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로마서 1:1~2, 6~7 "정결함으로 로마서를 시작합시다 Beginning Romans with a Pure Heart and Repentance" [로마서 강해 - 서론]
https://www.youtube.com/watch?v=4rsY5BeUb_o&t=63s
[로마서 1:1~2, 6~7]
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
Paul, a servant of Christ Jesus, called to be an apostle and set apart for the gospel of God
2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the gospel he promised beforehand through his prophets in the Holy Scriptures
6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And you also are among those who are called to belong to Jesus Christ.
7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To all in Rome who are loved by God and called to be saints: Grace and peace to you from God our Father and from the Lord Jesus Christ.
오정현 우리 담임 목사님💖 · 주후 2026.01.11 주일예배
§ 로마서 시리즈
1. 서론 - 정결함으로 로마서를 시작합시다
* 따뜻하고 깊이 있고 새롭고 능력 있는 로마서 말씀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 정결함과 회개로 로마서를 시작하게 하여 주십시오.
◇ 로마서가 교회를 어떻게 새롭게 하였는가
① 성 어거스틴
- AD 4세기 후반기에 구원의 길 찾으려 애썼던 그가 로마서를 읽고 변했다.
→ 자기 의지로 구원을 찾으려 함
② 마틴 루터
- 카톨릭 사제로서 고행의 계단인 Scala Sancta를 무릎으로 오르다가 중간 즈음에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롬1:17)" 말씀이 내려와 프로테스탄트의 길을 시작하게 되었다.
→ 하나님을 죄의 심판자로서만 생각하여 두려운 분이라고만 생각함
③ 요한 웨슬레
- 교회에서 로마서 서문을 읽다가 회심하여 조지 위필드와 함께 대각성 운동을 주도하였다.
→ 교리적인 신앙은 가졌지만 구원의 확신이 없었음.
④ 존 번연
- 감옥에서 로마서 읽다가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깨닫게 되어,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린『천로역정』을 집필하게 되었다.
→ 죄의 무거운 짐을 해결하지 못해 고통을 받았음
☞ 모두 로마서를 통해 은혜를 받았다.
* 35년 전 옥한흠 목사님의 로마서 강해 이후 새로운 시대, 새로운 세대의 로마서 강해를 통해 삶의 변화를 누리고 한국 교회 부흥의 촉매재가 되도록 하자!
◇ 메신저와 메시지의 신뢰성
① 메신저의 신뢰성
[롬1: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 사도 바울: 예수 그리스도의 종,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
☞ 바울의 메신저로서의 신뢰를 보여 준다.
→ 바울의 인격이 높아 타 종교인들과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바울을 싫어한다.
② 메세지의 신뢰성
[롬1:2]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눅24:27]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 구약에서 말한 모든 복음의 정석으로 하는 말씀이다.
☞ 메세지의 신뢰를 보여 준다.
☞ 신뢰할 만한 메신저가 전해 주는 신뢰할 만한 메세지를 잘 들을 때, 이를 들은 우리 또한 신뢰할 만 품격을 갖추게 된다.
†신뢰할 만한 인격이 되기 위하여
1. 부르심의 신비를 내 고백으로
[롬1:6-7]
6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7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 우리는 우리의 능력으로 성도가 된 것이 아니다. 오직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성도가 되었다.
→ 바울은 사도로서 부르심을 받았다. 그런데
[롬1:5]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 여기서 '우리'는 디모데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실라 등의 바울 동역자들로서 그 사람들이 '사도'는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함께 사도성을 지닌 '사도 팀'으로 부르심을 받았다.
☞ 이 시대를 향하여 성도는 사도성을 이어 받았다.
* Prophetic Apostleship 예언자적 사도성
| 사도(Apostle) | 교회 개척·선교·제자훈련, 새로운 영역 개척 |
| 예언자(Prophet) | 하나님의 말씀/통찰 선포, 방향 설정, 때로는 경고/위로 제공 |
| 결합 — Prophetic Apostleship | 선교적 사명과 하나님의 음성을 함께 담아 교회와 시대를 인도하는 사역 |
사도 바울은 교회를 개척/교리 정립/서신 집필 등 사도적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계시적 통찰을 통해 교회에 영적 지침을 제공했기에, 어떤 신학자들은 그의 사역을 “prophetic apostleship” 의 전형으로 보기도 한다 하네. 오순절 계열에서 발전되었다고.
◇ 이 '부르심'의 특징
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거룩해진다.
→ 현재 우리의 행실의 평가로 인해 부르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근거한 신분 선언과 고백이다.
우리가 거룩하기에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기에 거룩해지는 것이다.
☞ 하나님의 은혜
② 그리스도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다.
[고전1:2] ...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
[롬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 로마 가톨릭 | 기독교 |
| 거룩함에 카스트 제도가 있다. | 모두가 같은 성도이다. |
| 고행과 선행을 통해 구원 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 |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부르심을 받아 구원을 받았다고 믿는다. |
| 공로에 따라 성인에도 계급이 있다. | 우리 공로가 없으니 내 자랑할 것이 없고 오직 은혜이다. |
* 2015년 이후 10년 만에 다시 한 2025년 종교 센서스에서, 그동안 수많은 공격에도 불구하고 기독교가 20%로 0.3% 성장했다. 할렐루야!!!
성도는 '자기 완성자'가 아니라 '부르심의 은혜를 입은 '수혜자'이다.
③ 모든 절망으로부터 소망을 얻었다.
→ 내가 아무리 엉망이고 절망적이더라도 소망이 있는 것은, 내가 자격이 되어서가 아니라, 자격이 없음에도 하나님의 은혜로 부르심을 입어서 된 것이기 때문이다.
[딤후1: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 이것을 깨닫게 된다면 괴로우나 즐거우나 주를 찬양하게 되는 것이다.
2. 정결함을 통하여 참된 말씀의 복을 담아야
바울이 사도로 부름 받기 전까지 자신의 힘으로 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오히려 성도를 박해하는 사람이었다.
[행9:9] 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하니라
→ 바울의 부르심의 과정에서 있은 일: 부르심에 합당한 회개가 있었다(정결함을 위함).
→ 다메섹 도상에서 부르심을 받은 직후 아라비아에서 3년 동안 철저한 회개와 정결함의 시간을 가졌다.
☞ 역설의 회개와 정결함
♥ 영육/가정/의지/감정/사회/경제 등 모든 상황에 있어 어떤 성도는 말씀으로 인해 하나님 주시는 참된 복을 받고, 어떤 성도는 그 복을 쏟는가에 대한 목사님의 고찰(마치 밑바닥에 구멍 난 독처럼)
♥ 하나님의 참된 복을 받아 저장하지 못하고 쏟는 이유
→ 하나님 앞에 참된 회개를 하지 않기 때문. 참된 정결함이 없기 때문.
☞ 로마서를 통해 참된 회개와 정결함을 누리기를!
◇ 당시 너무 엉망이었던 고린도교회를 정결하게 하기 위한 바울의 노력
[고후7: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로마서 1:7]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 회개하지 않아 해결되지 않은 죄는 하나님의 은혜의 파이프를 오염 시켜 막히게 한다.
성도에게는 '주어지는 복'이 있으면서 동시에 '누려지는 복'이 있어야 한다.
→ '누려지는 복'은 참된 회개로 인한 정결함을 통하여 가능하다.
[고후7:11]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증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그 일에 대하여 일체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
회개는 단지 자신을 고치는 것뿐 아니라, '은혜가 나를 살리는 자리'로 나아가는 것이다.
†결론
우리에게 정한 마음이 있을 때 새 마음이 창조된다.
[시51: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1월, 회개를 통해 New Start, New Creation의 복을 누리자!
→ ◇ ☞ † ⇒ ☆ § ※ √ ♥ ♥ ♥ ① ② ③ ④
* 기독교를 박해하고 조롱하는 문화 - 드라마, 영화 등
나는 드라마를 보지 않은 지 오래 되었다. 어차피 집에 티비가 없으며 디즈니 등 가입한 것도 없어 드라마는 못 보기는 하는데 그래도 유튜브로 조금조금 일부는 보려면 볼 수가 있다. 하지만 거의 보지 않으며. 어쩌다 보더라도 기독교가 나오는 드라마는 조각이라도 안 본다. 거의가 조롱하고 왜곡하여 비트는 내용이라 마음이 불편해.
작년에 이어 올해 본격적으로 들어간 기도 제목이 '문화 변화'이다. "세속성에 사람들의 마음이 질리게 하사 밝고 바르고 깨끗한 성경적 가치관과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을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넣어 주옵소서". 그 기도를 하는 이유는 내 개인적인 비전이기도 하거니와, 현 세태를 보았을 때 자극의 극을 달리지 않나. 이는 오히려 '기회'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의 '악이 차기까지' 기다리셨다. 그리고 마침내 악이 그 끝에 차올랐을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에 들이셔서 그 땅을 정화 시키셨다. 그러니 지금의 이 악한 문화, 악과 자극에 중독되고 갈망하는 문화는 오히려 하나님께서 마침내 그 악의 문화를 심판하시기에 딱 좋은 환경이다.
근데 여기에는 한 가지 필수 조건이 있다. 모든 것이 가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누구도 모르게 혼자 일을 하지 않으신다. 가능하시나 그것을 하지 않으셔. 선지자에게 알리지 않으시고서 하시는 법이 없다 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인간사에 신적개입을 하실 때, 그 통로로 사용하실 사람을 찾으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하나님의 청지기이자 동역자로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이 거룩하시고 위대하신 일을 위하여 누군가 깨어 하나님과 같은 마음을 품고 소원하며 기도해야 한다. 간절히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 그래서 작년 가을부터 나는 이 기도를 올리고 있다. 그리고 올해 내 기도의 메인 기도 중 하나가 되었다. 거룩함과 정결함, 침 된 바름, 성경적 가치관과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을 사람들의 마음에 부어 주옵소서! 아멘.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도제목과 부어 주시는 마음은 특유의 느낌이 있다. 필히 거룩함이다. 그리고 간절함이며 뜨거움이다.
생각이 많은 요즘이다.
* 경제적 새어 나감
나는... 경제적으로 뭔가를 회개해야 하는 걸까...? ㅠㅠ 뭘까... 뭘 회개해야 할까...ㅠ
* 관찰
내가 목사님을 관찰하듯 목사님은 성도들을 관찰하시는구나. 중심과 기준은 하나님이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나는 목사님을 관찰하고, 목사님은 우리 성도들을 관찰하신다. 참 신기해... 하나님은 정말 놀라운 분이셔... 오정현 목사님과 내가 무슨 접점이 있겠는가 말이다. 그런데 하나님으로 인해, 우리 예수님으로 인해 이렇게 서로를 관찰하고 생각하고 위하고 기도하고 참... 이렇게 아름다운 관계가 형성되는구나. 물론 목사님께선 나를 개인적으로 모르시지만. 목사님이야 그냥 모든 성도들을 두루 관찰하실 뿐이지만. 암튼 신기하고 신비로운 관계라 생각해. 예수님은 세상 모든 것의 아름다운 신비가 되신다. 할렐루야.
* 물이 흘러 넘치다와 새다의 차이
말씀을 들으면서 문득 독 입구로 물이 흘러 넘치는 것과 독 밑바닥으로 물이 새는 것의 차이가 뭘까?를 생각함. 설교 도중이어서 생각이 순간 스쳤을 뿐 지속되진 않았고 지금도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긴 한데. 밑바닥으로 흐르는 것도 물이고 위로 넘쳐 흐르는 것도 같은 물이거든. 둘 다 물은 위로부터 계속 부어지고 있는 상태이고 그 같은 물이 독의 바깥으로 새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밑바닥의 구멍을 통해 새어 나오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고, 독의 입구를 넘쳐 흐르는 것은 은혜로운 것일까? 밑바닥은 더러운 바닥을 쓸고 나가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독이겠네. 독의 밑바닥을 쓸고 흐르는 물은 정결하지 못하게 되지만, 독의 입구를 넘쳐 흘러 독의 몸을 타고 흐르는 물은 정결한 것이고 은혜로운 것이잖아. 일단 은혜는 그 은혜를 담은 존재를 다 채워야 하는구나. 미처 채우지 못하고 바깥으로 흐른다면 그것은 부작용을 내겠구나. 은혜가 나를 다 채워 내가 아닌 성령님의 은혜로 넘쳐 흐르면... 그것이 타인에게도 은혜가 되는 거구나. 내가 지금 뭐라고 하는 건지 참.;;;
곧 있을 7시, 웨스트채플에서 복음의서진 음악회에 갈 예정이라 마음이 급하다.
아 참 나 오늘 새벽예배 드리면서 엄청 은혜 받았다. 새벽예배는 항상 은혜가 넘치는데, 구 목사님 참 좋아... 겸손하시고. 천식이신지 강단에만 오르시면 기침을 하셔서 구 목사님 설교하실 땐 기도를 한다. 오늘도 말씀 도중에 살짝 기침하실 기미가 보이길래 바로 기도 들어갔다. 두 번 기도했는데 ㅎㅎ 신기하게도 설교가 끝날 때까지 기침 한 번도 안 하심. 할렐루야!!
나는... 이럴 때면 마음이 아파.ㅠㅠ 선물님 뿐 아니라 부목사님들도 어쩜 그리 기도가 잘 들어가는지. 난... 이럴 때면 정말 맘이 짠하다. 얼마나 기도가 필요하셨으면. 얼마나 얼마나 성도들이 기도 부탁만 하고 기도해 드리는 일이 없었으면. 고작 나 같이 부족함 투성이인 성도가 기도한다고 그 기도가 금방 금방 쏙쏙 들어가는가. 기도하다 보면 금방 들어가는 거 느껴지거든. 구 목사님 강단에 서실 때마다 기침 기도하는데, 매번 잘 들어가는 느낌이 들어서 마음이 아프다. 구 목사님 기도 좀 더 자주 해야겠당.
선물님이야 뭐... 토비새 때도, 토비새 후 주일예배 위한 기도에서도, 또 주일 예배 시작 전부터 예배 도중도중, 목사님 목소리 잠기거나 조금만 긁혀도 바로 보혈 붓고 성령님의 거룩한 꿀물 바르고 난리가 난다. 기도하느라 정신이 없음.;; 하지만 은혜이지. 이 귀하신 주의 종을 위해 기도할 수 있음이 참 감사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