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dM-I9drzefE?si=i-NJIr5qvnY2pIQ5
[로마서 1:15~17]
15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That is why I am so eager to preach the gospel also to you who are at Rome.
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I am not ashamed of the gospel, because it is the power of God for the salvation of everyone who believes: first for the Jew, then for the Gentile.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For in the gospel a righteousness from God is revealed, a righteousness that is by faith from first to last, just as it is written: 'The righteous will live by faith.'
오정현 우리 담임 목사님💖 · 주후 2026.02.01 주일예배
§ 로마서 시리즈
0. 서론 - 정결함으로 로마서를 시작합시다
1. 로마서의 산에 들어가십시다
2. 복음의 능력을 받아야 산다
†복음의 능력을 받아야 산다
§ 로마 교회 사람들은 이미 복음을 아는 성도들이었다.
로마서 1:6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로마서 1:15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 이미 복음을 아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왜 다시 복음을 전해야 하나?
1. 왜 그리스도인이 다시 복음을 들어야 하나?
§ 배경: 로마 교회는 바울이 직접 세운 교회가 아니다.
[행2:10]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으로 인해 로마로부터 온 사람들이 은혜를 받고 로마에 교회를 세운 것이다. 그런데 20년쯤 지나 로마 교회에 문제가 생겼다. 세속문화가 너무 강했다.
[롬13:13-14]
13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 로마 교회에 세상적 가치관이 들어왔고 갈등과 충돌이 일어났다.
→ AD49년에 글리우디우 황제가 유대인을 쫓아 보낸 일이 있었다.
[행18:2]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한 사람을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 신앙심 좋았던 유대인 출신 그리스도인들을 추방하니 로마인 출신 그리스도인들만 남아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 추방한 유대인을 다시 로마로 들였는데, 로마인 출신과 유대인 출신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갈등과 충돌이 있게 된 것.
→ 처음에 뜨거웠다가도 시간이 지나자 화석화된 신앙 + 젊은 그리스도인들의 회의주의/냉소주의
☞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동일한 문제가 된다.
교회 안에는 있지만 복음 안에는 없는 사람들이 많다.
☞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도 다시 복음을 들어야 한다.
→ 복음의 거울을 닦지 않으면 인간적인 먼지와 세상적인 먼지가 쌓이게 되어 우리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없게 된다.
◇ 먼지
① 인간적인 먼지: 자기 체면, 자기 의, 자기 자랑
② 세상적인 먼지: 유혹, 오염, 재물, 쾌락, 탐욕
→ 십자가에 무감각, 죄에 무감각
2. 복음의 핵심이 무엇인가?
롬1:16b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The gospel is the power of God.
→ 인종, 지역 등 모든 조건의 차별 없이 '모든 믿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복음이다.
[롬1:17]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 마틴 루터의 깨달음 ⇒ 로마 가톨릭과 개신교의 차이가 됨.
◇ 다섯 솔라(Five Solas)
① Sola Scriptura
② Solus Christus
③ Sola Gratia
④ Sola Fide
⑤ SolaSoli Deo GloriaFide
바울은 복음은 '창조주 하나님의 전능한 능력'과 같다고 보았다.
[롬1:16a]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 바울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은 이유
롬1:16b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① 복음은 하나님의 강력한 능력이다.
→ 바울은 빌립보에서 고문을 당하였고 아테네에서는 수많은 철학자들과 논쟁을 하였으며 고린도에서 고난의 시간을 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를 향한 마음을 포기하지 않았다. 바울은 죄인으로 로마에 들어갔음에도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복음은 창조주의 강력한 능력이기 때문이다.
② 복음은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능력이다.
→ 다른 그 어떤 철학이나 지식으로도 '구원'을 얻을 수는 없다.
☞ 이 구원은 단순히 죽음으로부터의 구원뿐 아니라, 현재의 삶을 선지적 사도성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구원의 능력이다.
③ 복음에는 차별이 없다.
[롬1:16c]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 헬라인: 이방인을 통칭
☞ 사람의 모든 조건이나 배경에 상관 없이 주어지는 것이 복음이다.
3. 이 복음이 지금 '나의 복음'이 되어야 한다.
로마서 1:1 하나님의 복음
로마서 1:9 그의 아들의 복음
로마서 2:16 나의 복음
로마서 16:25 나의 복음
→ 바울은 복음이 그의 삶 전체를 사로잡았다.
→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도 복음에만 기초되고 복음으로만 설명되어야 한다.
복음이 '나의 복음'이 되면 나의 실패, 나의 과거, 나의 상처까지도 복음 아래 둘 수 있다.
복음이 '나의 복음'이 되면 더 이상 세상이 주는 수치는 나의 최종 언어가 아니다.
복음이 ‘나의 복음’이 되면 사람의 조롱보다 하나님의 능력이 크기 때문에 복음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 세상이 나를 판단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피의 복음이 나를 판단해야 한다 ☞ 복음으로 인해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선 실패자가 있을 수 없다.
→ 복음을 자랑하자!
[고전2: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 십자가 복음이 정체성을 바꾸는 능력이기 때문.
바울 - 복음 = 0
나 - 복음 = 0
이 되어야 한다!
→ 복음 방정식의 은혜
4. 능력을 받은 사람에게 나타나는 현상
[롬15:18-19]
18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하게 하기 위하여 나를 통하여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그 일은 말과 행위로
19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졌으며 그리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
→ 일루리곤: 지금의 알바니아
[마12:28]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 실질적으로 삶의 현장 가운데 이런 일들이 일어난다.
선반 신앙에서 나의 복음으로!
선반 신앙에서 심장 신앙으로!
→ 복음을 선반 위에만 두지 말고 행함으로써 자신의 것으로 삼아야 한다.
야고보서 1:22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 복음의 능력에 경계선을 두어선 안 된다!
→ ◇ ☞ † ⇒ ☆ § ※ √ ♥ ♥ ♥ ① ② ③ ④
* 글라우디오 유대인 추방
이건 사역반 큐티에서 다룬 내용이었는데 어디였더라 본문이.
"유대인들이 크레스투스(Chrestus)라는 인물 때문에 계속 소요를 일으켰다" 라고 로마 역사가 수에토니우스가 기록했기 때문인데, 여기서 크레스투스를 그리스도(Christus)라 보는 사람도 있고 다른 인물로 보는 사람도 있다고. 덕분에 로마에서 추방 당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고린도에서 바울을 만나게 됨.
지금 당장 고난과 박해인 것 같아도, 결국 더욱 큰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일 수 있다.
* 먼지
◇ 먼지
① 인간적인 먼지: 자기 체면, 자기 의, 자기 자랑
② 세상적인 먼지: 유혹, 오염, 재물, 쾌락, 탐욕
에서 감탄했는데. 내가 매일 암송하는 레마 말씀이 있거든. 작년, 아니 정확히는 2024년 가을 특새 때 받은 이후 작년을 거쳐 지금까지 매일 암송하고 있는 시편 113편에 '먼지 더미'와 '거름 더미'가 나온다. 매일 그 말씀 붙들고 기도하면서도 '먼지'와 '거름'에 대한 정확한 묵상을 하지 못했고, 다소 그 부분이 답답하긴 했는데, 이렇게 딱! 풀어 주심. 역시 하나님.👍✨
자기체면과 자기의와 자기자랑, 유혹, 오염, 재물과 쾌락에 대한 탐욕 등이로구나. 음. 시편 113편에 나오는 먼지는 딱히 그런 의미는 아닐 수도 있을 것 같지만. 비참한 상태? 그런 것 같으나 여기서 풀어 주신 의미로 해석하니 더욱 반성이 되고 새로운 은혜가 되는 것 같다.
* 타 종교는 구원에 대해 침묵.
오직 예수님만이 자신을 '구원'이라 말씀하신다는 사실을 그리스도교에서는 자주 강조하는데, 그 이유가 처음에는 쉬이 이해되지 않았더랬다. 그런데 묵상을 하면 할수록 실감이 난다. 그 어떤 종교가도 '자신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라 말한 적이 없어. 이단 중에는 있지. 걔네들은 예수님을 따라한 이단이고.
방황하던 중 하루키를 싫어했는데, 소개팅이나 선으로 만나는 젊은 남성들, 그것도 소위 '댄디'하다 말하는 남성들마다 하나같이 자신들을 '하루키 매니아'라 소개하더라. 자신이 멋지다고 생각하고, 주변에서 그런 말 꽤나 듣는 남성들이 다들 그랬어. 하도 그러길래 '도대체 하루키가 뭐길래' 하며 국내에서 번역된 하루키의 모든 소설을 다 사서 읽었다. 꽤나 많습니다... 에세이는 워낙 싫어하는 유형이라 읽지 않았고.
단편 장편 가리지 않고 출판 순서대로 다 읽으면서, 그들이 왜 하루키에 열광하는지 알게 되었다. 그것을 말하자면 또 길어질 것이므로 생략하고.
결론적으로 말하면 하루키에 대한 나의 평은 '겉멋'이다. 사가 졸업을 위한 마지막 과제로 발표한 개인별 선교전략에서도 다루었지만, 그는 리차드 도킨스의『이기적 유전자』를 그의 책 『1Q84』에서 문학으로 녹여내었다. 인본주의의 끝판왕이란 뜻이다. 당연히 그의 책은 허무하지. 지금 생각한 건데, 어쩌면 방황 시기 나의 허무는 그의 책의 영향도 받은 것 같기도 하다.
하루키는 꽤나 필력이 괜찮아서 글을 쉽게 쓰지. 그리고 도킨스의 졸작을 그의 작품 속에 상당히 그럴듯하게 녹여내었다. 그러나 틀린 정보이자 묵상인 것이고. 아 또 삼천포의 삼천포를 타기 시작했군 내가.;;
자자, 다시, 내가 하루키의 책을 마지막으로 읽은 것이 언제였더라... 암튼 그때까지 내가 느낀 하루키 작품은 두 종류로 나뉘었는데, 하나는 환상적인 사유이고 다른 하나는 감각적인이랄까... 그냥 남녀 관계에 대한... 그걸 뭐라 표현하지? 사색? 암튼 그런 종류였다. 극N으로서 나는 절대로 전자를 선호했으며, 나름 최애는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였는데 아놔 또 삼천포 타고 있.ㅠ 한동안 홀릭했던 대상이어서 그런다. 희한하게도 그렇게 맹렬하게 읽었음에도 한 번도 반한 적이 없어... 좋아한 적도 없고. 희한한 작가다.
그 하루키가 작품 내내 부르짖는 것이 '구원'이다. 방황 당시 나의 표현은 "'구원구원'거린다"였고. 정말 진절머리가 나더라. 방황 당시에도 나는 알았다. 아무리 방황 중이라도 내게는 구원이 있다는 사실을. 방황을 시작하면서 하나님께 내가 까불며 선언했다. "세상의 끝을 보겠습니다. 저의 구원 하나만 지켜 주세요". 어쩌면 내가 그렇게 말했기 때문에 그 책을 좋아하는 걸까? 지금 알았네. 딱 저렇게 기도하며 방황을 시작했거든. 그 방황이 20년짜리였고.하나님의 선하심을 믿었기에 구원만큼은 흔들린 적이 없었다. 아무리 내가 타락하고 잘못해도, 내가 만난 하나님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으로 인해 나를 버리지 않으신다. 그러니 나는 '구원'에 대해서만큼은 흔들린 적도, 고민한 적도 없다.
그런데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당대 작가 중 한 사람이, 매년 노벨문학상에 이름이 오르는 사람이, 그의 평생에 걸친 작품 활동 내내 '구원' 하나를 찾아 그렇게 방황하며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며 혀를 끌끌 찼다ㅡ나는 방황 중이었어... 그리고 그런 그가 하찮았다ㅡ다시 말하지만 방황 중이었다.;; 지금은 불쌍하다. 안 되었고.
'그 구원'이다. 예수님은 그 구원을 주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얼마나 시간을 아낄 수 있는가. 기실 수많은 사람들, 비그리스도인들의 절대 다수가 구원을 갈망한다. 그런데 우리는 그 구원을 기본적으로 받고서 삶을 시작한다. 그렇다면 얼마나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아낄 수 있는가 말이다. 그런데 왜 그리스도인들이 비그리스도인들보다 압도적으로 뛰어나지 않는 거지? 이는 시선이 하나님이 아니라 세상에 있기 때문이겠지. 세상의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느라 말이다. 왕자/공주가 거지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는 격이다. 그 어마어마한 능력의 구원을 받고도 세상처럼 살지 못해 안달이라니, 하나님의 능력이 임할 수가 없지 않은가.
아아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님의 능력을 실제화하여 살 수 있을까? 요즘 고민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작년까지 그 실체의 능력을 구했는데, 올해 나의 기도는 방향이 달라졌다. 올해도 개인기도 제목이 성령님의 임재다. 전적 임재와 통치. 그런데 능력이 아니라 성품을 구하고 있다. 성품이 먼저 임하신다면 능력이 임하는 건 일도 아니다. 성품이 안 되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선 나를 위해 능력을 주시지 않고 계시기 때문이다. 아아 더 풀면 앙대... 벌써 밤 11시다.ㅠㅠ
* 설 한 전도사님(아버님 목사님 교회의 동역자 전도사님)
대체... 어리셨을 때의 전도사님 성함을 아직도 기억하시다니.ㄷㄷㄷ;;; 아까 무슨 대화였더라, 이야기하다가 문득 hs이 '오정현 목사님은 정말 머리가 비상하신 것 같아'라고. '이제 알았냐'고 했당. 히힛. '우리 목사님 징차 똑똑하시다'고 자랑하며 내가 다 으쓱으쓱. ㅋㅋㅋ 나 똑똑한 사람 좋아해서.💖