬다. 이것이 은혜인가...? 했거든. 그 때 드는 묵상이 있었다.
내 수준이 3이다. 그런데 10의 응답을 받았다. 문제는 내 수준이 3이라는 사실이다. 3에게는 10을 알아 볼 눈이 없다. 3은 1, 2, 3만 알아볼 수 있을 뿐이다. 3이 10의 응답을 받았음을 알기 위해서는 10의 수준이 되어야 한다. 그것은 7만큼 성장할 시간이 필요함을 의미한다.
내가 기대한 것과 다른 답이 왔다면 그것은 어쩌면 3을 기도한 내게 10의 응답이 주어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나님은 늘 넘치도록 부어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니 무응답을 불평하기 전에 서둘러 내 안목을, 내 영성을 10까지 키워야 한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어야 가능한 일이다.
[사]30:20 주께서 너희에게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을 주시나 네 스승은 다시 숨기지 아니하시리니 네 눈이 네 스승을 볼 것이며
Although the Lord gives you the bread of adversity and the water of affliction, your teacher will be hidden no more; with your own eyes you will see them.
1.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을 주시다.
1) 떡이 환난이고 물이 고생이다.
고난 가운데 생존할 수 있게 해주신다.
[MSG] Just as the Master kept you alive during the hard times, he'll keep your teacher alive and present among you. Your teacher will be right there, local and on the job,
떡인데 환난이고 물인데 고생이다. 먹고 살기 위해, 생존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환난을 먹고 고생을 마셔야 한다
→ 환경적 고난. 피동적 고난.
2) 환난이 떡이고 고생이 물이다.
환난을 떡 삼아 취함으로써 내 몸이 건강해지고, 고생을 나에게 가장 필요한 물로 인식한다.
→ 이렇게 생각하면 환난과 고생이 나를 생존하고 건강하게 해주는 것이므로 감사한 마음으로 취할 수 있다.
→ 자발적 고난. 믿음의 모험.
3) 환난은 만나이고 고생은 반석의 물이다.
환난과 고생은 광야에서 맞게 되는 것이다. 환난은 광야의 만나이고 고생은 광야 반석의 물이다. 만나와 반석의 물은 광야에서만 만날 수 있는 하나님의 신비로운 돌보심이다. 광야를 벗어나면 만나와 반석 물은 그친다.
→ 환난과 고생을 어쩔 수 없이 맞아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광야가 아니면 맛볼 수 없는 하나님의 이적이자 신비로운 돌보심임을 깨닫는다면 그 환난과 고생을 심지어 즐길 수도 있다 ☞ 진정한 승리자.
2. 네 스승은 다시 숨기지 아니하시리니 네 눈이 네 스승을 볼 것이며
1) 스승은 선지자이다.
[사]29:10 대저 여호와께서 깊이 잠들게 하는 영을 너희에게 부어 주사 너희의 눈을 감기셨음이니 그가 선지자들과 너희의 지도자인 선견자들을 덮으셨음이라
[사]29:13 주께서 이르시되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사]29:14 그러므로 내가 이 백성 중에 기이한 일 곧 기이하고 가장 기이한 일을 다시 행하리니 그들 중에서 지혜자의 지혜가 없어지고 명철자의 총명이 가려지리라
[사]30:9 대저 이는 패역한 백성이요 거짓말 하는 자식들이요 여호와의 법을 듣기 싫어하는 자식들이라 [사]30:10 그들이 선견자들에게 이르기를 선견하지 말라 선지자들에게 이르기를 우리에게 바른 것을 보이지 말라 우리에게 부드러운 말을 하라 거짓된 것을 보이라
앞서 백성들의 패역함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선지자들과 선견자들을 덮으시고 하나님의 뜻을 가리셨다. 그런데 그 선지자들을 다시 주실 것이다.
[사]30:21 너희가 오른쪽으로 치우치든지 왼쪽으로 치우치든지 네 뒤에서 말소리가 네 귀에 들려 이르기를 이것이 바른 길이니 너희는 이리로 가라 할 것이며
1. 오른쪽으로 치우치든지 왼쪽으로 치우치든지
1)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신]5:32 그런즉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대로 너희는 삼가 행하여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수]1:7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수]23:6 그러므로 너희는 크게 힘써 모세의 율법 책에 기록된 것을 다 지켜 행하라 그것을 떠나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신]17:11 곧 그들이 네게 가르치는 율법의 뜻대로, 그들이 네게 말하는 판결대로 행할 것이요 그들이 네게 보이는 판결을 어겨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 것이니라
[신]17:20 그리하면 그의 마음이 그의 형제 위에 교만하지 아니하고 이 명령에서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리니 이스라엘 중에서 그와 그의 자손이 왕위에 있는 날이 장구하리라
[신]28:14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그 말씀을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다른 신을 따라 섬기지 아니하면 이와 같으리라
[잠]4:27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네 발을 악에서 떠나게 하라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는 것은 하나님께서 아주 싫어하시는 일이다. 복을 받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21절에서는 심지어 우로나 좌로나 치우친다 하더라도 도와주신다고 하신다.
2. 네 귀에 들려 이르기를 이것이 바른 길이니 너희는 이리로 가라 할 것이며
내가 좌나 우로 치우치더라도 길을 잘못 가더라도 하나님께서 어떻게 가야할 지 알려 주신다. 그만큼 확실하게 우리를 보호해 주시고 인도해 주신다.
[사]30:22 또 너희가 너희 조각한 우상에 입힌 은과 부어 만든 우상에 올린 금을 더럽게 하여 불결한 물건을 던짐 같이 던지며 이르기를 나가라 하리라
[사]30:23 네가 땅에 뿌린 종자에 주께서 비를 주사 땅이 먹을 것을 내며 곡식이 풍성하고 기름지게 하실 것이며 그 날에 네 가축이 광활한 목장에서 먹을 것이요
[사]30:24 밭 가는 소와 어린 나귀도 키와 쇠스랑으로 까부르고 맛있게 한 먹이를 먹을 것이며
[사]30:25 크게 살륙하는 날 망대가 무너질 때에 고산마다 준령마다 그 뒤에 개울과 시냇물이 흐를 것이며
[사]30:26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일곱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
1. 자기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고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하나님.
개인적으로는 아빠가 떠오르는 부분이다. 바로 자라게 하기 위해 사랑으로 때리셨기에 따로 와서 연고를 발라주시는 아빠의 마음이다.💖
2. 치유의 날에 달빛은 햇빛 같고 햇빛은 일곱 배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다.
1) 일곱 배, 일곱 날 = 완전 수 = 온전하고 완전하다.
그러니까 치유의 날에 달빛 같은 달빛은 없고 햇빛만 있다는 뜻.
2) 햇빛 = 치유의 광선
[말]4:2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큰일나따... 오늘 세 시간 잤는데 벌써 10시다... 내일 3시에 일어나야 하는데.ㅠㅠ 얼른 자야겠다. 너무너무 피곤해.ㅠㅠ
참, 아까 우리 목사님 여의도 순복에서 넘넘 멋지셨다고, 설교도 넘 멋지시고 목사님도 넘 멋지시고 그러며 집사님들 난리난리. ㅋㅋㅋㅋ 멋지시지 우리 목사님. ㅎㅎ 아니 근데 거기서 당신은 키가 크셔서 구부정하시다고, 키 작은 사람들은 꼿꼿하다고, 그러심 어떡하심! 이 목사님 키 안 크시잖아용... ㅋㅋㅋ 아 나 민감한 거, 내가 그 작고 꼿꼿한 사람이라서는 아니당. 아니당. 아니당. 아니당. 아니아니아니당당당흥. 목사님 키 크신 거 부럽다. 엄청 부럽다 흥. 흥흥흥. 자야징.😴
[QT] 이사야 35장 (0) | 2025.04.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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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T] 이사야 53:1-6 (0) | 2025.04.13 |
[QT] 이사야 28:23-29 (0) | 2025.03.29 |
[QT] 이사야 26:1-7 (0) | 2025.03.22 |
[개인훈련QT] 이사야 10:20-34 남은 자를 위하시는 만군의 여호와 + 엄청난 삼천포ㅠ (0) | 2025.02.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