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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사야 43:1-7 "참 회개하는 그릇 The Vessel of Genuine Repentance" [이사야 21 / 믿음의 그릇 Vessel of Faith 2]

Sermon

by Vano 2025. 9. 8. 21:44

본문

https://www.youtube.com/watch?v=RQP89Ox_xlM&t=1s

[이사야 44:9-11, 15-23]
9  우상을 만드는 자는 다 허망하도다 그들이 원하는 것들은 무익한 것이거늘 그것들의 증인들은 보지도 못하며 알지도 못하니 그러므로 수치를 당하리라
All who make idols are nothing, and the things they treasure are worthless. Those who would speak up for them are blind; they are ignorant, to their own shame.
10 신상을 만들며 무익한 우상을 부어 만든 자가 누구냐
Who shapes a god and casts an idol, which can profit him nothing?
11 보라 그와 같은 무리들이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 그 대장장이들은 사람일 뿐이라 그들이 다 모여 서서 두려워하며 함께 수치를 당할 것이니라
He and his kind will be put to shame; craftsmen are nothing but men. Let them all come together and take their stand; they will be brought down to terror and infamy.
15 이 나무는 사람이 땔감을 삼는 것이거늘 그가 그것을 가지고 자기 몸을 덥게도 하고 불을 피워 떡을 굽기도 하고 신상을 만들어 경배하며 우상을 만들고 그 앞에 엎드리기도 하는구나
It is man's fuel for burning; some of it he takes and warms himself, he kindles a fire and bakes bread. But he also fashions a god and worships it; he makes an idol and bows down to it.
16 그 중의 절반은 불에 사르고 그 절반으로는 고기를 구워 먹고 배불리며 또 몸을 덥게 하여 이르기를 아하 따뜻하다 내가 불을 보았구나 하면서
Half of the wood he burns in the fire; over it he prepares his meal, he roasts his meat and eats his fill. He also warms himself and says, 'Ah! I am warm; I see the fire.'
17 그 나머지로 신상 곧 자기의 우상을 만들고 그 앞에 엎드려 경배하며 그것에게 기도하여 이르기를 너는 나의 신이니 나를 구원하라 하는도다
From the rest he makes a god, his idol; he bows down to it and worships. He prays to it and says, 'Save me; you are my god.'
18 그들이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함은 그들의 눈이 가려서 보지 못하며 그들의 마음이 어두워져서 깨닫지 못함이니라
They know nothing, they understand nothing; their eyes are plastered over so they cannot see, and their minds closed so they cannot understand.
19 마음에 생각도 없고 지식도 없고 총명도 없으므로 내가 그것의 절반을 불 사르고 또한 그 숯불 위에서 떡도 굽고 고기도 구워 먹었거늘 내가 어찌 그 나머지로 가증한 물건을 만들겠으며 내가 어찌 그 나무 토막 앞에 굴복하리요 말하지 아니하니
No one stops to think, no one has the knowledge or understanding to say, 'Half of it I used for fuel; I even baked bread over its coals, I roasted meat and I ate. Shall I make a detestable thing from what is left? Shall I bow down to a block of wood?'
20 그는 재를 먹고 허탄한 마음에 미혹되어 자기의 영혼을 구원하지 못하며 나의 오른손에 거짓 것이 있지 아니하냐 하지도 못하느니라
He feeds on ashes, a deluded heart misleads him; he cannot save himself, or say, 'Is not this thing in my right hand a lie?'
21  야곱아 이스라엘아 이 일을 기억하라 너는 내 종이니라 내가 너를 지었으니 너는 내 종이니라 이스라엘아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아니하리라
'Remember these things, O Jacob, for you are my servant, O Israel. I have made you, you are my servant; O Israel, I will not forget you.
22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 같이, 네 죄를 안개 같이 없이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
I have swept away your offenses like a cloud, your sins like the morning mist. Return to me, for I have redeemed you.'
23 여호와께서 이 일을 행하셨으니 하늘아 노래할지어다 땅의 깊은 곳들아 높이 부를지어다 산들아 숲과 그 가운데의 모든 나무들아 소리내어 노래할지어다 여호와께서 야곱을 구속하셨으니 이스라엘 중에 자기의 영광을 나타내실 것임이로다
Sing for joy, O heavens, for the LORD has done this; shout aloud, O earth beneath. Burst into song, you mountains, you forests and all your trees, for the LORD has redeemed Jacob, he displays his glory in Israel.


오정현 담임 목사님 · 주후 2025.09.07 주일예배

§ [믿음의 그릇 Vessel of Faith] 시리즈 
1주차 택함 받은 그릇 - 너는 내 것이라 (정체성) 
2주차 깨끗한 그릇 - 우상의 오염을 벗어라 (회개) 
3주차 하나님의 새 일을 꿈꾸며 가슴 뛰는 그릇 - 새 일을 행하리라 (비전) 
4주차 어둠을 밝히는 그릇 - 이방의 빛이 되라 (사명) 
5주차 날마다 자라는 그릇 - 네 장막터를 넓히라 (성장) 
6주차 모든 사람을 위한 그릇 - 은혜의 언약 안에서 이방인과 연합하라 (연합) 
7주차 남을 성공시키는 그릇 - 물 댄 동산이 되라 (축복의 통로)

* 하나님의 말씀은 정보를 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 Not Information But Transformation
* 찬양 "구주를 생각만 해도" 3절
참 회개하는 자에게 소망이 되시고, 구하는 찾는 자에게 기쁨이 되신다.

[사44:3] 나는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영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부어 주리니
참 회개하는 자에게 주는 소망의 성격은 위의 말씀을 내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다.
이 소망은 용서의 복음을 깨달은 사람들만 얻을 수 있다.

† 참 회개의 비결 
1. 용서의 복음을 깨달은 사람만이 참 회개하는 그릇이 될 수 있다. 
사람은 용서 받은 사람 그렇지 못한 사람으로 나눌 수 있다. 용서 받는 사람은 참 회개한 사람이다. 

회개는 용서 받은 자가 되는 첫걸음이요, 내 삶 속에 참 소망을 회복하는 황금열쇠가 된다.

용서를 받아들인 자 vs. 용서를 거절한 자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용서 받을 수 있도록 기회를 주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기회를 거절한다. 내 인생은 내 것이라고 생각하고 법 없이도 살 수 있다고 자신의 선함에 매몰되어 있는 사람들은 용서의 강에 몸을 넣을 수 없다.

참된 회개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이것을 깨달을 때, 회개를 시작하고 용서의 강에 들어갈 수 있다. 이를 통해서 겸손해지고 '너 회개 했느냐'며 타인을 함부로 정죄하지 않게 된다.
참된 회개는 우리의 의지가 아니라 예수님 십자가로 인한 하나님의 놀랍고도 큰 선물임을 깨달아야 한다.
☞ 내가 받아야 할 죄의 값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대속하여 주셨음을 깨달았을 때 참된 회개가 일어나므로.

주님께서는 어찌하여 비참한 죄인이 슬피 울며 자기 잘못을 회개할 기회를 주시나이까. - 토마스 아 켐피스
하나님 편에서 참된 용서도 하나님의 선물이지만, 우리 편에서 참된 회개도 하나님의 선물이다.

2. 참된 회개의 그릇이 되려면, 우상 숭배의 죄를 용서 받아야 한다. 
1) 우상이란 무엇인가? 
[사44:12-13, 15]
12 철공은 철로 연장을 만들고 숯불로 일하며 망치를 가지고 그것을 만들며 그의 힘센 팔로 그 일을 하나 배가 고프면 기운이 없고 물을 마시지 아니하면 피로하니라
13 목공은 줄을 늘여 재고 붓으로 긋고 대패로 밀고 곡선자로 그어 사람의 아름다움을 따라 사람의 모양을 만들어 집에 두게 하며
15 이 나무는 사람이 땔감을 삼는 것이거늘 그가 그것을 가지고 자기 몸을 덥게도 하고 불을 피워 떡을 굽기도 하고 신상을 만들어 경배하며 우상을 만들고 그 앞에 엎드리기도 하는구나
우상의 재질인 나무는 하나님이 자라게 하신다. 인간들이 그것에 신적인 요소를 넣어서 숭배한다.
※ 인간이 만든 우상의 결정적 약점: 그 우상을 신이 만든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것이라는 사실.
인간은 자신이 만들어 놓은 우상에 자신을 구원해 달라고 숭배하고 있다. 그 우상들이 자신들을 구원해줄 신으로 숭배하는 것이다.
→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롬]1: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롬]1: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롬]1: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이사야 44:9 우상을 만드는 자는 다 허망하도다 그들이 원하는 것들은 무익한 것이거늘 그것들의 증인들은 보지도 못하며 알지도 모샇니 그러므로 수치를 당하리라
[합2:18] 새긴 우상은 그 새겨 만든 자에게 무엇이 유익하겠느냐 부어 만든 우상은 거짓 스승이라 만든 자가 이 말하지 못하는 우상을 의지하니 무엇이 유익하겠느냐

오늘날 철로 만든 우상은 자동차 같다. 자동차를 더 좋은 것으로 바꾸고 싶다는 생각에 자동차를 숭배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44:17] 그 나머지로 신상 곧 자기의 우상을 만들고 그 앞에 엎드려 경배하며 그것에게 기도하여 이르기를 너는 나의 신이니 나를 구원하라 하는도다
21세기 우상의 가장 기본적인 것은 이사야 시대나 지금이나 다를 것이 없다. 인간이 만든 자력 선택의 신앙, 즉 내가 신을 선택하는 것이다. 우리의 주어는 여호와 하나님 밖에 없다.
☞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시는 것이다. 우리가 신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외에 나를 구원할 것이라고 믿는 나의 생각, 신념, 중독 등이 있다. 특별히 한국은 자녀가 우상이다. 오늘 자신의 우상들을 내려놔야 한다. 
21세기 또 다른 우상들 스마트폰이다. 온갖 거짓 정보가 담겨있는 스마트폰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 수많은 중독 또한 우상이다. 인정 중독, sns에서 인정 받으려는 것 또한 우상이다.

하나님 외에 의지하고 있는 것이 모두 우상이다.

◇ 우상에 대한 구약의 도전
모세와 금송아지 사건(출애굽기 32장): 이스라엘 백성들은 은혜를 받고 있는 상황에 있었지만 모세가 사라지자 눈에 보이는 금송아지를 만들어 숭배하였다. 
모세가 늦게 내려오자 그들의 마음에 불신이 생기고 그 불신이 잘못된 불씨가 되어 금송아지를 만들었다.
☞ 모세는 그 금송아지 우상을 가루로 만들고 마침내 로 만들었다.
그 역사와 이미지를 20절에 이사야가 묘사한다.
[사44:20] 그는 재를 먹고 허탄한 마음에 미혹되어 자기의 영혼을 구원하지 못하며 나의 오른손에 거짓 것이 있지 아니하냐 하지도 못하느니라
21세기 우상숭배는 재를 먹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 아닌 다른 것을 숭배하는 것은 재를 먹고 있는 것이고, 재를 먹는 인생을 다시 재정리하는 은혜가 부어지길 기도해야 한다 ⇒ 참 회개하는 사람이 되고 그릇이 넓어지게 됨.

3. 잘못된 우상 숭배를 회개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어떤 그릇으로 만드시는가? 
[사44:21] 야곱아 이스라엘아 이 일을 기억하라 너는 내 종이니라 내가 너를 지었으니 너는 내 종이니라 이스라엘아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아니하리라
→ 히브리어 원문: "기억하라, 이 일을!" (우상숭배는 재를 먹는 것이다. 너는 내 종이다. 그것을 잊지 말라.)
[사44:22]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 같이, 네 죄를 안개 같이 없이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
그 결과 우리에게 나타나는 것이 23절이다.
[사44:23] 여호와께서 이 일을 행하셨으니 하늘아 노래할지어다 땅의 깊은 곳들아 높이 부를지어다 산들아 숲과 그 가운데의 모든 나무들아 소리내어 노래할지어다 여호와께서 야곱을 구속하셨으니 이스라엘 중에 자기의 영광을 나타내실 것임이로다
→ 그 결과 우리는 다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된다. 전 우주적 찬양과 기쁨이 있게 된다.

 회개하는 자가 되어 우상을 처리할 때 우리의 믿음의 용량이 커지는 이유가 무엇인가? 
내면의 공간의 질적인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

우리 마음에서 우상이 제거되어 참 회개하는 깨끗한 그릇이 되면, 그곳은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거처가 되고 하나님이 일하시는 공간이 된다.

[겔36:25-27]
25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우리 속에서 우상이 제거될 때마다 하나님의 성령이 일하실 공간이 늘어나고, 일하실 공간이 늘어나면 믿음의 용량이 커지는 것이다

◇ 구약의 욥은 거의 회개할 것이 없는 의로운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 욥 조차 하나님을 만났을 때 회개하였다. 
[욥42:5-6]
5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6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
욥이 회개할 때에 욥의 속에 공간이 더 열려 하나님이 일하셔서 더 많은 복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우리 내면의 속사람이 질적으로 변화되기를 기도한다.

믿음의 그릇 시리즈의 깨달음 
1. 지난 주: 우리는 물과 불 가운데를 통과해 하나님께 나아가며, 하나님께 가까이 갈수록 물 불을 통과하게 됨을 배웠다. 
2. 이번 주: 물과 불을 통과해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때 회개를 통해 우리 속 우상을 제거하여,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마음껏 역사하실 공간을 마련하게 된다.

* 사람에게는 진심, 하나님께는 전심!
* 내 인생의 복잡한 것들 정리하기.

 

 ◇ ☞ † ⇒ ☆ § ※ √ ♥     ② ③ ④




* 오늘날 철로 만든 우상은 자동차ㅡ묵상
ㅋㅋㅋㅋㅋ 자동차 묵상하셨어 목사님. ㅋㅋㅋㅋㅋㅋㅋ 참... 진지하시고 정성스러운 설교 준비당.ㅠㅠ 그래서 우리 담임 목사님 설교가 은혜로운 거.ㅠㅠ 사람들이 자동차를 묵상하며 예배한대.ㅋㅋㅋㅋㅋㅋㅋ 마음이 자동차로 가득하다곸ㅋㅋㅋㅋㅋ 자동차랑 스포츠도 그러겠징? 여성들은 명품이나 드라마? 뜨끔한 분들 많으시겠.ㅋㅋㅋ 무엇보다 자녀는... 그건 웃을 수만은 없더라. 비록 내게는 자녀가 없지만 미혼의 여성으로서 늘 궁금했던 점이었거든. 어째서 수많은 이성적이고 지적인 여성들이 자녀에 대해서 만큼은 맹목적이 되는가. 나는 그것이 오랜 기간 동안 품은 의문이었고, 그것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답을 주지 않았다. 엄마님들은 별로 예외 없이 그 비슷한 이야기만 꺼내도 '너는 아이를 낳지 않았으니 그것에 대해 말할 자격이 없어!'라는 표정으로 단호히 '모성애의 신비'를 주장했는데, 나는 바로 그 '모성애'가 인간의 고유성이 아니라는 생각이었던 거지. 동물들도 모성애는 있잖아. 그것은 진화론적 생각이 아닌가, 인간을 동물과 같은 존재로 설명하는 것이니까. 호르몬에 의해 통제되는 동물적 존재. 아, 딱 한 사람, 다른 의견을 준 적이 있다. 나와 같은 INTP 여성이었는데, 본인은 그 점에 대해 '책임감'을 이야기했던 것 같다. 하지만 다른 여성에 비해 확연히 맹목적 모성애는 보이지 않았고, 자녀라는 한 생명을 세상에 낸 것에 대한 책임감에 근거하여 올바른 가치관으로 세상을 잘 살아낼 수 있도록 훈계하고 양육하는 것이라 답을 했더랬다. 역시 인팁이지. 비교적 만족한 답이었다. 동시에 따뜻한 로봇답게 무기질적인 느낌.

다시 대부분 출산 여성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사람이 동물이긴 하지. 살아 움직이는 물체라는 언어적 정의로 보자면 그러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다른 모든 동물과 절대적 차이를 내는 것이 바로 사람의 지성인 건데(지금은 영성을 사람의 가장 특징적인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지성'은 방황 기간 동안 궁금해 했던 것이었기에 이렇게 사고가 진행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 품으로 돌아와서도) 작년이 될 때까지 이 질문은 해소되지 않았다. 교회에서 말씀 가르침에 있어 탁월한 권사님들, 영성과 지성이 뛰어난 권사님들 모두가 이 일에 대해서 만큼은 세상 사람들과 전혀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였거든. 고민도, 통찰도 없었다. 그저 '모성애' 하나로 모든 다른 질문을 불식했다. 나는 그 점이 아쉬웠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좀 다른 모습을 보여 주기를 기대했거든.

그러다 작년 초, 지금 나의 가장 강력한 동역자로 달리고 있는 jh 집사님이 조 모임에서 이 이야기를 먼저 꺼내었다. 당시 집사님은 지금은 대학생이 된 고3 무녀독남 아들 때문에 너무나 맘고생이 심한 상태였는데,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집사님이다 보니 지적이었고, 나와는 N/S 하나 다른 잇팁 ISTP답게 본인도 이 문제에 대해 치열한 고민을 했더란 거다. 그러며 답하기를,

"미치겠어요. 자식이라는 게 정말 내 맘대로 안 돼. 남편은요, 남편은 오히려 객관적으로 대할 수 있어요. 막말로 남편은 끊어낼 수 있어. 냉정하게 이성적으로 대하고, 적절한 답을 주거나 반응을 취할 수 있어요. 그런데 자식은 그게 안 돼. 내 생각에도 내가 무모하고 비이성적인 거 알아.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고 자식을 하나님 앞에 내어 드려야 하는 거 알아. 하나님 앞에 자신의 삶을 살도록 손을 어느 정도는 떼어야 하는 것도 알아. 그런데 안 돼요. 그게 안 돼. 아무리 애를 써도 자식은 안 돼. 내가 그거 때문에 미치겠어요. 왜 안 되는지 모르겠는데 아무리 아무리 노력해도 그게 안 되어서 너무 속상해."

깜짝 놀랐다. 드디어 풀렸다. 그리고 몹시 고마웠다. '모성애'라는 절대 단어 뒤로 마땅한 모든 고민의 몸부림을 외면하며 삭제하는 것만 같던 사람들. 처음부터 나를 대화에 대상에서 제외 시켜 버리던 사람들 속에 나는 어떠한 발언권도 받지 못했으며, 그러니 그들을 이해할 길이 없었다. 그런데 jh 집사님의 그 간절한 몸부림은 드디어 나를 대화와 토론으로 초대하였으며, 그리하여 나의 묵상과 이해도 본격적으로 진행하게 되었다. 그 때부터였다. 그전까지 동물적 속성이라 치부하던 엄마님들 고유의 '모성애'를 진정으로 존경하게 된 것은. 지금은 그것이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소중한 본능이자 속성이라 인식하며 진심으로 존경하고 있다.

정작 jh 집사님의 아들에 대한 그 몸부림은 '미성년자의 보호자로서의 책임감'에 의한 것이 맞았고, 대학생이 된 지금 상당히 많은 것을 오히려 하나님께 내려 놓은 상태이다. 아들이 생각지도 못하게 총신대에 들어가게 되어 만족하게 되어 그런 것도 같고. 그동안 집사님이 상당히 많이 성장/성숙한 것도 있고. 집사님 자체가 작년과는 많이 달라졌다.

암튼, 그런 일이 있었기에, '자식이 우상이다'라는 모성애 관련 말씀은, 정말 맞는 말씀이고 꼭 필요한 지적이었다. 그것이 엄마님들 문제의 핵심이라 난 지금도 생각해. 그래서 그 말씀 해 주신 것이 적절하고 감사하다 생각했다. 나는 할 수 없는 지적이니까. 그렇긴 하지만... 맘이 아프기도 했고... 참... 조심스럽기도 하고 그랬다.

* 우리 마음에서 우상이 제거되어 참 회개하는 깨끗한 그릇이 되면, 그곳은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거처되고 하나님이 일하시는 공간이 된다. 일하실 공간이 늘어나면 믿음의 용량이 커지는 이다
너무나 절감한다. 22년부터 거의 매일 기도하고 있다. 매일 아침 눈 뜨면 전날의 잘못을 회개하는데(잠들기 전에 회개하려고는 하는데, 거의 어떻게 잠드는 지 모르게 잠이 드는 편이라;;), 회개를 통해 나의 죄성을 십자가에 못 박고 예수의 보혈을 부어 정결케 한다. 성령의 불로 태우고... 그리고 다시 예수님의 보혈로 채우고... 그리고 그 자리에 성령님께서 임재하여 그만큼 더 통치해 주시기를 기도하는 작업. 나는 이것을 매일 하고 있다.

효과는? 있다. 있는 정도가 아니다. 많다. 처음 1년 정도는 힘들었다. 기도해도 계속 시험은 더 많이 닥쳐오고 원수의 공격은 이전보다 훨씬 원색적으로 나를 뒤흔들었다. 정말... 잠을 못 잘 정도로 너무 고생을 많이 했다. 아마도 금식 때문에 더욱 공격이 거세었던 것 같고... 말도 못하게 정말이지... 엄청났었다. 그러던 어느 날, 대적기도가 효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금식 때문에 공격이 거세었고, 금식 덕분에 효과가 빨리 나타난 것이라 난 생각하는데. 그렇게 효력을 발휘하기 시작하더니... 차츰차츰 효과들이 더 많이 나타나게 되었다. 지금은... 그 전에 나를 공격하던 것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한 번만 대적해도 바로 사라진다. 상당히 생각들이 깔끔하게 정리되었다. 수많은 의심들, 교란 방해들, 이젠 거의 없고, 와도 대적하면 바로 사라진다. 영권이 올라간 거겠지. 몸으로 확연히 느낄 정도이니.

지금 나는 아주 중요한 믿음의 밀도를 높이는 단계에 있다. 올해 내 개인 기도의 1제목이기도 하고. 그것이 지금 이 시점, 크리티컬한지점이라고 스스로 느끼고 있다. 내 머리 바로 위 공중에 형성되어 있는 믿음을 내 손에 실체로 받아 쥐는 작업. 그것을 위해 내 잇몸 사건이 일어났다고 나는 알고 있다. 지금의 이 중요한 순간을 나는 그냥 흘려 보내어서는 안 된다. 이것이 앞으로 내 사역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마음이 간절하다. 매일 묻는다. 제가 무엇을 해야 할까요. 무엇을 어떻게 하면 이 믿음을 내 손에 실체로 쥘 수 있나요. 어떻게 하면 성령 하나님께서 드디어 내 몸과 맘과 영혼을 온전히 취하여 마음껏 통치하실까요. 제가 무얼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서 저를 마음껏 사용하시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로 그 뜻, 지극히 선하시고 온전하신 그 뜻을 이루실까요. 매일 매일 눈물 흘리며 애통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여쭙고 또 여쭙는다. 비결을 아직 모르겠다. 말씀이지. 말씀을 온전히 체화하는 것. 그래서 암송을 하고 있지만... 부족하다. 많이 부족해.ㅠㅠ 다른 어떤 방법이 있을까? 말씀과 기도와 순종 말고 어떤 방법? 없을까.

* 5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6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
부럽네... 욥은 모세님 이전 사람이지. 족장 시대 사람이었으니. 그러니 하나님을 직접 대할 수 있었다. 모세 님까지 하나님을 직접 대면했고, 모세 님 통해 말씀이 주어졌으며, 그 이후 사람들은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만났다. 다윗 님은 직접 만났는가? 하지만 아브라함 님이나 모세 님처럼 '대면하여' 직접 들은 사람은 없지 않나? 선지자들은 어떤 경로로 하나님을 만났는가? 하나님께서 직접 나타나서 만나 주신 사람들은... 있나?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꿈을 통한 것인지 환상을 통한 것인지, 정말 모세 님 처럼 직접 대면하신 것인지 알 수가 없네. 얼굴에서 빛이 나서 사람들이 눈이 부셔 견딜 수 없어 얼굴을 수건으로 가려야 했을 정도의 하나님 임재. 부럽다... 정말 너무 부러워.ㅠ 지금은 말씀이 있어 언제든 하나님을 만날 수 있지. 더군다나 성령님의 내주하심으로 인해 마음만 깨끗하다면 언제건 하나님과 대화도 할 수 있다. 지금도 꿈이 있고 환상이 있다. 그러나... 

오늘 아침에는 그랬다. '저두 하나님 만나고 싶은데요'. 그랬더니 '음성을 듣고 싶으냐?'라는 마음이 들었다. '아뇨. 육성으로 음성을 듣는다면 고민될 것 같긴 해요'라고. (중학교 때 음성 들은 적이 있는데 그 음성이 하나님 음성인지 모르겠거든. 그 때 이후 절대 육성으로 들려 주시지 않으시기를 부탁하고 있다.) 하지만... 어째선지 하나님을 눈으로 보고 싶기는 하다고. 나중에 천국 가면 하나님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을 수 있느냐고. 그러고 싶다고. 

나는 몸으로 느낄 수 있지. 임재가 있으면 안다. 그냥 몸이 안다. 공기가 무거워지는데 엄숙해지고 경건해진다. 그리고... 찬양이 시작되면 몸을 움직이신다. 혼자서 기도하면 한 3년 전에는 2-3시간 넘게 기도해야 임재가 왔는데, 금식기도가 진행되면서 속도가 빨라지더니, 요즘은 한 시간 정도 기도하면 임재가 있다. 아주 강렬하게 기도하면 20분에도 있는데 그건 체력 소모가 아주 크고. 신기한 건... 혼자 기도하며 임재를 느낄 때는 거의 회개를 시키시더란 점이다. 그래서 기도할 때 많이 운다. 지금은 코를 풀면 안 되는 때여서 울면 안 되는데... 아침에 또 울었음.ㅠ 코 살살 푸느라 조심스러웠다.

최근 임재가 잦다. 어제도 2부 때 좀 있었고... 지난 주 3부 때는 임재가 강했어서 손을 들고 찬양할 때 오른손이 떨리기까지 했다. 깜짝 놀라 힘 주어 멈추었고. 임재가 아주 강할 때 오른손이 떨릴 때가 있거든. 지난 주 3부가 그랬다. 

최근 임재 프로젝트?를 개인적으로 하고 있어서. 더 간절히 회개의 영을 부어 달라 기도하고 있다. 그리고 이번 주부터 주일에 좀 더 일찍 가서 미리 기도를 쌓기로 했다. 한 시간 미리 기도 프로젝트인데 이번 주는 3-40분 기도한 것 같다. 주일엔 4시 반에 일어나는데... 이것 때문에 3시 반에 일어났.ㅠ 그런데도 일찍 못 갔다. 주일은 그래. 워낙 준비하는 것이 많다 주일엔.

나도 하나님을 보고 싶다. 눈으로 직접 뵙고 싶다. 지금 내가 누리는 정도의 임재가 아니라 압도적 임재를 누리고 싶다. 무엇보다 10.27 한교섬/세교섬 때, 압도적으로 강력한 임재를 너무나 누리고 싶다. 우리 모든 목회자님들 성령충만하시도록. 남은 평생의 사역 동안 하나님의 강력한 임재의 경험으로 평생을 같은 뜻, 같은 마음으로 동역하며 세계적으로 연대를 이루어 원수의 영역을 하나님의 영역으로 힘차게 싸워 바꿔가시기를 간절히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나는 무엇을 어떻게 더하면 될까.

* 회개 설교
기다리고 기다렸던 설교였는데. 담임 목사님은 이상하게... 회개에 관한 한 설교를 굉장히 꺼리신다는 느낌이신 거라. 아마도 한국교회 특유의 '회개하라'를 질책하듯 꾸짖듯 설교하시는 스타일 때문이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담임 목사님의 자상하신 성향상 '성도들을 정죄하는 목회자'의 모습을 아주 싫어하시는 것도 같고. 이번 설교 때도 그 점을 아주 조심스럽게 다루시는 것을 보고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 '회개하라!'며 남을 정죄해선 안 된다고 말씀하셨거든. 음... 아버님 목사님께서 그 설교를 자주 하셨으려나...? 엄격한 편이셨으니 그러셨을 수도 있겠다. 과거 한국교회 목사님들은 정말 정죄하듯 꾸짖듯 강하게 '회개'를 강조하곤 하셨고. 나도 안 좋아해.

다만 회개는 정말 필요해서. 기도를 하면 하나님께서 뭔가 새로운 비전을 열어 주실 땐 반드시 회개를 시키신 후에 주셔서. 옛날의 사소했다 여겼던 잘못까지도 심장을 뜯기듯 애통하게 회개하게 하신다. 엄청 울고 엄청 아프게 회개를 하고 나면... 하나님 특유의 천국 위로와 함께, 이전에 생각도 못한 새로운 하나님의 비전이 내려 오곤 한다. 그러면 그 비전 붙잡고 새로운 꿈을 꾸게 돼. 새로운 은사는 반드시 애통한 회개를 거친 후에 주셨고. 뭐, 내가 특별히 회개할 것이 더 많아 그러신 걸 수도 있겠다. 그런 거라면 할 말 없지만.

암튼 개인적 경험으로는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회개가 치명적이고도 결정적인 단계이거든. 그래서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고 하나님의 성품과 능력을 누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적당한이 아니라 철저한 회개를 거쳐야 한다고 확신한다. 다시 밝히지만 내게만 해당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회개 설교가 늘 아쉬웠더랬다. 회개 설교와 회개 통성기도. 평양 장대현교회에서의 평양대부흥도 회개를 기점으로 시작되지 않았던가? 하나님의 강력하신 역사 직전에는 반드시 통렬한 회개가 있다고 난 확신하는데.

개인적 회개와 더불어 민족적 회개에 대한 대대적인 말씀을 기대했는데 조금 아쉬웠당. 하지만 이 본문 자체가... 회개가 메인으로 강조되었다기 보단 우상에 대한 풍자가 많이 강조된 본문인지라. 우상에 대해 자세히 말씀해 주신 것이 성도들에게 아주 큰 도움이 되었을 것 같다.

* 내 인생의 복잡한 것들 정리하기.
사모님은 아무래도 나와 비슷한 성향이신 듯? 절대 P시겠징. ㅎㅎ 이 정도면... ISFP 정도 되시려나... '따오기'에 가장 잘 어울리는 유형이 잇프피이실 텐뎅. ㅎㅎ 목사님. 그거요, 창의적인 사람은 그런 무질서한 물건들 속에서 생각을 정리하는 거예요. 물건을 정리하는 그 에너지까지 생각에 다 써 버리는 거라서요. 물건 정리하면 창의성은 멈추게 된답니당. 제가 그래요... ㅡ 는 핑계겠지... 변명이겠지...

그러니까 내 시스템은 이러하다.
고등학생 때도 그랬는데. 깨끗하게 정리된 책상에서 기분 좋게 공부를 시작한다. 하다 보면 생각의 회로가 가속을 내게 되고, 그에 따른 온갖 책들이 손에 잡혀야 한다. 책상 근처에 배치되는 건데, 그 책들 이것 꺼내어 읽고, 저것 꺼내어 읽고, 다른 것 꺼내어 읽고, 이것은 이 색깔로 칠하고 저것은 저 색깔로 칠하며 다른 것은 다른 색깔로 칠하며 머릿속에 정리하며 읽는다. 그렇게 정신을 잃은 듯 빠져 들다 보면 ㅡ 지금 같아선 최소한 3시간에서 보통 5시간, 많으면 8시간에 더 많으면 10시간도 ㅡ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한 자리에 앉아 계속 공부한다. 어느 정도냐 하면 그 시간 동안 밥을 안 먹고 화장실도 안 가며 물조차 못 마셨다는 생각조차 못하는 거야... 어느 순간 배터리가 퍽! 하고 방전된다. 더는 nausea가 나서 한 발짝도 더 갈 수 없도록 바닥을 긁은 에너지로 픽! 쓰러지면 그제야 허리가 뻐근하고 배가 고프고 나는 꼼짝 없이 공부했다는 사실을 깨닫지만 더는 무엇을 할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다. 간신히 몸을 일으켜 화장실에 가고 물을 마신 후 바로 잠든다. 그런 상태에서 온통 책상에 나와 있는 온갖 책들과 필기구들을 정리할 에너지? 0.0000001도 안 남은 거야... 거의 기다시피 해서 화장실 다녀오고 물 마시고. 그게 다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밥을 먹고... 공부를 더 해야 하면 그 상태에서 바로 몰입에 들어간다. 그렇게 또 몇 시간. 그리고는 약속 또는 스케줄 소화.

이런 시스템인데 어떻게 정리를 하라구요...ㅠㅠ 안 된다고. 그런 거 안 된다고. 안 된다구요.ㅠㅠ 사물에 대한 관심이 없는지라 어떻게 정리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그렇게 정리하다 보면... 이 성향상.. 정리는 또 10시간 내리 한단 말입니다...ㅠ 그럼 그동안 공부나 묵상 등은 다 날아가는 거예요. 얼마나 얼마나 아까운지.ㅠㅠ 차라리 잠을 자는 것이 낫지.ㅠ

아 뭐 근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정도는 아니더라. 

최근 그 마음 주셨거든. 물건 정리하라고. 그랬는데 훈련 핑계 대고 안 하고 있었던 건데 설교에서 대놓고 말씀하시는 하나님. 징차.ㅠㅠ 나 물건 정리 들어가면 이렇게 후기 쓰는 것도 못하는 거임. 아예 못하는 거야...ㅠㅠ 에너지 안 된단 말이야...ㅠㅠ 잉잉.ㅠㅠ 하지만 교회에서 물건 받아 주시는 건 좋다! 어디까지 받아 주시는 건데? 옷만?? 아님 안 쓰는 것들 중 쓸만한 건 종류를 안 가리고 모조리 다??? 아... 책...ㅠㅠ 2/3를 팔았는데도... 아직도 많아서.ㅠ 책 다 갖다 버릴까.ㅠㅠ 책 팔거나 버릴 땐 마음이 찢어진당.ㅠㅠ

어서 과제해야는데 벌써 10시 반이네.ㅠ 난 손가락이 넘나리 수다스러워서는. 아 징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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